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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았던 식사시간, 그 후...

아이고배야 |2016.04.19 00:37
조회 46,201 |추천 16
며칠 전에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어떤 이탈리아 레스토랑(별로 크지는 않지만)에 들렀습니다.
저녁 시간 약간 전이라서 그런지 아직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그래도 혼자 들렀기 때문에 양심상
가장 작고 초라한(...) 자리에 앉았죠. 그랬더니 직원이 미안한 듯이 '저쪽 넓은 자리에 앉으시죠'
라고 권하더군요. 어차피 평일 저녁이라 손님도 별로 없을 거라는 겁니다. 저는 원래 식당에 혼자
들어가면 상당히 눈치를 보는 편인데, 예전에 한번 어떤 식당에 들렀다가 혼자라는 이유로 푸대접
받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 기억이 있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_-a (이후,
저는 혼자 식당에 가면 무조건 가장 작고 초라한 자리부터 찾습니다.)
어쨌든 직원이 몇번이나 권하기에, 어차피 손님도 없으니 괜찮겠지 싶어서 좀 넓은 자리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시켜서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웬
애들 10여명이 우르르 몰려오더군요. (쿨럭) 애들 10여명에 어른 너댓명. 합쳐 거의 20명 가까이
되는 대부대(...)였습니다. (작은 식당 규모에 비하면 말이죠.) 순식간에 텅텅 비었던 레스토랑이
쉬는 시간 초등학교 교실처럼 변하지 뭡니까? 때마침 나온 스파게티를 입안에 집어넣으며 슬쩍
보니까, 갖고 온 치즈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느라 바쁘더군요. 아무래도 누군가 돈좀 있는
집 애가 생일인 모양이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친구들 10여명을 초대해 놓고 케이크도 잘라먹고
이탈리아 요리도 먹으면서 파티를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이번엔 웬 대학생쯤 되어보이는 남녀들이 우르르 들어서더군요.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동아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슨 모임을 가진 뒤 저녁을 먹으러 온
모양이었습니다. 당연히 좁은 레스토랑 안은 꽉꽉 들어찼고, 제가 처음에 앉았던 초라한 자리까지
사람들로 빈틈없이 채워졌습니다. 이쯤되자 혼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으려니까, 상당히
부담스럽더군요. 물론 제가 앉은 것을 제외한 다른 의자는 모두 문제의 대학생들이 다 가져가 버렸
습니다만, 넓은 테이블은 쪼갤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제와서 접시 들고 좁은 데로 옮기는 것 또한
번거로운 일이고, 얼른 먹고 일어서는 게 최선이다 싶어 스파게티와 마늘빵을 열심히 먹어댔죠.

그런데 잠시후에는 어린애 둘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리는 이미
꽉 찬 뒤. 그들 부부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만 빈자리가 없는 걸 보자, 애들을 데리고 그냥 돌아서
나갔습니다. 드디어 저 때문에 가게에 경제적 손해(...)가 생기기 시작했구나 싶어 더욱 좌불안석
이었죠. 그래서 죽어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얼마되지 않아 좀전의 그 부부가 애들을 데리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애들이 이 레스토랑에서
뭔가를 꼭 먹고 싶었나 봅니다. 애들이 계속 졸라대니까 부모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온 듯 싶더
군요. 그들은 직원이 굉장히 죄송한 표정으로 내주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먹는다고 먹었지만 그때까지도 제 접시에 남은 스파게티는 한 1/3 정도. 마늘빵도 한개 반
정도 남아있었죠. 이쯤되자 꽉찬 손님들에게 바쁘게 시중들던 직원들이 어쩐지 지나가면서 제쪽을
자꾸만 쳐다보는 것 같더군요. 앉아서 제가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애들은 자꾸만 배고프다면서
부모한테 매달려 칭얼대고, 부모는 제쪽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뭐라고 달래는 듯 싶었습니다. 이미
이 식당 안에서 제 편은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죠. (쿨럭) 다들 제가 빨리 나가주기만을 바라는 듯,
적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절반쯤은 제 망상이겠습니다만... -_-a) 그런 상황
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어라고 먹는 일 뿐이었죠. (모처럼 시킨 그 비싼 음식을 남기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제 평생 가장 지옥같았던 식사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늘방석에 앉아 뜨거운 철사를 씹어먹는 듯한 끔찍한 시간이 끝나고, 저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한 홀가분한 기분이 되더군요.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도, 저는 묘하게 밀려오는 죄책감에 감히 직원이나 그 기다리던 가족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창문으로 힐끔 넘겨다 보니까 직원들이 서둘러 제가 앉았던 테이블을
치우고 있더군요. 뭐, 그 다음은 안 봐도 뻔하겠죠. 아니, 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게, 그 시점
에서부터 이미 배가 아프기 시작했거든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과는 뻔하죠. 밤새 화장실
을 들락날락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죽만 먹고 있죠. (먼산)

사실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한다고 늘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게 20여년을
살아온 습관이라 그런지 잘 안되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혼자 식당에 가서 가장 넓은 자리 차지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만화책을 잔뜩 쌓아놓고 물 달라 김치 달라 하면서 한참을 버티면서, 심지어 최악
의 경우에는(...) 옆에 사람이 열심히 밥먹고 있는데 일부러 큰소리로 트림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뻔뻔한 사람과는 정반대의 극단에 있는 모양입니다. (쿨럭) 제풀에 죄책감에 빠져 좌불안석이
되는 일이 다반사이니... 아이고, 참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군요. 거기다 만만해 보이는지
툭하면 시비를 거는 사람을 만나기 일쑤이고... 난감합니다. 이 배탈도 결국은 그런 성격탓에 자초한
것인지도...

그래도 뭐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니 그냥 좀 나아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야지 어쩌겠습니까? (헐헐)

PS) 며칠 전 일을 이제야 쓰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죽하고 물만 먹고 있는 처지가 답답해서 문득...
여러분중에는 설마 혼자 식당에 가서 이렇게까지 눈치보는 분은 안 계시겠죠? -_-a
추천수16
반대수82
베플음냐|2016.04.19 04:08
지옥같았단건 좀 과한표현이지만 그당시 느꼈던 기분은 이해해요. 사람이 기라는게 있잖아요. 저사람이 날 좋아하는지 아닌지 기류로 느끼게되죠. 아마 다른손님의 그런 의향을 시선과 표정으로 조금 흘러나왔겠죠. 그리고 참...요즘 댓글...반말에 욕에 ....
베플ㅋㅋㅋ|2016.04.19 00:39
개병신 지돈주고 밥사먹는데 눈치를 왜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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