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종종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네이트 판 캡처를 본 적이 있어서 서둘러 가입했습니다.
우선 저는 이십대 중반 여자고, 여자를 좋아합니다. 이성애자분들은 태어나서 '나 진짜 남자가 좋은 건가...? 어떡하지? 진짜 나 이성애자인가?' 이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으시겠지만, 저는 방황하는 10대 때는 '내가 아직 어려서 그래. 착각인가 보다.' 했고, 20대가 되고 나서도 '아... 진짜 여자가 좋은 것 같은데. 아니야, 남자를 사겨 보자.' 해서 일부러 남자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여러 번의 검증을 통해 결국 '그래, 난 여자가 좋다.'하고 정체성을 확신한 게 바로 올해였습니다.
소수에 속해 남들 안 해도 될 방황과 고민까지 했다고 울분을 토하는 글은 아닙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제목처럼 어떤 호모포비아 때문에 빡이 칩니다.
제 친구 A와, B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 C라는 오빠가 있습니다. 이 세 명과 저는 모두 같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B는 학생 때부터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돌던 친구였습니다. C오빠는 같이 일하게 된 B에게 대놓고 '나는 레즈를 아주 싫어한다. 안 걸리게 조심해라.'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ㅋㅋ 저는 B가 진짜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C오빠가 B에게 그딴 소리를 한 게 이해가 안 갑니다. 걸리면 뭐 어쩌게요. 레즈가 싫으니까 팰 겁니까? 아님 동네방네 아웃팅시켜서 B에게 잊히지 않을 상처라도 줄 거래요? 게다가 C오빠는 B에게 B가 친하게 지내는 언니분과 키스를 해 봤냐고도 물어봤습니다. ㅋㅋ 너무 싫은 레즈의 세계에 관심 끄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체 무슨 실례인지 제가 레즈라서가 아니고, 그냥 인간으로서 어이가 없어요. 예의범절 좀 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그리고 A와 B가 친하게 지내자 혹시 제 친구인 A도 동성애자가 아닐까 의심이 됐는지 C오빠는, A에게 친한 제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랑 키스해 봤냐고도 물어봤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A에게 물었습니다. '취해서 출근했음?' A는 말했습니다. 'ㄴㄴ 맨정신.' 맨정신에 저딴 말을 하다니, 맨정신이 괴로운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자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C오빠는 제 성정체성을 전혀 모릅니다. A는 제가 아는 한 여자를 좋아한 적도, 사귄 적도 없습니다. A는 차라리 레즈비언이라고 의심하는 편이 낫겠다면서 어떻게 너랑 자기를 키스하는 사이 취급하냐고 치를 떨었습니다. 제가 더 치 떨립니다... A와 저는 친자매, 아니 친형제 같은 사이입니다. C오빠는 형이 있는 남자에게 '너 형이랑 키스해 봤냐?' 하는 똘추인가요...? 아니, A가 진짜 저랑 사귄다고 칩시다. '너 애인하고 키스해 봤냐?'는 엄연한 직장 내 성희롱 아닙니까?
성희롱 하니까 말인데, 막역한 사이도 아닌 여동생들 앞에서 섹스 이야기 좀만 자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면전에서는 분위기 망칠까 봐 혹은 오버하는 걸까 봐 못 나서고 가만히 웃으며 듣는다고, 정말 불쾌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왜 스스로 불편한 사람이 되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네요.
하나 더. 제가 예쁜 외모가 아니란 건 저도 압니다. 근데 왜 가만히 있는 제 친구 A에게 저랑 친하지도 않으신 분이, '근데 ㅇㅇ(제 이름)이 못생겼어.'라고 자꾸 말을 하세요? 듣는 제 친구 기분 나쁘게. 저 기분 나쁠까 봐 A도 그동안 저한테 말 안 하다가 이런 저런 일이 쌓이니까 오늘 말해 줘서 알았습니다. 외모로 평가하는 남 평가하는 C오빠와 똑같은 년 되더라도 이 말은 해야겠습니다. 그러는 니 얼굴은;
글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제가 동성애자고 C가 호모포비아라서 화가 난 게 아닙니다. 물론 그게 화를 키우는 장작 역할을 하긴 했지만, 저는 걍 C가 무개념이라서 빡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익명으로라도 커밍아웃을 한 건, C의 이야길 들으며, C뿐만 아니라 B가 사실 레즈라고 소문을 퍼뜨린 모든 대학 사람에게 실망을 해서입니다. B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왜 상처가 될 말을 굳이 번거롭게 입을 나불거려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기고 다니는지요. ㅋㅋ 명예훼손죄는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죄가 성립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B는 C를 포함한 대학 사람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동성애자라는 게 명예를 훼손하는 말인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특히 레즈비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꽁꽁 숨기고, 가족과 친구에게도 진짜 모습은 보이지 못합니다. 아웃팅이 두려워 당당하게 연애를 즐기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가 왜인지는 알고들 계실 겁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법은 잘 알지 못하지만 당연히 B는 사람들을 고소하지 못합니다. 해 봤자 결국 소문만 무성해질 본인 손해인데요, 뭐.
심지어는 저랑 제일 친하고, 제가 여자를 좋아한단 걸 알고 있는 A도 레즈비언이라는 오해를 사면 제 앞에서 '내가 왜 그딴 말을 들어야 해.' 하면서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그딴 말.'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겠죠. 동성애자가 어떤 식으로 대우받는지 알고 있으니, 소심하고 눈에 튀기 싫어하는 제 친구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더 강하게 반응한 것뿐일 겁니다. 그래도 듣는 제 기분이 좋지 않단 건 사실이네요.
네. 저는 C에게 한번 열이 받자, 제가 지내는 사회의 인식에도 열이 받았습니다. ^^ 불가피하게 가지고 있던 피해의식이 한번 밟히자 난동을 부려서요. (그렇다고 제가 평소에 난 레즈라서 불행해... 하는 사람은 아니고, 평소엔 다른 사람처럼 제 정체성을 굳이 곱씹는 일 없이 평범하게 생활합니다.) 옛날에 비해선 편견과 근거 없는 비난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ㅜㅜ
아무튼 C발오빠가 다시는 그런 막말을 제 친구 A와 B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유치한 사람하고 같은 지구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도 소름 끼치네요. 부디 예의를 갖춘 사람들 곁에서 멀리 꺼져 주시길 바라며 글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