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판을 즐겨보는 30대 여성입니다.
여느 글 처럼, 제가 이렇게 판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그저 씁쓸할 뿐입니다..
결시친 카테고리에 맞는지 방탈인지 알 수 없지만..
여기가 가장 조언을 듣기 좋다고 해서요..
다름아니라 제목처럼, 저희 엄마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꼭...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4살 많은 남친이 있습니다.
사귄지 벌써 1000일이 훌쩍 넘었지요.
지인의 소개로 만나 알고 지낸지 7년이 넘도록 그냥 아는 오빠 동생으로 지냈습니다.
사귀기엔 너무 먼 거리였기도 하거니와,
오빠는 그저 절 어린 동생으로만 보았고 전 오빠를 좋은 조언을 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인연이 되어 사귀게 되었고 사귀는 내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제 편이 되어 주고 또 제가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은 오빠 뿐이라는 확신이 들어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문제는 저희 엄마 입니다.
우선 저희 집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저희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셔서 젊은 나이에 고생고생하며 저희 남매를 키우신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강단있게 살아 오신 분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유산을 남기기는 커녕 말 많고 도움 하나 주지 않는 친척들만 남긴 덕에
저희는 정말 어렵게 살았습니다. (엄마의 동생들인 이모들이 겨우 겨우 도와주셔서 이만큼
컸다는 것 덕분에 이모들께도 늘 감사하며 삽니다. 또 친가쪽은 이가 갈릴 만큼 이야기가
많지만 지금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공부에 대한 갈망이 커 늘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고 현재도 주역이며 사주 공부며, 역사 공부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내년에는 만학도로
대학교도 가실 예정이시구요.. 저도 이런 엄마를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이해하기
너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제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성격이 까탈스럽고 예민한 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없이
자라서 늘 엄마의 전전긍긍한 사랑을 받아서인지 이기적인 면도 많구요. 저와는 최근에는 좀
나아졌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제가 동생때문에 숱하게 자살을 생각했던터라 대면대면 합니다.
엄마는... 제가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제가 그럴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도
끝없이 선생님 되기를 주문하셨습니다. 제가 성격이 무른 편이라 저는 엄마를 거역하지 못했고
거기에 휘둘려 전문대 - 대학 편입을 거쳐 5년 전에야 겨우 사범대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사범대 졸업 후 임용 고시를 봤었지만, 공부 범위도 범위고 모의 시험을 풀어보면서도 막막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공부를 그닥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학원도 가지 못한 것이, 집에 돈 없는 것을 뻔히 하는데 제 머리로 합격할 수 있으니 학원비를 마련
해 달라는 소리는 정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하자 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것도 사실
엄마의 임용시험 타령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습니다. (엄마는.. 본인이 공부를 갈망하는 만큼
제가 공부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정말 이해하지 못합니다.. 진심으로요..)
아르바이트는 최저시급 겨우 맞춘 일이었지만 나름대로 8시 30분 출근에 6시 칼퇴를 해주는
사무직이었어요. 엄마는 그걸 아시고는 아르바이트가 마치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고
하셨지요.(임용 못하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화를 냈더니 공무원으로 전향하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마치고 나서 그냥 쉬는게 아니라 마치면 집에 돌아와 동생의 밥과 집안일을 했어요.
저와 비슷하게 졸업한 동생도 엄마 때문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효자인 동생
은 저와 달리 군소리 없이 규칙적으로 공부를 했어요.
까탈스럽다고 한 말처럼 동생은 새벽 5시면 일어나 씻고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오후 9시면 잠이 드는 생활을 규칙적으로 했어요. 아침을 차려서 방에 넣어주면 그것 먹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고 공부를 합니다. 집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100원하나에도 벌벌 떠는 성격이라 제가 뭘 사가거나 차려주지 않으면 안먹었어요. 퇴근해서 밥차려 주고 집안 청소 하고 좀 쉴려고 보면 9시 입니다. 그러면 저는 제 방에서 숨 죽이고 잘 준비를 하거나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동생이 9시 까지 때까지 다 마치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화를 냈거든요.
동생은, 자신이 한번 주장하면 굽히지 않는 성격입니다. 틀린 것이라고 해도 자신이 맞으면 맞는 거예요. 제가 이러이러하다고 설명을 해줘도 말꼬리르 잡고 늘어지면서 누나는 잘못안하냐며 누나는 다 옳냐며 다 알고 있냐며 미친듯이 화를 냅니다. 히스테릭하게요. 말도 통하지 않고 싸움의 종반에 가면 저는 동생이 저를 때리거나 죽일까봐 무서워 결국 울면서 사과하고 말았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신 사이 동생이 저를 칼로 찌르려고 했던 적이 있었고 또 엄마 목을 졸랐던 적도 있어서 저는 동생이 많이 무섭습니다. 지금도 남자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성격이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특히 남자 앞에서 제가 화를 내야 할 때문 몸이 덜덜 떨려오고 현기증이 나기도 합니다. 동생은 군대에서 집단 구타를 당한 후 외상후 후유증으로 과거 일은 거의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동생의 군대 갔다 온 후의 성격은 히스테릭할 뿐 신체적 위협은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만 전 여전히 동생이 무서워요..
엄마는.. 늘 일을 하시느라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으셨어요. 보험 설계사 일을 하실때는 그래도 꾸준히 들어오셨지만 저와 동생을 돌보시기엔 엄마의 건강이 너무 좋지 않으셔서 일을 하시면서도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많으셨어요. 저희 남매가 대학을 졸업하고 난 이후엔 사무실 하나를 얻어 일을 하시면서 그곳에서 숙식을 하셨기 때문에 엄마는 저에게 동생을 보살피라고 했어요. 저랑 겨우 2살 차이 나는 동생을, 그렇게 저는 보살펴야 했고 동생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지요. 엄마 앞에서 동생은 더 없이 효성스러웠고 더 없이 착하고 유순하였기 때문에 제가 엄마에게 울면서 호소해도 엄마는 제 말 보다는 동생의 말을 더 믿으셨어요.
견디다 못한 제가 동생을 탈출해서, 서울로 올라오고 난 이후에야 엄마와 동생은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동생의 진짜 성격을 알게 되셨어요. 그래도 엄마는 동생이 측은하시대요. 아빠 없이 커서 엄마가 잘 못돌봐서 그렇다고요.. 집에 남자 어른이 없어서 좋은 롤 모델을 못보고 자라서 그렇다고요.. 물론 저도 사랑하는 내 딸,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주셨지만, 동생에게 하는 행동은 많이 차별이 드러나요.. 본인은 아니라고 하시지만요..
동생도 그렇지만 저도 이런 가정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밖에서는 되도록 남들에게 눈치채이지 않게 조용히 생활했습니다. 집 밖에서 이런 집안 이야기 하는 것도 솔직히 창피해서 말을 하지 않았기도 했는데, 오빠는 이런 제 불안정함을 용케 알아보고 케어해 주었어요.
자존감이 낮고 뭘해도 안된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데다 사람 자체를 잘 믿지 못해 늘 외로움과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여자를, 너는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너는 너 하나로도 빛나는 사람이다라고 끊임없이 주입시켜주었고 또 실제로도 늘 저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주었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는지 처음 알았고 오빠로 인해 제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호구 노릇을 하고 싫은 소릴 못하고 살았다는 것도 알았고, 좋은 친구 나쁜 친구를 가려낼 수 있었어요. 서른 넘어서야 겨우요.
부드러운 말씨에 다정한 태도, 제가 남자의 높은 언성에 겁내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화가 나도 한번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또한 제가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랑스럽다, 예쁘다, 잘한다 라고만 해주었던 이 사람을, 저는 진심으로 믿고 사랑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평소 어떤 남자를 데려와도 우리 딸이 데려오는 남자는 어떻든 외국인이든 허락하시겠다고
하셨었어요. 근데 처음 사귈 때부터 오빠를 탐탁치 않아 하시더니, 정식으로 교제를 허락 받겠다고
처음 인사를 드리러 온 때, 가족관계증명서,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자소서,
부채증명원, 재직증명서를 떼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제가는 부족하지만 남들에게는 사리분별 딱부러지시고 공평하신 모습만 봐와서
엄마의 그런 요구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어요. 겨우 겨우 웃는 낯으로 사귀는 사이인데 그런 것을
떼오라는 부모가 어딨냐고 했더니 귀한 내딸이랑 교제하려면 그 정도는 해와야 한다시면서
막무가내셨어요.. 나중에 이유를 말씀해주시기를, 저와 오빠의 사주를 여러 철학원에 물어봤더니
오빠는 횃불이고 저는 나무라서 불에 나무가 타 죽을 사주라 저랑 오빠가 좋지 않다고 하셨었대요.
어째저째 무리한 요구라고 엄청 싸운 후 소개를 시켰습니다.
(사주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알려 드렸었습니다만, 정말 후회했었습니다. 소개 시킨 것도요..)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제가 오빠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엄마가 죽어 버려야 결혼 안할 거냐는 말씀까지 하실 정도로 결사 반대를 했고 저와 인연을 끊겠다는 소리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그 놈한테 내 딸 못준다며.. 엄마는 오빠의 집안도 너무 흠이 많다며 싫다고 하셨습니다.
오빠네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오빠네 아버님이 오빠가 중학생때 이혼을 하셨고 (어머님의 귀책사유셨습니다.)
아버님이 건축 막노동을 하셔서 오빠가 동생을 보살피면서 학교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대신 할머니께서 오빠와 동생을 많이 보살펴 주셨다고 하고요.
또, 세 분의 고모가 많은 도움을 주셨었답니다. 현재 고모 한 분은 외국에 이민을 가셨고
다른 고모 두 분께서 연로하신 할머님을 번갈아가면서 모시고 있으시답니다.
할머니께서 치매끼가 있으셔서 고모들 식구들하고만 지내고 있으신데 몇번 뵈었지만 심한 치매가
아니셔서 그저 거동이 조금 느리고 반복적인 말만 하시는 것 외엔 큰 증상이 없습니다.
제가 오빠와 결혼하게 되되 할머니는 계속 고모분들 댁에 계실 것이라고 하고,
고모들도 조카의 짝꿍이 생겼다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를 예뻐해주십니다.
아버님과 오빠의 동생은 좀 서먹서먹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좋지 않다고 제게 선을 지켜야 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 엄마는 오빠가 it 쪽의 일을 해서 야근이 잦은 것과, 박봉이라는 점, 그리고 치매 할머니, 고모 세분이 있으신것, 이혼 가정이라는 것 때문에 너무 너무 격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시월드 노릇할 시어머니 안계시다고 좋았는데요..
어쨋든, 엄마의 반대에 오빠는 낙담할 법도 한데, 그래도 제 가족이라고 어머니께 잘해드려야 한다고 사귄 후 1년 후 부터 지금까지 명절 전에 내려가서 제사 음식도 도와드리고(저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손 베인다고요.. 저도 음식 잘하는데.. ㅎㅎ)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살갑게 굴고 (동생과 저는 경상도 성격이라 애교도 없고 무뚝뚝합니다. 제가 조금 애교를 부리긴 하지만 엄마랑 부딪힐 때가 많고 엄마도 성격이 강해서 그냥 져 드리느라 애교가 많지 않습니다.) 저의 아버지 기일이며 엄마가 암 수술로 병원에 누워 계실때도 매일 매일 병문안을 갔습니다.
오히려 딸인 제가 남 같을 만큼, 오빠는 최선을 다해 엄마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어요.
그 결과인지 얼마전에는 드디어 엄마가 너희들 날짜는 언제 잡을 거냐라는 말도 나왔지요.
그래서 이번 아버지 기일에 제사 음식도 도울 겸 같이 내려갔습니다.
동생은 늘 그렇듯 오빠가 불편하다며 인사 한번 나눈 이후엔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밥도 자기 방에서 혼자 먹었습니다.) 저는 멀미를 심하게 하여 도착하자 마자 앓아 누웠는데 오빠는 엄마를 도와 제사 음식이며 엄마의 화단 정리며 화분 정리까지 도왔습니다. 기일 다음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 엄마와 함께 차로 두시간 거리의 절 4군데와 암자 3군데, 명승지 3곳을 다녔습니다. 저와 동생도 함께요. 오빠도 저도 면허가 없어 운전은 엄마가 하셨는데 거의 절 밥을 먹어서 밥은 저녁 한끼만 외식으로 해결 했습니다.
돌아온 이후에 엄마가 철학관을 들려 좋은 날도 받아주시고 제가 결혼 할 수 있을 법한 예식장도 같이 두어곳 다녔습니다. 이때 엄마는 어디를 다니셔도 오빠를 더러 예비 사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오빠와 저는 다시 각자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엄마가 상견례 날짜를 잡아 보라고 하셔서 이달 말 쯤으로 어떻겠느냐고 전화를 했더니 대뜸, 결혼 다시 생각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좋지 못하다면서요. 어떤 점 때문에 그러시냐고 여쭈었더니 그냥 그러시다는 겁니다. 어린 아이마냥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왜그러시냐 이유를 알아야 해결을 하지 않겠느냐 했더니 예식장을 다닐 때 오빠 이름이 좋지 않다며 바꾸라고 이야기 하셨던 때에 오빠가 웃으며 넘기는 것이 좋지 못하셨답니다.
갑자기 삼십년 넘게 산 이름을 바꾸라는데, 누가 넙죽 그러겠다고 하겠습니까. 이 요구는 처음 인사 갔을 때도 그러셨는데 그 이후 말씀이 없으시기에 잘 넘어 갔다 했던 것이었기도 했습니다. 오빠가 웃으면서 "제가 아직은 바꿀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라고 한 것이 실실 비웃으면서 엄마 말을 안 들은 거랍니다. 거기다 제게 대하는 태도가 절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답니다.
(그런 적 전혀 없습니다. 오빠가 제사 음식 하는 동안 저는 내내 못된 남편 마냥 빈둥 거리고 누워 있었습니다. 엄마랑 오빠랑 이야기 좀 많이 하라고요.. 전 대신 혼자서 밤 깠습니다.)
또 외식 할 때 자기가 먼저 나서서 계산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왜 그러지 않았냐고, 또 장모 될 사람 집에 오면서 빈손으로 덜렁덜렁 왔다면서요.. (이부분은 제가 지금 오빠의 월급통장을 관리하고 있어서 제가 못챙겨서 생긴 일입니다. 오빠는 하루에 만원씩 용돈 타 쓰거든요. 오빠가 먼저 요청했습니다. 자기 대신 월급 관리 해달라고..)
그러면 왜 상견례를 하자는 둥 예식장을 보러 다니셨냐고 했더니 엄마는 지속적으로 오빠가 싫었지만 제가 올때마다 오빠를 데려오고 제가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하니까 겨우 참은 거지 오빠를 허락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러면서 허락 받으려면 재직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졸업증명서를 가져오랍니다.
자꾸 왜 그러시냐, 그거 너무 무례한 거다, 제가 오빠네 집에서 그런 취급 받으면 기분이 좋으시겠냐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도 않으시고 엄마가 사리분별 잘하니까 하는 소리라십니다. 하다 하다 못해 헤어지라는 소리시냐고 했더니 얼른 헤어지고 다른 남자 찾으랍니다.
서른 넘어서 공부만 많이 했다뿐, 자격증도, 경력도 없고 이제 겨우 1~2년 회사 다니느라 모은 돈도 없는 여자를 누가 데려가냐고 그랬더니 데러갈 사람 천지랍니다. 엄마 아시는 분들도 다 저를 며느리로 달라고 하신다고요. 제가 그래서 난 시부모 봉양 절대 안할 거다, 애도 안낳을 거고, 제사 음식 안할 거다, 시어른들도 1년에 설, 추석 딱 두번만 볼거다 라고 꼭 말씀드리고 그러고도 절 원하는지 물어보시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놈은 그렇게 해준다 하더냐고 하시기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오빠랑 상의 했고 아버님도 먼저 자주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자녀 문제는 오빠와 저만 상의했지만요. 저는 저 같은 딸 낳을까봐, 그리고 우리 가정 형편에 애는 사치라고 생각해서 안 낳을 겁니다. 오빠도 저만 있으면 된다고 했고 둘 만의 노후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와 같은 사항을 적어 변호사 공증을 받아 오랍니다.
또 이름도 바꿔야 한답니다. 그러면 상견례 허락 하시겠다고요. 기가 막혀서 말문이 트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해서까지 결혼을 해야 하겠는지도 모르겠고, 이 상황을 오빠도 옆에서 듣고 있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통화할 때 데이트 중이었습니다.) 창피하기까지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가족관계 증명서니 재직증명서니 이런 것은 오빠가 혹시 결혼했는지 여부를 보시겠다거나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으신 거라고 이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바꾸라니요.
백번 천번 만번 양보해서 이름 바꾼다고 한들 상견례장에서 깽판 안놓을 보장이 없습니다.
엄마에 대한 실망과 창피함, 그리고 오빠에 대한 미안함으로 잠이 안오네요.
결혼 포기 했습니다. 상견례 안할 겁니다. 근데 오빠한테 미안한 것, 엄마에게 실망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착한 사람 마음에 대못을 그렇게 박으신 것도 그렇지만, 이 사실이 오빠네 댁에 행여나 훗날에도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저한테 무슨 소리를 하시겠습니까. 또 우리 집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습니까.
정말 엄마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빠는 그래도 엄마 설득해서 결혼식 준비 잘하자고 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제 다 진절머리가 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