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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뭐기에..

ㅇㅇ |2016.06.04 13:29
조회 577 |추천 0
눈팅하다가 할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학생의 글을 보고저 또한 누구에게 다 편히 털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적고싶네요.많이 힘들었기에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편히 말하려하니 이해부탁드려요.
또한 길고 긴 글이 될 것 같으니 긴 글 읽는게 힘드신 분들은이 창을 벗어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패륜이라고 못났다고 그 어떤 욕을 하셔도 좋습니다만혹여나 제 글을 읽고 공감하고 비슷한 처지의 분들이 같이 견뎠으면 좋겠네요..
나에겐 알콜중독자 어머니가 계셔.언제부터 알콜이 중독되어 있었을까..잘모르겠어 하지만 내 생애 첫 기억의 시작인 2~3살 쯤에도 나를 낳아준 사람은 술을 잘마셨고 세세히 기억나기 시작했던 5살까지 더듬어 올라보면어머니는 술을 안마시면 1~2주 참았지만 마시기 시작하면 한 두달은 마셨어.그리고 술을 안마시면 정말 현모양처에 결벽증 수준으로 집안살림도 잘하고 좋은 사람이었고술을 마시면 아예 악마가 되었어.주사폭력이 심했고, 어떤 폭행을 당하며 살았는지..내일모레면 30대가 눈앞인데도 선명해.또한 바람을 대놓고 피며, 도박에 우리집안을 빚더미에 앉혔다..
어린시절 내 초등학교 일기장을 들춰보면 어린마음에 어머니를 술 마신 악마, 진짜 우리엄마이렇게 구분지어 취한 어머니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과 나 자신이 폭행에 의해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찌들어있더라.그래, 언제 죽을지도 몰라서 나는 성인이 되고 얼마 후까지도 일기를 쓰곤 했었어.그게 내 유언이 될거라 생각했거든.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친구들과 도박을 즐겼고아버지는 객지생활하며 돈을 버시다가 동생이 생기자 기러기 생활을 관두시고 함께 살았어.어머니는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는 무슨 이유인지 말을 안듣는다고나를 개패듯 패기가 일쑤였고 종종 피를 토하고 코피가 나는 건 일상이었어.여기저기 붓고 멍드는건 기본이고.하지만 이유가 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때리는 걸 멈추곤 했지.
그래서 10살즘이었나.한 번은 아버지 직장에 전화해 (당시에 다른집은 모르겠는데 핸드폰이 없었어 한창 스타크래프트 나오던 시절이었지) 제발 와서 살려달라고 빌었다.그게 아직도 내 마음에 한이다.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지금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거 아닌데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는 타지에 출장가있어서 바로 달려올 수 없었고이웃주민의 신고였는지, 아버지의 신고였는지 경찰들이 왔고 나는 놀이터로 도망나왔어.
어릴 때부터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이유없이 맞는 게 너무 무서웠으니까..하지만 늦게까지 놀이터에 있던 나의 행동들이 폭력을 더욱 가중시키기만 했고아버지도 어머니의 주폭을 말리다 안되니 나를 붙잡고엄마 말 좀 잘들으면 안되겠냐고 꼭 이렇게 집을 쑥대밭을 만들어야겠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나에게 그 때까지 어머니랑 무섭고 무서운 존재였어. 너무나도 큰 산 같았지.5살? 아마도 그 전부터.알아듣지도 못할 당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곤했다.어머니 집안도 복잡했던거 같아.나에겐 외할아버지인 사람이 외할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도를 했고.외할머니는 끝내 그 첩의 자식을 호적에 못올리게 하겠다며 이혼을 결사반대 했던 모양이야.그런 와중에 막내딸인 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에게 버림받았고..학대도 당하고..나중에야 만났지만 공장을 다니고 돈을 벌어 외할머니께 갖다바치다가학교도 못다니고 서러워 가출하고 세월을 보내다 아버지를 만났다고 들었어.(내 부모님 세대 땐 10살짜리도 공장에 들어가 일하던 시절이니..)
술만 취하면 당신 얘길 너무 많이 하셔서 구구절절 기억나그게 조금 감정적으로 왜곡된 기억일지 몰라도하나하나 다 서술하기엔 자서전 수준이 될거 같아 최대한 줄여 쓰는 중이야.ㅠ
나를 임신하시고 다시 만났다는 외할머니는 내 기억에도 나에겐 잘해주셨는데우리 어머니에겐 굉장히 차갑고 독한 사람이었다.한 번은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어떤 말?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 했는데,학교 끝나고 돌아온 집 문은 열리지 않고 안쪽에서 신발장 너머로 피가 흘러나왔어.너무 무서워서 옆집 아줌마를 불렀고 곧 소방대원들이랑 경비가 와서 문을 열어줬던거 같아.어머니가 자살시도한 걸 처음 목격했던 그 때 9살즈음이었어.
그 즈음 나는 가난한 집 애라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있었고(엄밀히 '나만'은 아니었어 동네가 특이해서 학교를 기준으로정문쪽은 잘사는 동네, 후문 쪽은 고아원, 영세민 아파트였음)설상가상 우리집 근처엔 우유박스가 많아서 처음 "스스로 죽는다"는 걸 고민했었어.
하지만 그러고 얼마 뒤, 외할머니가 투신자살하셨다.장례식에 못가서 맡겨진 이웃아줌마들이 쑥떡거리는걸 엿들은 기억에는 외할아버지랑 이제라도 이혼 해야겠다는 외할머니에게어머니가 차라리 죽으라고 했다는 모양..(당시 기억은 "세상에 딸이 그렇다고 엄마보고 죽으라 그래서 그래됐대",로 기억함)
어머니의 술을 마시는 주기는 그 때부터 빨라졌다..집을 나가서 아버지가 서툰 솜씨로 요리를 해주는 날들이 늘었어.이상한 잡탕을 해주시곤 했는데..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 맛있었고차라리 그렇게 셋이 있던게 분명 행복했었어 그 때도..
나만 때리던 어머니가 동생에게도 손을 대기 시작했고아버지에게 칼을 들기도 했어.항상 나에게 니 집 씨족이 어쩌니 그런 말을 많이했는데아버지 집안도 콩가루였던 모양이야.남매가 꽤 되는데 친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3살때 돌아가셨고 할머니 혼자 자식들을 키우셨지.배다른 형제들이라 터울이 좀 컸어.아무튼 아버지는 막내고 바로 위에 형이 정신이 나가서아버지도 어릴때 많이 맞고 자라셨다더라.어머니나 때로는 나에게도 전화로 성희롱을 하곤 했어서 어머니가 가뜩이나 본인 정신도 온전치 않은데 무뚝뚝한 아버지에 집안도 그 모양이라 화풀이했던거 같아.
그러다가내가 사는 동네가 좀 후진 곳이었어서나를 포함 많은 여아 남아들이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지.결국 그 중에 경비를 섰던 사람은 잡혀들어가기도 했다고 건너들었어.어렷던 나는 그것이 무슨 문제였고, 어떤 심각한 일인지 아주아주 훗날에 알았어.
아무튼 그래서 우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이사를 했어.그리고나서우리 어머니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작은 고모가 고모부 외도로 자살하시고얼마뒤엔 딸을 따라가듯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조카를 안고 어른들이 염하는거 보지말라고 내보내서 슈퍼 다녀오는 동안동네 꼬맹이들이 짓거리던 것도 생생하다..그 집 아들이 맨날 엄마 뱃속으로 다시들어가고 싶다고 괴롭혀서약먹고 그 할머니 죽었다더라고.지금 생각해보면 그 꼬맹이들이 부모님이 씨부리는 말만듣고 한 말 일테지만무슨 의미였는지는 몰랐으리라 생각해.나도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지만 비난받는거 같았고할머니는 주무신다고 어른들이 말해서 서러워서 그 꼬마애들에게 욕했던 기억이나.
그것만으로도 우리 어머니가 의지할 곳은 충분히 없었어.그런데 같이 도박하던 친구가 다른 친구랑 짜고어머니카드며 뭐며 주변 지인들에게 사기로 돈을 긁어모아 잠적을 탄 역대의 사건이 발생했어.왜 역대냐면..안그래도 개똥 콩가루 어디 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든 막장인 우리집이돌이킬 기미나 희망 한 줄기도 안보이게된 결정적 사건이었기 때문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긁은 돈이 총5억이고 우리집에서만 5천 정도 긁어갔던거 같아.이게 약 15년여 전의 물가임..
꼴랑 약 5년 안에 터질 수 있는 모든 사건사고가 터졌어.그래, 맨 정신이었던 사람이라도 힘들었을텐데우리 어머니는 원래 제정신이 아닌데 오죽했겠어.배신한 친구를 찾겠다고 전 지역을 떠돌며 노숙하며 술로 하루하루 이어가고아버지는 엄마 찾으러 다니랴, 우리 챙기랴 고생하셨어.
나랑 내 동생은 우리 나름대로 전학왔다는 이유로 소위말하는 텃세에 밀려힘든 학교생활에 적응 중이었어.나는 나대로 담임이 선동해서 왕따를 관망함.돈없어서 수학여행 못간다고 했다고 애들한테 조금씩 돈 거둬서 덕분에 다녀오니 감사하라고 인사시킴 ㅋㅋ하 덕분에 애들의 무시가 더 심해지고 남자애들이 많이 괴롭혔는데도움을 청하자 선생이란 년이 그래서 어쩌란 거냐는 식이었어.하지만 그런 나의 학교생활은 집에 비하면 포근했어 정말로. 차라리 학교가 좋았어.
어머니가 종종 집에 돌아오면 그냥 맞아야만 했어.정말 죽을 거 같아서 발버둥을 치다가 어머니 얼굴이 멍든적이 있는데어머니가 그거 아버지가 때린거라고 오해해서 아버지 손을 칼로 뚫었는데나 그게 너무 무서워서 차마 내가 엄마 취햇을 때 실수로 그런거라고 말 못했다...너무 비참하더라어머니는 그러고 종종 동맥을 끊었고난 그 땐 살고싶었어. 이유는 몰라. 그냥 나를 낳아준 사람의 손에 죽는게 싫었어.어머니는 항상 날 붙잡고 낳기싫었다고죽으라고 농약도 먹고, 술,담배도 했다고그런데 니 동생은 낳고싶어서 낳았다고 그랬거든.심지어 얼마전에도 그랬다~ㅎ....그래서 저 여자의 손에서 내 생과 죽음이 다 결정되는 것이 정말 싫었다.그리고 나는 어머니랑 전혀 안닮아서 동네 사람들이 딸이 너무 이쁘다고 엄마는 계모 아니냐는 약간 질떨어지는 농담 때문에더 맞았는데 그런 농담 듣고온 날은 왜 배아파서 나온새끼가 날 안닮았냐고 더 가혹했는데때론 정말 내가 죽길 원하는 사람인가 싶을 때도 있었지.
중학생이 되니 그 때부터 어머니의 외도가 시작되었어.아버지 보는데서 다른남자랑 자고모르는 아저씨가 어머니랑 와서 용돈도 주고 그랬더랬지..아버지도 반 미쳐가기 시작했다.예나 지금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아버지인데..죽고싶다는 말이 조금씩 나오고차라리 우리가족 다같이 죽자고 가스통을 들고오시는 바람에 동네가 난리난적이 있는데,그 때 찾아온 경찰들 앞에서 서에 가기 전에집에 칼이나 가위 좀 숨기고 오겠다며 쳐진 어깨로 등 돌리던 초라한 아버지도 생생하다.
당시 일기를 보면콘센트 전선을 끊어 목졸림 당하고 커튼이 뜯어진 아래로 밀쳐서 등과 무릎에 압정이 박히고두꺼운 유리가 깨지도록 머리채를 쥐어박히고목이 졸리고 배가 걷어차이고 얼굴도 매일 성할 날 없었어.그래도 동생은 지켜주고싶어서 내 용돈 쥐어주고 나가 놀으라했었어.아버지 올 때까지 절대 집에 오지말라했어.내가 어머니에게 잡혀 있을 동안 동생이라도 도망갈 수 있으니까..어려서 였는지 왜 미리 같이 집에 안들어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는데어쩌면 오늘은 엄마가 술 취하지 않았을 거란 기대감도 있었던 거 같고어머니는 언제 돌변할지 몰라서 탈출에 실패한 경우도 있었던 거 같아.
한 번은 내가 칼을 쥐어주며나도 죽이고 엄마도 죽으라고 했는데 난 그렇게하면암만 그래도 배아파 낳은 새낀데 찌르겠어 싶었지만....그런 생각을 한 내가 병신이었음.진짜 칼을 휘두르기에 팔만 좀 찍힌채로 도망나왔어.
그러다 내 멘탈이 처음 찢겨진 사건이 있었어.한 번은 미친년도 얌전내면 3일은 간다고 어머니가 내가 사랑하던 그 조강지처에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집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던 적이 있어.마침 학교 끝나고 와서 반갑고 기뻐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도중에뉴스에서 계모가 부양자식을 폭행한 사건이 보도중이었어.그런데 순간 어머니가 그러더라아무리 계모라지만 어린아이를 저렇게 때릴 수가 있는거냐고....너무 불쌍하다 그치? 라며 내게 되물었어.
그 때, 안그래도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에 난 누구인가 중2병 돋을 땐데..어머니는 그거를 기억을 하나도 못한다는게 절망적이었어.차라리 어머니만의 이유가 있어서 어머니도 사랑을 못받고 자랐으니깐..교육을 그렇게 받고 자라서 뭔가 어떤 불합리해도 끼어맞추기 식으로 타당하게 날 때린다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내 우울증은 그 때 시작된거 같아.
이웃들도 신고하기만 바빴고 문두드리며 그러다 애 죽는다고 하긴했지만경찰들이 가정교육하시는건 좋은데 너무 심하시다하고 끝나곤 했어.하, 요즘은 어떠려나 궁금하네..지금 그랬다면 어땠으려나 종종 궁금해.
도저히 집을 견딜 수 없었지만가출이란 것도 잘 몰랐을 뿐더러 배짱도 없던 나는 타지에 기숙사있는고등학교로 도망치듯 진학했어.아마, 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연민과 항상 아버지가 그래도 너희를 낳아준 사람이다 라는 교육관 때문에 떨칠 수 없었을지도.
타지 학교를 가서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부모의 훈육이란게 우리 어머니가 하는 것이 아닌 걸 처음 깨닫고굉장히 충격에 빠졌어.내 이야기를 들어보던 몇몇 아이들은 내가 동정받고싶어서 거짓말 한다는내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그런 부모가 어디있냐고.팔에 있는 상처를 보여주었지만 사람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게 현실이고진실은 닿지도 통하지도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걸17살에 알았어.그런 부모가 있는 나는 도대체 그럼 꿈이라도 꾼건가? 싶고아직도 중2중2해가지고 내가 다른차원에서 왔는가도 싶었지.
아까 글을 읽었던 학생분의 그 나이대에정신 멀쩡히 집에 있던 어머니에게 그동안 어머니의 폭행이 힘들었다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고태어나 처음으로 당돌히 부탁했고.어머니는 자기도 외할머니처럼 안산다고 다짐했지만 그래왔다는거..또한 술깨면 내 몸의 상처로 어렴풋이 알았지만 묻어버리고 싶던 사실을마치 내가 폭로한 것인양..그 날 마지막으로 죽을 듯이 맞았고반항기 극에 달한 나는 아버지에게 제발 이혼해주라고 빌기도하고 소리도 쳤어.그래도 아버지는 우리를 엄마없는 자식 만들기 싫다고 반대했어.엄마 없었으면 너네도 없는거라고 그런 불효막심한 소리 하지말라며...항상 아버지는 동정심이었는지..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우리편을 들어준 적 또한 없었어.
그럼에도내가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하는 이유는온 가족의 만류에도 어머니를 택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지려했고언젠가 내가 어머니에게 도망나와 울고있을 때끝내 나를 찾아내, 울지마 라며 힘없이 나를 토닥여주던 그 한가지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야.그리고 현실적으로 1억에 가까운 돈을 아버지가 3잡 뛰며 손톱이 썩어 떨어지도록일해서 어머니 빚을 갚으셨어.
어찌되었건 그러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성폭행에 임신에 유산을 겪었다.내 고등학생 시절은 내 인생 최고의 암흑기였어.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고, 고칠 수 있다면 고치고 싶고내 한 평생 유일한 오점인 3년이었어.그제야 갑자기 이모가 나 어릴 적 어머니 주폭을 말리지 않고 때릴거면 나 안보이는데 가서 때리라고 했던 일..,경비아저씨, 옆집아저씨, 큰아빠, 친척오빠에게 성희롱 당했던 일..,어머니가 얼마나 컸는지 보자며 내 다리를 벌리고 성기를 만지고 손톱을 집어넣고내 가슴을 할퀴고 쥐어뜯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어.기억하기 싫었는지, 내가 만들어낸 가짜 기억인지 혼동될 만큼.
초등학생 때 경비는 잡혀갔다 들었고, 친척오빠는 결혼하고 얼마 안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고큰아빠는 고등학생 즘 암걸려 죽었어.그러고보니 어른들이 오빠가 널 제일 예뻐했는데 슬퍼하지 않냐고 나를 나무란 적이 있었지하고 내가 미쳐서 지어낸 기억이 아니란 걸 알았어.
집에서 도망나오면 다 일 줄 알았건만 아니었고부모님께 알리기 싫었고 당시 담임도 내 잘못이라고 했기에 더더욱 알리기 싫었다.담임에게 내가 어쩌다 말했던거 같은데 일생일대의 실수라 생각해.너무 힘들어서 기대고 싶었겠지.
청소년 상담센터를 추천받아 가기도 했지만처음에 상담사는 내가 관심받고싶어서 그런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치료하려해서나가고 싶지 않았어.학교도 잘 안나가게 되었고, 불량학생이라고 학생들 끼리도 날 무시하고종종 학교에 가면 학교에 두고온 내 실내화, 전자사전 등등이 없어졌어.
어쩌면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그냥 미친 또라이로 보였을지도 모르지.난 지금 지극히 주관적으로 말하고 있으니..
그리고 그 해에 매일매일을 눈물로 지새우는 동안부모님은 결국 끝내 이혼하셨고그걸로 지옥이 끝난 줄 알았지만...온 가족이 우울증에 앓는 소리다 못해 죽는 소리를 달고 살았어.평생 흘릴 눈물을 그 한 해 다 흘린 것 같아.
후유증도 너무나 큰데정신잡고 수능 준비하던 도중어머니가 집에 몰래 들어와 내 대학등록금 하시려고 아버지가 빚다 갚고 3시간 자며3년간 이갈며 부득부득 모은 700만원 가량과 쌀, 라면 기타등등을 들고 날랐다...
아버지는 지칠대로 지치고 더 이상 겪을 것도 없는 실망감 배신감 때문이었는지우리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짜증내기 일쑤, 물건던지고, 술로 살고, 죽고싶다하고그 때 가스통에 다 죽었어야한다하고우릴 때리진 못했지만우리가 말을 안들어서 엄마가 망가졌다고 비난했어.
끝난 지옥이 아니라용암이 지나간 자리가 영원히 불타오르는 그런 모양이었지.
그러고 친지가 또 약먹고 자살했어.
주변이 그 모양이라 나 역시 삶의 미련이 없어지더라.가족들이 많아서 1년에 한 번은 결혼식, 한 번은 장례식 이런식이었는데인생이 뭔가 싶더라.어린 나의 눈에 말이야..다 큰 어른들이 저렇게 인생을 휙휙 종이 비행기 날리듯 포기하는데80평생 치열하게 살아도 저렇게 그냥 뭣도없이 버러지처럼 죽어버리는데내가 굳이 살아야하나 싶었어.눈 앞이 캄캄하고 하루하루 앞날이 안보이고지금 잠들면 내일은 죽어있었으면 바라고..자살시도하다가 친구가 몇차례 구해주기도하고..
한 친구가 날 위해서 너무 많은 희생을 했고 난 그 죄책감과 고마움을 느낀다..어찌되든 살아보라고 내일은 따뜻할지도 모른다고 몇 번, 몇 백 번이고 말해줬거든.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몇 년간 연락이 끊어졌었던 어머니를 만났고(어쩐지 나도 보고싶었던 것 같아. 술 안마신 우리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어머니는 울며불며 미안하다고 버리고 가려던건 아니었다고 하셨지만금새 술에 떡이 되자 폭력을 휘두르려 했어.하지만..아까 말했다 싶이내가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던건 고등학생 때까지였어.내가 두 손으로 막고 밀었는데. 넘어지더라.
그 심정 아는 사람있을까?진짜 이상하더라.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에게 죽을 고비를 넘겼던 순간들이 이상하게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미칠거 같았어. 그러다가 어머니가 소주병 들고 달려드는데 필름 끊기듯 정신을 차려보니어머니 자취집도 개판이고어머니 얼굴과 목이 긁혀서 피가나고 내가 어머니 머리채를 쥐고 있었어.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나와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왜인지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어.아버지가 날 데릴러 왔고따뜻한 우유 주면서 이제 괜찮다 괜찮다 하셨어.그 날은 내가 그동안 어머니에게 맞아왔던 그 어떤 날과 비교도 안될 만큼 끔찍한 날이었어.그런 패륜적인 짓을 저질렀다는윤리적인 이야기보다도결국 나도 엄마랑 똑같다는 사실, 회의감, 죄책감.화는 나는데 분풀이할 대상을 잃어버린 상실감. 차라리 내가 맞는 편이 마음이 편할 정도로..또 다른 지옥이 두려워서 어머니에 대해 발길을 끊었어.
그 사이 아버지와 나, 동생은 세식구로 정신적, 물질적 안정감을 찾아갔다.종종 경찰이 어머니 핸드폰을 통해주사부린다고 연락이 오고 공무집행방해라고 하는 바람에 어거지로 가서후딱 버리듯 어머니 집에 모셔드리고 도망나오는게 만남의 전부였어.
어느 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모가 나와 어머니 함께 교회다니며 치유받자 하셨고마침 나는 사이비 교단에 빠져서 그걸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어.사이비에 빠진거 자체가 제정신은 아니지만;; 내 딴엔 독실하게 살고싶었고또한 가족의 단란함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갈 때라 더 이상 어머니와 엮이지 않는 것이내 인생의 최선이라 여겼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내 상처에 소금을 치고싶지 않았어.
이모는 우리 아버지를 원망하고 어머니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않는 나와 동생의 불효를 논했어.
그리고반년 전..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고간 수치가 높다고 들었어.이제 어머니는 술을 얼마간 안마셔도 취한 듯한 상태의 사람이 되어있었어.발광하고 난리를 부리는데내 남친마저 고생하며 간호를 도왔고세월이 흘러서 인지, 나도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되서 자주 뵈려 했어.그러면 기운도 없이 늙어가는 이 사람 조금 나아질까 웃긴 희망을 가졌지.하지만 먼저 우리를 버린 사람..내 인생에 없는 사람이라 잘 안찾아지더라.이모가 병원비 운운하고사촌동생들이나 이모부가 왜 자식도 안챙기는데 이모가 챙기냐고우릴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아직 나와 아버지, 내 동생의 트라우마가 회복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어.더 이상 아버지는 어머니 편을 들지 않고, 너희를 낳아줬으니 성심을 다해 챙기라고도 하지않아.나는극악의 콩가루집안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와 비슷한 환경에서 하고싶은대로만 살아온 어머니라는극과 극의 부모를 보며 자라왔고.그 사람이 나를 낳아줬기에 내가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돌아가시거든 장례나 치러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똥기저귀며 젖물리는거 외할머니, 할머니가 다 하셨고먹이고 입히고 재우는거 아버지가 다 하셨기에.부모의 권리를 버린자에게 내가 왜 자식의 권리를 해야하는가..진짜 많은 생각을 했어.주변에서는 자꾸 그래도 니 엄만데,니가 어머니한테 못하면 너한테 다 돌아간다고 비난 아닌 비난..내리사랑을 받지를 못했고 효를 가르침을 못받은 똥밭에서 굴러온 나는어머니를 이제 차분히 대할 만큼 좋아졌기에 외로움이나 덜어드리자하고경솔하게 생각했어.
그러던 지난 5월 매일같이 어머니가 전화와서널 낳고싶지 않았다느니지금 만나는 친구들, 남자친구 다 별로라느니, 사람보는 눈이 있네없네돈을 잘 버네 못버네너만 아니었으면 니 아빠랑 더 빨리 헤어지고 행복했을거라느니온갖 내 자존감을 깎는 말을 하더라.그러다 뜬금없이 울면서 미안하다고 보고싶다고너네 엄마가 버리고 간거 아니라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소식과 이모의 받기싫은, 받지도 않을 연락에마음의 병이 도지셨는지어버이날이라 식사대접도 해드리고 그랬는데내가 하지도 않은 욕을 들으셨다고 동생과 나를 이간질하고앞에서는 우리딸 고생많지 웃으시고..내가 하지 않았던 일로 내 험담하시는거내가 다 들었는데..자꾸 지애미를 닮아서 천성이 글렀다고..동생은 아빠는 언니한테만 왜그러냐고 그러고 나 대신 속상해서아버지랑 말다툼하고.
그러더니 직장에 이모가 찾아와 얘기 좀 하자고자식이 부모를 놓아버릴 수 있는거냐고 잠깐 5분 말하자더니1시간을 붙잡고 설교를 하고..
다 컸는데 이 지옥이 안끝나길래나도 이모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사정하듯 말을 했어내가 누구 앞에서 우는게 왠지 싫어서 어지간하면 절대 울지 않는데펑펑 울면서난 차라리 이모도 어머니한테 손 뗐음 좋겠다고차라리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끙끙 앓다가내가 이러다 먼저 죽을것만 같다고 그랬어.
그러자 이모가 알콜중독자를 수용해주는 병원에 보내자고 월 10만원 이쪽저쪽이면 된다고가족 2명만 동의하면 된다고 그게 본론이라고..그 말 하러 왔다고.알았다고는 했는데지인들이 요즘 그것이 알고싶다 못봤느냐고..비인간적이고 인권이고 뭐고 없고제대로된 치료가 아니고 폭행하고 그런다는 말에..
무슨 정인지 당신이 당신 술독에 빠져죽어도남이 그렇게 폭행해서 잘못될지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그건 또 걱정되고차라리 내가 미쳐버렸으면 좋겠을 때도 있어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지인들이야 남 일처럼 너가 자식에 장녀이니 챙기라고 압박을 주고동생은 인연을 끊었다해서 총대는 내가 메야하고..죄없는 내 남친마저 요즘은 시큰둥하니 나랑 대화도 잘 안하려하고
하.힘들어 사는거 진짜 ㅎ그런데 결국나는 20살 성인 이후로..내 스스로 남들에게 조금 손가락질 받아도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할려고 좀 웃으면서 살아보고싶어서 지옥같은 인생 벗어나려고 노력 많이했고.노력한 만큼 웃는 날을 많이 얻었어.
우리 어머니 불쌍하다고 자꾸 몇몇 어른들이 말하는데그 사람이 불쌍하다는거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내 인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불쌍한건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인데결국엔 가족문제도, 빚도 극복했고 여전히 성실하게 살고 계셔.물론 이혼도 어머니가 새로운 남자를 대동해서 해달라고 난동부리는 바람에아버지가 그럼 차라리 나 떠나서 행복해지라고 내가 붙잡아서 너 불행할지 모른다고 해줬고(솔직히 우릴 위한게 아니라는 점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어)그래도 우리 책임지겠다고 최고의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셨어.아버지가 있었기에내가 있었다 생각하고..
지금은.. 어머니는그냥 아동학대, 폭력자, 도둑질, 간통, 도박을 일삼고 이제는 병들어 늙어가는 범죄자라고 생각해.피해자도 타인에게 가해한 순간부터 그냥 피해를 동기삼아 가해한 가해자라고 난 생각해.나 자신도 마찬가지이고...
하..사실 지금도 도대체 어찌해야는건지는 잘 모르겠어.뭐라고 주절거리는지도 잘모르겠고.그래도 10대 시절엔 암흑을 헤집고 견디고 끝도 모르고 걸었다면그냥..지금은 어찌되든 결국 내 인생 끝도 지옥같을지라도남들이 욕할지라도...범법은 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웃는 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죽을 때, 적어도 우는 날에 비하면 웃는 날이 분명히 더 많았었다고 생각하고 싶어.그럴수 있겠지.

찌질한 내 인생 이야기였지만긴 글 읽어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다 읽었다면 내 인생얘기 진지하게 들어준 유일한 사람이야.진짜 고마워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받은 교육은 딱 한가지임.귀에 피딱지 앉도록 [네 인생은 너 자신거다. 누가 대신 살아주는거 아니다.]그래서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사는게 맞는거겠지.
어머니를 보살피지 않아서 욕을 먹더라도 그것이 내 선택이라면내 스스로 감수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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