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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연인과 헤어지고 인생이 캄캄해요.

xx |2016.09.11 18:55
조회 3,757 |추천 11


저는 36 싱글 여자에요. 이 나이에 이룬 것도 없는 루저에 여자로서도 퇴물이죠. 
어린시절엔 여러가지 재주가 많고 공부도 좀 하고 외모도 괜찮은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난 후 치명적인 단점을 깨달았는데, 평범한 직장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게으르고 감성적이고 영혼은 자유롭고 경쟁을 견디는 전투력이 없었어요. 서울 4년제 대학 나왔지만 전 평범한 직장생활을 포기했어요. 멀쩡한 직장은 다 뼈를 묻을 듯 충성스런 태도를 원하더라고요. 전 스트레스로 몸에 암세포를 키워가며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음 직업으로 성우가 되고자 맘 먹었어요. 자신있었어요. 전 정말 제가 시헙만 보면 어서옵쇼 데려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최근까지 거의 8년동안 방송사 공채에서 떨어진 거죠. 노력해온 게 있으니 비슷한 다른 직군으로 꺽어보려 해도 나이가 너무 많았어요. 그 사이엔 일정한 직업 없이 되는 데로 별별 일을 하니 툭하면 사람 쉽게 보고 성희롱 당하고... 돈은 없고... 고생을 엄청 했어요... 그런 식으로 방황하며 이 나이가 되어 현재 제 연봉은... 이 나이 먹도록 무슨 막일을 했어도 이보단 많이 벌겟죠.
부모님은 제가 30대 들어선 이후엔 결혼정보회사 가입까지 시키며 선자리를 마련하셨는데, 엄청 세속적인 분들이에요. 남자가 몇 살이건 어찌 생겼건 내가 의사 사위라도 데리고 오기만 바라셨어요. 나름대로 이런 저런 말을 다양하게 해도 결국 결론은 돈 뿐이고 부모님 체면 세워줄 간판을 좋아하세요. 카이스트 나왔다, 삼성 다닌다, 이런거요. 그런데 제 처지 제 생활에, 저의 자유로운 영혼에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었을 리 없고, 선자리에 데려다놔도... 직업 좋고 연봉높은 남자가 얼굴 성격에 하자 없는데 여태 좋은 분 못 만나 결혼정보회사에 나오셨겠어요? 정말 별 사람들을 다 보고 짜증나는 일만 가득했어요.
제가 대학생 때 사귀었던 잘생긴 오빠는 집에 돈없고 미술한 사람이라고 부모님이 하도 잔소리 해서 결국 헤어졌어요. 마지막 헤어질 때 남친한테, 남자 댁에 돈 들일 걱정 안시키고 우리 부모님 설득해서 결혼할 수 있냐 했는데 오빠가 포기해버렸어요.ㅠㅜ 그 댁 부모님이 세상 물정 몰라 오빠가 벌어먹여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잘못도 없는 사람을 상처입힌 것이, 여태껏 그 죄책감이 장난 아니고 제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요.
제가 돈 잘 벌어서 부모님께 척척 뿌리고 집안에서 권력이 있었다면, 다른 것 연연하지 않고 그냥 착한 사람 데려와서 돈은 내가 잘 버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니 그러면 또 그것대로 더 나은 사위를 바라고 제 상대를 미워하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에 엄마랑 전화 안한지 오래됐어요. 엄마랑 얘기하면 결혼하라는 얘기, 선보라는 얘기, 남의 집 딸이 결혼해서 부러운 얘기, 남의 집 사위가 돈 잘 벌어서 부러운 얘기, 친척 딸이 제 부모 용돈줘서 부러운 얘기, 내 사촌동생이 아기 낳아서 부러운 얘기... 통화 끊고 나면 우울해져요. 
어제 헤어진 친구는요. 저보다 무려 8살이 어렸어요. 홀어머니에 가정형편도 어려워서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없는 상대라, 처음부터 떼어놓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저에게 너무 목을 매서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헤어지자고 하면 같이 있어만 달라고 다른 남자 선 봐도 자기가 간섭하지 않겠다며 무릎꿇고 제 발목 붙잡고 엉엉 울었어요 ㅠㅜ) 제가 도움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아이여서 눈에 밟혔어요. 
그 애는 나를 너무나 필요로 했어요. 처음엔 지방에서 서울로 학원다니는 그 애가 묵을 곳이 없어서 함께 있어주고, 피부가 약해서 피부관리도 도와주고, 옷이 없어서 예쁜 옷을 골라주고, 한참 어린 상대라 경험도 없고 모르는 게 많아, 그저 살다보니 알게 된 지식을 주고, 좋은 곳에 함께가고... 그 애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애정을 갈구하고, 그렇게 사소하게라도 부족한 그 애를 돌봐주는 것도 행복했어요...
부모님께는 말할 수 없어 만나는 중에도 선자리 여러 번 나갔어요. 하지만 어쩌다 괜찮은 듯한 사람이 있어도 관계를 이어갈 수가 없죠. 두 사람 세 사람과 동시에 데이트를 하는 재주가 저는 없어요. 여러 사람에게 큰 실례 끼친거죠. 만날 수도 없으면서 그 분 시간과 노력을 낭비했으니.
'우리'를 생각하면 너무나 앞날이 캄캄해서, 만나면서 그 애 몰래 많이 울었어요. 나중에는 제가 마음을 고쳐먹어 보기도 했어요. 젊고 미래가 창창한 예쁜 청년이고 고마운 일이지, 손해볼 것이 뭐 있나. 인생을 나에게 맞추겠다는 데, 그 마음을 져버리지 않고 어떻게 건설적인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없을까. 하고요. 그래서 우리 약속한 게 있었어요. 이런저런 회사 취직하면 부모님께 말을 꺼내보겠다고 하며 준비를 시켰어요. 좋은 회사 취직하면 그 아이 흙수저 인생에도 도움이 될테니 나랑 결국 헤어지더라도 좋은 일이죠. 만약 취직시험 떨어지면 자기가 놔주겠다고. 합의했는데 결국... 그 날이 오고야 말았어요. 
저를 사랑해서 놔주어야 한다니 제가 생각해도 정말 끔찍해요... 미래가 창창하고 꿈많은 어린 나이에, 나이먹고 능력없는 저를 원하는 바람에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던 세상의 간판, 돈 같은 걸 요구받다가 결국 못 뛰어넘고, 흙수저라고 스스로 자책하고, 여자친구도 잃고, 이런 더러운 좌절을 겪게 한 제가 정말 악마같아요. 전 전적도 잇고요. 
저 지금 좀... 죽고 싶어요. 누가 그냥 절 죽여주었으면 좋겠어요. 안그래도 하루하루 그저 살기 위해 몇 푼 안되는 돈 벌러 다니는 것도 끔찍했는데, 머리를 쓰다듬어 위로해주고, 예쁘다고 자존감을 세워주고, 주말의 맥주 한 잔 같이 해주는 친구를 잃기도 했구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너무 우울한데 이 상황이 기가 막혀 눈물도 안났어요. 지금 글을 쓰며 처음으로 펑펑 울어봐요. 
저 혼내주세요. 살고 싶게 해주세요. 안그래도 인생이 무기력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니 이젠 그냥 죽고 싶네요. 우울한 얘기 미안해요. 글이 너무 기네요... 읽어주신 분 고마워요.
추천수11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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