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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지옥의 풍경, 에그 인 헬

Nitro |2016.10.10 23:17
조회 133,683 |추천 389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유명한 요리, 에그 인 헬. 

지옥 속의 달걀이라니 음식 이름치고는 참 거창하구나 싶지만 실제로는 들어가는 재료도 소박하고 맛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정식 요리입니다.

원래는 중동지방에서 비롯된 요리인데, 한 편으로는 중동계 유태인들이 이스라엘에 전파하면서 유명해졌고, 

다른 한 편으로는 스페인을 거쳐 이탈리아로 요리법이 퍼지면서 유럽에서도 자주 먹는 요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그 인 헬 말고도 많이 쓰이는 이름이 "샥슈카(Shakshuka)"와 "우오바 알 폴가토레(Uova al Purgatorio: 이탈리아어로 연옥 안의 달걀)"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유태인 사회가 꽤나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원래 이름보다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부르는 이름이 미국에서 더 널리 퍼졌고, 그 결과 우리도 샥슈카가 아니라 에그 인 헬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오랜 세월 동안 국경을 넘나들며 세세한 변화는 있었지만, 그래도 워낙 간단한 요리다보니 샥슈카건 우오바 알 풀가토레건 에그 인 헬이건 레시피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준비물은 양파, 마늘, 토마토 소스, 달걀이 전부. 여기에 이탈리아식으로 각종 허브와 치즈를 뿌려줍니다. 

샥슈카는 들어가는 향신료가 좀 달라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가정식 요리답게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라면 거의 대부분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소세지나 베이컨, 햄을 넣을 수도 있고 가지나 당근, 샐러리, 감자 등을 추가할 수도 있지요. 

우선 무쇠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가열합니다. 마늘을 다져서 볶다가 잘게 썬 양파를 넣고 좀 더 볶아줍니다.

조리기구를 통채로 테이블에 올려서 먹는 게 대세인지라 무쇠팬에 요리할 것을 추천하는 레시피가 많은데,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무쇠팬에는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은 메뉴입니다. 

토마토가 산성인데다가 소금간을 하고 끓이는 요리인지라 잘못하면 녹이 슬기 쉽거든요. 

그렇다고 일반적인 코팅팬을 권장하기도 힘든 것이, 뜨거울 때 먹어야 더 맛있는 요리인지라 보온성이 뛰어난 무쇠팬을 포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코팅이 제대로 된, 길이 잘 든 무쇠팬으로 요리하는 것이 최선이지요.

마늘과 양파가 얼추 다 볶아지면 토마토를 투입합니다. 

대부분 토마토 소스를 많이 사용하는데, 마침 집에 남은 게 없는지라 그냥 생 토마토를 잘라 넣습니다. 

껍질은 살짝 익힌 후에 벗기면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토마토가 익으면 물을 따로 넣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수분이 나옵니다. 

여기에 취향에 맞게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졸여서 약간 걸쭉하게 만들면 즉석 토마토 소스가 됩니다.

향신료는 후추와 바질을 왕창, 파슬리를 약간 넣어줍니다. 토마토에는 바질이라는 공식은 그야말로 진리! 

해장용으로 쓰일 때는 칠리를 썰어 넣어서 매콤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냥 가족용으로 맵지 않게 만듭니다.

완전히 졸아들기 전, 국물이 좀 남아있을 때 불을 줄이고 달걀을 깨서 넣습니다.

불이 너무 강해서 부글거리거나 국물이 너무 많으면 계란탕이 되고, 물이 너무 적으면 볶은 달걀이 되기 십상입니다.

수란 만들듯 달걀이 자연스럽게 익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실패하면 비주얼이 진짜 엉망이 되지요. 그야말로 지옥을 보게 됩니다. (슬프게도 경험담)

달걀이 반숙으로 잘 익으면 치즈를 뿌리고 빵을 곁들여 마무리 합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가정식 요리, 에그 인 헬 완성입니다.

붉은 토마토 소스에 달걀들이 부글거리며 익어가는 모습이 지옥과도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지요. 

게다가 중세 유럽에서는 붉은 색을 불길하게 여겼는데, 토마토 역시 그 색깔로 인해 악마의 열매(원피스?)로 매도당하곤 했습니다. 

악마의 열매가 만들어낸 소스가 뜨겁게 끓고 있으니 지옥이 연상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해장용 요리로 자주 이용되는 탓에 이걸 먹을 땐 항상 지옥과도 같은 숙취에 시달리는 상태라서 지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걸쭉한 토마토 소스가 요리 중에 사방으로 튀어서 청소하기가 지옥같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빵에 새콤달콤한 토마토 소스를 올리고 반쯤 익은 노른자를 푸욱 찍어 먹으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의 맛...은 아니고 그냥 소박한 가정의 맛이 납니다. 

애초에 토마토 요리는 불길하다고 해서 성직자나 귀족 등 좀 잘 사는 사람들은 기피했고, 결국 토마토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었으니까요. 

오죽하면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는 창녀의 스파게티 (spaghetti alla puttanesca)라고 불렸을까요. 

악마의 열매가 들어갔으니 먹으면 지옥간다고 하는데 창녀들은 "우리는 어차피 지옥 갈 거니까, 뭐" 하면서 값싼 토마토로 만든 스파게티를 먹었다는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었거든요.

그러다보니 토마토가 잔뜩 들어가는 에그 인 헬은 화려하고 섬세한 요리법이 접목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접시에 담을 필요도 없이 요리하던 팬 그대로 식탁에 올려 먹는 이탈리안 (그리고 이스라엘) 가정식 요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앉아 간단하면서도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하고 있노라면, 어찌 보면 고급 요리로 진화(?)하지 못한 에그 인 헬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추천수389
반대수17
베플|2016.10.11 22:35
이렇게 재밌게 읽은 글은 오랜만이네요ㅋㅋ 무슨 칼럼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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