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이십대 중후반이고 그 전 남친은 7살 연상의 삼십대 중반이에요.
전 남친이 확실하지만 편의상 남친이라고 할게요.
100일 200일 기념일 안챙기고 그냥 넘어가서 며칠이 지났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대략 1년 8개월 조금 넘게 사귀었네요.
오늘을 끝으로 세 별의 이별통보를 받았고, 이제 진짜 끝내려구요.
사실 초반에는 너무 행복했어요.
그냥 적당히 평범하고 착하고 잘 챙겨주고 어딜 가든 항상 손 잡고 다니고...
그런 소소한 게 너무 좋았어요.
8개월째 처음으로 한 번 다투게 된 날이 있었는데,
그 때 남자친구가 뭘 좀 잘못해서 처음으로 제가 화를 냈어요.
그랬더니 그 날 저녁부터 잠수를 타고서는 그 다음날
전화가 겨우 연결 되었고, 남자친구는 그 날 처음으로 헤어지자고 했었네요.
그 자리에서 울면서 매달리다가 남친의 차가운 말투에 어쩔 수 없이 정리하는 멘트를 남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안하다면서 헤어지자는 말 취소할테니까 받아주겠냐고 하네요.
전 결국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지 5분만에 취소하는 걸 그대로 받아줬구요.
그 후부턴 저도 화가 나도 험하게 화 안내고(그 전에도 욕하면서 과하게 화낸 건 아니었지만)
최대한 오빠가 이렇게 하면 서운하다면서 좋게좋게 말했어요.
보통 데이트다 싶은 건 한두 달에 한번? 대부분은 항상 주말마다 남친 집에서 했었고,
둘 다 집순이 집돌이라서 거의 집에서만 만났어요.
그러다가 올해 초 제가 직장을 옮기면서 집을 이사하게 되었고, 자취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턴 항상 남친이 저희 집으로 왔구요.
여기서 갈등이 생겼죠.
사실 저도 집순이이긴 하지만 이삼주에 한 번씩은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놀고 싶었고
남친은 그걸 부담스러워 했어요. 자긴 편한 게 좋다면서...
두 달 정도 바깥 데이트를 안하다보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집에 있어도 항상
옆에서 폰게임을 하는 게 대부분.(본인 말론 잠깐 한다지만 보통 한번 잡으면 몇시간씩도 해요)
저도 폰게임이나 이런 거 좋아하지만 밖에서 친구 만나거나 남친 만날 땐 폰은 멀리 두는 편이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남친은 식당같은데서 밥을 먹으면서도 폰을 만지고 있거나 야구를 봐요.
그리고 100일 1주년 기념일 안챙겨준 것도 서운했어요.
전 아빠가 너무 무뚝뚝해서 항상 엄마 생일이나 결혼기념일같은 날이라도 아빠가 엄마한테
꽃 한송이 사주는 모습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리고 저도 연애라는 게 언젠간 처음의 설렘이 사라지고 편안함이 자리잡겠지만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처음의 설렘을 기억하는 날을 챙기는 연애를 하고 싶었구요.
100일은 자기가 꼭 챙겨주겠다길래 저도 선물이랑 편지랑 다써서 준비해갔는데 까먹고 있었고,
1주년은 2달 전부터 제가 그 날 뭐할까? 하면서 계획도 짰었는데
결국 흐지부지 넘어갔거든요.
나도 집순이이긴 하지만 가끔 밖에 나가서 맛집도 다니고 다양한 경험도 하고 싶고
오빠랑 같이 있을 땐 최대한 서로한테 집중하고 싶은데 오빤 계속 집에서 게임만 해서 심심하다고.
그렇게 몇 번 얘기해도 어디 나가잔 말도 없고 어디 가고 싶다고 해도 반응이 없길래 제가
종일 말 안했더니 그 날 자기도 답답하다고 하면서 집으로 가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전화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죠.
이게 두 번째 이별통보였어요.
그런데 전 또 등신같이 매달렸어요. 당일에 한 번, 2주째에 한번, 그리고 한달째에 한 번.
당일과 2주째는 택시타고 남친 집까지 가서 얘기하고 울었는데도 매정하게 굴다가
한 달 됐을 때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연락했더니 집으로 오더라구요.
그렇게 등신같이 전 또 믿었어요.
그 전에도 몇 번 연애를 해봤었는데, 항상 짧은 연애만 해봐서 원래 길게 연애를 하면
이러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차인 입장에서 내가 뭘 못해줬지? 하는 생각과 상대방이 잘 해준 것만 떠올라서 그렇게 매달렸던 거 같아요.
그렇게 처음 이별기간을 어느 정도 갖고 재회한 후론 저도 노력하고 얼핏 남친도 노력하는 거 같아 보였어요.
저도 어디 나가자고 투정 안부렸고,, 불만이 쌓여도 스스로 삭이면서 포기했어요.
그래도 재회 후엔 처음으로 여행도 두 번 정도 갔다오고, 남친 부모님 집도 갔다오기도 했죠.
전 연애를 할 때 항상 문제와 다툼거리는 생기기 마련이고, 그걸 대화로 풀어야한다는 주의인데
남친과는 어느 순간부터 대화다운 대화는 잘 안나누었던 거 같아요.
제가 속내를 털어놓으면 남친은 거기에 또 부담감을 느낄 거 같고 밀어낼 거 같아서요.
그래서 제가 중간중간 서운하거나 불만인 점 없어? 물으면 항상 없대요. 정말 답답할 정도로
항상 서운한 게 없었대요.
저흰 월~금은 항상 낮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정말 짧게 일상통보식으로만 연락하게 됐고
주말은 그냥 집에서 먹고 자고 게임하고 그정도로 지냈네요.
그렇게 최근 다시 서운함이 쌓여 체념된 상태의 권태감을 느끼고
지난 주엔 그게 심해져서 어떻게 해야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난 주 금요일에 남친이
회식으로 술을 많이 마셨다고 했고 그 다음 날 토요일은 숙취에 절어있었어요.
그래서 그날은 그냥 집에서 쉬라고 했는데 그게 거의 마지막 연락이었네요.
토요일 하루 종일 연락이 안됐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도 답장이 안와있길래 걱정됐어요.
불길한 촉이 오긴 했지만 쓰잘 데 없이 몸도 자주 아픈데 어디 큰 병 걸린 거 아닌가 싶어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연락이 됐네요.
그 후 집에 오라고 한 후에 남친이 집에 오는 동안
집도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치우고 촛불도 켜놓고 요리도 하면서 기다렸어요.
제가 남친한테 서운함이 쌓여서 그 동안 권태감을 느낀 만큼 남친도 서운했겠다 싶어서
노력해야지, 오늘은 진짜 대화다운 대화좀 나눠야지, 다시 좋아져야지, 했는데
결국, 집 앞 골목길에서 차였네요.
ㅎㅎ...
마음이 변했대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대요.
누구냐니까 아직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니라고 하다가 제가 재차 물으니
누군가한테 마음이 기우는데 좋아하는 건지 아닌 건지 확신을 못하겠대요.
근데 저랑 사귀면서 그 사람한테 마음을 주면 나중에 제가 더 상처받을거라면서 지금 헤어지는
게 나을 거 같대요.
그 순간에도 전 정말 바보같이,
비 온다고 남친 마중나가지 않고, 평소처럼 남친을 집에 들어오게 해서,
평소보다 훨씬 깨끗한 집과 제 요리를 봤었으면, 해장 달래는 약도 같이 세팅해놓은 것도 알았으면,
제가 남친을 신경쓰는 걸 노력하고 있는 걸 봐줬으면, 나름 감동하고 마음이 바뀌어서
이런 말을 안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웃기죠? 저도 웃겨요 제가.
그 와중에 또 제가 저한테 서운했던거나 불만 있었으면 말해달라고 했었는데,
또 다시 밖에 나가서 데이트해야하는 부담감 빼면 없었다네요.
재회한 뒤론 어디 나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여행갈 때도 저 혼자 갈거랬는데 자기도 같이 간다고
했으면서...ㅋㅋ 헛웃음만 나오더라구요.
한 두달에 한번씩 바깥에 데이트 나가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을
그 어떤 여자가 만날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마지막 말은 정말 웃겼어요.
그래도 그렇게 나쁘게 헤어지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래요.
제가 욕도 안하고 화도 안내고 그 자리에서 목소리 떨면서 조곤조곤 물으면서 수긍하고 헤어지자고 하니까, 그렇게 끝내니까 나쁘게 헤어지는 건 아니라고 느꼈나봐요.
그 말을 들은 후 그 자리에서 무슨 헛소리냐고, 지금 최악으로 더럽게 헤어지는 거라고. 진짜 정 떨어졌으니까
두 번 다시 연락도 하지 말고 평생 얼굴 마주치지 말자고 하고선 나왔어요.
본인은 아직 그 여자와 사귀는 게 아니니 그게 바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것도 바람이잖아요.
바람은 누구한테나 불어오잖아요.
그 남자를 만나면서 저한테 호감을 보이는 남자도 몇 있었고,
개중에는 괜찮아보이는, 제가 솔로였다면 아마 만났을 지도 모르는 좋은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세상엔 바람을 피는 사람과 안 피는 사람 둘로 나눠져 있다는 게...
그런 호기심과 설렘이 다가와도 책임감과 의리로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과
그 바람에 같이 날아가는 사람의 차이인 거 아닌가요...?
어제가 엄마 생일이라 가족모임 갔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너무 허전하네요.
저도 콩깍지가 단단히 씌여가지고....
저보다 7살이나 많고, 그 나이 먹고 모아놓은 돈도 딱히 없고, 사회경험도 저보다 적고,
연봉도 저보다 낮아요. 키도 170도 안되고, m자 탈모라서 머리 양 옆에 부분가발 하고 다니는데...
그냥 과거에 무슨 사정이 있든 성실하면 됐지, 목표가 있고 열심히 일하면 됐지,
부분 가발 안할 땐 솔직히 깨는 모습도 있었지만 결혼하고서 계속 벗겨질 모습 생각하고
그 모습도 사랑해주자고 계속 상상했었는데...
다시 돌아오더라도 제가 받아줄 수 없게끔 끝내버려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슬프기도 하구요.
세번째 이별이다보니 눈물도 안나올 줄 알았는데 이 글 쓰다가 어제 헤어진 이후 처음으로 울었네요.
마음이 간다던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혹은 이미 양다리 상태에서 그렇게 말한 거일 수도 있지만,
그 여자가 저처럼 멍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두달에 한 두번씩 밥먹고 영화보는 게 끝인 남자,
100일 200일 기념일 한 번 안챙겨주는 남자,
생일에 기프티콘으로 커플링 보내는 남자,
제가 자고 있을 때 옷 걷어서 부분 알몸 사진 몰래 찍어두고 폰에 저장해놓는 남자,
주말에 쉬고싶을 만큼 쉬고 겜할 거 다 하다가 하고싶을 때만 와서 사랑스럽게 쳐다봐주는 남자.
그런 남자랑 연애하면서 버티고 맞춰주다가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쓰다보니 힘드네요.
저 원래 굉장히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성격도 나름 밝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취미로 책이나 영화 보는 것도 엄청 좋아하고
밖에 나가서 전시도 보고 친구도 많이 만나고.
제 분야에선 정말 최고가 되고 싶어하고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는데.
이 사람과 2년 가까이 만난 후의 지금의 제가 너무 초라해졌어요.
주말이 되니 이제 뭘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오늘만 울려고 이렇게 글 남겨요.
그리고 그 사람 만난 거 후회는 안할래요.
지난 2년 가까이 그래도 나름 행복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냥 그걸로 퉁치고
제 인생 되찾을래요. 그 동안 도전못해봤던 거 다 해야지.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쓰다보니 정리가 잘 안되었을 수도 있는
기나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리고 주말에 할만한 거 추천 좀 해주시고 가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그 동안 안해본 것들이 너무 많아서 뭘 해야할 지 감이 안잡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