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나 지났네 벌써...전문대 다니다 덜컥 취업했었다.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더라 자격증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나를 뽑았던거 보면.그때 나이가 몇살이었냐면 입사하고 상사가 자기 아는 사람 실적 올려준다고 신용카드 하나 만들라고 했는데 나이가 안돼서 발급을 못했었다.사회생활이란 게 갑자기 일상생활이 되어버리니 적응이 안되더라.일도 그렇지만 회사사람들이랑 잘 지내고 싶은데 그것도 어려워서.. 숫기도 없고 소심한 나를 매일 자책했다.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기를 원했다. 면접관들은 면접 볼 때부터 강조했다."안되면 안뽑아" 이런 분위기길래 무조건한다고 했다. 그냥 안한다고 하고 떨어질걸 아직까지 후회해.돈도 없었다. 자존심 다 버리고 상사한테 전화해서 돈이 없어서 자취가 어려울 것 같으니 그냥 원래 살던 데에서 다니면 안되겠냐고 하니까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부모님한테 말씀드려보라고? 했던 것 같다. 1시간 20분 정도거리.. 다닐 만 한데 왜 꼭 근처에서 살아야하단건지 이해가 안갔다.성인 되고 나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고 대학생활내내 용돈 한 번 못 받아 봤다. 넉넉히 사는 집도 아닌데 보증금이 갑자기 어디서 떨어지겠어.너무 슬퍼서 울었던 것 같다. 돈 벌려고 일을 하고 싶은데 그마저도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그것도 부모님 앞에서... 미쳤었지. 나는 왜 울었었니?나 때문에 엄마가 보험을 깼다. 몇 년만 부으면 연금 나오는 거였는데, 한심한 딸래미 취업했다고 조그마한 원룸을 마련해줬다. 그 동네 땅값 집값 더럽게 비쌌다. 너무 고맙고 죄송했다.몇 주 동안 교육을 받고 업무를 시작했다. 관련 전공도 아니었고 꿈꿔왔던 직업도 아니어서 모든게 어려웠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헤맸다. 전산에 뜨는 낯선 단어들과 숫자, 무조건 빠른 일처리를 원하는 고객들에, 평생 만져볼 수나 있을까한 금액의 돈을 쥐고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에, 뒤에서 빨리 빨리 좀 하라고 닥달하는 상사에, 정신 못차리고 실수연발, 앞 뒤 귀에서 욕먹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만 했던 것 같다.
신입사원에 나이도 막내여서 실은, 본업무보다는 잡일을 더 많이 했다. 밖으로 나가면 안되는 서류들을 모아 놓는 곳은 냉방 난방이 안된다. 추워 죽겠는데 유니폼이 아니면 겉 옷도 못 입게 했다. 꼴랑 하루에 10분 20분정도인데 참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걸 꼭 입어야겠냐면서.. 아니 어차피 안보이는 구석에서 하는 일인데 겉옷 좀 입는게 뭐 어때서?
회사 본지점마다, 사람마다 출근 시간이 다르더라. 몇 시까지 나와라 이런 말 안 하길래, 그래도 막내니까 젤 먼저 와야 하니까, 매일 눈치 보면서 출근시간을 당기니까 7시 40분쯤이더라.그제서야 왜 회사근처에서 자취를 해야 한다고 하는지 알겠더라..바보같이 9시 출근을 꿈꿨다... 그래도 퇴근 시간은 빠르겠지, 믿었는데 헛된 망상이었다. 제일 먼저 와서 하는 일이 청소였다. 청소하시는 어머님이 따로 계시지만 워낙 할 일도 많고 바쁘시다보니 직원 몇몇도 했다. 청소는 모든 회사에서 당연히 하는거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유리닦는 건데, 건물 1층 문 전체가 유리인데, 내가 닦는 곳은 겨우 두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팔 오지게 아팠다.. 세정제를 뿌리면 유리보다 내 얼굴에 더 많이 떨어져서 세수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회사 다닐때 여드름 뾰루지가 그렇게 많이 났던 것 같다ㅋㅋ
다른 회사를 안다녀서 모르겠는데 이 회사는 아침에 신문이 무려 일곱곳?에서 넘게 배달이 왔었다. 몇 개는 버리고 몇 개는 2층 이사장실 책상에 아주 정갈하게 올려놓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루는 신문 하나가 안와서 그냥 안올렸는데, 그것 때문에 아침부터 난리가 났었다. 너 왜 그 신문 안올렸냐, 일을 왜 이딴 식으로 하냐,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라도 받아놨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씨.. 등등. 이런 걸로 욕먹을지는 상상도 못했다.하루만 다른 신문 보면 큰일나는 걸까? 아니면 다음부터는 그 신문 꼭 올려야한다고 좋게 말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은 나 때문이고 내 잘못이지만, 나는 신문 다시 갖다 달라고 신문사에 전화했을 때에도, 신문배달원한테 일 좀 똑바로 하라고 화내면서 말한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사람이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겉으로 보여지는게 다다." 이게 이 회사 모토였던 것 같다. 대체 그놈의 난이 뭐라고.. 화분이 뭐라고, 화분 죽으면 안된다고, 일주일에 한번씩 서른개가 넘는 화분을 들어서 화장실로 옮겨서 물줘야했다. 그 짓을 할때마다 생각했다. 이 회사에서는 이 화분들이 나보다 훨씬 더 중요하구나. 퇴사 당일 날까지 이 일을 하고 나왔었지.
가끔 시장 나들이도 가야 했다. 본지점 소모품 주문담당이 나여서 홈페이지에서도 주문하고, 전화로도 주문하고, 마트에 직접 가서도 사오고.. 배달도 안되서 드럽게 무겁고... 특히 쓰레기봉투 사러 갈때는 시장에 구루마를 끌고 가서 털털거리면서 왔다. 그 정도야 상관없었지만..그 수많은 것들 중에서 단 하나가 다 떨어져서 없으면 다 나한테 물었다. 이거 왜 없어? 왜 안 사다놨어? 마트 언제 가? 사와. 사오면 보내줘. 그러고 본인은 퇴근.
우는거 티 안내려고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 정도 감사가 내려왔었는데, 그 사람들이 쓴 쓰레기통 뒤져서 쓰레기 하나 하나 확인해서, 찢어진 서류만 찾아서 파쇄했었다. 자꾸 눈물이 나와서 찾기도 힘들었다. 아니 처음부터 파쇄할거니까 한 곳에 얌전히 모아놓으라고 말 좀 해주지. 그 말 하나 하기도 어려운 분들이었나보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퇴사했다. 그런데 직원을 안구했다. 일이 늘었다. 그렇게 일년이지나고, 일년 반이 지나고 나니까 너무 지겹고 그만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수투성이에 잡일담당 막내였다. 너무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하니까 들은 말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라는 말이었다.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못 들었다.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 했다.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나라도 하려고,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시키지도 않은 일도 하고 노력했다. 물론 시키는 일도 다 했다. 서류 하나가 없어졌다고 퇴근 못하게 하고 밤 11시까지 회사 뒤져서 찾으라고 했던거. 야유회 갈 때 고속버스안에서 고객한테 술 따라줘야하고, 같이 마시고, 안주까지 떠먹여줘야하는 저렴한 짓도 했다. 흔한 변명으로 빠질 수 있는 행사도 단 한 번 빠진 적 없다. 결근도, 월차도, 연차도 없었다. 애초에 알아달라고 노력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 실수 하나 하는 것만으로 나를 판단했다. 본인들은 실수 안하는 것마냥... 나도 일 못하는 거 아는데, 다른 사람들도 일 더럽게 못했다. 그냥 회사에 효율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매일 새벽마다 혼자 울다 잠들었는데,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퇴근하고 집에 오면 혼자 라면 먹고 하는 짓도 없이 잠만 자는거? 한 푼이라도 아껴쓰려고 한창 꾸밀 때에 맨날 거지같이 하고 다닌거? 남자 직원 여자 직원 할 거 없이 몸매 지적당한 거?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어서였던 것 같다. 상사 앞에서는 아부떨고 뒤돌아서면 욕하는 거. 나는 왜 그 꼴을 보기 싫고 하기도 싫었을까.. 날 특히 싫어하던 상사한테 나도 너 싫어. 하는 티 엄청 냈었지.
이력서 한 번 내기도 두려워. 다른 곳 들어가서 사회생활하기가 너무 무서워.. 또 이렇게 생각만 하면 눈물만 나오는 일들을 겪게 될까봐. 거기서도 비난받고 무시당할까봐. 나 때문에 속상해하는 엄마, 아빠 생각하면 하루 빨리 취업해야 하는거 나도 잘 알고 있어서 지원도 해봤지만 날 받아주는 곳은 없어. 난 안되나봐. 물론 스펙이란 걸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 알지만 자격증 하나 따기도 힘들더라.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 바보같은데, 주변에서는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근데 2년 넘게 취업을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한걸 후회한 적이 없어..단 한가지 후회하는 건, 내가 왜 하필이면 그 회사에 들어갔을까..야.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력서를 내는 그 순간, 면접보러 들어간 그 순간이었으면 좋겠다.나에게 당장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