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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이혼

비공개 |2017.01.07 21:12
조회 253 |추천 1

진심을 담아서 적었습니다.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고 제 기억 그대로 옮겨 적은 제 이야기니까 꼭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추천 한번씩 눌러주시고 조언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18살 되는 여고생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5살때 이혼을 하셨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제가 4살때?? 부터 두분이 매일을 다투셨습니다. 정말 매일을요.
두분은 서로 얼굴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화가나나 봅니다.
하지만 전 그당시 너무나도 어렸고 다툼이란걸 몰랐던 시기였기에 맨날 다투시는 부모님의 싸움이 마냥 당연한 건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어린이집 친구들의 부모님도 당연 저희 부모님과 같은 생활을 하시겠구나 생각을 하며 자라왔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댁은 저희 집과 매우 가까웠습니다. 매우 어렸던 제가 혼자 걸어서 왔다갔다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일을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랬기에 엄마보단 외할머니를 아빠보단 외할아버지를 좋아했었던 저는 당연한거겠지요.
이상하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다투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저희 부모님과는 정반대로 다투시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주 큰 사랑으로 외손녀를 예뻐해 주시던 두분이셨지요. 그래서 제가 두분께 더 애착이 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끔 밤에 엄마를 따라 나가면 엄마 옆엔 항상 아빠가 아닌 낯선 남자분이 서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아저씨라 불렀고 아저씨는 저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셨습니다. 하지만 4~5세 였던 저는 그게 엄마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도 모른체 그 아저씨를 나름 잘 따랐었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반복되는 일상으로 1년이 지나고 5살이 되던 봄, 갑작스레 할머니와 엄마가 며칠전 부터 제 옷가지들과 장남감들을 커다란 박스 8개에 담아 정리 하셨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어른들께 왜 그렇는거냐 여쭸더니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갈 채비를 한다며 저에게 환한 얼굴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들뜨고 기쁜마음에 매일밤을 설렘으로 잠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와 달리 가족들의 얼굴이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빠도 일찍 나가시고 외할아버지도 출근하시기 전 제게 주황색 큰 곰인형과 함께 고사리 같던 제 손에 만원을 쥐어주시면서 안아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였습니다. 그 인형하나에 모든것을 다 가진 기분이 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작아서 신지 못하는 양말들과 사진을 챙겨두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왜 다 챙기지 않느냐 여쭸더니 엄마가 훌쩍거리시면서 우리 아가 양말이랑 사진은 엄마가 간직할꺼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말이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채 그저 제눈에 보이던 엄마의 눈물 한방울 한방울만이 속상하고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오후쯤 엄마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갔습니다. 얼마 걸어가지않아 아빠의 차가 보였습니다. 어렸더라도 아빠의 차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던 저는 평소에 자주 가보지 못했던 가족나들이를 가는것 마냥 마음이 너무 들떴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갑자기 아빠의 차 뒷문을 열더니 저보고 타라고 말씀을 건네시고서는 잡고있던 제손을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평소에 항상 먼저타시고 어린 저를 무릎에 앉혀주시던 외할머니가 왜 그날따라 저를 혼자 태우려 하셨을까요. 어린저도 뭔가 이상했는지 울상을 지으며 외할머니 옷깃을 잡고 '할머니 내옆에 앉어. 같이 타' 라며 간절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앞에 탄다며 먼저 앉아있으라며 슬픈표정으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말을 저는 또 의심없이 믿었고 차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창밖에 보이던 외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을 끝까지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뒤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않던 엄마는 그저 두손으로 입을 가린채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붉어진 엄마의 얼굴.. 5살 어린아이의 머릿속엔 지금껏 그정도로 속상해 하시던 엄마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출발해 버렸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저는 울며불며 미친듯이 발악을 하였습니다. 아빠에게 제발 차를 세워달라며 소리쳤습니다. 아빠도 그런 제가 걱정되셨는지 얼마못가 차를 세워 뒷자리에서 한없이 울던 저를 앞자리 아빠옆에 태우고서는 다시 출발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누군가에게나 기대고 싶었나 봅니다. 누군가에게나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나 봅니다. 평소에 아빠곁에 가는걸 싫어했던 제가 운전을 하고 계시던 아빠를 애타게 부르며 멈출줄 모르고 하염없이 엔진을 밟으시던 아빠의 다리,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울었습니다. 그 때만큼은 곁에 남아있던 아빠마저 잃을까 싶어 아빠는 가지말라며 끝까지 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참뒤 저도 좀 진정이 된 걸까요. 그 땐 아마 제가 심하게 울진않았던 걸로 기억이납니다. 그 때 백미러로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바로 시골에 사시는 친할머니의 모습이였습니다. 친할머니의 얼굴은 자주 뵈었기에 외할머니만큼 잘 따르진 않았지만 당시 저는 익숙한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친할머니의 무릎에 앉은 채 또 어디론가 한참을 갔습니다.
가다가 갑자기 차를 멈춰 세우시는 아빠의 모습에 행여나 엄마와 외할머니가 말한마디 없이 나를 버리고 가신게 마음에 걸려 다시 나를 찾아 왔나 싶어 급히 창밖을 보니 시골 삼촌이 대신 서 계셨고 그 옆에 커다란 삼촌의 봉고차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아빠와 할머니는 저를 안정시키려고 다왔다며 환히웃고 계셨지만 저는 마냥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안양에서 식당을 하고계시던 고모할머니댁에 들려 밥을 먹고 아빠없이 삼촌차를 타고 친할머니와 검은 도로를 한없이 달렸습니다. 그때는 제가 고모할머니댁에서 밥도 먹고 고모할머니 딸인 언니와 같이 놀며 기분이 잠깐 풀렸었는지 커다란 봉고차에서 동요를 부르며 갔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당시 살고있던 서울에서 2시간 30분 거리였던 경북 상주의 친할머니댁에 도착했을때는 친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불러주시며 우리 손녀 왔냐고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한 채로 낯선 시골집을 한참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잠에 들때가 되서야 외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자꾸만 생각나서 눈물이 자꾸만 나왔습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얼른 자고나면 내일 볼 수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집에서 평생 살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말씀이 당연하다고 느껴 서러움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낮에 봤던 할아버지는 상냥하고 웃음끼 있던 모습은 어디로가고 화를 내시며 빨리 자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더 서럽고 무서운 마음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때 뿐만 아니라 제가 클때도 저의 엄마얘기를 하는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던 분이셨습니다. 그래도 친할아버지와는 다르게 마음이 여리셨던 친할머니는 어린 저를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근처 학교 운동장에 데려가 주셨습니다. 어둡고 바닥엔 진흙이 잔뜩 차서 제대로 즐길만한 놀이기구는 없었지만 늘 믿고 기대며 지냈던 가족이 한순간에 없어져 답답하고 불안에 떨어있던 저에겐 서늘하게 식어있던 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추억으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들과는 다른 5세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적었던 것을 그저 서울에서 지금살고 있는 이곳 경북 상주까지 오게된 일만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보다 더 힘들고 가슴 아픈일은 5살부터 지금 18살이 되기까지 상주에 살며 새롭게 시작 됩니다.

엄마는 지금 저를 너무 그리워 하셔서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로 저를 몇번 찾아오시가도 하고 핸드폰을 사주시며 계속해서 연락을 원하셨지만 어릴쩍부터 떨어져 지내고 만나게 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친할머니, 친할아바지 때문에 엄마가 마냥 낯설고 부담스러워 제가 연락을 원치 않아 끊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리운 마음에 제가 먼저 엄마께 연락을 드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합니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저를 기다려 주셨고 미안함 마음과 그리운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아빠는 제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댁으로 왔기에 명절 때나 여름휴가 등 자주자주 보며 지냅니다. 아빠는 친엄마와 이혼후 또 한번의 이혼을 겪고 세번의 결혼을 통해 지금 새어머니와 인천에 살고 계십니다. 물론 동생도 2명이나 있고요 모두 저와 10살 넘게 차이납니다. 저희 아빠는 두번의 재혼을 했을 때 단한번도 저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결혼을 하고 할머니댁에 데려오면 제엄마가 되는 상황입니다. 첫번째 재혼 때는 제가 유치원 때였기에 어려서 그랬다쳐도 두번째 재혼은 제가 12살 때인데 그땐 막 사춘기도 오고 알만큼 알나인데도 아빠를 포함한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삼촌은 제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무턱대고 결혼 하셔서 제 엄마랍니다. 안그래도 아빠또한 엄마와 마찬가지로 저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으신 듯 합니다. 그래서 절 단한번도 혼내거나 하고싶어 하는 것을 가로막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 이런걸 원하는게 아닌데 말이죠... 지금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삼촌은 제가 새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는것에 무작정 화를 내십니다. 드라마속 어린아이들과 비교도 하시면서 나무라시죠. 저에게 단한번의 설명도 안해주시고 제가 새엄마와 가까워질 기회도 마련해 주시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그렇다고 새어머니께서 저를 완전한 친딸처럼 대해주시는 것도 아니고 동생들과도 달리 대하시는데 새어머니와 제가 가까워지는데에 있어 자꾸 저만 노력하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저희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그리고 삼촌을 절대 절대 나쁜신분으로 보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릴쩍 부터 갈곳없는 저를 데려다 입혀주시고 먹여주시고 해달라는거 남부족하지 않게 어디나가서 욕먹지않게 해주시며 키워주신 분들이니까요.

남들은 태어날때부터 있는 엄마와 아빠를 왜 저는 지금까지 이토록 소망하고 간절히 바래도 생기지 않는걸까요.
차라리 같은 상황에서 처지를 공유할 형제나 자매가 있었더라면 저도 제 형제와 슬픔은 두배로 나눠갖고 함께 의지하며 자랐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보단 덜 외롭고 덜 괴로웠을 것입니다.

아직도 학교생활을 하거나 남자친구를 만나는 등 부모님의 이혼은 제 삶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저도 친구를 집에 맘껏 초대해 우리 엄마라며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도 입학식때나 졸업식때 엄마가 주시는 꽃다발을 받고 싶고 남들 다있는 가족과 함께 가족사진도 너무 찍어 보고싶습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을 꿈꾸더라도 제가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에 남자친구부모님쪽에서 싫어 할까봐서도 걱정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각자 새삶을 살아가시면 되지만 아무죄없고 형제, 자매하나없는 저는 왜 늙을 때 까지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꼬리표를 대신 달고 살아가야 할까요? 지금까지도 충분히 힘들고 불행했는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힘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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