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힘들어서 ..여기다 글씁니다. ㅠㅠㅠ
앞으로 이렇게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 세상모든게 의미없고 정말 내자신이 지친다는게 뭔지 알거같다..
20대때는 내 잘난맛으로 살았는데 편집성 인격 장애인지 모르고 단지 성격 수준으로 생각했고 언제든 고칠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람관계를 가지더라도 .. 그사람이 문제야 내가 문제가 아니야 라고 자위하면서 활달하게 지냈고..
나이들어서 서서히 무너진다는게 뭔지 뼈져리게 느낀다..
육체적으로 무너지지 않은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어릴적 철없을떄 정신병 있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뭐가힘들다고 지랄이지 라면서 사지멀쩡하면 움직이란 말이다 라고 속으로 경멸했다..
지금으로 부터 6개월전 맞선 본적이 있엇다.. 그전에도 숫하게 소개받고 결혼할 나이가 되어 맞선을 봤지만 내가 일주일만에 다쳐내고 외모는 별로였지만
나좋아해주고 마음씀씀이도 착한거같애서 새롭게 시작해볼려고 했다.. 하지만 끝없는 의심.. 결국은 또 일주일도 못가서 쳐냈다..
나중에서야 내가 오해한걸 꺠달았지만.. 나란놈은 느꼈다.. 외모가 이쁘든 착하든
상관없이 난 의심으로 범벅질할 놈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좌절했다.. 아니 그때부터 내 자신이 지쳤다..
그이후부터 결혼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했다고 해야하겠지... 부모님께서 힘들게 소개를 해와서 소개해줬지만 난 전화상으로 죄송하다고 하고 미루거나 하길 일쑤였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단지 의심이 심해서 ......... 솔직히 말하면 정신차리면 되겠지.. 0.1%의 희망이라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난 예전부터 의심하는건 습관화되서 대수롭지 않아했었다 단지 사람많은곳에 있으면 이상하게 많이 피곤하고 지쳤다..
이제는 남들이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어요 이런말을 하면 상당히 불편한걸 넘어서 듣기 싫고 미칠거 같은 정도가 되어서 집근처에 정신과에 진료를 보러 갔다..
3일전 정신과 진료를 보고 나서 편집성 인격장애 진단이 나왔고 심한수준이었다.. 이제까지 모든의심과 집착 경멸의 원인이 이거였다니...
의사는 상담치료를 받으면 좋아질거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덤덤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내병이 어떤병인가 검색해봤을때 치료약은 없었다..상담치료가 있지만 의심으로 이루어진 병이라서
상담사 조차도 불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완화가 될뿐이지만 완치는 못한다고 하였고.. 평생이병을 달고 살아야했다.. 난 한가지 생각을 했다.. 절대로 낫지 못한다고...
완화가 된다고 해도 시한폭탄을 지고생활하는 것이고... 결혼은 포기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문득 의심병이 심해서 암을 앓고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생각났다..
과거 오래전 (내가 의심병은 그때도 있었지만 친척들은 아무도 모른다) 장례식끝나고 큰집으로 갈때 여차 하다보니 고인이된 큰아버지 자식 2명이랑 나랑 따로만 같이 가게 되었다..
큰아버지 자식중 20살된 여동생이 있었는데 친척중에 내가 장남이고 오랫만에 본 오빠라서 의지하고 싶어서 이야기 한것일까..
자기 아버지 이야길 물어보지 않았는데 하나 하나 꺼냈다.. 자신의 아빠는(들은대로 적겟음) 친척들이 생각한거처럼 좋은사람이 아니였다고... 끝없는 의심으로 어머니와 나랑 내동생은 고통 받아야 했다고.. 의심으로 인해서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않고 (택시일을 하고 계셨음)) 번돈을 자기 혼자만 써버려서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랑 부업이라도 해야했다고 그런데 그조차도 아빠는 엄마가 다른남자 만나는지 의심해서 일도 맘편히 못했다고 말을 쏟아냈다..
자신들의 학비나 식비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체워야 했고 돈이없어서 대학교도 국립대로 가야했다고..
무수한 말이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말은 살아계실때는 지옥이었다.. 죽고나서 슬프기보단 이제 끝났구나
해방감이 몰려왔다고 했었다..
그생각이 왜 오랜시간지나서야 이제야 난건지..
이젠 내 자신이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