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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바뀌었더라면 좋았을 만남...

나야나 |2017.01.23 02:02
조회 560 |추천 0

오빠, 나야.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보기 좋아.

나랑 찍은 사진은 한 번도 내건적 없으면서...지금 여자친구는 정말 훨씬 더 사랑하나봐 그치?

 

내가 오빠를 매몰차게 버리고 돌아서던 다음 날 아침,

내 차 창문에 껴있는 오빠 명함 뒷면에 쓰인 짧은 편지 마지막에 '사랑해'라는 글자를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난 심하게 권태기의 절정에 빠져있었어.

오빠랑 뽀뽀도 하기 싫었고 모든 게 다 못생기고 미련해보였거든. 그런지 6개월이 넘었으니 오죽했겠어. 분명 한 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인데 희한하단 말이지. 그땐 어려서 평화롭다는 거, 나만 봐준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몰랐어.

 무한히 어리석은 내 20대의 '연애 경험 없음'을 탓하며 속으로 빌었어. 이제 오빠같이 착하고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하리란 걸 어렴풋이는 알지만, 그래도 한 번뿐인 인생인데, 후회없도록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잘생긴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정말 멍청하고 바보같고 유치한 소원을 빌었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어.

 

 불과 한 달뒤 만난 새로운 남자는 내 소원대로 잘생기고 뽀얀 피부와 식스팩과 넓은 어깨를 가진, 얼굴보고 우와 너무 잘생겼다까진 아니더라도 누구를 보여줘도 괜찮게 생겼단 말을 들을만큼 훈남이었어. 그런 사람이 첫 만남부터 나를, 내 얼굴을 구멍이 날 것처럼 쳐다보는거야. 그 이후 전개는 정말 빨리감기 수준이었어. 그 사람은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뜯어보고, 나를 궁금해하고, 내 연락을 기다리고, 내 칭찬을 해댔지. 금방 그렇게 그 사람과 사귀기 시작했어. 유치원도, 다닌 학원도, 출신 대학도, 심지어 직업까지 같은 그 사람이 훈남인데 나를 좋아하기까지 해. 이런 드라마같은 일이 또 있을까? 이건 마치 운명같다고, 왜 진작 정이 다 떨어져버렸던 오빠에게 티를 내지 못했을까 후회하기까지 했어. 못된 년이지. 내 기도가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나도 몰랐어. 근데 신이 정말 내 기도를 한치도 빠짐없이 들어주었다는 걸 이때까진 몰랐어.

 

 한 달이 지났어. 그는 내 하나밖에 없는 과거의 남자를 질투하고 나를 더럽게 여겼어. 그때까진 이것도 사랑때문이라 여겼어. 그는 욕심 없이 나랑만 놀던 오빠와는 달리 무지하게 취미가 다양하더라. 도박, 운동, 친구, 그리고 클럽은 날 만났으니 끊겠다고 하더라만, 아무튼 나와 놀기는 1순위가 아니었어. 장거리연애의 문제가 아니었어. 만나러 가는 건 항상 나였고 그는 바빴어. 공부를 해야한다면서도 항상 모든 약속에 얼굴을 비추고 여러가지 일이 많았지. 그러니 나랑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었겠니. 전화로 조차 바쁘단 소리 위주였고 고작 3주에나 한 번 볼까말까면서 전화 시간 마저 아까워했지.

 

 내 얘기를 항상 들어주고 같이 공감해주고 해결해주려던 오빠와는 달리 그는 내 문제를 아무 것도 아닌 일쯤으로 넘겼어. 그런 생각해 봤자 너만 스트레스 받으니 그딴 생각 말고 졸리니 잠이나 자재. 그러면서도 내 첫경험에 집착하느라 잠을 못이루고 말수가 적어지는 해괴한 인간이었어. 막상 자기는 업소에서 첫 경험을 했다고,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이랑 타액을 섞고 다녔다고 털어놓고선 말이야. 남자는 성욕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여자는 아니니 아무래도 첫경험이 아직인 사람도 많다는 둥, 남들은 처음하면 피가 나온다던데 라는 개소릴 늘어놓은 적도 있어. 

  

 오빠는 나랑 비슷하게 벌었을거야. 근데 항상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우리 이쁜이 맛있는 거 사줘야지 했어. 나도 낸다고 냈고 선물도 최대한 맞추려고 했지만 오빠가 돈은 훨씬 더 많이 썼을 거 같애. 그런데 그는 내 생일날 같이 있지 못했고, 내 생일 선물은 내 손으로 직접 골라야 했어. 어느 날 표정이 굳어서는 데이트 비용이 부담되니 데이트 통장을 만들자고 하더라. 따져보니 몇 천원 자기가 더 썼더라고. 근데 몇 천원이라도 자기가 더 쓴거니 그게 쌓이면 힘들다는 거야. 내가 자기보다 더 벌었다면 내가 몇 천원 더 내는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았을텐데, 나보다 한참을 더 벌면서 그러더라. 그래서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려고 용돈, 기름값, 비싼 선물, 깜짝 선물 해줘 봤어. 내가 받은 건....어플로 편집한 사진, 그리고 데이트 비용을 받은 선물값 만큼 더 내기더라....

 

 다 적기 힘들어서 생략하고, 그 사람도 나름대로 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는 어느정도 하려고 했던 거 같아. 하지만 나는 점점 1순위에서 2순위, 2순위에서 3순위... 나중엔 도박 모임, 갑작스런 친구와의 만남보다도 뒷전인 사람이 되더라.

 

 결정적으로 그는 내 걱정을 하나도 안 하더라. 오로지 자기 뿐이었지. 유럽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한 내가 언제 귀국하는지도 모르고 주식 공부에 빠져있느라 내가 언제 오는지 어떻게 오는지 신경을 못썼다더라. (그 빚에 또 대출을 끼고 나랑 자기 어머니한테까지 돈을 꾸어 주식을 했지.) 밤늦게 귀가하는 나를 걱정한 적도 없고, 밤 늦게 생수가 떨어져 편의점에 간다고 했을때도 우리집 근처가 우범지대인 걸 알면서도 자느라 모른척 했지. 자기가 화나도, 내가 화나도 내 연락을 받지 않아 사람 애간장이 녹게 만들었지.

 

 그럴때마다 오빠였다면, 오빠였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또는 이랬을텐데로 항상 귀결되는 게 너무 슬펐고 멍청하게 느껴졌어. 그를 만나는 매일이 눈물바람이었는데 그제야 비로소 오빠를 만나 사랑받은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를 알게 된 거야. 오빠와 그를 만난 순서가 뒤바뀌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이 수없이 많아. 그와 있던 모든 위기마다 나는 오빠의 존재가 더 커짐을 느꼈고 오빠의 배려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았어. 여기에 차마 적지 못했지만 더 큰 고비도 많았거든.

 

 거의 매일 밤 11시가 넘으면 연락 없는 그를 300km 타지에 두고서도 독수공방 중인 내 모습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우리가 헤어진 날, 아니 내가 오빠를 버린 그 날 오빠가 남기고 간 명함 뒷면에 써 있던 '사랑해...'라는 말이 그제서야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히는 걸 알았어. 그때 그 명함 뒤에 울며 편지를 썼을 오빠의 뒷모습을 상상하니 미칠거 같았어. 오빠의 마음이 이렇게 아팠을까? 아니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아팠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오도카니 방 안에 앉아있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꺼이꺼이 가슴을 뜯으며 울었어. 내 죄가, 내 멍청함이, 스스로를 벌주어 그 벌을 달게 받은 것만 같았어.

 

그와는 그냥 겨울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헤어졌어. 마음을 먹고 나니 사실 별로 더 이상 마음 아플 것도 없고 오히려 후련하더라.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내가 답장을 대충 했더니 그 이후로 연락 두절. 딱 그 정도만큼의 관심이었던 건데 내가 멍청해도 너무 멍청했지?ㅋㅋㅋㅋㅋㅋㅋ 그 동안 너무 매일 울고 힘들어서 이젠 아예 '잘해주겠지'란 기대 자체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 편하더라. 오죽하면 헤어지고 난 이후로 그 사람 생각 때문에 운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난 연애 경험이 별로 없어서 오빠한테 물었었지.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를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냐고. 그랬더니 '지금도 안 슬픈 건 아니야. 그때의 즐거웠던 일이나 슬펐던 감정들이나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사실 나지만 그게 다인거지.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냥 어디에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면 좋겠네. 하지만 굳이 궁금하지는 않은 정도?'라고 했었지. 나도 나이를 먹고 오빠라는 과거가 생기니 알겠어. 그게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거로구나.

 

 언젠가 내 상태가 걱정되서 현 여친에게 보고까지하고 나에게 달려와 놓고는 내가 경계하니깐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지? 그때 내가 그런 표정이었던 건 사실 이런 이유였어. 내가 너무 비참하고 외롭고 병신같았거든. 이런 취급 받을려고 오빠를 버리고 갔냐는 말 듣기 딱 좋잖아?

 바보같고 미련했던 나에게 항상 곧장 달려와주어서 고마웠어. 내 깨달음이 너무 늦어서 그때의 슬펐을 오빠에게 너무 미안해..... 앞으론 오빠도 고집 좀 부리고 행복만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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