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중반의 한 사람입니다.
첫 글이라 조금 떨리기도 하고...
새해맞이 그냥 내이야기를 하면서 수다떨고 싶은데 지금 홀로 외국이라 이야기 할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부끄럽지만 과거사를 좀 적어보려고 해요.
요즘 흔히 말하는 고구마나 사이다는 없고 (내생각에는) 그냥 속시원히 이야기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나타나질 않으니 (내가 찾아도 찾을수 없었고..ㅠㅠ)
그냥 여기에다 올려봐요.
아마 글을 읽다가 나를 알게되는 사람도 있을거 같은데....(좀 상세해서..) 만약 나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이 알고있는 내이메일이나 연락처로 말해주세요.
첫 톡이라 긴장했으니 너무 심한 댓글만 말아주세요..ㅠㅠ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거라 부족함이 많아요ㅠ
제가 친구에게 수다떨듯이 말하고 싶으니 본문은 편한 반말로 갈께요.
(한국어 오랜만에써서 오타/맟춤법 안맞을수 있어요 ㅠ양해부탁드려요 ㅠㅠ)
내가 왕따 방관자였던시기는 내기억으로는 초등학교때 였었어.
우리 초등학교는 대치쪽에있는 한마디로 나름 있는집 자제들이 많이 다니던 학교였어.
물론 근교 초등학교가 몇 없었기때문에 학생들도 굉장히 많았고 다들 서울살면 알겠지만 그당시 강남의 달동네인 곳과 대치동이 인접해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60%는 서민 40%는 부유했던거 같아.
다른학교에 비하면 부유층 비율이 참높았다는 기억은 있어.
초등학교 저학년때의 나는 참 눈치도 없고 마냥 해맑은 아이였어.
머리속에 박힌 친구는 빨강머리 앤과 다이아나같은 관계라 생각했고,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거란 생각을 가진.
이런 성격 때문인지 반에서 인기가 많은건 아니였지만 모든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한 아이였어.
남자아이나 여자아이 할것없이.(이때 친했던 남자애들 여자애들이 중간에 전학을 많이갔어..,, 연락되면 좋겠는데 너무어릴때라 암것도 안나와 ㅠㅠㅠ)
그런 도중 전교에서 왕따당하는 여자애가 있었어.
우린전교생이 한학년당 9개의 반이 있었고 한반에 31~33명의 아이들이 있었어.
그 많은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던 아이였어.아직도 이름이 기억나.
편의상 그아이를 P라고 할께.
P는 늘 남자애들한테 놀림당하고 레슬링이나 격투기의 대상자가 되어야 했어.
(심지어 한두살 어린 아이들한테도!)
P는 외동딸이었고 P의 엄마는 식당을 했던걸로 기억해.
나는 사실 아직도 P가 왜 왕따당했는지 몰라.
하지만 나는 P와 단 한번도 같은반이 된 적 없었고 눈앞에서 남자아이들의 놀림당하는 모습, 맞는모습을 봐도 도와줄 생각이 없었어.
그 아이는 내기억으로는 초등학교 6년 내내 그런모습이어서 그게 너무나 익숙했거든.
내가 P에게 작은 도움을 준건 딱 한번뿐이었어.
그것도 우연이 였지.
어느날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수업시간시작종에 빨리 반으로 돌아가던차, 화장실칸에 들어간 P를 남자애들이 못나오게 칸앞을 막고 불붙인 휴지를 칸 안으로 던져넣는모습을 보았을때 나는 충격받았어.
P가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게 그제서야 깨달았어.
그모습은 익숙하면 안되는 모습이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남자애들은 3명이었고 수업시작때문에 복도는 조용했었거든.
일단 반으로 돌아가서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나?내가 말하면 나중에 애들이나한테도 그러면 어떻게하지?
이런생각을 하고 있을차, 학교에 몇 없는 남자쌤이 복도를 지나가셨어.
바로 선생님한테 말했지
"선생님 남자애들이 지금 여자화장실에서 장난쳐요."
이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었어.
그 남자아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장난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을 행하고 있다는걸 알았지만, 변명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말은 이게 최선이었어.
다행히 선생님은 화장실에 가보셨는지 그 아이들이 혼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혹시나 그 아이들이 나를 알아볼까봐나는 뛰어서 반으로 돌아갔어.
만약 선생님이 그때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P를 위한 그말을 하지 못했을거야.
그뒤로도 나는 종종 P의 모습을 보았고 폭력에 노출된아이를 보았지만 다가가지 못했어.
나는 철저한 방관자였어.
그 한번의 도움이 그 당시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해주었지만그 뒤 나는 그아이가 눈에 밟히면서도 단한번도 손내밀어주지 않았어.
못한게 아니라 안했던거야.
한번 손잡아줄껄. 위로해줄껄. 같이 울어줄껄.그 남자애들이 뭐가 그리 그때 무서워서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내가 손을 내밀었다면 조금은 위로받을수 있었을텐데....아직도 종종 그아이가 생각나그아이의 소식은 작년에 한번 들었는데 지방에서 지내고 있다고 들었어.
부디 앞으로는 행복하기를 바라기를, 언제 길에서 스쳐지나갈때 웃고있기를 바라.
내 왕따의 첫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6학년쯔음이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여자아이들은 파벌이 생기기도 하고 2차성장의 모습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에 생각도 성숙한 아이들도 많았지.
하지만 나는 그때도 뇌청순(...)마냥 해맑음이라 그런것 상관없이 누구랑도 잘 지냈어.사실 이맘때즈음 여자아이들은 내친구가 내가 싫어하는친구랑 다니는걸 참 싫어하는데 그걸 몰랐어.
그래서 오늘은 저친구 내일은 다른친구 그 다음날은 또 다른친구..^^;;
이렇게 두루두루 놀았지.
이 친구들 사이가 어떤지 나는 생각도 안하고.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에는 반에 딱히 친하다는 친구가 없었어.
그때 다가온 친구 2명이 있었어 그 애들을 A 랑 B 라고 할께.
나는 그애들과 마냥 잘 지냈는데 반의 실세인 여자아이 Z가 있었어.
Z와 그 두 아이는 사이가 좋지 않았어.
이상황에서 우리는 셋이 지냈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 나중에 C라는 친구가 전학와서 우리는 4이서 나름 잘 지냈어.
종종 우리가 놀때에 A는 특히 Z를 욕했어.나는 그냥 아무생각없이 그렇구나~ 하던 아이였고.
(이때 나는 참여안하는 뒷담은 뒷담이라 생각도 못했어 ㅠ 듣는것만으로도 뒷담이 될수 있다는걸 몰랐지..)
어떤일인지 몰라도 z는 우리가 자기욕을 한걸 알고 우리는 반 여자애들한테 고립되었어..^^;
그 이후 A의 z 욕은 여럿 나왔고 사실 z친구들도 z욕하고 다닌다 걔네중에 z욕 안하는 애들이얼마나 있겠냐..이런이야기부터 나중에는 z는 중학교때 우리 사촌언니오빠 친언니한테 이런행동 말하기만해도 z패거리는 왕따당할꺼다 뭐 이런말도 나왔었어.왜 결론이 그리 나오는지 나는 1도 이해가 안가지만....(우리집은 당시 고모님댁이 걸어서5분거리라 초중을같이다녔어 나이터울도 3-6살이라...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같은이름의 고등학교랑 같이 있었어 사촌오빠언니들은 내가 초6일때 거길 다니고 있었어. 아마 초등학교생 1/3은 그 중학교에 배정받을 예정이었어.)
물론 그런일을 할 생각도 없었고 혹시라도 A가 오해사는말을 하게된다면 꼭 내가 언니오빠들말려야겠다. 라는 생각도 했었어.나는 사촌오빠들이 예뻐하던 여동생이었고 언니들도 나를 아껴줘서 사촌오빠언니들 친구들 아는사람이 많았었거든.
문제는 이이야기를 같이 듣고있던 A의 동생, 그리고 동생의 친구도 있었지.
그리고 동생들이 친분있는z아는 동생들에게 그말을 전했고 그아이들은 다시 z에게 그말을 전했어.
몇사람을 거치다보니 와전이 되어서 내가 왕따를 시키겠다 z는 원래 친한애들도 다 뒷담까고 다녀서 지금도 속에는 왕따다 뭐 이런.........이야기가 나왔어.
당연히 z는 나에게 따졌고.... 나는 당황해서 울었지..
A가 그런말을 했다 라고 말해도 믿을지 미지수고, 또 일러바치는식인거같아서 나는 A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어.
아는 언니오빠들이 나힘들게하는사람있다는이야기 듣고 그아이 중학교오면 왕따시키겠다 그런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내가 그러지말라 말린적있었다. 그게 와전된거다. 네가 왜 왕따냐..이렇게 애둘러 거짓말을 했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뒤 z와 나의 관계는 데면데면에서 확 멀어졌어.
B 그리고 C도 마찬가지...(초반에는 B랑Z는 종종이야기도 하는 사이였어)그리고 우리는 그룹왕따가 되었지.
이 뒤도 컨닝사건이나 뭐이것저것 있는데 생략할게. 이제 분노도 안들어서.-_-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Z의 친구들은 대다수 나와 다른 학교로 배정받았고중학교에 입학했어.
악몽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어.
아니 정확히는 중2말때부터.
내가 간 중학교는 9반까지 있었어.
A와 B 그리고 C는 사이좋게 3반 4반 5반 이렇게 배정받았어.
나는 똑떨어진 8반...학교가 ㄱ자 모양처럼 생겨서 앞반과 뒷반은 참 멀었어.(5반까지 앞반이었어)반배정은 순차적 돌림이었던거 같은데 배정표를 내러가야했는데 나는 그 배정표를 잃어버렸거든.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배정표를 내고 갈때 빈손이었고 홀로 교육청가서 배정표 다시 발급받았어.
나는 새학교였고 새친구들을 만나는게 너무 좋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나는 뇌청순(...)을 유지하고 있었어.
모두와 친해질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학교는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도 많았으니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중1때 나는 무척 외소해서 반에서 키가 두번째로 작았어 쪼끄마한 아이가 교복입고 다니니 반애들입장에선 귀여웠는지 친구들 많이 생겼었어.
내가 반에서 친구들과 하하호호 하고 있는 사이에 나에대한 소문이 앞반에 어떻게 도는지 모르고..^^..
6학년때 친했던 A B C의 반에 교과서나 체육복을 빌리러 가도 아이들 표정이 굳어있고 쌀쌀맞다는 생각은했지만 설마 소문의 근원이 친구들일거라 생각도 못했지.
(내가 나의 소문의 주동자를 알게된것도 어른이 된 21살즈음이었어. 나에대한 모든 소문이 나 ABC한테서 나온거더라고...당사자도 모르는 사실들...)
소문은 2학년1학기때 내가 느끼게 되었고 2학기때 소문을 앎과 동시에 왕따가 되었지.
그때 학년중 가장 잘나가는 여자애 K가 있는데 내가 K 와 그 패거리(?)욕을 하고 다닌다고...
그걸 들은 증인은 A,B,C 그리고 그걸 이야기 하고 다닌것도 A,B,C...
억울했어.A B C 와 이야기한것도 엄청 오래전이고 (왜냐면 1학년 초반에 나한테 쌀쌀맞아지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연락을 잘 안했거든종종 핸드폰 빌려가서 모르는 남자애한테 나인척사진보내거나 문자보내기도해서...점차 거리를 뒀어.)
K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단 한번도 같은반이 되어보지도 못했고 소문을 듣기 전까지 K의 이름만 알지 얼굴도 몰랐던 나니까.
그리고 왕따는 3학년이 되었을때 최고를 찍었지.
반에서 나는 투명인간이었어.
남자아이들이 던지는 쓰레기나 지우개를 머리에 맞아도 모른척 했어야 했고쉬는시간엔 잠자는척 책읽는척 아무도 안오는곳에 숨죽이고 있고급식비는 나가는데 급식을 먹어본적 없지.
학교가 너무 싫었고 도망치고 싶었어.
늘 학교밖에서 화장하고 놀러다니고 그러긴했어.
(다른학교에 있는 친구나 사촌오빠랑 놀거나 사촌오빠중 특수분장메이크업 하는사람있어서 그때부터 화장품에 관심도 가지고 일도와주도 화장품 얻고 그랬어.)
3학년 초중간에 한여자아이와 싸우게 되었어.
싸웠다고 해야할지 뭐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덕분에 가족이 내가 왕따 당하는걸 알게 되었어.
반에 은따였던 여자아이H가 있었어.
H는 그래도 아이들이 같이 점심을 같이 먹어주거나 그러는 관계였어.(나는 혼자..ㅜㅜ)
어느날 H의 펜이 없어졌는데 (하이테크 그당시에 제일 인기있는 고가펜)
내가 똑같은 펜을 가지고 있는거야.
나는 그펜은 써보고 싶은 마음에 친언니 필통에서 가지고 온거였거든.^^;;;
(우리언니는 당시 용돈을 털어서 그 펜 컬러별로 모으고 다이어리쓰는 취미가 있었어.)
하필 같은컬러여서 H는 내가 훔쳤다고 생각하고 도둑년이라 욕하고 다녔고그일이 있은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나는 화장품팩트를 도난당했어.
그때 어린마음에 나를 싫어해서 나를 도둑으로 몰았던 H에게 울면서 물어봤지만 당연 H는 모른다고 하지만 자기가 그런일 할수도 있는애 아니까 한번 물어봐주겠다고 했고 나는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었어.
다만 H가 전화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는 들었지.
00이 울면서 소중한거야 하는데 진짜 웃겼다고 내가말해줄거 같냐고
나는 H 집에까지가서 물어봤어.
학교가 아닌곳에서 물어보면 그래도 솔직하게 대답해줄거라 생각했거든.
학교는 H나 나에게 그리 자유로운곳은 아니였으니까.
그때 나에게 그 팩트는 비싼건 아니였지만 사촌오빠가 내가 자꾸 혼자 틀어박히려 하고 점점 소심해지고 이런모습때문에 화장을 알려주면서 선물해준거라 나에게 너무 소중해서 필사적이었던거 같아.
그런데 H집에는 만나려했던 H는 없었고 H의 아버지가 계셨어.
H 친구냐고 물어보는 데에 나는 친구라고 말할법도 한데 솔직히 말했어.
학교에서 제가 도난 당했는데 H가 자기가 그럴거 같은 친구한테 물어봐준다 했다.
그런데 아직 대답을 해주지 않아서 물어보러 왔다고.
이말이 H아버지께는 당신딸이 내물건을 도난했습니다. 로 들리셨는지 안에 들어와서 찾아보라고 내가 찾아보겠다고...방안을 휘젓는 H아버지의 모습에 당황해 제가 오해한거 같다고 다시 H랑 이야기 해보겠다고 하고 돌아왔는데
H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그런 오해를 산게 딸의 행실때문이라고 생각하셨는지 H에게 엄청 뭐라 하셨던거 같아.
그래서 H와 H의 부모님이 우리집까지 찾아온거야.
우리집과 H집 부모님들께서 말하고 그때 내가 왕따를 당하고 이런일이 있었고 저런일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H를 오해한거 같다 죄송하다.
이런사과와 함께 일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내가 왕따를 당한다는건 가족모두에게 알려졌어.
부끄럽고 괴롭고 힘들었어.
부모님이 알게된다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거든.
아빠는 가부장적인 분이셨고.
왕따를 당해본적 없는 사람이었어.
당연 나에게 학교를 그래도 가야한다고 말하는 분이었지.
당시 집안 가세가 엄청 기울어서 우리는 반지하에 살았고 부모님은 늘 일하러 다니셨는데
나는 늘 학교가는척 아침에 나와서 집 뒤 고속도로길을 따라 걷다가 부모님이 출근하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 집에 들어왔어.
한참을 울다가 용돈으로 종종 병원에 갔어.가서 열나는거 같다 목이 아프다 하면 가벼운 처방전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부모님 몰래 왕따당하는 딸이 학교 잘 다니고 있는척 했어.
아무도 없는 한낮의 집에서도 한참을 울고 커터칼로 손이나 손바닥을 그어보기도 하고.
죽을 용기도 없어서 피가나올정도만 약하게 여러번 그으면 죽을수 있을까,얼마나 피를 흘려야 사람은 죽을수 있는걸까.
늘 생각했어.아직도 나는 내 손바닥과 지문에 가로로 불규칙한 잔실선이 많아.
전혀 아프지 않았던 피부 표피의 상처인데 1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실금으로 남아있는게 참 씁쓸해.
내 이런 작은 비밀은 금방 들통났어.그리고 엄마는 보다 못했는지 나를 심리치료를 받게 했어.
1회에 70여만원하는 강남의 정말 유명하고 비싼 치료원이었어.
치료를 시작했지만 나는 효과를 느껴보지 못했어.
늘 마음이 답답하고세상이 멸망했음 좋겠고 내가 공기가 되어 사라지길 바랬으니까.(그래서 중간에 수면제를 모아서 한번에 먹기도 했어)
원인도 몰르는 왕따생활은 너무 힘들었어.이 치료를 좋아하지 않았어.
하지만 엄마가 바랬기에 몇번을 더 다녔지.내가 이 치료를 그만둔건 엄마아빠가 싸우고 나서 부터야.
아빠는 왜 정신병원에 지금우리형편에 미친짓하냐고.
1회에 70만원짜리 심리상담을누가볼때 딸이 미쳐서 병원다닌다 생각할거라며 당장 치료를 그만두라고 했고
이에 아빠에게 큰소리 안하던 엄마가 울면서 외쳤지는 소리가 들렸어.
우리딸이 마음이 아픈데 몸아프면 병원가는거처럼 치료받는거라고 딸이 아프다는데 그것마저 부모가 못해주냐고 엉엉우셨어.
단한번도 엄마가 아빠한테 소리지르는걸 본적 없었어.
그때서야 엄마가 나때문에 힘들다는걸 깨달았어.
아. 내가 살아야겠다.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나를 정말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괜찮은척 웃어야겠다.
그때부터 나는 웃는척 괜찮은척 했어.
학교에 예전보단 출석을 많이 했고 아무렇지 않은척 했어고등학교를 멀리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될거라고 생각하고 버텼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으니까.
슬프게하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나는 중학교를 버텼어.
그시간은 나에게 참 아픈시간이었고.
가장 날 힘들게 했던건중3담임선생님이었어.
그때의 담임선생님은 28살의 젊은 여자선생님이었어.
국어를 담당했었고 좋게말하면 열혈꿈쟁이 나쁘게 말하면 나대는 선생님이었지.
반을 위한 이벤트도 많이 열고 재밌는농담이나 아이들과 디스하는식의 장난도 치는 선생님이었어.
선생님은 모르셨겠지만 반애들중 그런선생님을 좋아하는 애들만큼 싫어하는 애들도 많았어.
나? 나는 처음엔 좋은분일거란 생각을 했어.
왜냐면 사촌오빠의 중3때 담임이셨고 사촌오빠의 반이야기는 즐거웠거든.
하지만 왕따를 당해본 아이들은 알거야.
반의 이벤트나 행사가 많을수록 왕따는 고립된다는거.
주먹밥만들기 대회, 다같이 수박먹는날, 학교옆 공원에서 하는 야외수업 다같이 공연보러 가기..어디에도 함께할 수 없었던 나는 미술대회를 핑계로 참 많이 빠졌어.
(그때 내 꿈은 미술관련이었거든)
처음 내가 반애들한테 겉도는거 같아요. 이유를 모르겠어요.
선생님한테상담했을때,
네가 더 노력해야지. 아이들이랑 어울리려 해봐야지 너는 노력하지도 않았잖니.선생님이 그부분은 어떻게 해줄수가 없어. 선생님도 네가 겉도는거 알아나름대로 노력중이란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선생님은 점차 침묵했고반에 행사가 있을때에 나한테 미술대회 나가냐고 물어봤었어.
내가 학교를 빠져도 연락한번 없으셨고 가져온 약봉지로 병결처리만 해주셨지.
그선생님은 내가 수면제를 모아 먹었던것도 칼로 자살시도를 몇번이나 했다는것도 몰랐을거야.
나한테 관심가진적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 생각에는 완벽히 사이좋은 한반인데 거기에 내가 어울리지 못하는게 보이니까 이상적인 반이 되지 않기때문에 나를 좀 성가시고 답답하고 귀찮아 하는거 같았어.
아마 내가 혼자라는게 반에서만이었다면 괜찮았겠지만 당시 나를 예뻐해주셨던 음악선생님이 계셔서 선생님들이 나의 겉돔을 알고있으니 그게 불편했던거 같아.
내가 이 선생님을 가장 최악이라 생각하는 이유중 하나는고등학교 원서 접수 기간이었어.
그때나는 디자인고등학교 특모고를 생각하고 있었고지금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그때 특목고의 경우 다른 고등학교 원서보다 3~4달정도 빠른 접수 그리고 미술관련일경우 실기시험도 있었지.
선생님한테 특모고를 가고 싶다고 말했고 원서 접수기간의 마감일까지 알려드렸어.당시 나는 원서 접수가 처음인 중학생이니 원서에 도장이나 미술대회수상장이나 기타 필요서류가 무엇인지 하나도 몰랐어.
다만, 내가 말했었으니 선생님이 필요한걸 말해주실거라 믿었지.
하지만 원서 마감일이 다가오는데 선생님은 아무말 없었어.
원서 마감 바로 전날 나는 선생님한테 문자를 보냈어.
-선생님 전에 제가 부탁한 원서 다 된건가요? 내일이 원서 마감일이어서요.
조금 예의없는 말일수도 있지만 선생님과 친한사이도 아니였고 그저 얼굴보고 질문하듯 물었지.
선생님은 답이 없으셨고 다음날 나는 영문도 모르는체 교무실에 불려갔어.
그리고 가자마자 선생님의 호통을 받았지
"선생님이 니 친구야? 원서마감이 다 됐냐고? 이문자가 뭐니!!"
한참 나에게 뭐라하시던 선생님은바로 나를 옆에 세워두고 원서를 작성해주셨어.
그리고 한마디 하셨지
"도장은? 도장은없어? 원서 작성한다는애가 도장도 없니?"
선생님은 짜증내셨고 나는 몰랐기에 죄송하다고 집에 있으니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뛰어서 집에들러 도장을 가지고 왔어.
한참 작성하던 선생님은
"상장은? 대회수상상장은 어딨어? 특기전형으로 넣겠다는애가 상장도 안챙겨왔어?"
당연 나는 원서 처음이었기때문에 몰랐고 다시 집까지 뛰어갔다왔지.
그날 조퇴를 신청하고 디자인고에가서 직접 원서접수를 했는데집으로 돌아오는길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두세달 뒤 선생님은 반애들한테 원서 작성해야하니 도장과 필요서류가 어떤것인지 알려줬어.
그리고 아이들이 도장을 가지고 온날 선생님은 애들 도장에대해 말하면서 나한테도 말했지
"00이(내이름)도장은 엄청크네요! 엄마도장은 이렇게 작은데! 누가보면 00이 도장이 엄마껀줄 알겠어!"
그선생님이 기억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나는 내 인생에서 그선생님이 가장 최악의 선생님이야.
내가 어른이 되어 22살, 23살 즈음 그선생님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때,그 아이가 부디 자라서 나와같은 고통을 당하기를, 왕따당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고 과거 나의모습이 떠오를때 반성이라도 할수 있게 선생님의 아이가 아프고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길 바랬어.
(지금은 괜찮지만 그때까지는 엄청 앙금이 남았거든)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음악선생님.
나이가 많으셨는데 우리학교가 마지막 정년퇴임을 치르게 될 학교였어.
선생님은 내가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지 않는걸 알고 수업있는날 나를 점심시간에 불러서 간식거리를 종종 챙겨주시던 분이셨어.
합창단에 소속되어있으셔서 세종문화관에서 자선공연도 하시고 그랬는데 늘 나한테 보러오라고 꼭 말씀해주시고 그랬어.
다시 꼭 뵙고싶은데 내가 고등학생때에 정년퇴임을 하셔서 다시찾아뵐수 없었어.
지금은 그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예전만큼 밉지않아.
선생님은 나에대한 미안함이 있으실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서23살즈음 중학교때 처음사귄 친구에게 들은 ABC의 이야기는(그애는 ABC와 같은고등학교였거든)고등학교때에도 그렇게 남 이간질하고 다니고 서로 사이가 나빠졌다는것과 다른애들에게 욕먹고 다녔다는 이야기 였어.
어떤식인지 정확히 듣진 않았지만, 그애들의 인생이 앞으로 어떨진 몰라도 과거에 저지를 죗값은 어떤형태로 어떻게든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더라.
고등학교 생활은 처음엔 무난했어.
하지만 2학기가 될수록 점차 다시 힘들어졌지.
왜냐면 친구들이 이유를 말해주고 나와 이야기를 안했거든.
이유는 착한척 한다 였어.
00이 너는 맨날 니가 옳은이야기 하다가도 다른애들이 아니라 하면 으응 니말이 맞아. 이러고 넘어가더라?너가 맨날 그렇게 착한척하니까 우리가 나쁜년 되잖아.
그당시 나는 아이들과 불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누군가 뒷담화 이야기를 하면 그런말 하지말자고 이야기 하거나 빠지고,의견을 나누다가도 친구가 뭐라 강하게 몰아붙이면 그래 니말이 맞아.
하고 넘어갔어.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냥 아이들이 원하는데로, 착한아이가 되려했어.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수 없다는것 처럼 아이들은 내가 좋은모습을 보이려 한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진거야.
그래서 다시 도망쳤어.
과를 옮겼지.
다행인지 정말 좋은친구들을 만나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학창시절 2년을 보냈어.(아직도 그친구들과 정말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제일 친한친구들이야.^^)
고등학교 전과한 반은 과가 2반정도밖에 없는 소수였어.
그리고 그 2반에서 공통적인 왕따가 있었어.
그아이는 S라고 할께.
S가 왕따가 된 이유는 너무 명확했어.
전과한 나도 알게될정도로 모두가 알고 있었거든.
S는 1학년때에 M이라는 친구랑 친했는데 M에게는 누구에게도 서로 욕하지 말자고 하고는다른애들한테 M욕을 하고 다녔어.그런식의 행동이 M을 거치고 반의 4~6명을 거치게되자 아무도 S와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았어.
누구든 S와 어울리면 S는 그아이의 욕을 했으니까...
그래도 듣기로는 반아이들과 간혹 지우게를 빌리거나 할정도의 말은 하고 다녔던거 같아.
2학년때 전과한 나는 그사실을 아이들이 이야기 해줘서 알았지만 내욕을 직접적으로 한게 아니니 종종S에게 말을 걸었어.
당시 나는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치유받고 많이 밝아져 나대는 아이였거든.^^;;그러다 사건이 터진거야.
나와 친한 O에게 S는 내욕을 했고 듣던 O는 당연 S보다 나와 친했으니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렸어.
내가 S에게 묻자 S는 자기도 다른과에서 들은것이다.
라고 변명했지만과가 3개인 이곳에서 S가 말한과는 1학년때도 2학년때도 나와 접점이 없는 과였어.
나는 그길로 S에게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고 1학년때의 악명이 있던 S는 이사건을 계기로 2학년때 다시 화두가 되어서 3학년때까지 혼자였어.
만약 S가 솔직히 사과하고 미안하다 이래저래해서 이런마음때문에 그랬다 라고 말했다면 나는 S와 친하게 지냈을수도 있지만 S는 그러지 않았고 나도 그 아이에게 손내밀지 않았어.
굳이 착한척 할 생각이 없었어.
혹여 1학년때처럼될까 무서웠고 내가 마냥 착하지 않더라도 날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S가 왕따가 되어도 상관없다 생각했어.
고등학생인만큼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기에 상관없다 생각했던거 같아.
그아이는 고등학교동안 왕따를 당했어.
나는 직접적인 폭력을 행하는 가해자는 아니였지만
내가 그아이에대해 좀더 능숙하게 대처했다면
그아이는 좀더 나은 학창시절을 보냈을거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왕따의 가해자였어.
왕따 주범이었지만 내가 한 일은 딱히 없었어.
그럼에도 불과하고 내가 스스로 왕따 주범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침묵했으니까.
O의 이야기에 둘이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음에도 S에게 바로 O와 다른친구들과 함께 S에게 다그치듯 물었으니까.
졸업식날 S는 나에게 사과를 해왔어.
그때 욕한거 미안했다고.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고.
그래서 나는
네가 들은이야기일지라도 그걸 남에게 함부로 이야기하는건 아니라고. 차라리 나에게 직접 이야기 했으면 나았을거라고.
S는 아무말도 못하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다시 사과했고나는 그래 됐다고. 앞으로 너도 잘지내라고 인사하고 사진찍고 화해아닌화해(..?) 덕담? 을하고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끝났어.
이게 내가 겪은 학창시절이야.
물론 모든 이야기가 담긴건 아니야.
모든일을 기억하는데로 상세히 쓰고 싶지만, 너무 방대한 양이라 가장 중요한 사건들만 조금 적었어.
왕따의 방관자였고, 대상자였으며, 주범자였던.조금은 심심할수도 있고 내이야기에 공감가는 사람들도 있을거야.
나는 고등학교 내 친한 친구들을 만날때까지만해도 내가 왕따였따는게 부끄럽고 싫었어.
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보니 누군가에게 말하면 내가 이상해서, 내가 잘못했기때문에 왕따당한거라고 생각하게 될거 같아서 꽁꽁 숨기고 다녔어.
내가 이런 이야기를 어렵게 할때 사람들의 태도가 어떨지 모르니까.
내 친구들은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화내준 사람들이야.
그래서 너무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지.
주변에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직도 반응이 참 제각각이야.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했던 쓸데없는 걱정처럼 남들에게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
네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저래서 왕따당했구나. 라고 생각할거라고.
덕분에 나는 내 이야기에 사람들의 태도에 그사람의 성격과 나를 정말 생각해주는 사람을 알게해줘서 나를 아끼는 사람에게 더 잘하려하게끔 만들어.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가 더는 아프지 않아.
물론 아프지 않더라도 흉터는 남았지만.
나는 15살 처음 핸드폰이 생긴 뒤로 단 한번도 핸드폰 번호를 바꾼적 없었어.
단 한번이라도 연락오길 바랬거든.
그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살면서 나와 비슷한일을 당해봤거나 문득 나를 생각한적 있는지문득, 그런애가 있었지. 잘지내나? 그아이는 왜 그런소문이 돌았을까?이런 생각으로라도 안부차라도 연락이 오길 바랬어.
뭐, 결국 10년동안 한번도 안왔지만.^^
지금은 외국이라 수신차단되어있지만.
올해 귀국후에도 한동안 그번호를 가지고 있을거야.
이건 미련이 아니라 지금 여기 외국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알려준 번호가 그번호라 친구들이 나를 찾아오게될 올해 겨울까지는 계속 그번호를 가지고 있어야 할거 같아.
내년에는 더 새로운 마음으로 번호를 바꿔보려고!
내가 좋아하는 숫자를 잔뜩 넣어서 말이야.
이 글을 쓰면서 미련이 버려졌는지 속이 많이 시원하다.
내이야기 이렇게나 상세히 해본건 처음이야.
물론 왕따당했던이야기는 해본적있지만.. 가해자가 된이야기는 해본적 없었어.
왜냐면 이건 지금도 나에게 너무 부끄러운 일이거든.
좀 더 내가 인간관계에 능숙한 사람이었다면.... 하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거든.
고해성사 하는 기분으로 지금 글을 쓰고있어.
나는 아픔을 본 사람이었고 겪었던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아픔을 줬던 사람이야.
누가볼땐 힘든일만 말하고 가해자 일은 쏙빼놓은것처럼 느껴질수도 있고
나의 외면이 아픔을 알던 사람이라면 할수 없는 행동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그렇다해서 마냥 성인같이 좋은사람은 아니라 그런 부끄러운 과거가 있어.
새해가된 날에 이런글을 쓰게된이유도 조금은 다짐하고 싶어서, 내 부끄러운 행동에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어.
누군가에게 다 이야기하면 앞으로는 좀더 성숙한 사람이될수 있을까 해서.
그리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새해에는 좀더 성숙해졌으면 좋겠고...
내가 힘들게 하거나 도와주지 못했던 아이들에게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야.
앞으로는 그 아이들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지금 나처럼 힘들었던 사람들, 힘든 사람들도 많겠지.
내가 감히 너에게 힘내라 말할수 없어.
너는 필사적이니까.
다만, 내가 해줄수 있는 말은아픔을 겪는중인 너는 좋은사람이 되려하는 사람이야.
아픔을 알기에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야.
버텨달라는 말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겠지만 조금만 버텨줘.
너를 사랑하는사람들을 만날수 있게.
너의 행복을 빌어.
긴글, 읽어줘서 고마워.
새해에는 좋은일만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