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사람이 산다 1 -----
서희가 떠나고 그리고 몇달이 지나고 오늘은 선영엄마의 공판일..
현역 국회의원의 존속살해사건이라는 점과 의부에 의한 성폭행사건으로
최미의 관심사로 떠올라서
법정에는 많은 기자와 관련단체인들로 방청석을 가득채웠다.
선영은 불안한듯 연신 마른침을 삼키고 은진은 선영의 손을 꼭잡아주었다.
검사의 심리와 증인진술이 이어지고 최종적으로 판사의 판결만 남겨두고 있었다.
판사는 잠시 휴정을 했다가 들어와서 착석을 하고
판결문을 낭독했다.
"형법 250조2항 존속살해죄에 의거하여 2건의 존속살해에 대하여
피고 정인숙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사형..
순간 법정안은 술렁이고 선영은 순간 정신을 잃었다.
사람들의 소리가 윙윙하고 귓속에 이명처럼 들렸다.
그동안 선영은 엄마의 구명운동을 위해서 밤낮으로 뛰어다닌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여성단체와 시민단체와 언론에 그동안의 염의원이 선영에게 한 파렴치한 행위를
다 공개하면서 선처를 구하였는데 그것이 여자인 자신에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또 앞으로 살아가는데 힘들어질수도 있다는걸 너무나 잘알고 있지만
선영은 그런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 하던지 엄마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였다.
그러나 접견거부,변호사선임거부와 모든 혐의에 대한 시인이 오늘 이런 극한
상황까지 몰고 왔는지 모른다.
모든 죄값을 다 지겠다는 최후의 진술에서
선영엄마는 아마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선영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미친사람처럼 엄마의 사면을 위해서 뛰어다녔다.
다행이 여러단체에서 호의적이고 언론마저 동정적이라서 연일 사면촉구시위와
가두서명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이 달갑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벌써 시작하고 있네..언제왔어?"
정무비서관이 룸을 들어오자
"어..미안 나먼저 시작했어"
비서실장은 언더락스잔에 양주를 가득붓어서 연거퍼 털어넣자 정무비서관은
황급히 잔을 잡아서 말리면서
"아니 이사람이 이게 무슨 물인줄아나? 그렇게 들이키면 제명에 못살아."
"그러면 좋지...그놈꼴 안봐도 되니까"
"무슨일 있어? 왜그래?"
" 아니..그놈이..휴~ 아니 말을 말자...누가 알겠어? 까맣게 타는 내속을..."
"그놈? 누구?"
비서실장은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세우자 그때서야 정무비서관은
자신의 잔에 얼음을 넣고 술을 채우고 마시면서
"아니 그 망둥어 같은놈이 또 무슨 사고 쳤어? 그놈 그러는게 어디 한두번이야?
새삼스럽지도 않잖아..자네도 이제는 익숙해질때도 되지 않았는나?"
연배가 비슷해서인지 정무비서관과 비서실장은 속내가 잘통하는 편이라서
술친구로 곧잘 어울리면서 서로 어려운점을 털어놓곤한다.
비서실장은 약간 취한 목소리로
"글쎄 오늘은 나를 따로 부르더니 요즈음 정인숙사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고
정인숙이라고 왜 있잖아 요즈음 떠들썩한 염의원 마누라.."
정무비서관이 아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비서실장은 말을 잇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지..지금 염의원이 갖고 있다는 선거자금내역장부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또 염의원비서가 하는말이 아마도 정인숙이 어디 있는지
알고있을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만일 정인숙이 사면받고 나와서 마음먹고 터트려버리면
그 여파가 한두사람 다치는걸로 끝나지않고 위에부터 줄초상나는게 너무나 당연한데
이럴때 사면을 한다는것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했지..그러니깐 그짜식이 뭐라는줄 알아?"
정무비서관은 말없이 잔을 비웠다.
"사면 안하면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성유권자들한테 안좋게 보이는데...어쩌구저쩌구
중얼중얼거리는거야..지금 지지율이니 여성유권자 생각하게 됐냐구? 당장 목이 떨어지게
생겼는데...지지율은 무슨놈의 지지율이야? 지가 그자리를 연임할거야.뭐야..
나오면서 그놈의 뒷통수를 보니깐 정말 한대 팍 치고 싶더라고..."
정무비서관은 껄껄 웃으면서
"그래 그게 끝이야?"
"아니 이삼일내에 좋은 방안을 구해서 오래..무슨 진시황제 불로초 구해오는것도 아니고..
정말 더러워서 이짓거리도 못해먹겠네..."
정무비서관은
"못해먹으면 안돼지 어떻게 올라간 자리인데..."
"아니 이사람이 지금 불난집에 부채질하나?"
"하하하 ..미안미안..간단한걸 뭘 고민하나?"
비서실장은 바짝 다가앉으면서
"방법이 있나?"
"그럼..자네가 오늘 술값 낼건가? "
"좋은 묘책이라면 술값뿐이겠나? 더한거라도 내지."
"그래? 그러면 말하지. 돌리게나."
"무슨 말인가?"
"집행날짜에 맞쳐서 해외순방으로 해서 며칠 놀러다니게 하면 되잖나..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그때 자리에 없었다라고 말하면 되고 안그런가?"
"오호.. 그 방법이 있었지..내가 왜 그걸 생각못했을까?"
"이사람도...장사한두번 하나...아니 선수가 왜 이러시나?"
둘은 마주보고 껄껄껄 웃는다.
선영의 계속되는 접견신청에도 계속거부를 해오던 선영엄마가 형이 확정이 되고
처음으로 접견신청을 받아들였다.
면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선영의 앞에 수갑을 하고 엄마가 철문으로
들어왔다.
선영은 일어서면서 흑~하고 울음이 터졌다.
푸른 수의에 전에보다 더 초췌한 모습은 더더욱 선영의 가슴을 아프게했다..
"엄..엄마..."
"선영아~"
간수가 수갑이 풀어주자 둘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울었다.
어느정도 울음이 자아들자 선영은 눈물을 손등으로 쓰윽 훔치고
"엄마.. 항소하자..변호사도 선임하고 내가 가두서명받은것도 있고
탄원서도 수백통 올렸어..그리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아.
엄마는 그냥 내가하자고 하는대로 하면돼..그러니깐..."
"우리 선영이 이제는 완전히 숙녀가 다됐네..고2때 본게 마지막인데...
그사이에게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되었네..미안하다 못난 에미만나서
너가 고생이 많구나.."
"엄마...우리 예전처럼 그렇게 살자..둘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자..
그러니깐 항소포기하지 말고 하는데까지 해보자..응?"
선영엄마는 잔잔한 미소를 띄우면서 선영을 바라보자
"엄마 그냥 내말대로 그렇게 하는거다. 알았지?"
"선영아~ 엄마는 그냥 지금 이대로 좋다. 내가 지은죄가 이렇게라도 해서
없어질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선영은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왜? 왜 그래야하는데.. 인간같지도 않는 두사람때문에 왜 엄마가
그래야하냐고..."
"무슨 이유이든 내가 사람을 해쳤다는것은 사실이고 물론 내가 이런다고해서
다시 그 사람들이 살아나는것은 아니라는것 나도 잘알고 있지만
하지만 이것이 세상에서 내가 매듭짓어야할 마지막 일인것 같다."
"그러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하라고?..엄마는 그렇게 마음대로 간다고 치고
그러면 남아있는 나는...이제 겨우 만났는데..."
선영은 말을 잇지못하고 흐느껴운다.
"미안하다..선영아~ 너한테는 정말 면목이 없구나."
선영은 울음을 멈추고
"면목없는 일인줄알면 안하면 되는거야..
다른소리는 말해도 안들을거야..
그러니깐 엄마는 무조건 내가 하자고 하는대로 하는거야.
그리고 .. 사식좀 준비했어.
예전에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할때
엄마 옆에서 같이 장사하던 괄괄한 부산아줌마 기억나?"
선영엄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아줌마가 거기에 무지큰 횟집을 열었다는데 장사가 엄청잘된다고 하던데..
그아줌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주라고 횟감을 얼음에 재워서 갔다주셨는데
어찌나 많이 주셨는지...갖고 오는데 팔떨어지는줄 알았어.
그 아줌마가 예전부터 손이 커잖아. 목소리도 걸걸하고..."
"그 아주머니께 고맙게 잘먹었다는 말좀전해주렴"
"엄마... 왜 난 아직도 신김치조각에 남들이 버리다시피하는
생선대가리를 반찬으로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끼니를 때우던 엄마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을까?"
선영이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선영엄마는 선영의 모습을 눈속에 담아두는듯이 잠시도 선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간수가 면회시간이 끝났다고 알려주자 선영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끼니 거르지말고 꼭꼭 챙겨먹고
그리고 좋은사람 만나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살아라...
엄마가 널 위해서 매일매일 기도할께..그리고 면회는 오지마...
그럼 갈께."
"엄마~"
선영엄마는 철문속으로 사라진 한참후에도 선영은 자리에서 뜨지못했다.
그것이 선영이가 본 엄마의 마지막모습이였다.
유언대로 화장후 유골은 동해바다에 뿌려졌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비명조차 지를수없는것처럼 선영에게 너무나 가혹한
아픔으로 며칠동안 멍하니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그렇게 지내자
걱정이 되어서 찾아간 은진과 고수에게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고 자신안에
자신을 가두고 꼼짝도 안하고 어두운 방바닥에 움크리고 누워있다가
문득 생각나는것이 있는지 황급히 짐을 꾸리고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며칠후
"고수오빠~ 나야 선영이"
"어디냐?.. 목소리가 밝네..이제는 괜찮냐?"
"여기 담양이야..넙적바위에 앉아있어? 넙적바위가 뭐냐고?..후후 그런게 있어.
걱정많이 했지? 미안해..며칠더 생각좀 정리하고 올라갈께..
은진언니한테도 안부전해줘...그럼 끊을께.."
모든것을 잊으라고...미움도 잊고...슬픔도 잊고..
내가 나였다는 사실마저도 잊고 그냥 바보처럼 살아가라고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이 즐거운 소풍처럼 그렇게 살아가라고 한다.
선영은 이제서야 예전에 대나무밭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의 뜻을 알것 같았다.
그리고 개나리꽃이 아카시아를 지나고 다시 흰눈꽃으로 변하는
계절의 끝자락으로 가는 어느 볕좋은 오후...
"승미야~ 누가 왔는지 볼래?"
승미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햇빛을 가득안고 선영이가 팔을 벌려서 승미를 안았다.
"아이구~ 우리 승미 내가 안보이는 사이에 많이 예뻐졌네..
하지만 이 언니 미모 따라올려면 한창 멀었다는걸 잘알지?
아~ 가만히 보자...이런 볼살 오른것 좀봐..어머 여기 옆구리에 잡히는게 살이야?"
하면서 선영이가 옆구리를 잡자 승미는 간지럼에 몸을 비틀면서 피하자
선영은 더더욱 신나서 장난을 치자 소리없는 웃음이 승미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승미아빠는 그런 딸이 모습을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둘이서 애기할수 있게
저만치 떨어진곳에 담배를 빼어물었다.
실어증...
그날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승미는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