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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여자였던 그녀의 이야기.

마루동 |2017.02.19 16:59
조회 186 |추천 3

안녕하세요, 최근에 큰 일이 있었던 이제 30대의 한 남자입니다.

맨날 판은 시댁 이야기나 이런 것만 보다가, 직접 글을 쓰려니 여기다 쓰는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모자란 글 솜씨지만 시간 되시면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최근에 저는... 저희 가족은 가족의 큰 기둥이었던 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오늘은 저희 엄마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어쩌면 평범했을... 하지만 누구보다 평범하지 않았던 삶을 살다 가신,

그 시절 누군가의 엄마와, 누군가의 아내와, 누군가의 형제자매와 비슷할 흔하디 흔한 삶을,

하지만 누구보다 특별했고 특별했을 삶을 살다 가신 저희 어머니의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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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1일.

그녀가 갔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던, 누군가의 형제자매였던 한 명의 소녀같았던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사인, 폐렴.

사인의 원인, 뼈와 뇌 전이가 일어난 폐암.

누구보다 강했고, 누구보다 밝았던 그녀는 폐암이란 병마와 싸우다 그렇게 갔다.

 

.

 

1959년 11월, 그녀는 일산의 한 마을에서 2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그녀는 부모님을 따라 서울의 한 달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그녀의 집안 역시 넉넉치 않아서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집 한참 아래 우물에서 물지게를 지며

동생들과 집안의 뒷바라지를 하곤 했다.

 

그녀는 집안 사정이 넉넉치 않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바로 일을 하려 했다.

하지만 옆집 아주머니의 권유로, 산동네에서 천막을 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에서

중학교 교육과정을 받게 된다. 그렇게 중학교를 나온 그녀는, 여상에 진학한다.

 

그녀는 여상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회사를 다니며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본인들의 어머니들의 처녀시절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 그녀 역시 처녀 시절에 굉장한 미모를 뽐내고 있었고, 그녀 말마따나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이 그 시절 '명동에 줄나래비를 섰다' 고 했다.

 

그러던 그녀는, 그녀의 고모의 중매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경찰이었고, 그녀에게 반하여 적극적으로 대쉬했다.

그만 만나자는 그녀의 말에,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경찰 뱃지도 내려놓겠다는

그의 진심에 결혼을 결심하고, 그렇게 그 둘은 부부가 되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었을 그녀에게, 신혼생활은 너무나 가혹했다.

단칸방 월세부터 시작한 그녀는, 이후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계획하고, 실행하며

10번이 넘는 이사 끝에 인천의 한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다.

그녀의 나이 48의 일이다.

 

그녀에게는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었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그녀의 남편 덕분에, 남들 다 힘들던 IMF 시절도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무사히 잘 키울 수 있었다.

 

.

 

그녀의 딸도, 아들도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즈음, 2012년.

그녀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공부하고, 시험보고, 실습하고... 그렇게 그녀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취업하기 위해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폐 쪽에 뭔가 보이니, 검사를 해보는게 좋겠다. 큰 병원을 연결해 주겠다.

 

검사 결과는, 폐암.

그녀의 가족 중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 역시도.

그렇게 그녀의 인생 2막을 막 시작하려 하였을 때였다.

 

이후 그녀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하게 된다.

너무나 힘든, 기나긴 치료의 시간들.

그녀는 겉으로 봤을 때는 전혀 암환자 같지 않을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그게 어쩌면 그녀에겐 더 스트레스 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환자로 보이지 않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을 그 당시 주변 사람들...

 

폐암의 경우, 보통 자각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증상을 느껴서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녀 역시 폐암 3기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렇게 모든 치료를 끝내고, 모든 부분에서 괜찮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후

모든이에게 감사해 하며 지냈던 그녀.

3년여 후, 병원에 정기검사를 받으러 갔던 그녀에게 날아온 또 한번의 시련.

폐암이 뼈와 뇌에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

이 이후부터 그녀의 건강은 눈에 띄게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달동안 연차를 낸 아들과 함께 방사선 치료를 다녔다.

한 3주차 쯤 되었을까.

그녀는 치료실 앞에서 기다리던 다른 환자분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머리를 어디서 자르셨냐고.

그녀는 그 날 바로 병원 헤어샵에서 머리를 밀었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머리가 너무 많이 빠져서, 차라리 미는게 나을 것 같다면서.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어색해 하면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는 그녀의 모습에

아들은 혼자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을 삼켰다.

 

그녀의 아들이 먼저 장가를 가게 되었다.

무더웠던 여름이었던 2015년 8월, 그녀는 정말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의 결혼식이었지만

아주 좋지 않았던 컨디션 때문에 식 내내 힘들어했고, 표정도 좋지 못했다.

 

이후 겨울이 되어, 그녀의 딸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들의 결혼 이후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졌던 그녀는, 딸의 결혼식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비록 결혼식장에서의 사진이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을 수 있었던 가족사진에서

그녀는 정말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웃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재발 판정을 받은 이후, 점점 말라져 갔다.

소화가 잘 안 되어 많이 먹지를 못했고, 그러다 보니 점점 살이 빠졌다.

그래서 뼈 관절들도 굉장히 약해졌다.

그녀는 허리를 한번 삐끗했는데, 굉장히 오래 갔다. (그녀의 마지막까지 좋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허리를 삐끗하고, 갑자기 컨디션이 훅 떨어져서

밥 먹은 것을 다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결국 입원하여 한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1년여 동안 복용하던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2016년 7월 한달간, 그녀는 남편-딸-아들이 번갈아가며 병원에서 자고 간호하는 생활을 하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괜찮아진 몸으로 퇴원하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계속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병원 입원 동안 혼자서 걷지도 못하던 몸을, 이제는 혼자서 집안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입으로 밥을 먹게 되었고.

모든 가족들이 조금씩 안도해 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게 2016년 겨울, 그녀의 58번째 생일을 맞게 되었다.

그녀의 형제 자매, 가족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여 그녀의 딸의 집에서

그녀의 생일잔치를 하게 되었다.

생일날 보여주었던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좋아 보였다.

살도 아주 약간이지만 붙은 모습이었고, 얼굴도 표정도 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녀는 생일날, 케익의 초를 불면서 한마디 하라는 가족들의 말에

내가 뭐라고... 나같은 사람한테 이렇게 음식도 해주고 신경써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평소의 시크하고 쿨했던, 모든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넘기던 평소 그녀의 모습 치고는

조금 감성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2016년 12월 19일.

출근했던 아들, 집에 있던 딸은 그녀의 아빠에게서 급한 전화를 받게 된다.

그녀가 새벽부터 숨쉬기 너무 힘들어해서 병원에 왔다고...

병원에서 보고는 좀 힘드실 것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고...

그녀의 생일에 너무나도 좋아보였던 모습을 보여준 지 고작 이틀이 지난 후였다.

 

병원 응급실에서, 호흡기를 낀 채로 조금씩이라도 말을 했던 그녀는,

하루가 지난 다음날에는 숨쉬는 것도 벅차하며, 말소리를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서울의 큰 병원이라 병실이 빨리 안 나는 여의치 않는 상황에, 그녀는

그녀의 딸과 함께 그렇게 하루를 응급실에서 보냈다.

겨우겨우 난 1인실로 병실을 옮기고, 그렇게 이틀째 밤을 모든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렇게 돈에 집착했던, 가난을 되물림하기 싫다고 했던 그녀가

그렇게 안된다고 했던 1인실이었다.

 

2016년 12월 21일.

아침에 올 수 있었던 그녀의 친지내외들과, 그녀의 남편, 딸, 아들을 옆에 두고

그녀는 마지막 호흡을 가쁘게 몰아내 쉬었다.

아직 오지 못한 그녀의 동생 셋을 두고, 그녀는 그렇게 사랑했던 남편과, 딸과, 아들을 두고

그렇게 다시 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누구보다 굳건했고, 누구보다 강했으며,

굉장히 쿨하고 시크했던, 유머러스하고 깨어있던 생각을 가지고 있던,

마지막까지도 소녀의 감성을 간직했던...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언니이자 누나였던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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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엄마가 폐암과 싸우던 5년 안되는 시간 동안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보통 암환자들의 생존율을 5년을 기준으로 보더라구요.

그 중 폐암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은 30프로대 라고 합니다.

그리고 재발한 폐암 환자는 보통 1년여를 본다고 하구요...

 

그래도 저희 어머니는 재발 후 1년을 더 넘게 버티셨어요. 1년 반 정도...

 

음... 글이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는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응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폐암 환자분들,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추천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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