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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해산물 빠에야

Nitro |2017.02.25 03:38
조회 34,037 |추천 156

 

스페인 음식점(http://blog.naver.com/40075km/220943237762)에 빠에야 먹으러 갔는데 저녁에만 판다고 해서 못 먹고 돌아왔습니다.

먹고 싶은 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직접 만들어 먹기로 합니다.

빠에야 데 마리스꼬, 즉 해산물 빠에야를 만들 예정이기 때문에 신선한 해산물이 중요한 재료입니다.

마늘, 양파, 피망, 쌀, 사프란으로 볶음밥을 만들고 새우, 조개, 랍스터로 해산물 토핑을 합니다.


 

물을 끓이는 동안 해산물 손질을 합니다. 

새우는 꼬리쪽 한마디만 남기고 껍질을 벗긴 후, 이쑤시개나 바늘 등을 이용해서 등 쪽 내장을 뽑아냅니다.

조개들은 일단 한 번 선별작업을 거친 후 소금물에 담가서 해감을 시켜줍니다. 

요리하기 전에 입 벌리고 있는 조개 (껍질 깨진 것 포함)는 제외, 요리하고 나서도 입 닫고 있는 조개 역시 버립니다.

해감이 끝나면 한 개씩 건져서 껍질을 씻은 다음 삶아줍니다.


 

"그 옛날 아피키우스가 친구들을 초대해서 즐겼던 대연회에서처럼, 

다양하고 진귀한 음식들이 지금 이 파리의 손님들 앞으로 하나씩 놓여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에 클레오파트라처럼 진주를 먹거나 로렌초 데 메디치처럼 황금을 녹여 마시면 

열 명이 참가하는 연회에서 천 루이라는 거금을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 크리스토 백작" 중에서


사람이 돈이 생기면 자랑을 하고 싶어하고,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더 비싼 것을 소비할 수 있을지 궁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과 보석으로 도배를 하지 않는 한, 일정 수준 이상의 비싼 물건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또 그런 식으로 귀금속을 덕지덕지 붙인 물건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놓은 휴대폰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휴대폰이라고 해도, 그 휴대폰 자체의 성능이 가장 좋은 건 아니니까요.

진주를 먹거나 황금을 마시는 게 부를 과시하는 수단일 수는 있어도 요리로서의 가치를 높여주지는 못한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프란은 오랜 세월동안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다"는 말로 묘사되는 몇 안되는 식재료였습니다.

꽃 한 송이에 세 개 나오는 암술대를 모아서 말리기 때문에 한 병 만들려면 밭 하나를 갈아엎어야 하고, 당연히 무시무시한 가격을 자랑합니다.

사실 이 말에는 함정이 숨어있는데, 금은 가장 무거운 금속 중의 하나이고 사프란은 가볍고도 가벼운 꽃의 암술을 말린 것이니

콩알만한 금조각과 같은 무게의 사프란이라면 의외로 꽤나 많은 양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비싼 건 사실이고, 많이 저렴해진 지금도 무게로 환산하면 금값의 1/4 (소매가 기준 1g에 만원) 정도는 합니다.

하지만 사프란이 만들어 내는 황금색과, 그 특유의 은은한 풍미는 제대로 만든 빠에야에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너무 많이 넣으면 쓴 맛이 심하게 나기 때문에 적당량만 따뜻한 물에 넣어서 우려낸 후, 쌀에 부어서 사용합니다.


사프란의 노란색이 우러나는 동안 조개와 새우를 삶아주는데, 조개는 입 벌리자마자 건져내고 새우는 색깔 변하면 바로 건져냅니다.

신선한 해산물은 너무 오래 삶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차라리 덜 삶는 편이 맛있습니다.

삶고 난 물은 거품 걷어낸 후 빠에야 육수로 활용합니다.

랍스터는 워낙 크기가 큰데다가 작은 냄비에 넣으려고 하면 반항을 하기 때문에 따로 커다란 냄비에 삶아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버쿠킹되지 않게 껍질이 붉게 변하면 곧바로 건져서 찬물에 넣어줍니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 잘게 썬 피망을 볶아줍니다.

쌀도 함께 볶다가 해산물 육수와 사프란 우려낸 물을 붓고 한 번 잘 저어줍니다.

계속 뒤척이며 약간 죽처럼 만드는 리조토와는 달리, 빠에야는 훨씬 더 밥에 가깝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 젓고 나면 뚜껑 덮고 그대로 끓이기만 해야 합니다.

자꾸 뒤섞으면 쌀알이 으깨지면서 질게 변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빠에야를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쌀은 봄바(Bomba) 쌀입니다. 

겉은 단단해서 잘 으스러지지 않으면서도 육수를 잘 흡수하기 때문에 빠에야 만들 때 맛을 내기 좋습니다.

그런데 마트를 뒤져도 봄바 쌀만 따로 팔지를 않네요. 

빠에야 쌀이라고 쌓아두고 파는 걸 봐서 금방 구하겠거니 했는데 알고보니 쌀에 노란색 색소를 뿌린 녀석들 뿐이더군요.

같은 단립종(짧고 통통한 쌀)이라고 해도 우리가 흔히 밥 짓는 데 쓰는 쌀이나 리조토용 알보리오와는 또 다른 특성을 갖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식감을 굉장히 중시하는지라 육수 좀 덜 배어드는 한이 있어도 위험을 감수하고 장립종 쌀을 사용합니다.

실제로도 빠에야 상품들은 대부분 장립종 쌀에 식용색소 코팅하고 말린 채소와 가루 육수를 첨가해서 만들었더라구요.


 

뚜껑을 덮고 밥이 다 될때까지 기다립니다. 

거의 70% 쯤 되었다 싶으면 살짝 데친 조개와 새우, 랍스터 꼬리를 넣고 마저 요리합니다.

랍스터 머리는 너무 커서 안 들어가는 관계로 잠시 대기.

뜸까지 다 들이고 나면 완성입니다.


 

다 만들어진 빠에야 위에 랍스터 머리를 셋팅합니다. 워낙 해산물이 많아서 정작 밥은 잘 보이지도 않네요.

사실 빠에야라는 말 자체가 조리기구에서 비롯된지라 빠에야 전용 팬에서 만들어야 진짜 빠에야라는 말도 있습니다.

발렌시아 지방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에서 나온 말인데, 우리가 흔히들 스페인 요리라고 말하지만 스페인은 워낙 지방색 강한 나라인지라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빠에야는 스페인 요리가 아니라 발렌시아 요리"라는 말도 합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싶다가도 "천안 호두과자"나 "부산 돼지국밥" 등을 생각해보면 또 이해가 갑니다.

18세기 발렌시아 지방 사람들이 호숫가에 모여서 넓고 평평한 철판 냄비에 있는 재료 대충 넣고 밥 지어먹던 감성은 같은 스페인 사람이라도 다른 지역 출신이라면 공유하기 힘든 정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밥도 뜨고, 새우와 조개와 랍스터 꼬리를 곁들여서 먹습니다. 취향에 맞게 레몬즙을 살짝 뿌려서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두번째 뜨는 밥에는 랍스터 머리에서 긁어낸 살과 내장을 비벼 먹기도 합니다. 

맛도 맛이지만 사 먹는 것보다 해산물이 훨씬 더 풍부하게 많이 들어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식당에서 사먹으면 랍스터는 반 쪽. 새우와 조개는 1/3 정도도 안 들었을 겁니다. 


게다가 접시에 담아서 나오는 음식점의 빠에야와는 달리, 직접 만들면 스킬렛 아래쪽에 눌어붙은 밥을 긁어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소까랏(socarrat)이라고 해서, 빠에야 먹을 때 사프란과 함께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지요. 

그래서 빠에야를 요리할 때는 이 소까랏을 만들기 위해 오븐에서 만들지 않고 번거롭더라도 불 위에 직접 팬을 놓고 요리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누룽지와 숭늉이 그리워서 전기밥솥 대신 냄비밥이나 솥밥 지어먹는 것과 마찬가지랄까요. 

먼 나라일수록 판이하게 다른 사상과 문화에 그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또 간혹 가다 이렇게 발견되는 소소한 공통점을 볼 때면 결국 사람 사는 게 비슷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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