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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情)이 너무 그립습니다.

힘드네요 |2017.06.06 23:37
조회 232 |추천 3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30대 초반 남자입니다.
사는게 조금 힘이 들어서 얼마나 보실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어린시절 저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속히 말하는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제가 원하는건 모두 얻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엄하시고 보수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오다보니 '남자는 힘들어해서도 안되고 눈물을 흘려서도 안되고 감정을 보여서도 안된다.' 라는 어머니의 생각에 저도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고3시절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가족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그 사실에 모두 분하고 분해서 아버지를 쫓아냈습니다. 저는 어땠느냐고요? 똑같이 분했습니다. 화나는건 당연한 거고 가장 믿어야했던 사람이 가장 민감한 시기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겉으로 아무런 표도 내지않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걸 보시고는 어머니께서 이러셨습니다.
"쟤는 남자라고 지 애비 편 드나보다. 아들놈 낳아봤자 아무 쓸모 없어."
순간 벙해졌습니다. 감정표현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저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냥 그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3시절을 엉망으로 보내고 재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나름 머리가 좋았던 터라 공부는 조금만 해도 남들 부럽지 않은 성적을 갖고 왔습니다. 그렇게 소위 말하는 명문대라는 S대를 진학했습니다. 거기에서 어머니는 그러셨습니다.
"재수시켜놨더니 K대가 아닌 S대를 가느냐. K대를 가라 하지 않았더냐."
그래도 그렇게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힘들어진 형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겁니다.
저도 나이는 있었지만 작은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뵈러가서 그 때 왜 그랬냐고 물으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때도 저는 차오르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가족들과도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저도 어긋난 행동을 하면서 어머니는 언제나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괜히 낳았어."
계속해서 멀어졌습니다.
그 시절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오래된 친구 2명은 평생 갈 듯하던 그 친구들은 제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하하 웃으며 제가 없는 곳에서는 저를 비난하고 욕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도 그런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군입대를 하였습니다. 당시 만나는 여자친구도 있었어요.
제가 입대를 하고 남겨진 여자친구에게 그 친구 중 한 명은 접근을 해서 늘 말했습니다.
"너가 아까운데 걔를 왜 만나냐."
뭐 이 이야기는 한참뒤 여자친구에게 직접 들어서 알게 됐습니다.
군시절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등병이 시작되던 시절 여자친구가 바람이 났습니다. 여자친구와 같은 학교 선배라고 했습니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감정이 그렇게 폭발할 수 있다는걸 그 때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사건이 저에게 큰 트라우마가 돼있다는 것도 그 때 알았습니다.
그런 시기가 있고 3달 뒤 여자친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다른 사람 만나보니 오빠만한 사람이 없다고. 네. 받아줬습니다.
그리고 전역을 하고 친구 2명과는 연을 끊었습니다. 가장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아니 믿고 있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계속해서 당하니 상처만 쌓여갔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표출하는 법을 알지 못하니 밖에서는 하하 웃으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들어와서는 숨죽여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속이 썩어들어갔습니다.
전역 1년 후.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됐습니다. 그 뒤 소개팅을 통해 여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2살 연하였습니다.
여자 분 사정으로 인해 한달동안 서로 연락만 하고 지내다가 첫만남을 가졌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 옆에만 있어도 제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지고 뭉쳐있던 상처들이 녹아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서로 아무말을 안하고 쳐다보고 있기만 해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밤새 통화를 해도 다음날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제 눈을 보고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오빠, 눈이 엄청 쓸쓸해 보여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정말 행복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희 둘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ㅠ그 사람은 강남역 벤치에 앉아 제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을 텐데.
그 사람은 저한테 마지막 말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빠, 우리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근데요, 오빠 오빠만큼 저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또 있을까요?"
가슴이 찢어지는듯 했습니다.
그 사람 만나고 있을 때 제 가장 친한 형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요즘 정말 표정이 편안해 보여. 지금 만나는 그 사람 너한테 딱 맞는 사람인 것 같아."
하지만 저는 그렇게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유일한 사람을 잃고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물리적인 혼자가 아니라.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를 2달간 쫓아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못 잊고 있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그래도 만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쁜놈이어서 일까요. 그 친구한테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열리질 않았습니다. 챙겨주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친구는
"나만 오빠를 좋아하고 오빠는 나한테 관심도 없는 것 같아." 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1년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그 친구한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그 친구가 바람이 났습니다. 그것도 제가 아는 사람이랑.
보통의 헤어짐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바람'이라는 배신을 다시 한 번 그것도 세번째 겪다보니 제가 또 무너졌습니다.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이미 겪어봤던 일이어서요. 근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완전히 또 무너져내렸습니다.
제가 이제 마음을 열려고 하던 시기라 그런지 더욱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3달이 흘렀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렇게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집에는 그 누구도 저를 찾아오지 않고 본인들 힘들 때는 새벽에라도 찾아와서 토로하고 가던 수많은 친구들도 제가 힘들 때는 들어주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렇게 있습니다.

참 사람의 情이 너무 그립습니다.
누군가 "힘들었지?"라고 말하면서 안아주면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습니다.

너무나 고단한 삶에 평소에는 찾지도 않는 점집을 찾아 이것저것 물어보려했습니다.
근데 찾아가자마자 그 분이 그러시더군요.
"인간관계에 신물을 많이 느끼셨군요. 무슨 일을 당하셨기에 이렇게 지치신 건가요?"
그래서 그냥 말했습니다. 이것저것. 여기 적지 못한 작은 일까지.
"당신은 인간관계만 빼고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 부족한 인간관계도 40세가 되면 좋아집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아직도 많이 아파하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 마음을 보듬어줄 사람 한 명이면 됩니다.

계속해서 하는 말이지만
사람의 情이 너무 그립습니다.
혼자서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납니다.

힘내, 힘내, 나한테도 분명 좋은 일이 있을거야. 라고 계속해서 외쳐보지만 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 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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