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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argin-top:2px;margin-bottom:2px;} 2.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여성 ‘올가’
배추가 쫄딱 망해서 길거리 노점상을 하기 전 이야기다. 배추도 한 때는, 비록 오피스텔이었지만 세무서에 코스모스 과학연구원이란 상호로 정식등록하고, 허울만 좋은 원장으로 불려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퇴직하였다는 D일보의 소년지 홍길동 기자. 이 분은 한때 배추의 영웅이셨다. 만년고참 평기자 이면서 된장냄새 나는 수수 털털하게 생긴 홍 기자는, 배추와 우크라이나의 우주청소년 단체인 '수지리야'와 각별한 인연을 만들게 해주었다. 러시아의 과학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내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청소년 항공우주과학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로켓공장과 비행기공장을 견학하고, 모형로켓과 모형비행기를 스스로 만들어 대회를 치르고, 빛고을 분단의 현장 얄타의 고성을 방문하여 역사의식을 일깨워주면서, 세계적으로 소문난 흑해의 아르텍 캠프에서 청소년올림픽까지 치르는 일정표를 보여주었다. 그 당시 미국에서 한국의 모 여행사로 스카우트되어 일하면서 터무니없는 깃발관광에 실망하여 스스로 독립하였던 배추는 '항공 우주과학'이라는 신선한 이벤트성 상품에 매료되고 말았다.
또한 이 분은 가끔 배추의 사무실에 들려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에 관하여 열변을 토하여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더구나 가끔 술자리에서 소주 한 잔을 놓고 한 시간 이상 열변을 토하여, 내 주변 인물 중 가장 토종에 가깝다는 평판을 얻으며 우리 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안방처럼 드나들었다는 이 분이 제공한 프로그램 일정에 따라, 독점공급이라는 언약을 믿고 '코스모스 탐험대'라는 제목으로 그 해 8월 행사를 3월부터 준비하여, 전국의 초·중·고등학생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선한 프로그램이라는 것만을 믿고 자신 있게 시작하였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러시아 하면 일단은 색안경을 쓰고 보는, 선생님과 학부형들을 설득하기 위해, 부산· 대구·전주·광주 등으로 수없이 출장을 다녀야 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되어, 교육부에서 얻어온 전국의 초 중 고교의 주소록을 보고 별도로 협조문을 발송하여 참가인원을 모집하는 데 지원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항공 우주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다 모여라는 기치로 시작한 이 일은 최소인원 80명은 문제없다는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겨우 순수 참가자 33명으로 마감을 하고 말았다.
이왕 적자라면 행사를 더욱 멋지게 치르자는 오기로, 국제 청소년 캠프에서 딴 나라 청소년들에게 시범을 보여줄 태권도 지도교사와, 한국의 고전무용을 지도할 선생님까지 초청하여 우리 빛고을 학생들이 현지에서 기가 죽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최소한 유료 참가자가 40명은 되어야 현상 유지인데, 33명의 학생과 회사경비로 가는 5명의 인솔자와 지도교사로 구성되어, 첫 행사부터 적자라고 직원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한편으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구권의 사전 현지답사를 위해, 마침 러시아로 출장 간다는 홍 기자에게 현지답사를 겸한 일정조율을 부탁하였다. 직원 한 명과 동행하도록 하면서,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금장시계 50개에 코스모스탐험대라는 이니셜을 박아 현지의 상대측 행사준비 임원들에게 선물하여, 첫 행사이니 보다 각별한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때까지도 현지의 실무 책임자들과 각별한 관계를 자신하는 홍 기자의 현지상황 준비 끝이라는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2년 동안, 오전에는 리쿼스토어(술 파는 상점)에서 종이상자를 뜯어 맥주를 진열하고, 오후에는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의 상점에서 주인대신 총 맞는 경비원 하다가, 저녁에는 택시영업을 하며 뼈빠지게 벌어온 돈들이 솔솔 거침없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이 40 가까이 먹도록 뜻이 좋으면 무조건 간다는 생각만 했지 앞 뒤 계산은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도 한때는, 18층 짜리 아파트도 건축했었고, 더구나 이번 일은 빛고을에 전혀 생소한 항공우주과학 프로그램이 아닌가. 아프리카보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로켓과 인공위성이 널려있다는 미지의 나라에서, 빛고을의 순수한 청소년들과 나의 엉뚱하고 황당한 착상들이 어울리면, 큰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예 투자라고 마음먹고 일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최소한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정신없이 참가인원을 모집하는 데만 모든 노력을 쏟았다. 그러다 행사출발 한 달 전쯤에 모든 참가자들의 왕복 비행기 티켓까지 발권한 후, 제반일정을 점검하며 서류를 정리하는데, 갑자기 무언가 빠진 게 느껴졌다. 현지의 행사 위원들과 연락을 하며, 소식을 전해주던 홍 기자로부터, 항상 구두로만 준비 완료되었다는 언질을 받은 터였다. 그러나, 막상 모든 준비가 완료된 시점에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할 상대국 정부의 공식초청서류가 한 장도 없었던 것이다. 곧바로 홍 기자를 만난 후, 물론 다 믿지만 남의 귀한 자식을 외국으로 보내는 터에 공식서류 한 장 정도는 필요하다고 설득하여, 그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측 초청 단체인 '수지리야'의 여성 디렉터라는 '올가'에게 팩스를 보냈다.
'이곳 코스모스 탐험대 38명은 출발준비 완료하였다. 마지막으로 공식 초청서류를 보내달라.'
하루 후에 간단한 회신이 왔다. 정중한 인사말 뒤의 내용은
'우리는 너희 단체에 대하여 들은 적도 없고 초청한 일도 없다.'
홍 기자를 긴급 수배해서 내용을 물었다. 어이없게도 대답은 그냥 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 동안에 보여준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빛고을 청소년들이 가주는 것만도 고마울 텐데, 초청도 하지 않은 이역만리에 날라 가, 천덕꾸러기를 만드는 게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이런 말도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너무 허약하니, 무조건 가서 텐트 치고 자면서 애들을 고생시키는 것도 애들한테 좋은 교육이 된다고 하였다.
갑자기 전혀 딴사람을 보는 듯 했다. 정말 이분이 우리 청소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글을 쓰는 상식적인 어른이란 말인가? 러시아를 다녀온 뒤, 또 미국 워싱턴에 출장을 가서 우크라이나의 대표들과 만난다며, 선물과 경비까지 타 가지고 갔다 와서는, 모든 일이 잘됐다고 큰소리치던 자가, 국제행사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꿈나무들의 행사를 그냥 가면 된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것도 한국의 가장 큰 신문사의 왕 고참 기자나리가.
그 동안 영웅이라고 생각하였던 내 안목이 한심했지만, 상대하는 시간도 아까운 가치 없는 인간으로 분류해버리고,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리니 남은 시간은 불과 20일 이었다. 전화나 팩스 상으로 우크라이나의 실무자와 상의를 하였으나, 전화는 영어가 서로 통하지 않았고 팩스는 아예 답장이 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청소년 단체 '수지리야'의 디렉터라는 올가에게 간단한 내용으로 팩스를 띄웠다.
'빛고을의 코스모스 탐험대장이 내일 간다. 기다려라.'
처음 가보는 동구권의 나라여서, 모스크바는 왕복비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도 몰랐다. 무작정 모스크바에 가서 택시를 타고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찾아가 비자를 받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에 '수지리야'의 본부가 있는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페트롭스크 공항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드네프로페트롭스크라는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중요 보안도시라고 하였다. 그 당시 이 공항으로 입국을 하였다고 하면 못 믿는 분들이 많았다. 더구나 이 도시에 있는, 우크라이나 최고 비밀 기지인 로켓공장에도 들어가 보았다고 하면 아예 믿으려 하질 않았다. 하지만 코스모스 탐험대는, 나중에 비록 껍데기이지만 핵탄두가 다섯 개나 장착된다는 미사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사실도 있었다.)
마중 나온 운전사의 소개로 시내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수지리야' 본부에서 디렉터인 올가를 만났다. 첫인상이 먹물냄새를 물씬 풍기는 차가우면서 세련된 여성이었다.
'킴. 왜왔니?'
'너 홍 기자를 알고있지?'
'저널리스트 홍. 물론 안다.'
'그럼 왜 코스모스탐험대는 모르지?'
'킴. 원래 이 프로그램은 행사 6개월 전에 예약이 완료되는 일정으로 이미 마감이 된 상태이다. 저널리스트 홍은 가끔 스스로 이곳에 찾아와서는 혼자서 오케이? 오케이? 하고 가는데, 여기 있는 누구도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속으로 어이가 없어 흰 웃음이 나왔지만 떼를 쓸 둔덕은 있었다.
'올가. 너도 저널리스트 홍을 잘 모르고 나 또한 홍을 잘 모른다. 하지만 홍이 너희 단체와 우리를 서로 다른 내용으로 소개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번 일이 성인들의 행사라면, 등 떠밀고 천만금을 준다 해도 안 된다는 너희들에게 이 먼 길을 달려와 사정하지 않는다. 이번 일은 우리에게 틀림없는 실수가 있었지만, 우리 꿈나무들에게 단지 나의 실수라고 변명하여 해결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번 일이 취소되었을 때 모든 불미스러운 점은 내가 감수하겠지만, 넌 지금 이곳의 학생들과 교환할 선물까지 고르며 꿈까지 꾸고있는, 한국 꿈나무들의 모든 기대를 저버릴 것이다.'
가방을 열고 발권된 비행기 티켓들을 보여 주었다. 대번에 올가는 일의 심각함을 알았다는 듯이 전화기를 들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빈 숙소가 없었고, 또 로켓공장 등 각종 보안시설 출입은 최소한 6개월 전에 신원확인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게 장관의 전결사항이라고 하였다.
올가는 그때부터 매일 전화통을 붙들고 살았다. 장관들이 휴가철이라 모두 피서 중이어서 더 힘들다 고 하였다. 매일 아침 9시에, 수지리야의 디렉터 사무실에 들어서면 올가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시늉을 했다. 어쩔 때는 전화통에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데, 듣기에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사정없이 누군가를 몰아 부쳤다.
그러던 중에 서울에서 온 FAX는 더 가관이었다. 홍 기자가 처음 약속한대로, 이 프로그램을 우리에게만 준 게 아니라 해양소년단과 소년탐험대에게도 공급하여, 이들 모두도 코스모스탐험대가 다녀간 다음날 이 곳을 방문하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이왕 간 길에 이들도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한다고 하였다. 올가에게 이 소년단과 탐험대에 대하여 아느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아도 눈이 큰 아줌마가 더 눈이 동그래진다. 마치 한국 놈들은 다 그래라는 생각이 나부터 들어왔다. 홍 기자가 정말로 한국의 큰 신문사의 기자가 맞느냐고 물었다.
막상 닥쳐보니, 현장상황이 우리 코스모스 탐험대원 38명의 일로도 쉽지 않을 터에, 난데없는 산너머 산 같은 일이 벌어졌다. 홍 기자를 생각하면 단호히 물리치고 싶었지만, 다른 팀들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는 게 눈에 선했다. 그리고 같은 빛고을 백성들이 내 팀 다른 팀으로 구분하여, 참가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혼자 와서 당당히 설명하며 알아서 하라고 하던 폼 새가 약간 망가졌지만, 우선 곤경에 빠진 빛고을 청소년들을 구하고 볼 노릇이었다.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올가! 드디어 빛고을과 우크라이나간에 대규모 진짜 외교가 시작되었다. 어린 꿈나무들을 위한 이런 행사는 어떤 나라든 못해서 안달인데, 제 발로 찾아온다는 이일은 네 나라를 위해서는 다시없는 기회인 것 같다.'
빛고을 백성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있는 순발력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올가만 넋이 나갔지만 어쨌든 틀린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일주일 내내, 올가는 전화통과 씨름하면서도(우크라이나의 수도는 키예프이고 한참 떨어진 드네프로페트롭스크는, 쿠츠마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사장으로 있었던 로켓공장과, 아름다운 드네프로강이 흐르는 교육도시 였다. 초청자와는 다르게 행사참가의 허락은 키예프에서 결정한다고 하였다.) 결과가 신통하지 않은지, 제 잘못도 아니면서 미안하단 표정으로 '미스터 킴. 이번 일은 불가능해....어쩌지. 어쩐담....'.을 연발했다.
배추 또한 돌아가면 해외연수 사기극이라는 제목으로 매스컴 탈 일을 생각하면 처량하기가 그지없었다. 일주일 만에 결국 포기하고, 수지리야에서 공짜로 내준 멋진 호텔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데 올가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킴! 너는 행운아야. 어제저녁 가까스로 휴가간 장관과 통화하여 행사장 아르텍캠프 한 동을 모두 한국학생 들에게 주기로 허가 받았어. 너희뿐이 아니라 다른 팀들도 모두 오케이야!'
말은 쉽게 하지만 분명 밤새도록 전화통과 씨름해서 승낙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밀린 잠을 편히 늘어지게 자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 약 2주일 뒤에 출발한 본 행사는 어찌 되었냐 하면, 성인인 배추가 보기에도 너무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 행사 후인 그 해 겨울에 치른 나중에 KBS제작단에서 제작한 '한국 꿈나무들이 본 첨단 러시아 우주항공기술'의 내용에도 참가했던 학생들의 소감이 똑같이 나왔다. 감격!, 감격의 연속이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얄타의 아르텍 캠프에서는 '대장님 우리 하루만 더 있다가요!' 짧은 3일 동안 외국학생 들과 친해진 대원들의 바램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항공우주과학이 왜 발전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그 짧은 기간에, 올가는 우리 팀들이 갑작스러운 프로그램에 동반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일정을 준비해 놓았었다. 특히 드네프로페트롭스크의 한 시골학교에서는, 전교생이 나와 민속의상을 입고 전통예법대로 입구에서부터 빵을 시식하게 하고,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생이 참여한 환영공연은, 가슴이 뭉클한 환타지였다. 코스모스 탐험대원들은 나중에 세계평화를 위한 사명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르텍 캠프에는, 행사도중에 대통령 내외도 참가하였고, 우리 자리는 대통령 내외의 바로 뒷자리였다. (그 다음해 여름에는 철없던 고교시절 은사님도 모시고 갔었는데, 또다시 대통령 바로 뒷자리에서 가장 크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시고는 감격의 눈물을 훔치셨다.)
홍 기자의 기막힌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해 11월에 우크라이나의 올가로부터 세계 항공 우주세미나에 한국측 대표로 참가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는데, 이때 조건은 대통령 내외 앞에서 5분 동안 연설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름행사 때의 환대에 대하여 감사를 전할 방법을 찾던 터에 잘됐다 싶었다. 나의 짧은 영어로 연설은 무리여서, 마침 같은 사무실을 쓰던 인텔리 냄새가 팍팍 풍기면서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안기호 형님에게, 잠시 우리회사 이사로 들어와 동행해달라고 부탁하여, 또다시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페트롭스크에 도착하였다.
수지리야의 본부에 도착하니 올가는 또 한번 감격할 일을 연출해놓고 있었다. 자체 항공 우주박물관에, 지난여름 행사도중 수지리야에 선물했던 한복과 장구가, 인공위성과 우주복 등 우주기자재 들과 같이 한 켠의 유리관 속에, '한국의 코스모스탐험대 기증'이라는 팻말과 함께 멋지게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스크바와 키예프의 항공 우주박물관에는, 간혹 일본의 사무라이 투구가 전시되어 이채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세계 각국에서 온 항공우주 관계자들이 인공위성과 로켓 사이의 한복과 장구가 전시된 코너에서 현지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는 광경이란, 이를 보고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
대통령 내외 앞에서 양손을 휘두르며 박력 있게 연설하는, 기호 형님의 기백에 감탄을 하고 (내 자리는 영부인 옆자리 였는데 경호원이 계속 나만 쳐다봤다.) 세미나를 마친 후, 참가자들과 뒤풀이 하면서 건배까지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를 숙소까지 바래다준 올가가 활짝 웃으며 손을 벌렸다.
'킴. 이제 3천 달러를 줄 수 있니?'
나는 기가 막혀서 '올가 너 돌았니? 무슨 삼천 불?'
그 당시 올가의 그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흰둥이 여성 올가가 머리 끝부터 더욱 하얘지며 '킴! 저널리스트 홍이 너에게 Shut up mouth?' (주둥이를 잠구었니?)
사연인즉, 여름행사 때 코스모스 탐험대의 행사경비 중 3천 달러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여행자수표로 지불하였는데, 이를 환전하지 못하여, 우리 팀 다음에 온 해양소년단과 같이 동행한 홍 기자에게 돌려주며, 이를 나에게 전달하여 국제은행으로 입금시켜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것이었다. 왜 우리에게 바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홍 기자에게 전화하여 물어보니 우리 코스모스탐험대의 재정이 좋지 않다고 하여, 사정이 어려운 줄 알고 기다렸다고 하였다.
웬 재정?... 갑자기 머리끝까지 치미는 분노가 터질 곳을 상실한 채 흰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홍 기자로부터 서너 번 물먹은 내가, 다시는 우크라이나 쪽에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고 지레 짐작한 홍 기자다운 얍삭한 생각이 눈에 선했다. 올가와 다른 나라 선생들도 놀란, 빛고을 청소년들의 재주(태권도와 한국무용 등)와 맑은 웃음을 선사하였던, 코스모스탐험대를 터무니없이 처량한 부도회사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려 했던 수작이 뻔하게 짐작되었다.
너무 분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한국으로 전화해서, 한국시간 새벽 한시에 전직원을 깨워서는 홍 기자를 찾아냈다.
'존경하는 홍 기자님, 3천 달러가 어디에 있나요?'
대답. '너무 바빠서 환전할 시간이 없었음'
행사가 끝난 후 3개월이 지난 터였다. 기가 막혔지만, 새벽부터 우리 직원들에게 닥 달을 당한 것이 눈에 보였다. '오늘 아침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그 돈을 입금시키고 입금증을 팩스로 보내주십시오'
3천 불이 그 즉시 입금되니, 상황의 전후를 알게 된 올가가 오히려 감격해 마지않았다. 전혀 처음 보는 산적 같은 노랭이와 일주일을 끙끙거리며,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던 행사를, 마침내 성공적으로 종료 시킨 것을 우정이라고, 지나라 어려운 살림에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한국인에게 사기 당했다는 질시를 참아가며, '킴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마냥 기다리던 중에, 부도난 줄 알았던 친구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신이 날 게 뻔했다. 한국 돈으로 3천 달러는 그리 큰돈이 아니지만, 그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백 달러만 바꾸어도 양호주머니가 두둑할 정도로 거액(?)을 바꾸어 주던 때였다.
올가. 착한 마흔 다섯 살 아줌마 올가. 그리고 얄미울 정도로 매사를 꼼꼼하고 정확히 처리하는 이 아줌마가, 처음 보는 인간을 스스로 판단하여 믿고는, 어쩌면 한없이 추락할지도 모르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통령 앞에서 연설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어 극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모습이,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듯 느껴졌다.
홍 기자의 연속되는 실수 덕(?)에 배추는 우크라이나에서 더욱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다. 당연히 할 일을 가지고 오히려 사건을 이상하게 틀어놓아서, 자신은 욕먹고 배추는 그 덕에 방송국 인터뷰도 수없이 하게 되었다. '수지리야'의 한 남자간부는 '킴아, 너는 이제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야'라며 포옹을 했다. 그리고 황송스럽게도 영부인께서 내 손목을 잡아주시며 ' You are Big interesting.'하셨다.
그리고 행사가 3회쯤 되던 어느 날, 그 나라 국가영웅이라는 별과 훈장을 주렁주렁 단 과학자는, 회식도중 갑자기 술잔을 들고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다. '킴. 너는 정말 웃기는 놈이다. 네 자식들도 아니고 남의 자식들을 이 먼 곳까지 데리고 와서 청소년끼리 우정을 맺게 하는 넌 진짜 영웅이다.'
그 홍 기자는 지금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가끔 홍길동같이 모스크바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한때 영웅이었으나 지금은 배추장사를 하고 있는 내 주변에 얼굴을 내미는데, 여전히 이상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그 덕분에 다른 그 어느 누가 별일도 아닌 일을 가지고 영웅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말 정말 이상한 분이고, 그리고 지금은 다행히도 기자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홍 기자 덕분에 무작정 급히 우크라이나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모스크바를 경유하려면 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모스크바에 재입국하다가, 당연히 불법입국자로 분류되어 모스크바에 있는 브누꼬바 공항의 유치장에서 하루를 지내면서, 스스로 다짐한 약속이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스스로 사과하는 날이 있겠지...'
* 모스크바에서 이 시장 저 시장으로 다니며 장돌뱅이 같은 시절에 고양이와 강아지를 파는 시장에 들렀다. 그 시장에서, 불원천리 모스크바에서 친한 사람 하나도 없이 외로움을 타는 미끼에게, 생후 한 달도 안되어 보이는 흰 바탕에 머리와 꼬리만 검은, 웃기게 생긴 고양이를 거금 5달러를 주고 사주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던 놈이라 당연히 미끼를 지어미로 생각하는지, 잘 때도 꼭 만들어준 종이상자에서 자지 않고 침대 위에 올라와 있거나, 심지어는 이불 속에 들어와서 자곤 하였다. 모래 섞인 흙을 퍼 담아 화장실을 만들어 주었는데, 냄새가 진동하여 아예 욕조의 하수구멍에 볼일을 보도록 훈련시켰다. 머리 나쁜 종자는 아닌지, 큰 거 작은 거 모두 정확히 하수구멍에 볼일을 봐서, 보고 난 뒤 물만 틀어주면 되는 귀염둥이가 되어 버렸다.
이놈이 하루는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고 실실 숨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밤새 또 침대 위에 올라와 자다가, 그만 소변을 지려버린 것이었다. 잡아다가 소변지린 곳에 코를 박고는 따끔하게(?) 한 두 번 쥐어박은 뒤에는,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잘못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고양이가 오히려 영물스러웠다.
인간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부류도 있고, 또 알아도 이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거나, 오히려 뻔뻔하게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워서 더 큰 인과의 바다에 빠지는 선택으로, 인생이란 불꽃을 쓸쓸히 사그라지게 만드는 안타까운 분들도 계시는 반면에, 나중에 한꺼번에 깨달아서, 사그라질 불꽃을 멋지게 살려내어 황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분들도 계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노릇이다.
어찌 보면 인간이 되고싶어 했던 미끼의 고양이는, 이름이 나비이고 나중에 한꺼번에 도통하려고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고 있는, 배추의 한때 영웅이었던 된장국 냄새나는 그분의 이름, 홍길동은 물론 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