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자고 나면 만리장성을 쌓는다.
우리의 속담에 등장하는 만리장성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하면서 자주 표현되는 이 속담은 남녀의 은밀한 정사를 추켜세우고 정당화 시키려는 뜻을 은근히 내포한다. 나도 어렸을 적에 소위 니나노집이라는 술집에서 젓가락을 두드리며, 여자에게 이런 말을 던지며 수작을 건 적도 있다.
만리장성이라는 말은 추야장장 긴긴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면 곧바로 성을 쌓기 위하여 부역당하여 끌려간다는 말이다. 만리장성을 쌓는 일이 무척 위험하고 고된 일이었으니, 그 당시에는 힘없는 부족들이 많이 끌려가서 장성에 몸을 묻었다. 또한 중국인들이 성을 쌓을 적에는 자기민족보다는 오히려 성밖에 사는 오랑캐라고 일컬어지는 민족을 많이 잡아다가 부역시켰을 것이다.
요동반도 아래의 산해관에서부터 시작되어 서쪽으로 약 오천 키로 미터를 달려서,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돈황의 왕문관까지 연결되는 만리장성의 행렬인데, 어찌 “만리장성을 쌓으러 내일이면 떠난다.”는 안타까운 정사의 밤을 표현한 속담이 만리장성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에게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다는 말인가?
만리장성은 2000년을 넘는 긴 세월 동안 쌓은 성이다. 공자의 시대부터 시작하여 명나라까지 이어졌으니, 우리의 역사로 따지면 고조선부터 시작한 만리장성의 역사가 조선 초 까지 이어져 내려온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은 맨 날 만리장성이나 쌓으며 살았단 말인가? 아니다. 오랑캐들이 쳐들어 올 때만 쌓았다. 그나마 중국민족의 힘이 남아 돌 적만이다.
가을이면 먹을 것이 없는 초원지대의 유목민들은 굶주림을 피하여 남쪽으로 내려온다. 벼농사를 알지 못했던 유목민들은 말을 타고 남하하여 중국인들이 가을에 걷어 들인 농산물을 탈취하게 마련이다. 유목민들은 참 신기했을 것이다. 꼭 자기들의 터에서 굶어죽을 때가 되면 저 남쪽에 사는 중국인들 집의 굴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백보이상 승마(乘馬),
말을 타고 유랑하던 말 잘 타는 유목민들은 초원에 흉년이 들면 파죽지세로 허리 굽히고 땅만 파던 농경사회를 짓밟아 식량을 약탈한다. 그래서 만리장성은 높은 곳 보다는 말이 겨우 뛰어넘지 못할 정도로 낮게 쌓은 곳이 많다.
처음에는 이쪽 골짜기로 쳐들어왔으니 이쪽 골짜기만 성을 쌓았다. 몇 년 후에서 저쪽 골짜기로 쳐들어와서 저쪽도 막았다. 몇 십 년 후에는 삭막한 벌판지대를 우르르 넘어서 쳐들어 왔으니 벌판에도 성을 쌓는다. 그래서 백년 후에는 유목민들이 성을 쌓지 않는 곳을 찾아서 산길을 넘어서 쳐들어 왔다. 깜짝 놀란 중국인들은 산으로 기어 올라가 능선을 따라서 쭉 벽을 쳤다. 바로 이것이 만리장성의 기원이다. 그 세월이 2000년을 넘는 긴 세월인 것이다.
북쪽의 유목민들이 재빠른 말을 타고 만리장성을 넘으면 중국인들은 남쪽으로 밀렸다. 바로 중국한족의 힘이 약해진 것이다. 그러다가 중국인들이 강한 나라를 세우고 힘을 키우면 곧바로 만리장성으로 밀려들어 유목민들을 도륙하였다. 힘 있는 남자들을 몽땅 잡아들여 이쪽에 있는 성과 저쪽에 쌓은 성을 연결하는 공사에 투입했다. 군데군데 쌓았던 성을 자꾸 연결하다보니 그것이 바로 오천 키로가 넘는 만리장성이 된 것이다.
자, 여기까지 만리장성의 기원을 더듬었으니, 과연 그 오랑캐라고 일컬어지던 북쪽의 유목민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추운지방의 날씨 때문에 눈꺼풀에 지방질이 많고, 초원지대에서 사냥하기 때문에 활을 잘 쏘며, 머리에 새의 깃털을 꼽고 말을 타고 질풍처럼 달리던 그 민족은 바로 끊임없이 동쪽으로 달리던 민족이었으니, 바로 우리다. 태어나면 민족의 정통성을 하늘에서 인정하여 푸른 도장을 엉덩이에 퍽 찍어주는 푸른 반점의 후예들이다. 나도 태어날 적에 엉덩이에 푸른 점이 있었고, 내 자식도 푸른 반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의 200대 선조가 만리장성부근에서 살았다. 별안간 중국인들이 솰라솰라 대며 쳐들어오더니 내일 아침이면 만리장성을 쌓는데 내 선조를 끌어간다고 했다. 그러니 내일이면 성 아래서 돌을 지어 나르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남편을 보내는 아내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오랑캐라고 밥도 제대로 먹이지 않고 고된 일만 시킬 텐데, 남편이 성 아래 파묻히는 장면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내 200대 선조의 아내는 정성을 다하여 저녁을 선조에게 대접하고 그날 밤, 금침을 펼쳐 마지막 정사를 치른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만리장성을 쌓는다.”
안타까운 정사의 몸부림을 타고 태어난 내 199대 선조가 아마 요동탈출을 기도했을 것이다. 동쪽으로...... 처자식과 편하게 살 수 있는 평화의 땅을 찾아서 동쪽으로 달렸다. 이 장면에서 나는 달마가 왜 동쪽으로 갔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어느 사학자는 우리의 고조선이 평양부근에 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만리장성 아래의 요동지방부근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하룻밤을 자고나면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절규하던 내 200대 선조의 말을 어리석기 그지없는 그 선조의 200대 후예가 니나노 술집에서 젓가락을 두드리며 주절거렸으니, 얼마나 선조는 통분하여 내 머리통이라도 쥐어박고 싶었을까, 저 세상으로 가면 조상을 무슨 낯짝으로 본다는 말인가,
바로 만리장성의 속담은 우리민족의 이동경로를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만리장성부근에서 살았던 민족이었고, 성을 쌓기 위하여 끌려갔던 한을 가졌던 민족이라는 판단이 든다.
음력 팔월 보름은 우리민족의 큰 명절이다.
일년 농사를 짓고 나서 조상에게 감사드린다. 걷어 들인 곡식으로 밥하여 제일 먼저 조상님에게 올린다. 오직 조상님 덕으로 풍년을 맞이했으니, 감사드리며 또 내년에도 올해처럼 풍년을 맞게 해 주십시오. 후손이 배부르면 조상님도 배부른 것이 아닙니까? 보십시오. 올해는 풍년이라서 제사상이 푸짐하니 조상님도 기쁘죠? 헤헤, 내년에도 부탁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팔월 추석에는 곡식이 다 익지 않는다. 어설프게 벼가 익어가는 순간에 추석이 다가오니 뭔가 좀 성급한 면이 엿보인다. 이왕이면 곡식을 다 거두어들인 후에 추석을 맞이하면 더 좋지 않을까, 약 열흘만 지나면 벼베기를 하는데, 벼를 다 베고 난 다음에 추석명절을 새면 구색이 갖추어진다.
이 점에 의문을 품었던 어느 사학자는 북쪽 요동지방에서 우리조상이 지냈던 명절을 그대로 남쪽으로 가지고 내려온 것이라고 추측한다. 요동지방은 팔월 중순이면 이미 가을걷이가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추석명절과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시기가 딱 맞는다고 한다. 그 곳에서 살던 우리 조상이 한반도로 내려와서 팔월 보름에 명절을 지내려니 한반도는 남쪽지방이기에 곡식이 어설프게 익은 채로 논밭에 널려 있는 것이다.
우리속담과 명절을 더듬어 우리민족의 이동경로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반대의 의견도 가능하다는 판단하에서다. 그리고 초원을 달리던 내 선조를 상상해 본다. 고구려의 꿈을 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