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십대 초반 여자입니다.
제목 그대로 저는 남들이 말하는 삼류 인생입니다.
평소에는 페이스북으로만 공유된 판을 보다가
갑갑함과 답답함에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모바일로 글을 남깁니다.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조언과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애인도 돈도 아무것도 없으므로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일단 말하기에 앞서 제 가정사를 알려드려야
이해하기 쉬우실 것 같아서 가정사 먼저 알려드리겠음.
필자는 청소년기 시절에 집을 나와서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보려 악쓰는 1인임.
집을 나왔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포함되어있긴하지만
첫번째로는 중 3때 집을 나왔는데
필자는 태어나서부터 집을 나온 그 순간까지의
16년을 집에서 맞고 살았음.
처음부터 나오려고 마음먹고 집을 나온건 아닌데
놀러나왔다가 나랑 비슷한 처지(가정사)의
언니의 모습을 보고 들어가면
또 똑같은 삶이 반복되겠구나 싶기도 하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나와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전단지부터 시작해서
미성년자때 돈을 받을 수 있는것이라고는
노래방 도우미, 보도, 바같은
법에 걸릴만한 유흥업소를 제외하고
나름의 선에서 떳떳히 돈 받는 일은 대다수 해본것같음.
그렇게 중3때 졸업 한 달 남기고
출석일수가 모자라 제적되서 17살때 중졸 검정고시,
18살때 고졸 검정고시 따고 일하면서 열심히 산것같음.
다른 가정사는 부모님이 7살때 이혼하셨고
이혼하시기 전이나 후나 별로 달라진건 없었음
태어나서부터 부모님이 이혼하시기 전까진
난 하루에 주6일제로 엄마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으면서 맞았고 나도 기억도 나고
명절에 놀러갈때마다 친가에서도 목욕탕에 갈때마다
애가 몸에 멍자국이 없는 날이 없어서
기겁했었다 말해줌
엄마라는 작자는 내가 태어나고나서
보름 뒤에 버리고 가서 온가족이
애 옆에 우유젖병만 덜렁 놓고가서 찾아다녔나는데
알고보니 팔촌인가 육촌인가
어떤 이모네인가 고모네서 놀고있었대서
잡아와서 외할아버지가 우리 친가에
딸을 잘못키웠다고 무릎꿇고 비신 후에 정리됬다함.
우리집이 공장을 했었는데
나도 참 임신부터 백일까지 애먹이는 존재였다는데
아빠 말로는 10명중에 1명 꼴로 백일주야라해서
백일이 될때까지 밤낮이 바뀌는데
엄마같은 경우는 딱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스타일이었는데
나같은 경우는 낮에는 곤히 자서 좋았는데
밤에 일어나 내내 우니 스트레스로 미치는줄 알았다함..
나중에 찾게 된 엄마 말로는
남의 애들은 맨날 잘 웃길래 내 애도 낳으면
웃기만 하면서 잘 크는줄 알았다함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엄마가 밤새 우는 나를
예전에는 혼수(?)로 두꺼운 이불 있잖슴?
막 비단 이불에 수 놓아져 있는 ㅋㅋㅋㅋㅋㅋ
거기에 나를 넣고 죽으라고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놨다가 우리 아빠가 퇴근하고
찾아내서 살려놓고
공장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초록색 시멘트 바닥에 나를 던져서
아빠가 놀래서 나를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함.
나는 희한하게 3살때부터의 기억을 다수 갖고있는데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질 않음.
우리 엄마는 요리도 할 줄 아는것도 없어서
먹은 음식이라고는 김에 싼 밥,
제빵기에서 구운 식빵, 집 앞에 있던 짜장면,
과자, 까르푸가면 사줬던
맥도날드나 롯데리아 어린이세트 등등
고로 엄마에게 얻어먹은 집밥 기억이
하나도 없다는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마을 사람들끼리 집 앞에서
삼겹살 구워먹었을때도 엄마라고 말하면서 가니까
쪽팔리게 왜오냐고 집으로 꺼져서
자라했었던 말도 기억남.
(어렸을때 잔병치레가 굉장히 많았고
항상 얼굴엔 뭐가 나있거나
곰팡이 마냥 버르가즘(?)이 피어나있었다함.
친가에서는 항상 어디가 부실하고 아프고
몸은 빼빼 마른데다 못먹은거같이 얼굴에 뭐가
항상 나있으니 부모가 없는
전쟁고아 보는 느낌이었다고 함.)
실제로도 17살때 3개월간 살았을때
내용 전부를 시인했음.
17살때 검정고시를 보러 인천(집이 인천이었음)에
갔었는데 그때 용돈 10만원 받은거
엄마한테 용돈 안받았다했는데
왜 거짓말 치냐고 하면서
왜 내 돈을 엄마가 관리하려하냐니까
당연히 내가 네 엄마니까 관리하는게 맞는거라고하길래
그럼 내 월급은 어쩔거냐고 물으니까
그것도 당연히 죄다 엄마한테 맡기고
용돈을 받아가라는 개소리를 시전함.
그때 당시 주차팀을 다녀서 월급 120만이었음.
엄마는 보험회사 다니는데 실적을 쌓지 못하면
자신의걸로 메꾸고 빚도 진댔나?
그때 당시 333만원의 빚이 회사에 있고
8년이란 세월동안 전세 1500짜리 반지하
서울 달동네에 살면서 한 달, 하루 차비도 없어서
빌빌거리며 사는 엄마에게 돈을 맡기고 싶지 않았음.
거기다 일전에 나도 꼴에 자식이라고
뭔가 해주고 싶어 원하는걸 말해보라 말했을때
냉장고가 300, 집 장판, 벽지부터 시작해서
장롱? 피부마사지 침대 등등 집을 다 뜯어고칠생각이었고
돈도 없으면서 무료로 법산지 스님인지한테
사주를 엄청나게 보러다녀서 무속쪽으로도 고생을 많이함.
가위를 굉장히 너무 자주 눌려서
그렇게 미신이니 뭐니 싫어하고 질색팔색하는
아빠가 천만원 들여서 못눌리게 막았을 정도임.
그 법사한테 어느날은 전세집 이니셜을 듣고
이사를 생각한다길래 돈은 누가내냐니까
당연히 네가(나) 내야지 한 적도 있어서
엄마한테 돈 관리 못시킨다니까
집에서 날짜 정해주고 기간안에 짐싸서 나가라함.
그때 내가 빚 아닌 빚이 16살때 같이 살던 언니한테 있었음.
149만원인가? 방세랑 식비 공과금 등등해서
6개월치를 나누기 2한 금액이었음.
근데 ㅈ같은 X미 년이 나한테
그동안 썼던 샴푸 린스 치약 빌려입었던 옷 드라이클리닝값부터 기타 등등
3개월치를 전부 새 돈으로 내놓으라고함.
계산기 두들기더니 156만원 나옴.
그러면서 "00(같이 살던 언니 이름)는 돈 갚으면서
왜 엄마한텐 돈 안갚니? 내가 쓴 건 돈도 아니야?"
시전하고 나가는 날 당일 아침까지
"알아서 잘 나가고 집 나오면서 너희들 두고 나올때
평생 못볼줄 알면서 살았는데 다 크고 나서
보게 된 너희 만족에 감사한다.
그동안 좋았고 다신 얼굴 보면서 살지 말자.
솔직히 한 번 버린거 두 번 못버리고
세 번 버린거 네 번 못버리겠니?"
라고 말함 ㅋㅋㅋㅋㅋㅋ 그 뒤로 연락 1도 안하고 삼.
그러면서 주차팀은 다녔는데
중간에 스타렉스 앞바퀴 뒷바퀴가
발목을 밟고 뺑소니 쳐서 한의원에 갔는데
약값도 너무 비싸고 장기적에 서 있는일
절대로 하지 말랬는데 20살 이전까진
먹고 살아야하니까 왠만한 서비스직은 다 했음..
18살때 집에 잠깐 들어가 살때
아빠의 도움으로 허리 물리치료를 몇개월간 받았음.
9살부터 16살까지 할아버지랑 동생이랑
같이 살았었는데 주 3-4일제로
허리띠랑 주먹이랑 발로 맞느라
허리에 무리가 가있었고
뒤늦게서야 물리치료를 받았음.
스무살이 되고나서부터 생산직이란걸 알게되서
전전하는 중인데
그 뒤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스무살이 넘고나서 인태기나 우울증이 너무 심하게 왔음.
열심히 살아야지 싶다가도
아작난 내 몸을 보자니 우울하기 짝이 없음.
그냥 멀쩡히 생긴 반장애인으로 사는 느낌임.
턱이랑 코는 나만 알아볼수있게 돌아가있고
발목이랑 허리는 아직도 조금만 무리하면
삼일은 앓아누워있어야함.
귀는 주차팀 일할때랑 예전에 맞은거때문에
왼쪽 귀 고막에 손상이 가서 늦었다함..
지금은 조금만 가만히 오래 서있는다 싶으면
발목부터 무릎까지 통증이 올라오는것같음.
그래서 일을 구할때도 무조건 좌식을 구해야하는데
아웃소싱쪽에서는 편한 일만 찾으려한다말하는데
내가 지금 사는 지역은
좌식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지역임.
근데 .. 그 쪽에서는 서서 일할 입식 지원자를 구하는데
내 몸이 이렇게 망가진게 내 잘못은 아니잖슴..
근처에서 같이 일할라하면
다른 사람들은 서서 근무 가능한데
내가 안되니까 또 같이 알아봐주는게 미안하고 ..
내 삶에 대해서 다시 많이 생각하면서도
남의 삶이랑 비교가 되서 우울했음.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끔찍하기 그지 없음.
학교가 인천에 있었는데 인스타에
갑자기 추천 친구로 학교에서 날
앞에선 위해주고 뒤에서 배신때렸던 애가
떡 하니 떠서 그런 날은 악몽을 꾸기 바빴음.
학교를 관두는 그 시점까지
초등학교 6학년 1년을 제외하고 전부 은따였음.
친척들 같은 경우에는
공장 망하고 나서 친척네 가서
'넌 엄마가 없으니까 배워야한다' 부터
친척들 우리집빼고 다 잘사는데
아빠가 장남이신데 내가 첫째인데 여자애라
할머니가 굉장히 날 싫어하셨음 ㅇㅇ
할머니 입장에서는 우리 아빤 굉장히 잘났음
내가 봐도 잘나긴 했음..
성적도 항상 63명 중에서 1등이었고
제일 못한게 65명 중 7등이었음.
얼굴도 잘생겼는데다가 효자임.
그런 아빠 밑에 딸이 둘이나 있으니
우리만 없었어도 총각 장가 갈 수 있었을텐데
우리가 딸려서 재혼 가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싫어하신다고 생각함.
명절 날에 갈때마다 사촌 남동생들과 비교는
기본이고 '부엌=여자존'이라는
틀이 있는거마냥 일돕는것도 싫었고
우리집 빼고 잘산다했는데
작은아빠네가 할머니 밑에서 커서
잘된거라 항상 그러셨음.
그럴때마다 우리 아빠는 말을 안들어서
그렇게 됬나 반발심도 들었는데
어렸어도 가난이 뭔지는 알았고,
눈칫밥이 뭔지 잘 알기에 할 말이 없었음.
어렸을때부터 큰 애에 여자애라고
솔선수범은 기본이었고 잘해야하는게 맞았음.
할머니랑 5살-6살때 목욕탕 가면
새벽 5시에 가서 11-1시에 나오는게 기본이라
난 그 뒤로 트라우마 생겨서 어른들이랑 목욕탕
가게 될 일 있으면 안가려고 함.
숙모한테 선물 받으신 금 핸드폰고리 잃어버렸다고
가시나들이 칠칠치 못하다고
00이 00이 (사촌동생)들 같으면 잘 챙겼을텐데
가시나가 머시마보다 더하다고 한다던가
어릴때 아빠랑 동생 따라 바다 안갔다고
니가 왜 집에 있냐면서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던 상태에서 들어올려 변기에 그대로
얼굴을 쳐박고 휘휘 돌려진다음 큰 대야에
얼굴이 수십번 박혔다 나온적도 있었음.
그거 말고도 일이 워낙 많았던 지라
집 나온 이래로 나는 '지 애비 가슴에 대못 박은 __'
인지라 아빠가 외국에서 일하시는데
외국에서 돌아오시는 날이
명절하고 겹치지 않는 이상
친척들 보러 안감.
암튼 이래저래 인태기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식적으로 보이고 그냥 알던 사람들
그 자체로 누구랑도 엮이고 싶지 않아서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지역으로
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옴.
와서 보증금이랑 이사비용 싹 다 넣고
눈이 살면서 가장 컴플렉스여서 쌍수도 했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시비가 걸리는
세게생긴 싸가지없게 생긴 눈이었음 +짝눈)
먹고싶은거 다 먹고 다 했음 너무 천국이었음.
사주도 최악이었던지라 아빠빼고
아는 사람들은 다 바꿔라하는 이름이었음.
그냥 보면 이름은 예쁜데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이 이름을 돈주고 지어왔냐부터
넌 이 이름 말고 어느 이름으로 불려도
지금 네 삶보다 나아질거라고,
오죽하면 아빠 친구분 중에 보살 분이 계시는데
내가 뭐 그런쪽으로 물어보는거 되게 싫어하시는데
개명한다니까 "해!! 왜 안하고 있어!!" 하실 정도임.
그래서 작명소에 프리미엄으로
50만원주고 최상의 이름도 받아왔고
예전보다 훨씬 퀄리티 좋은 인생을 살고 있음.
이름 덕인진 모르겠지만 바꾼 이후로
내 곁에는 예전처럼 뒤통수 치던 사람들이 아닌
좋은 사람들만 가득 내 곁에 몰리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나름대로 행복에 겨워 살고 있음.
그렇게 생산직 다니다가 어떤 회사에서
일하다가 이틀만에 손가락부터 손목이 아작나고
팔꿈치 밑 근육이 흔들리는 일이 발생함.
버틸때까지 버텨보겠다하고 다녔지만
도저히 못해먹겠다하고 퇴사하고 나왔는데
거길 다니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월급을 받으며
살려면 학벌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이 듬.
내 근처는 다들 대학 나와서 전공대로 가는 사람
하나도 없이 나랑 똑같거나 나보다 못한 월급 받으면서
버벅대고 살아가는게 전부였던지라 솔직히
대학의 실감성을 느끼지 못했었음.(비하 아님)
근데 대학이라도 가면 이것보단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이버대를 가려는데
그 전에 먹고 놀면서 사느라
이제라도 돈을 모아야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거임...
다들 모아야지 모아야지 하는데
한 달에 얼만큼 넣는게 좋다는건지도 모르겠는데
다들 적금은 한 달에 월급에 비해
얼만큼 비례해서 넣어야 지치지 않는건지도 모르겠음..
그리고 또 문제는 식욕이 내가 남들보다
굉장히 강해서 예전에는 남들 6배는 먹었었는데
요즘은 그나마 줄어서 남들 2배 정도 먹어서
식비때문에 골치임.....
하루나 이틀에 편의점 한 번 갈때마다
식비 1만-1만팔천원 정도 나옴.. 그거 다 1회임..
근 6년을 일하고 방세내고 먹고 하다보니
대학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돈은 어떻게 모으고 관리해야 하는건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서
여기라도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물어보는거임...
근처 지인들중에는 내가 제일 그나마 잘살음..
서로 엠생엠생하면서 사는데 ... 더 잘살고 싶어서...
아작난 내 몸과 내 인생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시작해보려함..
내가 우리아빠를 되게 좋아하는데
효도하는게 그 방법이 그나마 탁월할것같기도 하고해서
우리 아빠를 위해서라도 이제서라도
제대로 된 딸처럼 살고 싶어서 그러는데..
많은 조언 부탁함...
긴 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흡
++ 추가글
추가글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어서
어떻게 써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퇴근하고 나서 댓글은 하나하나 다 확인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실줄은 몰랐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일일히 답글 못달아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삼류 인생이 아니라고 해주셨는데
저는 나이가 아닌 집을 나와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했었던 시간에 비해
모아놓은 돈과 스펙,
어쩌면 제게는 쭉쭉 잘나가보이는 친구들과
제 삶을 비교하다보니 제 자체가
삶을 잘못산것같고,
괴리감과 함께 자괴감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한것같습니다.
네 탓이 아니라는 말, 잘커줘서 고맙다는 말이
너무나도 사무치게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영양이나 다른 쪽으로도 여러군데 알아봐주시고
이것저것 걱정해주시면서 조언과 함께
댓글 달아주신 분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살아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두서 없이 긴 글을 읽어주신 것도 감사하고
무쪼록 신경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단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더욱 열심히 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