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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그 날의 기억.

그것이 알고싶다 1103회 / 2017-12-09(토)
세 번의 S.O.S, 그리고 잔혹한 응답 - 한샘 성폭행 사건

처음 한샘 성폭행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때,
수직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대기업에서 일어난 사건이 공론화 되었나보다, 생각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인 건, 그런일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지만, 당사자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회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그저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옛말로 위로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지난 강남역 사건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이슈가 불거졌을 때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되는 일들을 외면하려 했다. 내가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변하는 게 있을까. 나만 페미니스트로 낙인 찍혀, 듣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실은 두려웠다.
그 사건에 대해서 마저도, 그저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가지고 왜 남성을 저격하냐는 목소리.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포에 대해, 나는 아니라고, 너무 예민하게 구는거 아니냐고 공감하지 못하는 여성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도 역시,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꽃뱀'이라 부르며 사건의 중심에 세워두고 잘못을 돌리고 있다. 기업 내의 구성원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그럴 것이다는 추측을 하며 가해자를 두둔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일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얼마나 상처가 되는 일인지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깊게 생각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고 쉽게 소비해버리는 뉴스에 불과하니까. 혹은 괜스레 자신의 행동들이 범죄로 정의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표출하는 것인지도.

그런 반응들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이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방관인 것 같아 목소리를 내어본다.

우선 나는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를 아는 누구도,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나는 침묵했고, 혼자 극복해야만 했다.

나도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를 아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는 하나, 지금도 떠올리면 생생하고 소름끼치는 기억이다. 나는 아동 성추행 피해자이다. 나는 두 번의 피해를 겪었다. 한 번은 가까운 지인이었고, 또 한 번은 문구점에서였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던 해, 아빠가 잠시 캐나다에 가신 사이에 일을 도와주러 온 청년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과는 아는 사이였고, 예전 살던 동네의 교회 권사님의 자녀였고, 전도사를 준비하던 20대 중후반의 청년이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잘 알고 지낸 선생님이었던 그 청년을 잘 따랐다. 우리집에서 한동안 숙식하며 지냈기 때문에 학교에 다녀와서는 곧잘 같이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잠깐 외출하신 사이 숨바꼭질 혹은 잡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불꺼진 방안 침대 위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숨어있었다. 그런데 침대 밑에서부터 누군가 위로 기어올라오는가 싶더니, 이불 위로 몸을 더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그 느낌이 어떤건지 알지 못했다. 간지러운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불에 눌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덮고있는 이불의 양쪽을 선생님이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얼굴까지 올라온 그 사람은 이불을 들췄다. 선생님이었다. 지긋한 표정으로 보고는 얼굴에 입술을 대기 시작했다. 이전에 내가 알던 쪽쪽 하는 뽀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이불을 조금 들춰 목까지 입술이 닿았을 때, 나는 간지럽다고 발버둥을 쳐 선생님을 밀쳐내고 도망쳤다.
다행히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몇달 후 아빠가 돌아오시면서 그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누구에게도 그날의 일을 말할 수 없었고, 나중에서야 그 날 나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두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가족들과 지인의 가족을 만나러 지방에 갔을 때였다. 여동생이 없던 나는 나보다 두 살 어린 그 집 여자아이가 문방구에 간다는 말에 따라나섰다. 아직 어린 동생니까 보호자라고 따라 나선 것이었다. 당시 4학년에 올라갈 무렵 부쩍 자라, 142cm 정도로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다. 문방구는 옛날의 여느 학교 앞 문방구처럼 벽쪽으로 물건이 쭉 전시되어 있고, 가운데가 텅 빈 구조였다. 그 당시 내 시각에서는 꽤 넓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가운데 서있었고, 동생은 필요한 물건이 있는 코너로 가서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문방구 한가운데 서서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문방구 앞에 어떤 차가 멈추더니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내 뒤쪽에 서서 문방구 주인아주머니와 잘 아는 사이인듯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가만히 서서 동생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뒤로 다가와 몸이 닿는듯 하더니 두 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순간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그 사람은 아무일 없다는 듯 계속해서 문방구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아주머니도 별일 아닌듯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물건을 고르는 동생을 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다가 동생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떡하지, 이 순간을 어떻게 벗어나야하지, 나에게 왜 이런일이 일어난거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얽혔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그사람은 채 자라지도 않은 내 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순간 우선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발끈을 묶는 척 하며 확 주저앉아 버렸다. 한동안 앉아서 풀리지도 않은 신발끈을 다시 풀었다가 묶으며, 이정도면 멋적어서 가겠지 라는 생각으로 꼼지락 거리다가 다시 일어난 순간, 마지막 기대도 무너졌다. 그 사람의 왼손은 가슴을, 오른손은 그곳을 향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자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머리가 하얘진 채로 이 소름끼치는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얼마간의 시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한시간도 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그렇게 꼼짝못하고 있다가, 문방구 주인아주머니가 그제서야 애한테 이제 그만좀 하라고 하고 나서야 그사람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돌려 그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방전된 로봇처럼 딱딱하게 굳어 서있는 것 밖엔.
이 기억을 떠올려 글로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려 올 만큼, 그날의 기억과 느낌은 생생히 남아있다.

첫번째 일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집으로 그 선생님이 인사를 왔다. 와이프와 함께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되어서. 나는 그 선생님을 보자마자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나는 그 일이 트라우마로 남은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문방구에서의 일은 나에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 명확히 지켜보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아는 어른도 방관할 뿐,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홀로 감당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성인이 되어서 처음엔 이런 일들을 겪은 사실 자체가 부끄럽고, 스스로가 더럽다고 느껴졌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일들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여전히 지하철에서의 성추행은 범인을 잡기는 커녕 그저 불쾌한 경험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에도, 그저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로, 여성이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결론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받아들였다. 정말 그랬으니까.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들었으니까. 약자에게 무게를 감당하게 하는 비상식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약자에 대한 인식과, 남녀간의 정상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뒤집혀서,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겪은 (부분에 불과한) 이 일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쓴 것은,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그 순간의 피해자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리고 평범한 내 주변의 사람들도 피해자일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서이다.

그리고 가해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잠재적 가해자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자신의 입장에선 서로 동의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정말 나쁜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의 의사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수 없거나, 명확히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의하에 시작했더라도, 피해자가 중단을 요청하면 거절인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이고, 호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였는지 당사자는 분명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의사가 어떠한지를 알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자신의 욕구만을 따라 행동한다면 그것이 범죄인 것이다.

우리가 사회 통념적으로 성인으로 인식하는 나이는 20세이다. 그러나 20살의 경험은 성숙하지 않다. 겪어보거나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일을 갑작스럽게 경험했을 때, 사람은 누구나 당황하고 판단이 어려운 상태에 빠진다. 이런 상태의 피해자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위험으로 부터 벗어났어야 한다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성관련 범죄의 규정이나 판단은 어려울 수 있다. 두 사람 간에 있었던 상황에 대해 물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성인인 경우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덮여질 수도 있다. 거부 의사를 표시하더라도, 사람마다의 성향에 따라 그것이 강하지 않은 표현일 수도 있고, 관계의 특성상 강한 표현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런 것은 존중되지 않는다.

덧붙여, 이 사건은 단순히 성폭행 범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기업이라는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적 인식에 대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강자는 약자를 쉽게 대하고, 다른 강자는 다루기 쉬운 약자를 한번 더 상처입히고, 다른 약자는 자신이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한 채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물어뜯는 약육강식의 사회, 아직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가정적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둘 정도 키우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싶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보면 아이를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은 일을 내 아이가 겪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저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닌, 힘을 가진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보호할 줄 아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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