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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 영하20도 혹한에 청와대 앞 ‘맨몸농성’ 하는 이석기 전 의원 누나..

눈누난나1012 |2017.12.15 14:19
조회 45 |추천 0

 

 

8대 종교지도자들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던 지난 6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의 누나 이경진(66)씨는 4년째 옥살이 중인 동생을 만나러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수원구치소를 찾았다. 이씨가 집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 시작한 것은 그날 동생을 만나고 온 뒤부터였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이석기 전 의원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양심수를 석방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 문 대통령은 “사면은 준비된 바 없다”며 “한다면 연말연초 전후가 될 텐데 서민중심·민생중심으로 해서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오찬 간담회가 끝난 뒤 동생을 만나러 가는 이씨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남매는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왔어?” 정도의 눈빛만 주고 받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애써 고개를 돌린 누나였다. 이 전 의원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김 대주교가 그런 남매의 모습을 보고 “둘이 아시는 거 맞죠?”라고 물어볼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형제라도 ‘잘 있었어?’, ‘어떻게 지내?’ 이런 보편적인 인사도 잘 안 한다. 걸어올 때 모습과 얼굴을 보면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데 없나를 알 수 있지 않나. 그런 걸 느끼지만 말은 안 한다.”

문재인 정부는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이유로 8.15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하지 않았고, 12.25 성탄절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확답을 하지 않았다. 당사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매번 내심 기대를 하면서도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면회 후 2~3일 간은 정말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혔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에 매일 청와대까지 왔다갔다 하는 도보행진을 하지 않았나.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싶었다”는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더 남아있음을 직감하게 됐다.

 

 

한파 속 노숙농성에 돌입한 누나 이경진,
동생 이석기를 ‘의원님’이라고 부르게 된 사연

이씨가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면회를 다녀온 이후였다. 양심수 석방을 청와대에 촉구하는 도보행진이 끝난 뒤 8월부터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동생의 석방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오던 이씨는 지난 11일엔 무기한 밤샘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내가 지금 방에 들어가면 죽을 거 같았다. 동생 얼굴을 보고 나온 뒤부터 가만히 있는 내가 너무 무능하고,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할 건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부분이 대체 뭘까. 그런 생각에 집에 가서 편하게 잠을 못 자겠더라. 그것도 호사인 거 같아서. 그래서 내가 여기서 밤을 새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엄청난 한파가 몰려온 때였다. 이씨를 만난 건 농성 사흘 째인 13일이었다. 서울 기온 -12도까지 떨어진 날이었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했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 팔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이씨는 거동도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농성 자리에서 앉아 버티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날카로워지는 칼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첫날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경찰이 시위 물품을 철거해가는 바람에 이제는 잠깐 자리도 비우지 못하고 있다. 화장실도 가지 않으려고 물도 잘 안 마시고 있었다.

이씨가 이처럼 거리로 나선 것은 단순히 이 전 의원의 누나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씨는 어느 순간부터 이 전 의원을 ‘의원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석기야”라고 이름을 불렀는데 말이다. 이씨는 이 전 의원을 정치인으로서 “존경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주부이자 공무원으로 살고 있던 이씨는 동생처럼 소위 ‘운동권’이 아니었다. 이 전 의원이 몸 담고 있었던 통합진보당 당원도 아니었다. “‘이기자’, ‘승리하자’라고 말하지 누가 ‘투쟁’ 이렇게 외치나. 형제 자매, 친구라고 하지 누가 동무, 동지라고 하나”라고 반문하던 그였다.

이씨는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이 전 의원의 마음과 생각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소회했다. 그는 전국을 순회한 ‘이카로스의 감옥-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진실’ 북콘서트도 모두 따라다녔다. 그 외에도 진보단체의 행사가 있으면 누가 초청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옥살이 중인 이 전 의원을 스스로 대신한 격이다. 그는 “뒤끝에서 바라보고 있어야 그나마 내 마음이 든든하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이 전 의원을 조금씩 더 이해하고, 알아갔다.

“같은 시대에 같은 밥을 먹고 사는데도 이렇게 서로 다른데, 남북한이 통일되면 얼마만큼 다를까. 사실 말 안 하면 똑같은 한민족이지 않나. 이런 말을 내가 하니까 옆에서 누가 제주도 방언을 들어봤냐고 하더라. 하하. 그래서 빨리 남북이 물물교환을 하고 산업이라도 왔다갔다 하면서 통일돼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남북이랑 (미국과 중국이) 4자회담 해서 6.15 공동선언 정신에 입각해 평화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더라. 나도 그땐 6.15가 뭔지 6.10이 뭔지 몰랐는데, 더 알고 싶어서 교수들이 함께 하는 6.15 학습모임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좀 편안하게 살아야 하는데,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의원님(이 전 의원) 생각이 그거 아닌가. 자주평화, 그리고 우리 주권. 이건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한 권리이고, 한민족이라면 학교에서 안 배워도 알 수 있는 건데. 검찰을 보면 우리나라 교과서로 공부를 하지 않고 다른 나라 걸로 공부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http://www.vop.co.kr/A00001232906.html

(중략)

 

..

 

 

정말 박근혜가 대통령이 아니였으면 정치탄압도 안받았을 것 같은데.. 너무 사람들이 선긋도 모르는 척 하는것 같다.. ㅠㅠ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정말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양심수 특별사면! 용기있게 결단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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