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가자 어메이샨!!!! 어릴때부터 쿵푸영화에서 그렇게 보던 신비로운 산, 언젠가 꼭 올라가리라 맘먹었던 그 산을 오늘 간다. 그리고 난 나혼자 좆빠지게 고생해서 산을 정복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늘의 도전이 뭔가 더 두근두근 거린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정류장에 갔는데,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이어지는 관광지라 금방 다음 것을 탈 수 있었다. 버스는 직빵버스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멈춰서 같은 방향의 승객을 더 태우면서 어메이샨을 향해 출발했다.
러샨에서 어메이샨까지의 거리는 꽤 가까워 기대심을 만끽하기도 전에 도착하고 말았다. 어메이샨행 버스는 어메이샨 앞에 떡 내려주는게 아니라 어메이샨시(市) 한가운데 덩그라니 내려주었다. 시는 크지 않았으나, 그래도 어메이샨까지의 거리는 꽤 멀어서 걍 여기서 밥이나 먹고 가기로 했다.
뭔 생각이였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패스트 푸드, 그것도 KFC같은거 말고 저기 눈앞에 보이는 존나 후즐근한 동네 햄버거집 음식이 먹고 싶어져서 곧바로 거기로 들어갔다. 메뉴를 보는데 다 뭐 거기서 거기고 특이한걸로 '기사(騎士)버거'라는 게 있어서 뭐 씨발 말고기라도 넣었던지, 아님 스테로이드제라도 뿌렸나 했는데 그런거 좆도 없는 '치즈'의 음역으로 '치스' 버거였다. 맛은 스티비 원더가 재료배합이라도 한듯 좆같았지만 배가 고팠고, 내가 선택한 것이라 걍 군소리없이 먹어치웠다.
밥먹고 이제서야 어메이샨의 지도를 꺼내들어 코스를 보기 시작했다. 코스는 몇개가 있었는데, 그중 제일 편한 것은 트라스트 붙인 노친네들을 위한 버스타고 올라가다 로프웨이로 정상가는 코스였다. 그건 나중에 오체불만족이라도 되면 갈 생각이고, 다른 코스로는 44km짜리와 64km짜리가 있었는데, 죽더라도 많이 보고 죽자는 생각으로 잠깐의 고민후에 64km를 선택했다.
64km....
썅.....그냥 뭐 가면 가는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약간만 더 깊게 생각해보니 존나게 긴거리였다. 군대행군보다 더 긴 거리고 산길. 점점 생각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져왔다. 이럴때 좋은 방법은? 대가리를 비우고 일단 출발하는 거다. 빼도 박도 못하게 말이지.
어쨌든 그러기로 한 이상, 2-3일내로 이 여정을 끝내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후딱 가방을 싸서 '기사버거'값을 지불하고 나왔다. 버스를 잡고 어느정도 가다보니 드디어 드디어 저 앞에서 웅장한 어메이샨의 모습의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 힘찬 발걸음으로 내려 앞의 매표소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또 짜증나는 체온검사를 받고 건강카드를 작성하고 들어갔는데 뭔가 이상하다. 알고보니 잘못내렸던 것이다.
거기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시외에서 곧바로 이곳으로 오거나 이곳에서 나갈 수가 있게 되어 있었다. 시내에 덩그라니 내려진게 좀 억울해서 물어보니 다행히도(?) 러샨발은 없다고 한다. 뭐 귀찮게 기껏 검사까지 받고 들어왔는데, 그리고 어짜피 여기서 청두로 다시 돌아갈껀데 짐을 이곳에 맡겨야 겠다 싶어 최소한의 짐만 따로 빼들고 나머지는 물품 보관소에 맡기고 진짜진짜로 어메이샨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룰룰루~가벼운발걸음...음..음....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다...어제 좀 무리를 했는지 좀 걸었는데도 힘이 들기 시작했다. 젠장. 지금...60분의 1도 못걸었을텐데..-_- 뭐 하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올라가기로 했으니 이를 악물어야겠다.
올라가는 코스는 아니였지만, 약간 옆길로 새서 '바오구오스(報國寺)'에 들리기로 했다. 별것도 없어보였는데 입장료는 의외로 15元으로 비쌌다. '그래! 이정도 받아쳐먹으니 뭔가 있을꺼야!'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으나, 역시나 별거 없었다. 뭐...가이드북에서는 역사적의미가 깊고 특이한 불상들이 있다고 쓰여있었으나, 뭐 봐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내 짧은 지식으로는 즐길 수 없어 15분만에 나와서 다시 길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쿵푸소년....없음..↓)
날씨는 가정통신문에 나올 정도로 산록이 푸르른 완연한 여름이였다. 조금 더 걸으니 옛날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었다는 '후호우스(伏虎寺)'가 나왔다. 뭐 이걸 짓고나니 호랑이가 사라졌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드는 동안 시끄럽고 짜증나서 딴데로 갔을꺼 같긴 했다.
어메이샨의 절이라고 하면, 동자승 수십명이 수련하고 몇명은 옆에서 하늘날고 하는 장면이 연상되는데 실제로는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사찰들이였다. 뭐 그렇다고 진짜로 쿵푸대련같은 걸 하고 있다고 믿진 않았으니 실망스러운 건 아니고. 하튼.
후호우스를 지나니 진짜로 산길같은 길이 나왔다. 케이블카 때문에 올라가는 사람이 드문건지, 사스때문인지 걸어올라가는 사람은 대단히 드물어서 존나 호기심많아 보이는 외국인이 걸어서 내려오는 정도였다. 그래도 군데군데 수건을 머리에 얹은 아줌마가 수다떨고 있고 아저씨들 다리 벌리고 단추풀르고 있는 시끌벅적한 산보다는 훨 나았다.
올라가는 길은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나무가 빽빽했는데, 이렇게 더운날에는 오히려 잘된 걸지도 모르겠다. 공기도 신선해서 도시에서 맡던 썩은 향수냄새와 배기가스냄새 따위와는 차원을 달리 했다. 크게 심호흡하는 것이 올라가는 에너지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올라가다 보니 매표소가 있었다. 산입구가 아니라 왜 이런데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짜는 아닌 모양이다. 이제는 존나 몸에 베어서 없으면 허전할 정도인 체온검사와 건강카드를 쓰고 나니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이마에 레이저를 쏘았는데, 쓸데없는 체온검사를 한번 더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들어가면서 주는 표를 보니 표에 방금 의자에 앉아 레이져를 맞던 내모습이 인쇄되어있는게 아닌가. 미리 얘기안해준걸 티라도 내듯 표정은 매우 좆같았다. 관광객을 위한 친절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내가 보기엔 '표값을 올리기 위한 개수작' 같았다.
조금 더 가다보니 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의외로 여고생들 다섯명이 나오고 있다. 재빠른 선구안으로 전부 흝어보았으나, 아쉽게도 노스트라잌 화이브 볼이였다. 음, 그중엔 폭투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이런 산중턱에서, 특히 이런 시기에 여고생 그룹을 본다는 것은 참 특이한 일이였다.
여고생들이 나온 절을 대충 흝어보고(별거 없었다) 다시 열심히 올라가다보니 그녀들이 보였다. 다섯명이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모습이 좀 안타까워 보였으나 뭐 그렇다고 어찌해줄 것도 아닌지라 그냥 발걸음을 제촉했는데, 뒤에서 모라모라 씨불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일본....'
들리는 것은 그것뿐이였다. 내 얘기를 하는 것 같긴 했는데, "앗! 제 얘기하는군요? 안녕하세요~저는 한국인이랍니다~친구들~!" 이럴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쌩까고 올라가는데 이번엔 큰 소리로 들려온다.
"오빠!!"
......오,오빠?-_- 잘못들었겠지 싶어서 다시 걸어가는데 또,
"스탑! 웨잇어모먼트! 오빠!!"
....또렷이 들렸다. 그렇게 부르는데 강간범처럼 토깔수도 없어 그자리에 멈춰섰다. 그녀들은 딱딱한 영어발음으로 내게 몇마디했고, 내가 중국어로 답하자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중국어로 주절주절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러샨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삐리들인데, 방학도 됐고 해서 소풍 겸 다섯명이 놀러 왔단다. 힘들어 죽을 것같은 표정을 하고 놀러왔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으나, 하여간 지네말로는 놀러 왔단다. (고삐리들의 뒷모습↓)
그녀들은 산중턱에 있는 '칭잉거(淸音閣)'까지 갈껀데 같이 가는게 어떠냐고 한다. 사실 지금 씨발 혼자 좆빠지게 올라가도 내일까지 정상 밟을까말까한 상황에 여고삐리 다섯명을 줄줄 매달고 간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조까! 니네는 내 인생의 훼방꾼이야!"하면서 떼놓고 가기도 좀 그렇고, 사실 칭잉거 까지 그다지 먼 것도 아니여서 그냥 같이 가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오빠'라는 단어를 아냐고 묻자, 자기네들은 HOT, NRG, 신화의 광팬이라면서 지네끼리 꺅꺅거렸다. 심지어는 지갑에 신화의 사진을 꼽아놓거나 NRG가 새겨진 손목밴드를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했다. 뭐...그렇게 신나게 자랑하고 좋아하는데 "야 야 걔네 좆밥이야 개좆밥. 우리나라 문화의 쓰레기 찌꺼기 침전물이야"라고 하기 그래서 "그, 그렇구나.."하며 얼버무렸다. 내가 혹시나 해서 HOT 중에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보통 강타를 대답했다.(안치셴-안칠현이라고 부른다) 그럼 누가 제일 싫어? 라고 묻자, 몇명이
"원시쥔!!"
이라고 대답한다........원시쥔...무뇌충이다. 아무리 중국빠순이지만 시시비비는 좀 가릴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안심이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중국빠순이들까지 열광하게 만드는, 쓰레기를 멋지게 포장하는 국제적 기술을 갖춘 이수만에게 가벼운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여고삐리 다섯명을 데리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역시 생각만큼 빡신 일이여서, 앞의 세명이 잘따라오고 있군 싶으면 뒤에서 두명이 헉헉 거리며 "자, 조금만 기운내!"하면서 부축 지랄을 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조금 더 가면 이제는 아까 앞서나가던 세명이 지쳐서 뒤에서 헐떡거리고 있는 것이였다. 젠장.
속도가 느려져서인지, 실제로 먼건지 칭잉거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멀었다. 몇명은 지금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나머지도 아까 나불대던 것과는 달리 말이 싹 없어졌다. 그래도 고등학교때 이렇게 다같이 산에 오를 생각을 하다니 대견해보이기도 하고 무모해보이기도 했다.
빽빽한 나무숲을 끝도 없이 지나니 저앞에 드디어 칭잉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칭잉거 누각 자체는 그다지 볼 건 없었는데, 그 누각 주변을 둘러싼 숲과 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귀에 거슬리게 들려오는 관광객의 목소리만 없으면 정말 조용하고 운치있는 멋진 곳이였을텐데.
안쪽에는 계곡이 있었는데, 맘같아서는 훌렁훌렁 다 벗어버리고 덜렁덜렁 흔들면서 첨벙첨벙 하고 싶을 정도로 덥고 찝찝했다. 그러나 그러지는 차마 못하고 우리는 다같이 신발을 벗고 계곡에 발을 담궜다. 아아아아아아아 씨발 존나게 시원했다. 존나게 추운 날에 따뜻하게 덥혀진 욕조에 몸을 풍덩 담글때와 맞먹는 쾌감이 온몸을 진동했다. 후우~
잠시동안 그렇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번개처럼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씨발 내가 여기서 뭐하는거지?-_-'
그렇다. 이것들은 여기서 이제 싸가지고 온 과자를 먹으면서 꺅꺅거리며 놀기만 하면 되지만 난 앞으로 존나게 먼 정상까지의 길을 가야할 사람아닌가. 여기서 이렇게 어울리고 있을 순 없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난 신발을 신고 난 빨리 가봐야겠다고 했다. (캬아아아....아미산 계곡물에~~↓)
'그래요? 아쉽네요~그럼 언젠가 또~' 이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지네끼리 뭔가 숙덕숙덕 하더니 놀랍게도 자기네들도 정상에 오르겠다고 한다. 이런 주제도 모르는-_- 아까 꼴을 보아하니 중간에 쓰러져서 '엄마~ㅠㅠ'할꺼 같은데 무슨...정상을...-_-
그리고 중간에 무슨일이 발생하면 '오빠' 인 내가 또 도맡아야 할텐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혼자 이 경관을 만끽하며 멋지게 정상을 밟고 싶었단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거절하기도 그래서 일단은 알았다고 대답해놓고 올라가다가 타이밍을 봐서 토까기로 했다.
뭐 어쨌든 이래이래 되서 또 같이 올라가기를 한참, 그래도 뭣 좀 먹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활기찬 모습들이였다. 가는 길에 '헤이룽쟝쟌따오(黑龍江棧道)'라는 곳이 있었는데, 검은색 큰돌이 있고 그틈으로 길이 나있는 곳이였다. 그리고 그 큰 돌에는 '나무아미타불'이 붉은 글씨로 쓰여있었는데, 이게 굉장히 뽀다구가 나서 옛날에 그...손오공이 깔려있던 큰 돌같은 주술적 이미지였다. 또, 이 돌틈으로 가늘게 들어오는 햇빛도 이러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고삐리들은 여기서 지친건지, 여기가 맘에 든건지, 내가 앞으로 가는걸 아랑곳하지 않고 멈춰서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난 같이 사진찍기도 뻘쭘해서 혼자 그 길을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온다. 이때 번뜩 든 생각.
'토까자!'
그렇다. 지금 존나게 올라가버리면 다시 볼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걷는 속도도 빠르니 말이다. 좀 미안하고 귀가 가려울 것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감상과 일정까지 포기해가면서 신화의 칭찬을 들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굿바이! 러샨고삐리!!!
나는 요몇시간동안 느그적느그적 걸어간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존나 빠른 속도로 슉슉 올라갔다. 모래주머니라도 떼낸 기분이였다. 이제 꽤 거리가 벌어졌다고 생각할때쯤, 앞에 원숭이 동상이 하나 나왔다. 헙! 여기가 그 유명한 어메이샨 야생원숭이 보호구인 모양이다.
참고로 이곳의 야생원숭이는 성격이 좆같기로 유명하다. 대가리도 좋은 듯 하여 단체로 관광객을 급습하여 먹을 것, 심지어 가방까지도 빡쳐간다고 한다. 특히 나같은 단신 여행객은 좋은 표적감이라고.
보호구에는 두가지 길이 있었는데, 하나는 보호구를 바깥쪽으로 도는 것이고, 하나는 보호구 내부에 직접삽입하는 길인데 난 어느쪽을 갈까 좀 망설이고 있었다.
일단 보호구 내부길은 꽤 길어서 지금 계획에도 좀 차질이 있을 것 같고, 원숭이한테 린치당하고 싶지도 않고....그렇다고 안보고 가기도 그렇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할머니 왈
"아이고~젊은이~!! 글로 가문 안뒤야!!!"
"....예?왜요?-_-"
"아이고..이 젊은이 큰일나겠구만...거기 원숭이들은 웜청 포악혀. 가방이고 뭐고 다 뺏어가. 게다가 맨몸으로 그렇게 들어가면...흐미~"
그러면서 할머니는 이거라도 가져가라면서 들고 계시던 대나무 지팡이를 하나 주었다. '이런 중학생좆보다 가는 막대기가 무슨 소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건 그렇고 코스는 워낙 그쪽 사람들이 막아서, 또 시간상으로도 유리한 보호구 바깥쪽을 돌기로 했다. 그러면서 간간히 나있는 내부길로 조금이라도 보고 오기로.
약간 긴장된 상태로 걸어나갔는데 의외로 원숭이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위에서 내려오던 사람말을 들으니, 지금 다 산 위쪽으로 올라가서 여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난 김이 새서 그냥 가려는데, 저 안쪽에서 한원숭이가 느릿느릿 걸어나오고 있었다. 꽤 늙어보이는 원숭이였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별 반응을 안보였다. 재밌어져서 바로 앞까지 가자 갑자기 표정을 돌변하더니 "씹새꺄! 여긴 넘지마!!"라는 표정으로 한번 으르릉 거리더니 다시 관심없다는 갈길을 갔다. 그러더니 보호구쪽에 있는 정자 위로 슉슉 기어올라가더니 꼭대기에 앉아 명상이라도 하듯 먼산을 바라봤다. (뭐생각하냐 너..↓)
그 모양이 재밌어서 사진을 찍고 다른 원숭이도 기다렸으나 아쉽게도 더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더 기다리기는 시간이 촉박해서 발걸음을 서두르기로 했다. 아까 할머니말로는 지금이 4시니까 좆빠지게 올라가면 6시반에는 '홍춘핑(洪椿坪)'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어메이샨은 워낙 큰 산이라 중간중간의 저런 사찰에서 숙박을 제공하고 있다. 근데, 그 간격이 거의 두시간 거리쯤 되서 서두르지 않으면 해가 져서 완전 산속에서 좆되는 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안그래도 나무숲 때문에 어둑어둑한데 해까지 지면 정말 맹수한테 뜯어먹혀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다리는 저려왔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바닥에 납작하게 눌러붙은 것들이 보였다. 별 신경을 안썼으나, 갈수록 많아져 쪼그려 앉아 분석(음-_-)을 해보니 원숭이 똥이였다. 헙. 음....이 덩은 갈수록 많아져 나중에는 눌러붙은 게 아니라 원형을 제대로 갖춘 완성품조차 출현했다. 점점 많아져서 속으로 그냥 '뭐야 이거..이러다 저기 커브길돌면 원숭이가 무데기로 있는거 아냐' 라는 생각을 장난스럽게 하고 커브를 딱 돌았는데, 헉! 씨발....
진짜로 원숭이들이 몇십마리가 떡하고 버티고 있는게 아닌가!!!!!!!-_-
난 무슨 씨발 번지수틀려서 조폭사무실을 찾아온 짱깨배달부처럼 한순간 얼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이 원숭이새끼들, 우리가 동물원에서 보던 놈들과는 인상부터가 달랐다. 미간에 좆같은 주름을 잔뜩 잡고 "아따 뭐여"하는 표정으로 날 일제히 꼴아보고 있는 것이였다.
난 정신을 가다듬고 어짜피 통과해야 되는 길이니, 씨발, 원숭이와의 17대1 혈투가 있더라도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하여 할머니의 대나무 지팡이를 꼭 움켜쥐고 한발한발 내딛었다. 늙은 원숭이들은 '뭐여..또 인간이구먼..'하는 표정으로 쓱 보고 말았는데, 혈기왕성한 젊은 원숭이들은 이를 드러내며 상당히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이 별볼일 없는 지팡이, 의외로 효과적이여서 원숭이쪽으로 갖다대면 움찔한다.
그래서 왠만한 원숭이들은 이렇게 작대기만 갖다대면 으르렁거리면서도 피해주지만, 한 원숭이만큼은 끝까지 나를 따라왔다. 꽤 젊어보였는데, 왠지 영화보면 혼자 객기부리다가 총맞고 뒤지는 스타일일 것 같았다. 난 뒤돌아 일대일로 몇번 필살작대기를 휘둘러서 그새끼를 힘들게 쫒아보내고 앞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싸이코같은 새끼는 그새끼가 끝이 아니라서 어떤 놈은 나무에 메달려 있다가 기습 플라잉 어택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눈치까고 작대기로 휘둘러 쫒아냈다. (덤비던새끼↓)
원숭이 무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눈에도 보스로 보이는 새끼가 나타났다. 원숭이지만 존나 위엄있는 모습으로 날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고, 역시 보스답게 옆에는 암컷 원숭이 몇마리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역시 잘나가는 놈들은..여자가 잔뜩 꼬인다...부러운 새끼..
난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새끼 건드리면 좆된다.'
그렇다. 이새끼뿐 아니라 주변의 아가씨들까지 건드리면 아마 원숭이의 비상연락체계가 작동해서 여기있는 새끼들 전부 나한테 덤벼들꺼다. 사람하고 17:1 로 싸웠다면 좀 뽀다구나지만, 원숭이새끼랑 17:1로 싸웠대봐야 웃음거리 밖에 안되지 않은가. 실제로는 더 빡신데..씨팔..
하튼 그래서 난 그새끼 눈에 거슬리지 않게, 만물의 영장, 원숭이의 진화형의 자존심을 구기고 살금살금 옆을 지나갔다. 그 놈은 몸도 안돌리고 눈으로만 내 행동을 좇고 있었고, 난 막대기를 움켜쥔채 만약에 있을지 모를 전투에 대비했다. 그러나 그새끼는 가소로운 인간하나쯤 큰 신경안쓰는듯 보내줘 난 무사히 그 원숭이 소굴을 통과할 수 있었다. (보기보다 존나 싸나운 새끼들. ↓)
조폭같은 원숭이와 그들의 똥이 난무하던 곳을 지나자 슬슬 해가 져가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전에 도착해야 할 것 같아 좀 더 속력을 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다리 근육이 저려왔지만 그래도 좀만 더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올라갔다.
정말 할머니의 말대로 6시쯤되니 홍춘핑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우. 드디어 드디어 쉴 수 있다....진짜 너무나도 힘든 여정이였다. 과연 얼만큼을 올라왔는지 지도를 한번 펴보았다. 29km!!!! 이야...-_-
참도 많이 올라왔다...그것도 산길을...스스로가 좀 대견스러웠다. 근데 그때 또 번뜩든 생각....그럼 얼마남은거지?....
35km-_-
커흨!!!!! 갑자기 힘이 빠졌다. 뭐 못올라갈만큼 힘든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빡시게 올라왔는데 아직 반도 못왔다니-_- 오늘 진짜 존나 푸우우욱 쉬는 수 밖에 없겠다.
잉춘핑에서의 숙박은 60元으로 싸지는 않았다. 듣던거보다는 비쌌으나, 뭐 그래도 200元이라도 어쩔 수 없이 자야되는 상황이니 바가지 안씌우는 것만 해도 다행이였다.
방 시설은 그야말로 절간으로 모든 숙박시설 중 가히 최악이라 할만했다. 문이 심지어 미닫이 문에 자물쇠로 걸어잠그고 열쇠를 소지해야 되는 시스템이였고, 방에는 아주 깔끔하게 침대 하나 책상 하나만 달랑 있었다. 그리고 위생상태도 안좋아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나는 들어가는 순간부터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뭐..지금은 이렇게 까대고 있지만 사실 그때는 이런 시설이라도 제공된 것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누울 수 있는 침대와 공동화장실이라도 씻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곳이 기뻤다. 가서 내 인생 베스트 샤워 3에 들어갈만한 시워어어언한 샤워를 때리고 방에 들어와 잠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한 30분 쉬었을까. 배가 고파왔다. 그것도 심하게. 하지만 너무나도 피곤해서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잤다간 내일 아침에 주지스님이라도 먹어치울 정도로 배가 고플 것 같아, 지친 몸을 질질끌고 나가서 뭐라도 먹기로 했다.
옷을 별로 가져온게 없어 내일 입을 티셔츠만 갈아입고 찝찝하게 나가 다행히 근처에 있었던 음식점에서 볶음밥과 훼이구오로우(제육덮밥같은 거)를 시켜먹었다.
정말..그야말로...환상적이였다. (묵었던 절...안은 좋게말해 소박했다↑)
음식도 괜찮았거니와 29키로의 산행 뒤 샤워 뒤에 먹는 음식...꿀맛이였다. 이럴때 과연 '포와그라'나 '제비집요리'를 먹으면 이것보다 맛있을까. 지금은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볶음밥이 어떤 요리보다도 맛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쳐먹고 있는데 밑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꺅꺅..어쩌구..저쩌구...."
헉!!!!!!!!!!!!!-_- 그 고삐리들이였다-_- 난 피할 새도 없이 그들과 정면으로 맞닥드렸고,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오빠!!!!! 왜 도망갔어요?!!!? 너무해요!!!!!#$%$^#$%^#$^"
아아아아 나보다 7살이나 어린것들 다섯개가 뭉쳐서 나에게 중국어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난 아,알았다고 하고 이따가 절에서 얘기하자고 했다. 으으으. 정말 대단한 고삐리들. 그렇게 죽을라 그러더니 나랑 얼마 차이안나게 이렇게 빨리 올라올 수가. 밥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존나 뻘쭘해졌다.
어쨌든 다먹고 올라갔는데, 이 고삐리들이 방에 안들어가고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예요...그냥..."
"왜?"
"......아니요...묵는데..돈이 모자라서요..."
"음..그,그래? 얼마?"
30元이 모자란단다. 30元...큰돈은 아니지만 막상 이렇게 모자르니 깎아달라거나 메꾸기 힘든 돈이다. 땡중에게 몇번을 졸랐는데 절대 안된단다. 씨팔새끼. 부처님의 말씀 배운다는 새끼가 고삐리 다섯이 와서 돈이 없는데 좀 깎아달라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다니..씹새끼..그새끼 분명히 뒤에서 고기쳐먹고 떡치고 그럴꺼다.
내가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고삐리들...미안한지 자존심상하는지 됐다고 한사코 거절한다. 아무래도 대책도 없으면서 그냥 버티는 것 같아 그럼 정말 모자라면 내방 찾아오라고 하고 난 방으로 들어갔다. "애취!!" 아아..씨발..재채기가 계속 난다. 짜증나게...씨발..휴지도 벌써 한통을 다썼다.
"똑...똑.."
"(볼것도없지만) 누구세요?"
고삐리들이였다. 30元...빌려주면 다음에 우편으로 꼭 돌려주겠다고 울먹이는 얼굴로 말한다.
"괜찮아..뭐..."
우편값이 더든다. 그래도 한사코 돌려주겠다고 하여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30元을 빌려주었다. 그리고 잠시후, 복도에는 다섯명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엉~엉~엄마아아아~!!엉~~엉~~!!!!!!!"
이해도 간다. 이렇게 올라온 것도 정말 힘들텐데 돈이 없어 땡중한테 거절당하고 외국사람한테 돈꾸고...그래 울어라 울어. 그러면서 크는거지.
그녀들은 방에 들어가서도 계속 울었고, 난 그녀들 다섯명이 흘리는 눈물보다 많은 양의 콧물을 계속 흘렸다. 씨발..이러다 수분부족으로 뒤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기걸려서 나오는 콧물은 누런색이지만 이런 알레르기 콧물은 에비앙처럼 맑다. 그리고 끝도 없이 줄줄줄줄줄 나온다.
고삐리들이 얘기라도 하자고 찾아왔으나, 난 이 콧물때매 대화할 상황이 아니였다. 아마 옆방에 슈퍼모델이 합숙하러 왔어도 찍소리 못했을 것이다. 아아아 썅..
이 절은 10시에 군대처럼 전부 소등을 하고 점호처럼 뭐라고 외치더니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뭐 잘됐다. 조용히 자자. 그리고....내일..씨발..35키로 걷자..-_-
(13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