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품이 큐티 ^ ^
{마가복음 6:1 ~ 6}
[사랑하시면 믿게됩니다]
1.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_으니라
2.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5.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원어사전:
안식일:savbbaton(4521, 삽바톤)
'안식일', 유대 달력에 있어서 안식과 여호와를 예배하는 날로 지정된 한 주간의 일곱째 날.
1. 삽바톤의 기원
헬라어 삽바톤은 히브리어 샵바트를 음역한 것이다. 이 히브리어의 기원은 불명확하다. 어원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샤바트(그치다, 끝내다, 쉬다)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명은 창 2장에 암시되어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함으로 일곱째날에 안식하시니라(와이스닐트).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 이더라(샤바트).
(b) 안식일은 인간의 안식과 예배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에 대하여 명령하셨다(출 20:8-11)
(c) 안식일에는 특별한 제물을 드렸으며(민 8:9 레 23장), 여호와 앞에 진설병을 진설하였다(레 24:8). 안식일일지라도, 예배 의식과 할례 의식은 거행되었다(레 12:3 참조: 요 7:22).
(d) 안식일은 언약의 한 표징이다. 안식일은 구약시대에서 할례의 표징과 같은 부류에 속한 것이다. 출 31:13, 출 31:17과 겔 20:12이하 절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이며 이방인과 구별하는 표징으로 주어진 것이다.
(e) 안식일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성을 지닌다. 가장 바쁜 시기인 밭 가는 시기와 추수기에까지 일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출 34:21)과 안식일을 범했을 때 사형에 처하는 것은(민 15:32: 출 31:14) 이스라엘 생활에 있어서 이 명령에 포함된 지대한 중요성을 나타내어 준다.
(f) 그러나 안식일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즐거운 날로 여호와의 성일로 여겨서 잘 지켜야 한다. 안식일을 잘 지키면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사 58:13이하; 사 56:2).
배척하다:skandalivzw(4624, 스칸달리조)
성내다, 실족케 하다, 범죄케 하다.
*(b) '성나게 하다, 불쾌하게 하다, 실족하도록 버려두다, 불화(분쟁)을 일으키다'를 의미한다.
선지자:
profhvth"(4396, 프로페테스)
선지자, 예언자 prophet, 선포자 proclaimer.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프로페테스(Pind., Hdt. 이래)는 항상 종교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는 어간 페(말하다, 선포하다)와 시간의 부사로서 '앞에, 미리, 사전에, 앞당겨'를 뜻하는 접두어 '프로'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것은 예언하는 사람, 미리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헬라 사상에서 예언자는 요약하면 신탁에 의하여 고용된 사람이며, 직접적인 영감으로 또는 소리나 징조를 해석함으로, 조언을 구하는 자에게 신들의 뜻을 선포하는 자이다.
신탁 예언자들의 실례로 텔피 신전의 프로페테스 집단이 있다. 델피의 무녀(Pythia)는 땅 위에 나 있는 구멍 위 삼각 제단 위에 앉아 있었다. 이곳으로부터 연기의 형태를 띤 "신탁의 영(프뉴마 만티콘)이 올라오며 그녀에게 영감을 준다. 이것은 월계수 잎(아폴로의 나무)을 씹음으로서 더욱 고조된다. 예언적 광란 상태로 흥분되고 다음에 신이 그를 통해 말하는 프로페테스(여자 예언자)가 된다. 그래서 그녀는 글롯솔랄리아와 유사한 수수께끼 같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터뜨리게 된다.
프로페테스는 난해하게 언급된 말들의 해석자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프로페테스는 델피의 무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판별력을 행사한다. 델피의 무녀는 아마 암호들로 말할 것이지만 프로페테스는 이 암호들의 형태를 제시하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전달한다. 신탁의 신 아폴로는 제우스의 참된 만티스(선견자)이며, 대변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디오스 프로페테스라고 부른다. 시인들, 애굽의 상류 계급의 사람들, '질문을 유도하는 자들, 철학을 가르치는 자들, 과학의 전문가들' 등이 프로페테스라는 명칭을 지니었다.
(주품이 주석: 이것은 방언 즉 못 알아 듣는 방언을 의미하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성경의 외국어가 아니며 이 역사적 기록에 의해 이방인의 문화에서 온 거짓 기도가 못 알아 듣는 소리 방언임을 알 수 있다 이 이상한 소리가 교회로 침투해 온 것은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그 누구도 이 거짓기도를 막지 못한 것은 한국교회 침체의 원인으로 남는다.)
# 인간의 심리는 참 알 수 없습니다. 남들이 어떠한 좋은 일을 하면 그가 새로운 일을 하였기에 칭찬하기 보다는 그가 그 새로운 일로 영광을 받기에 그 영광 받는 것이 배가 아프고 시기가 나서 그를 괴롭히고 훼방하는 일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그 일이 배려이고 기적이고 객관적으로 봐서 너무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그가 영광 받는 것을 배 아파 합니다. 그 일이 인간사에도 있지만 오늘 본문에는 신이신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에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도 촌에서와 같이 기적과 권능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어느 부류는 그분의 하시는 일을 믿고 다른 부류 특히 시기하는 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말씀, 이러한 것은 지금 성경으로 남기어져 있습니다. 말씀은 순수하게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하신일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기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 하는 자는 뭐뭐가 아니냐 복잡한 인간의 생각을 둘러대며 믿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칫 부인하지 않으려면 혼잡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아이들과 여인들이 주님을 따르고 믿고 안수 받을 수 있는 것은 수많은 학문용어와는 달리 매우 단순한 언어로서 주님께서 모든 남녀노소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전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학문이 짧은 사람도 눈먼자도 병자고 걸인도 아이들도 주님과 함께하면 주님을 믿을 수 있고 또한 말씀을 받는 자도 그 말씀하신 바를 순수하게 믿고 감사함으로 따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자신들이 만든 수많은 장로의 유전과 지식에 비춰서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철학과 같은 관습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비추어 생각을 하니 복잡해서 믿을 수 없고 그 철학과 일치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권능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참 진실은 진실로 다 통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묵상 속에 그 양심의 눈으로 그 영이 맑은 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 하나님의 예언의 응함과 계획들 자연 속에 창조주의 살아계신 손길은 마음이 진실한 자에게는 분명히 나타나고 보이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자기 부모를 아기가 모른다 하고 부인하고 도망가고 혼자 산다하면 그것은 그 아기에게 지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면 그 심판과 괴로움은 마치 생지옥이 펼쳐지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상급과 심판을 이야기하면 그대로 믿으면 되지만 어느 이단은 복잡 다단한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만들고 혼자 복잡하여 예수님의 단순한 진리도 받지 못하고 남에게 자신의 복잡한 생각을 전달하여 남도 복잡하게 하여 남도 믿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맙니다. 힘들게 전도하려는 사람도 지옥자식을 만들려고 하는 누를 범하고 맙니다. 그 허무한 인간의 아집과 고리타분한 학문을 버리면 되지만 자신의 자랑거리와 교만거리인 무더기를 버리지 못합니다. 여전히 자랑하며 자신의 지식이라며 선전합니다.
이에 예수님의 반응은 아쉬울거 없이 상대하지 않습니다. 저들이 믿지 않으면 그 믿지 않음에 심판이 따를 것입니다. 그를 따르는 자는 그 불신의 교만의 무리만 따를 것입니다. 믿으면 능력과 권능이 그 삶 안에 역사하고 믿지 않으면 아무 일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인 성경을 우리가 믿느냐 안 믿느냐에 지금은 달렸습니다. 성경의 이적과 기사와 말씀을 모두 순수하게 믿읍시다.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머리 쥐어 터지게 해야 믿는 것이 성경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주일학교 아이들도 따를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인간이 만든 지식으로 자기 덧에 걸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지 맙시다.
성경을 믿지 않는 다른 이유가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그 사람의 마음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삶의 지혜 속에 느끼게 됩니다. 내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본문과 같이 남과 이웃을 살리는 예수님을 감사하고 사랑하게 되고 그 사실을 믿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에 이웃이 잘되는 모습을 보아도 기쁘지 않고 시기 나는 심술보가 터지고 맙니다. 그것은 그가 사랑의 맘을 품지 않은 악인이기 때문입니다.
병자와 어린이의 고통을 보아도 별 무관심과 냉대의 마음의 악인이기에 그들이 고통을 당하여도 별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권능으로 사람들이 치유되기를 기뻐하는 선인이라면 그 예수님을, 기독교를 그 크리스찬을 사랑하고 모든 이의 칭찬 받기를 같이 기뻐하고 남의 잘됨을 기뻐하는 아름다운 선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이신 예수님을 그들이 품기를 바라거나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런 선행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이제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생을 얻기에 같이 기뻐하는 무의식적 진리의 맘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기독국가의 지원 속에 나라가 성장하고 북한의 무신론의 침공 속에도 방어를 해주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감사하는 사랑의 사람은 그들의 신앙을 본 받지만 시기하고 자기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칭찬 받기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악인은 그들의 신앙을 받으려 하지 않고 기독교를 비방하고 독설을 하기 까지 합니다. 짐승도 은혜를 알고 갚는데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받는 심판은 매우 심각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하나님을 의심없이 믿으시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또한 신뢰함으로 그 사랑의 선한 열매를 맺고 사랑의 일들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 안에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의 사랑과 믿음의 권능이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충만히 역사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믿는 여러분의 삶속에 일어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일을 성수하며 귀한 날을 보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말씀의 권능이 주일을 기점으로 더욱 날서게 하여 주셔서 힘 있는 주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귀한 본문을 묵상합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악한 지인처럼 힘써 자기가 만든 학문을 신뢰하기만 하고 주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가 되지 않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행하시면 말씀하시면 그 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단과 같은 바리새인이 열심히 말씀이 아닌 자기 열심을 따라 남까지 물들게 하는 오류 가운데 세상이 혼잡하게 되지 않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면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 맘을 항상 주님 사랑의 마음으로 녹여 주셔서 고집스럽고 시기하는 돌같은 마음 하나 남지 않고 다 녹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온 세상의 기초석이 되어 모두가 그 기준안에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모르는 북한에게 주님의 복음과 사랑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여 주시옵소서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는 요즘이오니 과거 하나되어 세계를 호령하고 방어하던 전성기를 회복하여 주옵시고 하나되어 세계의 화평을 주장하는 평화복음통일의 때를 앞당겨 주옵소서 권력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알고 실천하여 선한 기적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