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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의 명상

럽이 |2006.11.15 16:14
조회 14 |추천 0

길 위에서의 명상

홍일표

남산 한옥마을에서 인사동까지 걷는다
지하철도 버스도 다 버리고
걷는다. 내 발바닥과 길이 직접 내통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뜨겁게 만난다
타박타박, 기웃기웃 걷다보면
충무로를 지나 명보극장, 을지로에 이른다
을지로 3가에서 잠시 멈칫거리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이 꺾일 때 잠시 생각도 꺾어진다
일방통행으로 치닫는 생각이 자주 꺾여야
길눈이 밝아진다
아직도 어둡기만 한
生의 길눈,
두리번거리며 종로 3가역, 지하도를 거쳐 1번 출구로 나온다
탑골공원 방향으로 나와
길가 노점상들을 바라보며 걷다가
깜박 길을 놓친다
길이 나를 잊는 것인지
내가 길을 잊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외줄기 생각만 따라가다가
어느새 내 생의 절반이 지났다
탑골공원 앞에서 철컥, 다시 길이 발바닥에 붙는다
흩어지는 사념의 끝머리에
소주병과 함께 쓰러져 있는 노숙자
행인들의 시선 대신
한 마리 파리가 그를 열심히 어루만지며 핥는다
노숙자는 눈을 감은 채 희미하게 웃는다
어릴 적 고향 마을 어머니를 만나는가 보다
뒤란 장독대 옆에서 다사로운 봄볕에 취해 있는가 보다
낙원상가, 허리우드 극장을 눈앞에서 지우고
마지막 횡단보도를 건너
인사동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낯선 거리를 가로질러 다다른 504호
철 지난 가을이 아직도 심각한 표정으로 남아있는 곳,
돌아보면 한 생을 다 산 것 같다
잠시 길 밖으로 나와 신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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