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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THE MASK)

바람 |2004.01.31 23:36
조회 600 |추천 0

탈(THE MASK) - 1부(바람이 불면 물결이 인다)

 

- 인간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느 얼굴이 진짜이고
  어느 얼굴이 가면인지는 자신만이 알뿐이다.


1. 행운을 쫒는 불행

 

태동기 990년 겨울.

 

대동국(大東國)의 수도 태호(太湖)의 서남쪽으로 따라 내려가다 보면

불한강(佛漢江)이 거대한 용처럼 대륙을 가르고 있고, 그 꼬리 쪽에는

용의 둥지인냥 장신령산맥(長神領山脈)이 웅장하게 뻗어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형세나 위치가 풍수지리학적으로 최고의

명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그래서 대동국(大東國)의 수도가 태호(太湖)로

정해 졌다는 설도 있다.

태호가 위치한 곳이 용의 머리 부분이며 태호(太湖)에는 지명처럼 둥글고

거대한 호수가 있어서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은 형국이라는 것이다.

 

풍수적으로 좋은 명당이라서 일까.

태호는 동대륙(東大陸)에서 가장 사람이 많고 아름다우며 화려한 도시로 유명하다.
특히, 각산(角山) 아래쪽에 위치한 태동로(太洞路)사대문 거리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이곳에서는 없는 것이 없다고 자랑할 만큼 세상의 모든 물건과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사람들의 발길을 막을 수 없는지 사대문 거리는 지금도

사람들의 형형색색 옷들로 울긋불긋하다.
거리 곳곳에서 장사꾼들이 외쳐대는 소리와 거리를 가로지르고 달리는

말발굽소리,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가 뭉쳐져서 더욱 활기차게 보인다.

 

"자 안보면 후회합니다. 거기! 총각 자네는 꼭 봐야하네"

"자.... 싸게 팝니다. 이런 물건 어디가 이런 가격에는 못삽니다."

"아이고. 이놈들아 저리 가서 놀지 못하냐?"

"깔깔깔...."

 

이런 장사꾼이 외치는 소리와 개구쟁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는 태동로 사거리를
언제나 가득 메워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소음 같지 않은 소음이 된지 오래다.

이러한 소음을 뚫고 걸죽한 목소리가 사대문 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은
한 낮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아....작년에 왔던 각설이~이...죽지도 않고..."

 

누가 봐도 '저 놈 거지 새끼 구만.'하는 복장과 얼굴을 가진 한 소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걸죽하게 노래를 부르며 사대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거지 소년은 사대문에 모인 수많은 인간 물결을 아무 지장 없이 자연스럽게
헤치며 들어 올 수 있었는데 그것은 소년이 지나 갈 적마다 사람들이 코를
붙잡고 서로 피해 주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멀리서 본다면 황제라도 납시어서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는 것으로
착각 할 만한 광경이었다.

 

"자~ 왔습니다요. 왔어요. 죽지않고 또 왔어요. 아주머니 한푼만 줍쇼!"


거지소년은 사람들이 비켜주는 길을 흐느적거리며 들어와서 사람들을 붙잡고
구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풍기는 묘한 냄새에 사람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도망치는 바람에 쉽게 그 목적을 달성 할 수 없었다.

 

그때 거지소년의 눈에 한 중년인이 비단가게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것이 보였다.
거지소년은 중년인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거기! 아저씨. 한 푼만 줍쇼!"

 

중년인은 거지소년이 다가와서 말을 걸자 코를 붙잡고 인상을 쓰며 손짓을 해댔다.

 

"뭐야? 거지새끼 아냐! 저리 가라 냄새난다."

 

거지소년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헤헤. 그러지 말구 한 푼만 줍쇼!"

 

중년인 또한 거지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저리가! 임마! 너 줄 돈 없어!"

 

거지소년은 중년인이 코를 막으며 자리를 뜨려하자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구걸했다.

 

"헤헤. 한 푼만 줍쇼!"

 

"뭐야? 이 더러운 손 치우지 못해!!"

 

거지 소년이 자신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자 중년인은 화가 나서 소년을 걷어차

버렸다.

 

"아이쿠!!"

 

소년은 바닥에 넘어져서 아파서 죽겠다는 신융을 하며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고. 사람죽네...저 아저씨가 저를 때려죽이려 해요. 아이구 죽겠다."

 

"아니. 이 놈이.."

 

"아이고. 나죽네...나 죽어!"

 

소년이 바닥에 뒹굴며 계속해서 큰 소리를 쳐 대자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중년인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당황하여 소년에게 소리쳤다.

 

"이놈! 빨리 일어나지 못해!"

 

"아이구! 아버지. 저 죽습니다. 이 불효를 용서하세요. 흑흑흑!"

 

그러나 거지소년은 더욱 바닥에 뒹굴어 울어대며 좀처럼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말했다.

 

"아니. 적선은 못할 망정 왜 불쌍한 아이는 때리나"

 

"아. 그러게 말이예요. 불쌍하게"

 

모여든 사람들이 거지소년을 편들며 자신을 욕하자 중년인은 얼굴이 붉어지며
화가 났다. 자신은 그저 조금 밀친 것뿐인데 저 이상한 놈이 다치지도 않았으면서
술수를 부리고 있으니 속에서 열이나 미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당장 거지새끼를
더 때린다면 욕을 먹을게 뻔하니 이 자리에서 은근히 빠져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젠장! 더럽게 재수없군!"

 

중년인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가 자신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 ? "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바지를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보니 시커먼 얼굴이
하얀 이를 들어내며 씩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더러운 거지새끼가!'

 

거지소년은 중년인이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바닥에 딩굴어 우는 척하며
중년인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죽일 놈! 그 더러운 손 치우지 못해!"

 

중년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소년이 잡고있는 다리에 힘을 주어서
확 잡아 빼었다.

 

찌익-

 

너무 힘을 주어서 잡아 뺀 것인지 아님 소년이 죽어라 잡고 있어서 그런지
시원한 천 찢어지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저것봐! 하하하하"

 

"호호호. 바지가 찢어졌어. 호호호"

 

천 찢어지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거리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중년인의 바지가 반이나 찢겨나가서 털이 숭숭한 다리가 들어 난 것이다.

 

"으아아아...이놈의 거지새끼!"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거리에 퍼지며 들려오자 중년인은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바지 또한 자신이 얼마나 아끼고 아끼던 것인데 이렇게 더럽고 볼품없는 거지녀석
때문에 이런 창피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
이성을 잃은 중년인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저 앞에서 시커먼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얄밉게 웃는 놈을 죽을 만치 두둘겨 패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중년인은 자신의 모든 힘을 발끝에 모아 앉아 있는 거지녀석에게 날렸다.

 

"어이쿠!!"

 

무거운 힘이 실린 발길질이 다가오자 거지소년은 피하지 못하고 가슴에 얻어맞고
멀리 나가떨어졌다.

 

"저런!"

 

사람들은 거지소년이 허공에 떠서 멀리 나가떨어지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실 거지소년은 이런 박대를 한 두 번 겪는 것이 아니었다.
구걸을 나갈 때마다 항상 겪는 일이기 때문에 소년은 어떻게하면 맞는 것을
피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맞는 척하며 맞지 않지는 이미 몸이 익숙할 정도가
되어있다. 그래서 지금도 피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 위해 맞지는
않으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날아간 것이다.

 

"쯔쯔. 많이 다쳤겠는데"

 

"다쳤겠다. 저런...못된 사람 봤나"

 

여기저기서 거지소년이 맞고 날아간 방향을 보며 안타까운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나 중년인은 자신의 발길질에 거지소년이 멀리 나가떨어지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발을 찰 때 아무런 무게 감이 없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멀리 나간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천하장사도 아니고.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래 갈 수 없었다.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그를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뭐...뭐..냐? 난 잘못없어!"
 
사람 중 한 명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어린애를 그렇게 사정없이 발로 차냐?"

 

사람들은 금새라도 중년인을 향해 몰려들 것처럼 보였다.

 

"저...저 거지새끼가 내 옷을 먼저 찢었단 말야!"

 

"그래도 어린아이를 저렇게 패면 어떻게 합니까?"

 

중년인은 사람들이 험한 인상을 쓰며 자신에게 다가오자 두려움을 느껴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감추었던 단도를 꺼내 들었다.

 

"다가오지마! 어느 놈이든 다가오면 죽인다!"

 

중년인이 칼을 뽑아들고 위협하자 사람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가..가까이 오지마!"

 

사람들을 칼로 위협하며 중년인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저놈 도망가려한다. 잡아라!"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외치자 중년인은 깜짝 놀라 칼을 휘두르며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몇 사람이 앞을 막으려 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칼 때문에 겁을 먹고 비켜 줄 수밖에 없었다.

 

중년인이 사라지고 나자 사람들은 쓰러져있던 거지소년에게 다가갔다.

 

"애야 괜찮니?"

 

"예. 고맙습니다.."

 

다행히 거지소년은 다치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수그리며 인사를 했다.

 

"어디 다친데 없니?"

 

"예. 괜찮습니다."

 

거지소년의 불쌍한 모습을 보자 한 노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다행이다. 자 이 돈으로 아픈데 있음 치료해라"

 

그러자 그것이 불씨가 되어 모여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거지소년에게 돈을 주며
위로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이고! 불쌍한 것! 자 이 돈 가지고 먹을 것 사먹어라."

 

 불행이 행운이 된 것일까?

 

중년인에게 얻어맞고 돈을 벌었으니 그렇게 손해 본 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사람들이 알면 아마 거품 물고 기절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거지소년이 처음 중년인에게 접근한 것은 사실 돈을 구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욕먹고 구타당하기 위해서 접근한 것이다.
처음 거지소년이 중년인을 점찍은 이유는 몇 가지가 되는데 첫째는 광대뼈가

튀어나와 인색하며 사나워 성질이 더러워 보였고, 두 번째는 계속해서 그 중년을

살펴보니 돈은 많이 있어 보이는데 물건을 고르거나 살 때 보니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모습이 너무 노랭이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랭이며 성질더러운 중년인이 거지에게 적선을 할 리가 없으니 성질만 잘 건드려
놓으면 알아서 자신을 불쌍한 아이로 보이게 만들어 줄 것이란 계산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 것이다.

 

그 결과 거지소년의 오늘 수입은 무척이나 짭짤할 뻔했다.

 

그 불행스런 사건만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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