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90점 이상
혜림은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그를 보았다. 남들보다 키는 한뼘정도 컸으며 탄탄한 몸매또한 균형이 잡혀 있었다. 우선 그녀가 가장중요시 하는 허리부분을 쳐다보니 혐오스러운 배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일단 안심은 하였다.
‘오 괜찮은걸.. 검게 그을린 피부와 오똑한 코.. 저 붉은입술과 키스하면 딱 이겠는걸?’
그녀는 잠시 그남자와의 키스를 상상했고 잠자리까지의 생각으로 이어지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만 그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자 놀란 혜림은 시선을 돌려 버렸다
심한 떨림이 일어나자 혜림은 앞에 놓여진 물잔을 벌컥 들이키고는 다시 그남자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전히 그 남자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혜림은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일단 진정시키고는 예전부터 연습해온 아주 도도한 눈초림으로 그를 유혹하듯 슬쩍 올려다보았다.
-이런-
혜림이 시선을 둔 자리에는 그가 언제 자리를 비켰는지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였다.
“어이 혜림씨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아뇨”
“우리 혜림씨 김밥 아주 맛있게 싸던걸, 자주 부탁해요.”
“아...네...”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장이 크게 웃으며 그녀의 음식솜씨를 칭찬하자 주위의 남자동료들이 너도나도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는 자기들끼리 뭐가 즐거운지 연신 웃는것이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녀는 잠시 머리를 내저어보이고는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들어가자 역시나 고급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두명의 여자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고치고 있었다. 온통 명품으로 걸치고 있는걸 보아서는 어느 회장, 사장의 자녀들인 것 같았다.
“얘. 너 그 사람 봤어?”
“한국에 왔다던데. 정말 이였어.”
“내가 찜했어 그러니까 절대 넘보지마.”
“칫. 그 사람이 네 약혼자도 아닌데 뭘 그래. 그리고 신영이가 버티고 있는데 가능할것같아?”
“그건그래 에휴”
화장실에는 그녀들의 잡담이 한참동안 끊이지 않는 것이였다. 그녀가 볼일을 다보고 나오자 그녀들은 담배를 피고 있었고 혜림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듯 하더니 자기들끼리 숙덕숙덕 귓속말을 하는것이였다.
‘이런 망할’
혜림은 순간 끓어오르는 욕을 참아내고는 밖으로 나왔는데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꾸고는 바람도 쇨겸 발코니쪽으로 나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었지만 안의 열기가 너무 강해 차라리 이쪽이 나은 듯 싶었다.
‘역시 사람은 돈 많고 봐야해. 부모 잘만나 좋겠다. 이것들아.’
잠시 혜림은 시골에서 농사짓고 어렵게 사시는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자 마음 한구속이 아려오는 듯 했다. 평생을 술만먹는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하고도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엄마였는데 이런곳 한번 모셔 오지 못했다는게 가슴아팠다.
"밤바람이 숙녀분에게 너무 차갑지 않나요?“
갑자기 들려오는 누군가의 소리에 혜림은 깜짝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조금전 상상속에서 그의 바지를 벗기려던 그 남자였다.
“괜..괜찮아요.”
순간 혜림은 자신에게 짜증이 나고 말았다. 왜 말은 더듬고 난리란 말인가....
“재미가 없죠?”
“네..?”
“왜 날 계속 뚫어져라 보셨습니까. 저에게 관심있습니까? 그럼 머리가 아픈데”
순간 혜림은 이 남자가 얼굴은 잘생겼지 인간성은 왕 싸가지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남자일수록 도도하게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음.. 많아요. 별 볼일 없는 남자들만 있나해서 둘러봤는데..음...”
“별볼일 있는 남자를 보았단 말이군요”
“음..그런건 아니지만..”
하고 싶어던 말이 뒤죽박죽 된채 생각이 나지 않자 얼굴이 달아올랐고 재빨리 다른 쪽으로 시선을 보고 말았다.
“전 남자에 대해서 잘알죠. 당신같은 남자요.”
“제가 어떤데요?
“음 싸...아니 잘난 맛에 살겠죠. 일단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을거고 여자들이 많이 따를테죠.”
그녀는 자신의 말이 심했나 싶어서 그를 살짝 쳐다보았는데 화가 난 표정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얘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는 듯 했다.
“제가 잘 하는게 뭔줄 아나요? 남자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거에요. 보통은 70점 정도로 주는데 마음에
안들었다 싶으면 팍팍 깍아내리죠.”
“오~그런가요”
“네. 제 친구들은 일단 저에게 자기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요. 제가 점수를 매겨주거든요. 아니다 싶으면
50점 45점이라고 얘기하죠. 이건 비밀인데요. 일주일전에 20점도 있었어요.큭큭”
“하하”
그녀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도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난 몇점인가요?”
“음..글쎄요. 옷 입는 스타일로 봐서는 90점은 주고 싶어요. 글구 체격또한 괜찮구 얼굴생김새또한 높은
점수를...윽”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슨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듯이 입을 다물었고 그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하는 것이였다.
“그럼 90점은 넘겠군요. 음..침대 속에선 90점 이상이 될듯한데.”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한 혜림은 너무나 모욕적인 말에 의해 그를 노려보았고 이성을 잃은 듯 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미친놈 아냐. 침대 얘기를 왜 하는거야 나 참, 날 유혹하는 것 같은데.. 난 절대 그런거에 안넘어가.”
혜림은 씩씩거리더니 옆에 서 있던 그를 밀치고는 발코니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갑자기 뒤에서 그가 자신을 부르자 혜림은 그 자리에 서서 홱 뒤를 돌아보았다.
“왜 불러요”
“저기..스타킹...”
“스타킹 뭐요.”
그가 손가락을 가리켜 자신의 다리 부분에 가져다대자 그녀는 아래로 쳐다보았다.
-세상에-
쫙.....두줄로 선명하게 고가 나있는 스타킹을 쳐다보자 너무나 창피하여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아무
래도 자신의 방안에 버릴려고 두었던 스타킹을 신고 왔던 모양이였다.
‘으윽 이 바보 머저리 똥개 축구’
그녀는 얼른 쓰레기통에 자신의 검은색스타킹을 버리고는 그냥 맨다리로 밖으로 나왔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혜림이 자리에 다시 돌아오자 속모르는 김천식이 한마디 거드는 것이였다.
“이혜림씨 스타킹이 살색으로 바뀌었네”
“으악 스트레스 받아 이게 뭐야 아 짜증나”
혜림은 추위로 인해 덜덜거리며 자신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문을 닫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뛰어오는 것이였다.
“잠시만요. 같이 탑시다.”
그는 아니나 다를까 옆집총각이었다. 그는 양손가득 라면이며 과자며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추리링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민석이 누나되시죠?”
“네..네”
혜림은 어설프게 그에게 인사했다.
‘쳇 내가 누군지 알면서 인사하다니 쯧쯧..백수라 먹을것이 잔뜩이네’
그녀는 비웃듯이 그를 한번 훑어보고는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 다녀오시나보네요”
“아 네”
‘나에게 신경끄거라 아가 넌 내 타입이 아니다’
혜림은 얼른 문이 열리기를 바랬고 그가 또다시 질문할까봐 얼른 자신의 아파트문을 열고는 안으로 확 들어가 버렸다.
혜림이 인상을 쓰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민석은 누나의 눈치를 보더니 방으로 바로 들어가버렸다. 이럴때 조용히 있는게 상책인지라.
곧 자신의 침대에 가방을 던진 혜림또한 쓰러졌고 혼자 씩씩 거리기 시작하였다.
“나쁜놈. 침대에서 90점이 넘는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