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적기 시작한 이유는 너와 만나던 동안 이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음이다. 너는 내 첫사랑이었다. 친구놈이 애처럼 졸라대 어쩔 수 없이 갔던 도서관 열람실서 책에 집중하던 네게 첫눈에, 그리고 처음으로 반했다. 또래치곤 단정한 교복과 연한 화장끼가 그렇게 예뻐보일 수 없었다.
연애는 해봤지만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씩이나 되었는데도. 누군가의 사소한 것들마저 예뻐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첫사랑을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중 열병처럼 앓기 시작했다.
너는 도서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절대 친구를 데리고 오진 않았다. 너는 공부에 목숨을 걸고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 역시도 도서관을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용기는 마음 먹어 나는 게 아니었다. 용기는 사랑을 하면 났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용기는 저절로 따라왔다. 처음으로 음료수를 줬다. 직접 건네줬다. 이어폰을 끼고 인강을 시청하고 있던 너를 방해하기 싫었지만 그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쪽지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놨다. 다른 말은 적지 않았다. 글씨체가 지저분해서 글을 적기가 사실은 좀 꺼려졌다. 너는 잠시 멍해있다 음료수를 받아들었고, 나는 처음으로 온몸에 열이 번지는 듯한 감각을 알았다.
연락이 온 건 다음날이었다. 음료수가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날 마음은 없다고 했다. 솔직하자면 울었다. 친구란 것들이 옆에서 나를 놀려대는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충동은 그날 새벽에 찾아왔다. 자려다가 문득 들었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떨리는 손 부여잡고 문자를 하나 보냈다. 만나주지 않아도 좋으니, 도서관에서 밥을 먹을 땐 나와 같이 먹어 달라고 했다.
네 대답은 느렸다. 응 알겠어. 짧고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내 심장을 느릿히 떨어트리기엔 충분했다.
첫날은 기억도 안 난다. 속이 온통 울렁거렸다. 아마도 바보같이 질문만 해댔는데, 너는 모두 대답해주었다. 전에 네가 친절하고 상냥한 아이라는 걸 어림짐작했었다. 그날 확신했다. 너는 이다지도 다정한 아이다.
밥은 계속 같이 먹었다. 떨림은 차차 설렘과 익숙한 부드러움으로 발전했다. 나는 조금이나마 적응이 되고 나서야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내 쥐어짜낸 농담에 복사꽃 같은 웃음을 터뜨리던 너를 기억한다.
조금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너는 더 사랑스러웠다. 그저 예쁘기만 하던 네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지기까진 얼마 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고백했다. 2학기 기말고사 전날이었다. 사귀어달라고 했다. 누굴 만나고 싶단 마음이 없다던 너였는데도 나는 고백했다. 네 얼굴에 물들던 환한 웃음이 부끄럽다는 듯 가끔 붉어지곤 했음이 이유였다. 그게 내 끓는점이었다.
대답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들었다. 그 대답이 얼마나 고왔고 심장을 쥐고 흔들었는지는 굳이 적지 않는다. 나는 그순간 너를 미친놈처럼 사랑했고, 내 생 다시 올 법한 애정이 아님을 경험했다.
우리의 데이트는 항상 도서관이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네가 내 옆에 앉기 시작했단 거다. 너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멀리 머물렀던 내 옆으로 네가 먼저 다가왔다. 모든 여백을 충족한듯 한 기쁨이었다. 네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 네가 정말 내 여자친구라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었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선 따위는 없었다. 점심, 저녁, 쉬는시간 할 것 없이 함께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을 적엔 겨울이 모두 지나있었다.
너와 함께 있는 곳이 이젠 도서관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토록 설렜다. 같은 교복을 입음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지 그때 알았다. 함께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꽃이 피었던 계절을 기억하는가. 네가 들꽃들 만개한 교정에서 읊었던 시가 내 인생에 얼마나 젖어들었는지 알긴 아는가. 네가 작가가 될 거라고, 시인들은 사람의 마음을 잘도 적신다고 고백했을 때 내가 문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단 걸 알고는 있었나.
나는 네 마음에 젖어들고 싶었다. 설령 우리 헤어진대도 시로 네 마음에 물들고 싶었다. 내게 너는 그 정도의 존재였고 네 언어는 그 정도의 여파였다. 그 시절 벅차게 너를 사랑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써내려간 시가 네게 전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시가 새벽의 너를 울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페이스북에, 잡지에, 책에. 네가 새벽에 들락날락 할 법한 앱에.
그 시절 상처주고 상처받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우리를 써내린 적은 없다. 내가 남긴 시 모두는 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회상한다.
공부하다 막히면 연필로 책상을 조용히 두드리던 습관, 흘러내린 머리칼을 부드럽게 정돈하던 손길, 웃을 때 패이던 보조개, 커피를 사와서 건넬 때마다 입모양으로 “땡큐, 잘 마실게” 하던 너.
나는 네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너의 특별하고 자잘한 부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쓰고 싶었다. 네 습관들이 문득 생각날 때마다 시를 적어내렸고, 결과 나는 아직까지 네 섬세한 부분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기억한다.
네가 얼마나 변했고, 잘 지내고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네 의중을 모르는 것이 아님이다. 그렇기에 묻지 않았다. 동창놈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목구녕이 꽉 막히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차오르지만 꾸역꾸역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몇달 전에 들은 누군가의 결혼 소식은 내 첫사랑의 결혼 소식이었다. 너무 이르다 싶었다. 내게 사랑을 가르쳤던 첫사랑의 결혼. 그시절 자주 상상하곤 했던 순백의 신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식장에서 축복받을 너. 모든 것이 너무 일렀다.
그날의 나는 시를 쓰는 걸 포기했다. 손에 연필이 잡혀도 자꾸 도망쳤다. 억지로 붙잡고 종이에 갖다대도 미동 하나 없었다. 이제 괜찮아졌다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나는 오만했다. 정확히 소식을 들은 날 새벽,
나는 종이 위에서 그리움에 무너졌다. 내 사랑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었다. 네 존재는 무뎌지는 것이 아니었다.
네가 원망스러울 리 없다. 나는 사랑이 원망스럽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날에 체감했다. 몇년을 잔상만 붙잡고 곱씹던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제자리였고, 내 사랑은 제 길을 걸었다.
그래서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너는 내게 모든 걸 가르쳤다. 나는 네게서 사랑을 배웠고, 전에 없던 소중함을 배웠으며, 어른이 되는 법마저 배웠다. 무너져도 무뎌진 척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고, 미워하지 않고 후회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네가 내게 준 모든 것들은 형체가 없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겨우 나를 받침한다.
그래,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나도 어른이 되겠다는 말을. 결혼 축하한다는 말을. 직접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네가 혹시 읽었을지도 모르는 시가 내 손에서 탄생했다는 말도.
그날들의 너는 너무도 예뻤다. 여전히 예쁠 거라 확신할 정도로. 네가 꽃들이 예쁘다 하여도 너만은 못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갈수록 느글거린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말하진 않았지만 그랬다. 꽃은 네 웃음을 자아내는 용도였지 결코 너보다 예뻤던 적이 없었는데.
웨딩 드레스를 입은 네 모습을 자주 상상하곤 했지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청첩장은 끝내 오지 않았지만 가고 싶던 적은 없었고. 네가 결혼한다던 그날 꿈을 꿨다. 행복해 보이더라. 신랑 얼굴이 흐릿했어서 네 신랑이 어떻게 생긴지는 모른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매력적이겠거니 한다.
네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인스타는 비공개 계정인 것도. SNS를 즐겨하지 않았던 네게 이 글이 전해질 리 없단 것도.
이 글이 전해지지 않기를 빈다. 너는 나를 새까맣게 잊었기를 빈다. 네 결혼생활에 걸림돌따위는 없기를. 영원히, 그렇게 행복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결국 너도 내게서 잊혀지기를. 네 결혼이 내겐 지우개가 되기를.
언젠가 너를 가장 사랑했던 봄이 돌아올 때 나도 온전해지기를. 너 역시도 잊혀지는 것이라 다행이라고 안도할 수 있기를. 봄 오면 손잡고 철쭉 구경 가쟀던 고등학교 3학년,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우리가 빛바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