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단 방탈 죄송해요 ㅠ
야심한 새벽에 잠은 안오고 요즘 우기라 비는 엄청오고해서 센치해진 감성으로 제 인생썰 좀 풀어볼까 합니다
우선 글이 길어질 예정입니다 원치않는 분들은 패스해주세요
전 82년생 올해 37살이고 9개월 여자아기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그러나 태어났을 때부터 20대까지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호주, 퍼스라는 지역입니다
전 서울에서 태어나서 20살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라는 작자는 알콜중독에 툭하면 폭언 폭력을
일삼곤 했던 완전 미친 싸이코 XX였습니다~!
그런 아빠를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제가 중학교 때
사춘기가 와서 한참 예민해져 있을 무렵 엄마는
편지한장 달랑 써놓고 집을 나가버리셨어요 ㅠ;
자기 기분 거슬리게 했다고 완전 개패듯이 절 때리고
한겨울에 팬티만 한장 달랑입힌채로 집에서 쫓겨난적도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옆집 아줌마가 그걸 보고 저 대신 경찰에
신고해 주신적도 몇 번 있었을 정도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완전 1급 아동학대 수준이었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었던 2001년도의 어느 날 밤에 전 아버지라는 새끼의 지갑을 뒤져서 현금 30만원을 들고 그 집에서 미친듯이 야반도주 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엄청 쳐맞고 충동적으로 그랬던거 같아요..
그 길로 전 무작정 서울역으로 가서 밤기차를 탔습니다
그 새끼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쳐야했기에
정말 그냥 아무생각없이 기차 종착역까지 가서 내렸어요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목포라는 곳이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정처없이 해매다가 운좋게 숙식제공 되는 빵집알바를 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년 정도의 기간동안 알바를 하면서 제빵사 자격증도 땄었어요
다행인지 사장님 부부도 넘 좋으셔서 제가 부모님처럼
잘 따르고 잠시나마 사람답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작자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귀신같이 제 연락처를 알아내서 지금 목포로 내려오고 있다는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미스터리에요 대체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건지..
순간 저는 덜컥 겁이났고 이 사실을 사장님 부부한테
알리고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한채 부랴부랴 짐을 싸서
일단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찜질방을 전전하며 또 정처없이 해매다가 어느날 우연히 한 서점앞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관련된 책을 발견하고 뭔가에 홀린듯 안으로 들어가서 한 시간동안 그 책을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전 그 때까지만 해도 호주라는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었어요
그런데 그 책을 읽고 호주라는 나라에 뭔가 운명같은게 느껴졌습니다
푸른하늘, 코알라, 캥거루가 잔디위에서 막 뛰어다니는 모습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곳을 가면 저 새끼가 더 이상 절대로 절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강하게 들어서
바로 그 길로 그 책에 나와있는데로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고 비자신청을 했고, 승인메일을 받자마자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였습니다
그 때 당시 제 수중에는 일년동안 빵집 알바해서 모은 300만원이 전 재산이었어요
그렇게 무작정 어찌보면 넘 무모하게 호주, 브리즈번이라는 도시로 떠났습니다
완전 제 인생 전부를 걸고 맨 땅에 헤딩하듯이요..
그 때가 21살 2002년도였고, 한국은 한창 월드컵으로
시끄러웠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할 줄 아는 영어라고는 Hi, Hello,
This is a pen, My name is.. 진짜 이정도..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브리즈번 공항에서부터 의외로한국말이 많이 들렸고 한국사람들을 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아빠라는 인간 빼놓고는 전 인복은 좀
있었나 봅니다..
우연히 비행기 제 옆자리에 앉게되서 브리즈번 도착할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나누며 친해진
어떤 천사같은 한국 아줌마분이 집구하는 법,
핸드폰 개통하는법, 은행 계좌 개설하는 법, 일자리 구하는 법 등등 대충 이런저런 호주의 라이프들을 알려주셨고 난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만 한다고 사정을 대충 설명 드리니 브리즈번 씨티에서 기차로 하루를 꼬박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케언즈라는 작은 도시 근처의 토마토 농장을 추천해주시더라구요
돈 버는 게 목적이면 일은 고되고 힘들어도 씨티보다는 농장이 훨씬 더 많이 벌수 있고 또 일은 단순반복작업이라 영어는 딱히 못해도 상관없다며..
무슨 깡이였는지 전 브리즈번 공항 내리자마자 그 아줌마가 알려주신데로 기차를 타고 케언즈에 있는 그 토마토 농장으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운 좋게도 마침 토마토 시즌이라 일손이 딸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바로 그 농장에 취직이 돼서 낮에는 토마토 피킹을 하고밤에는 농장안에있는 쉐드장에서 패킹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농장에 한국인은 물론이고 아예 아시안이라고는 저 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 유럽이나 중동 등지에서 저처럼 워홀 온 워커들..
일은 듣던데로 단순반복 작업이라 엄청 쉬웠습니다
전 영어는 못해도 눈치껏 알아듣고 일은 하루만에 다
파악했어요
농장주가 여지껏 일한 워커 중에 제가 손이 가장 빠른것 같다며 '머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더라구요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인정받은 느낌이라
넘 기분이 좋았습니다~!
밤 낮으로 하루에 세 네시간밖에 못자가며 미친듯이
토마토랑 씨름했고 어찌하다보니 세컨비자도 따서 호주에서 총 이년을 있을 수 있게 됐어요..
남자들도 6개월 이상을 버티기 힘들다는 그 농장에서 꼬박 일년을 오로지 돈 벌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 농장을 뜬 이후로 지금까지 토마토를 한번도 먹은적이 없는 거 같아요..
보기만 해도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납니다 ㅠ;
어느 새 제 통장에는 일년만에 4만불(약 4천만원)이라는 돈이 모여있더군요..!!
한국이었으면 절대 만지지도 구경하지도 못했을
돈이었습니다
워홀 비자 세컨이 시작되었고 돈도 어느정도 모았으니
그 농장을 떠나 브리즈번, 시드니, 멜번, 골코 등 호주 주요 도시들을 돌면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동안 아버지라는 새끼한테 학대 당하며 고생한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미친듯이 먹고 마시고 놀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내친김에 옆나라인 뉴질랜드까지 다녀왔었어요..
그러면서 여러 다양한 사람들도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을 통해 호주 서부라는 곳을 듣게 되어 서호주에 갑자기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다시 호주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브리즈번에서 6시간 정도 떨어진 아예 반대편 서호주 '퍼스'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
일단 제 영어실력이 너무 부족하고 형편없음을 느끼고퍼스라는 도시에 오자마자 어학원을 등록하여 낮에는 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저녁에는 한국에서 땄던 제빵사 자격증을 영문본으로 번역 공증받아서 이력서를 작성하여 레스토랑, 카페마다 돌면서 뿌리고 다녔습니다
하루에 200장 정도씩 프린트 복사하여 뿌리고 다녔던 거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한 5성급 호텔 안에 있는 고급 카페겸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와서 드디어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레스토랑 디저트 섹션에서 제빵 보조일을 하게 되었고 저는 주로 설거지등 허드렛일을 하며 케잌 등 디저트만드는 법을 어깨 너머로 보고 익히며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퍼스에서 알고 지냈던 친한 한국 동생이 미드 '프렌즈' 한 영 자막이 동시에 들어있던 전 시리즈 동영상이랑 만화 '심슨'동영상을 줬었는데 그 파일이 저에게는 완전 구세주같은 존재였습니다
영어의 문법을 비롯해 기본기조차 아예 없던 저는 프렌즈를 이백번도 넘게 돌려보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노트에 필기해놓고 일하는 중간중간 틈틈히 아예 통째로 외우고 다녔습니다
무식한 방법일지 모르겠으나 저에게는 이 방법말곤 달리 공부할 시간도 없고 방도를 못찾겠더군요..
신기하게도 몇개월 그렇게 공부하고 어학원에서도 계속 외국인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 귀가 트이는지 오지들이 아무리 빨리 말한다해도
대부분의 문장들이 통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스피킹도 어느 덧 유창하지는 않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웬만큼 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구요..
그러다가 어느 새 워홀 세컨비자기간도 다 끝나가서 한국을 돌아가야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헤드 쉐프한테 비자가 다 돼서 그만둬야 할 거 같다고 말하니, 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가 비자 스폰을 해줄테니 이곳에서 영주권을 따서 계속 자기네들과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하였고 한국에 돌아갈 마음이 1도 없던 저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여 워홀비자에서 학생비자로 바꾸고
2004년도에 'TAFE'이라는 정식 제빵기술학교에 입학해서 그 곳에서 학교도 졸업하고 2008년도쯤 드디어
고생고생 끝에 4년만에 호주 영주권을 따게 되었습니다..!!
십년 간을 그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일한 끝에 2014년도 즈음에는 제가 그 레스토랑 헤드쉐프가 되었고, 차도 사고 정원이 딸린 예쁜 집도 사게 되었습니다 물론 대출은 좀 받았지만요..
그리고 2015년도..
그 당시 26살, 저보다 8살이나 어린 어떤 한국남자애가 울 레스토랑에 제 밑 한참 신입으로 들어와서 일하게
됩니다
군대 갔다가 전역하고 4학년 남겨두고 휴학하여 잠시 워홀을 왔다고 합니다
일도 센스있게 너무너무 잘하고 솔직히 키도 크고 잘생겼고 특히 해맑게 웃는 눈웃음이 넘 예뻤습니다
그 동안 삶이 넘 팍팍해서 연예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살았던 저에게 운명처럼 무언가가 다가온 것이 느껴졌습니다
사심을 가득담아 제 친동생처럼 넘 잘대해줬고
제가 한국돌아가지말라고 붙잡아서 이 남자애도 제 마음을 받아줬고 일년 연애끝에 2016년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전 전라도와 인연이 참 깊은거 같아요..
아버지라는 작자를 피해 도망간 곳도 전남 목포였고
지금 현재 저희 남편도 전라도 광주 출신이네요
암튼 결혼식만 하러 그 당시 홀리데이를 받아서 잠깐 한국을 들어갔었습니다
14년만에 온 한국..
눈부시게 발전되고 좋아졌더군요
제가 살았던 곰팡이 냄새 퀘퀘한 반지하였던 집도
그 동안 재건축을 했었는지 흔적조차 없어지고
신축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뭔가 알수없는 마음이 울컥하고 복받쳐올라 유년시절 학대당하며 살았던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 한참을 그렇게 목놓아 울었었어요..
정말 연락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혼주석에 애비라는 작자는 앉아 있어야 될 거 같아서 큰 맘먹고 이리저리 수소문을 했었는데 글쎄, 어떤 사기사건에 휘말려서 감빵에 들어갔다는 군요..
사기도 크게 치셨는지 십년넘게 복역해야 한답니다
그 순간 범죄자의 딸이 된 제 처지가 너무 기가 막혔고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시부모님과 남편보기 넘 창피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고맙게도 남편은 이 사실들을 다 이해해주고 감싸주었고 결혼식도 무사히 치르고 다시 퍼스로 돌아와서 예쁜 아기도 낳고 지금까지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가끔 악몽을 꿉니다
어렸을 때 학대당했던 그 끔찍했던 세월들과 수치심들이 제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저의 이런 안좋은 감정들이 울 예쁜 딸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가끔 불안해하며 마음을 다잡고 잡으려고 애써봐도 완전히 떨쳐지지가 않아요
정신과 상담을 받은적도 있었는데 크게 효과는 없더군요.. ㅠ;
제 마음속 멍이 어느순간 가슴한켠에 완전히 자리잡고 사라질 기미가 안보입니다
부분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렸음 좋겠어요 ㅠ
이 머나먼 만리타국까지 와서 살고있는데도 불구하고
끔찍했던 기억들 수치심들이 가끔 생각나서 다시 과거 한국, 그 시간 공간에 있는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ㅠ;
저의 이런 마음은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