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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임금과 하멜 이야기...

키다리아저씨 |2018.07.20 18:59
조회 191 |추천 1

 

 

 

 

 

 

 

 

 

 

 

 

 

 

 

 

 

 

 

 

 

 

 

 

 

 

 

 

 

 

 

 

 

 

 

 

 

 

 

 

 

 

 

 

 

 

 

 

 

 

 

 

 

 

 

 

 

 

 

 

 

 

 

 

 

 

 

 

 

 

 

 

 

 

 

 

 

 

 

 

 

 

 

 

 

 

 

 

 

 

 


제주도를 1987년 여행한 이래로 2007년 5월까지 9번을 다녀왔으니

2년에 한 번은 갔다 온 셈이다. 항상 구성원이 달랐고

목적도 조금씩 달라 9가지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이제 돌이키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갈 수 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역사였다.
2007년 5월 20일부터 5월 23일까지 수학여행에 동참하였다.
수목원, 조랑말 타보기, 자연이 빚어 놓은 경관에 심취하였다.
숙소는 제주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애월 산속에 있는 리조트에서 지냈다.
워낙 산중이라 조용하였고

사방에 들어선 목장에는 말들을 방목하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행 2일째였다. 오전에 여지미 식물원에서 수천 종의 희귀식물을 구경하였다.

무릉도원에 온 느낌이라 몸과 마음이 하늘을 날랐다.

점심을 먹고 하멜전시관에 도착하였다. 산방산이 둘러쌓여 있고

눈앞의 바다는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하멜상선 “스페르웨르호”와 네덜란드 “전시관”을 찾았다.

하멜 상륙 35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배가 “스페르웨르호”이다.
헨드리크 하멜은 18살 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서기가 되어

무역선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폭풍우에 밀려

제주도 서쪽 차귀도 해안에 좌초하였다. 서양배가 두번째로 한반도에 상륙한 것이다.

64명중 28명이 익사하고 36명이 살아남았으나

12명이 기아와 병으로 죽었다. 마지막 남은 24명이 1653년 8월 15일에 상륙하였고

6일후에 대정현 관아에 감금되었다. 아마도 외국인 무단침입죄가 씌어졌을 것이다.

훨씬 전인 1627년 인조대왕때에도 표류로 잡혀온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귀화명:박연)는

우리나라 사람이 된 첫 귀화인이다.

벨테브레이는 대포 만드는 기술자로 일하며 우리나라 여자와 혼인도 하였다.

하멜일행의 표류경위를 조사하려고

1654년 6월 26일 효종임금이 불러들여 문초를 하였다.

통역은 벨테브레이가 맡았다.

효종임금은 “죽을 때까지 부양할 것이니 조선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하명하셨다.
그 당시 효종임금은 잃어버린 북쪽 땅을 찾는 북벌계획을 준비하였기에

상선의 대포수인 하멜에게 무기를 만드는 기술을 조선무관에게 가르쳐 주길 희망하셨으며

일본은 기독교 탄압이 심하니 일본으로 가지 못한다고 하명하였다.

결국 하멜 일행은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전라도 병영성에서 억류생활을 하게 되었고

여수를 거쳐 우리나라에서 총 13년간 묶여 있다가

1666년 동료 7명과 함께 전라도 강진만에서 어부의 배를 빼앗아 타고

조선 탈출에 성공해 일본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회사로 갔다.
일본에서 생활하다 38세 때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 독신으로 살면서 62세까지 살았다.

(1630년 출생하여 1692년 세상을 떠남)
귀국직후 그 유명한 “하멜표류기”를 저술하여 서양에 조선을 알렸다.
전시관은 당시 하멜일행이 타고 왔던 “스페르웨르호”와 거의 비슷하게 복원된 범선 안에

모형으로 갖춰져 있었다.
범선 내부에는 측량 도구를 비롯하여 해도를 보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용머리 해안에서 표류될 당시를 재현시켜 놓았었다.
만약 효종임금 시대에 네덜란드와 문호를 개방하였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국력이 강해졌을 것이며 일제탄압도 당하지 않은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러나 효종임금은 1649년에 권좌에 올랐으나 10년이란 짧은 기간 통치하였으니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일본은 1609년 나가사키 북부 히라도에

이미 네덜란드 무역상사가 설치되어 있어 서양과 무역교류를 하였다니

 일본은 호시탐탐 다른나라 침략의 야심을 키운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본다.
네덜란드에서는 “하멜표류기”를 읽고 조선과 교역을 희망하였고

1669년 동인도회사는 천톤이나 되는 거대 상선을 만들고

이름을 “코레아호”라 명명하기까지 하였다.

네덜란드는 조선을 중국 진출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지금부터 400년 전의 네덜란드인에 의하여 일본과 우리나라는 삶의 모습이 차별화 된 것이다.

조선에서는 서양기술을 알려고 했던 기록이 전혀 없었었으나

일본은 네덜란드인이 소지한 장총 한 자루를 지금 돈으로 1억 엔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하여

조총 수천 자루를 만들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행여나 “코레아호”가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나라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네덜란드 “전시관”에는 풍차, 나막신 그들의 생활도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자전거문화를 선보이고 국화로 삼는 튤립, 공예품이 눈길을 끌었다.
나는 하멜 전시관에서 학생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역사의 점철을 밟지 말자고 강조한 것이다.
하멜상선 “스페르웨르호”와 네덜란드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우리의 역사전환점이 될 것을 놓쳤다는 안타까움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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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인터넷과 지하철과 카페 기타 등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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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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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댓글을 남기실 필요는 없는 거니 말입니다

ps...IIII

올해 나이 45 입니다...(2018년 기준)

제 나이 40 이 되어 40판에 왔습니다...

싸이 월드 시절부터 해서 네이트로 바뀌고 나서도 계속 좋은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언 10년이 지난것도 같고 그러네요^^)

제 나이를 밝히는 것은 종종 댓글이나 쪽지로 묻는 분들이 계셔서 이제와 밝히는 것을 이해해주시고요...잘 좀 봐주십시오... ^^

언 10년을 해온 제가 좋아 이렇듯 좋은 글이나 지하철을 가다 벽에 괜찮은 글이 적혀 있으면

메모를 해두었다 가끔씩 올릴 때도 있고 합니다...^^

( 앞으로도 계속 괜찮은 글이나 좋은 귀감이나 감동 글이 있으면 올리려 하니 잘 좀 봐주십시오...^^)

[ 저는 도배 하지 않습니다...하루에 하나의 텍스트만 올립니다...밤 12시쯤 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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