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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안오고 얘기할곳도 없어서 끄적여봅니다

오즈의마법사 |2018.07.27 01:57
조회 177 |추천 0

저는 24살 남자입니다.
아버지는 조그마한 자영업을 하시다가 IMF때 가게를 닫고 밥솥 판매하는 영업을 하셔서 지방에 자주 계셨는데 어머니라는 사람이 바람을펴서 이혼하시고 6살때? 저는 시골에 할머니댁에 오게되고 아버지는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시느라 명절때만 보곤했죠. 할아버지가 엄청 엄하셨는데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할아버지 돈을 훔쳐서 쫓겨나서 3학년때 부터? 아버지랑 월셋방에서 살았는데 아버지는 택시 그만두시고 거의 매일 노가다를 뛰셨는데 그 당시 일당이 6만원정도 였는데 아빠(아버지는 영 딱딱하네요)가 일없는 날엔 바지주머니에서 만몇천원 정도씩 몰래빼서 피시방이나 오락실에서 주로 쓰고 아빠가 알면서도 마음이 아파서 그동안 모른척하셨던건지 ㅎㅎ 나중에 한 3만원정도 인가 훔쳤을때는 방쓰는 빗자루로 엄청 맞았었어요 아무리잘못해도 때린적 없으셨는데.. ㅎㅎ 그때 아빠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요.. ㅎㅎ 근데도 맨날 학교도 잘안가고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저를 많이 챙겨줬어요 맛있는것도 가끔 사주시고 제가 시력이 안좋으니까 안경도 해주시고 안경 맞추는 길에 옷도 사주시고 리바이스 갈색 칠부바지랑 갈색 스프라이트 반팔티.. ㅎㅎ 그 선생님 덕에 6학년은 개근했던것 같네요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지금까지 감사하단 말씀 한번 못드렸네요 권미경 선생님 잘지내시죠? 정말 감사했습니다 ㅎㅎ
중학교 때 올라가서는 아버지가 몸이 쇠약해지셔서 일가시는 빈도가 현저히 주셨던거 같아요. 3학년때 쯤 부터는 아예 못나가시고..(키는 163정도에 몸무게는 50언저리)  제 사정을 아셨는지 사회선생님이 (담임선생님도 아님)
많이 챙겨주셨어요 주말에 종종 맛난것도 사주시고 영화도 보여주시고 책도 사주시고 같이 등산도 가고 그랬어요 ㅎㅎ 언젠가 한번은 이 선생님이 날..?싶기도 했었죠(응~ 착각) 그러다 고등학교 갈때가 되고 교복 걱정을 하던 찰나에  교복까지 해주시고.. 그때는 그냥 감사한줄만 알았지 지금에와서 세상에 그런분은 살면서 만나기 힘들다는걸 깨달았죠.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하고 첫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괜찮았고 반에서 유일하게 국어 1등급을 받으니 친구들도 관심가져주고 ㅎㅎ 학교 수업만듣고 학원같은건 꿈도 못꿨지만 따로 공부한적도 없는데 그랬으니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머리는 참 좋았던것 같네요. 여튼 그때는 농구에 빠져서 맨날 농구했던거 같아요 쉬는 시간이 10분인데 종 땡하면 슬리퍼바람으로 농구코트 뛰어가서 농구하고 종치기전에 교실까지 간신히 뛰어가고 수업내내 땀 뻘뻘 흘리고 ㅎㅎ
친구도 어느정도 사겼다 싶을 무렵 농구같이 하던 애하나랑 다툼이 있었는데 저는 중학교때 친한 친구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고등학교에 혼자 왔고 걔는 중학교때 친구들이랑 거의 다같이 와서 다른 친구들도 저에게서 거리를 두더라구요 또 애들은 다 선생님들을 다 씹었는데 저는 예의바르게 해서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저를 좀 아끼니까 그걸 싫어했던 애들도 있고. 뭐 그건 괜찮았는데 사립학교다보니 공립보다는 돈이 좀 더들어갔는데 해봐야 분기에 3~40? 근데 저희집은 국가에서 보조금조금 받으면 월세내야되서 남는돈이 없었기때문에 아빠한테 열심히하겠다고 2학년 개학하는날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가 8월 12월인가? 두번있는데 자퇴 6개월 이후에 응시가 된대서 12월꺼 패스하고 그동안 알바를 했는데 원래는 알바하면서 수능공부할 생각이였고 아빠한테도 그렇게 말하고 자퇴했는데 월급을 받고 저한테 그런 금액이 들어오니까 공부 생각이 안들더라고요 월급받으면 반도아니고 1/3정도 아빠드리고 나머지는 옷사고 폰비내고 문화생활에 거의 쓰고 ㅎㅎ 당연히 수능죽쓰고는 아빠한테 공무원공부한다고 둘러대고  공부는 하지도 않고 알바전전하다 군입대하고 한것도 없는 놈이 몸성히 제대라도 해야되는데 (심지어 상근) 훈련소에서 크게 다쳐서 턱깨지고 이 몇개나가고.. 중환자실에 마취상태로 누워있는데 아버지가 오셔서 우는데 초등학교 3학년때 부엌에서 나 몰래 울고는 처음봤네요 (물론 그동안 나한테 안걸린거겠지만) 그때 꼭 퇴원하면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 다짐했던것 같네요 치료비가 없어서 일반병원은 못가고 군병원에서 2달정도 입안에 철로된 와이어 거미줄처럼 고정시키고 다른 환자들 가족들 면회와서 맛있는거 먹을때마다 내 눈치보는데 왜 내가 괜히 미안한지 ㅎㅎ 그렇게 퇴원하고 2달후임들과 같이 훈련받고 자대배치 받아서 자대에 가니 병기관님이 다친거 때문에는 힘들고 (발치한 그 분덕에 기준이 매우  빡세짐) 가정사로 제대가 가능하다 하셔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는데 그래도 군대는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경제적인 부분은 삼시세끼  제대로 못챙길 정도로 항상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저도 그나마 사람다운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서 군대를 다니기로 했죠 요즘 워낙 인성이 별로인애들이 많아서 상대적인 걸수도 있지만 그냥 열심히한다는 이유만으로 대포만 2번받았었네요  할아버지가 몇년전부터 치매를 앓다가 재작년 3월에 폐렴으로 병원에서 눈감으셨습니다 그때가 일병3호봉.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셨고 상병이였는데 낙동강전투 공으로 2계급특진 하사전역. 그때 군인이였기때문에 할아버지를 맘속으로 존경하고  전역하면 열심히 살아야지하고 운동도 열심히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대학도 안가고 한게 없으니 알바를 하면서 공무원 준비를 해야지하고 전역을 했는데 막상 또 전역하니 풀어져서 몇달동안 또 알바만 전전하게 됩니다 작년 8월에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큰아버지도 교도관 말똥두개셨는데 노름에 잘못꾀임당하고 바람피셔서 이혼하시고 노가다하시다가 호흡기가 안좋아지셔서 수술할돈은 없고 무슨 호흡하는거 도와주는 조그만한 기기?에 의존하고 사셨는데 더위에 그만.. 별로 안좋아했었는데 혼자계신 할머니 자주 찾아뵙고 생필품같은것도 챙겨드리고 해서 이해하려던찰나에 돌아가시니까 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번 5월에는 할머니가 당뇨가 터져서 무도증에 걸리셔서 병원에 입원하셔서 20일정도 계셨는데 혼자 화장실을 못가셔서 저랑 아빠랑 같이 화장실도 모시고 갔는데 병원이라 신경쓰는분은 없으셨지만 여자화장실에 들어간다는게 속으로 좀 슬프더라구요 왜 난 엄마가 없나싶기도 하고 간병비가  없어서 간병인도 못쓴다는것도 슬프더라구요 그러다 몇일후에는 화장실을 가시다가 실수를 해서 어쩔수 없이 아버지랑 제가 여기저기 빌려서 간병인을 쎴죠 후에 퇴원하시고 무도증이라는게 약을 먹으면 언젠가는 낫는다는데 할머니는 아프다고 갈수록 아이처럼 떼쓰고 아빠는 걱정할일만 있고 너무속상해하시고 여기저기 빚은 있고.. 저도 크게는 못빌리고 여기저기 빌렸는데 빌려준 사람들이 저를  이해해줬으면 싶은건 제 욕심인지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재촉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힘드네요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사는것도 제 욕심이고 헛된바램같고 그래도 어려운환경에서 정말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 자신이 한심하기도하고 아까는 또 아빠가 자기가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할아버지가 4년정도 걸리셨다고 자기도 4년이면 너를 기억못하겠다고 하시는데 차마 울수가 없어서 혼자 울면서 끄적이는데 지금까지살면서 안좋은 생각몇번 해봤는데 소중한사람들을 위해서 못할짓이고 그 마음으로 살려면 얼마든지 살겠다는 말을 많이 의지했는데 삶이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제 삶에 의미인 소중한사람들도 떠나가버릴것 같은데 어차피 삶이라는게 죽으면 다 그만인데 한것도 없지만 그만할까 싶기도 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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