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일이냐며 반갑게 인사했는데 걔 안색이 어두운거야. 잘 지냈냐고 물어봤는데 잘 지냈다고 하면서도 낯빛은 어두운게 잘 지낸거 같아 보이지가 않았어.
일단 여자얘가 울학교앞 하교길에 있는것도 비일상인데 얘들이 나랑 같이 있는걸 보면 걔 누구냐느니 사귀냐느니 어떤사이냐느니 어떻게든 지랄같은 일이 발생할거란 생각에 빠르게 같이 학교 뒤편으로 걸어갔어. 난 이쪽으로 가다가 공원을 거쳐서 집으로 가는데, 이 길로 다니는 얘들 별로 없거든. 경로에 이마트 편의점도 있고.. 이마트 편의점이라도 들려서 커피같은거 사서 공원가서 앉아서 얘기하면 딱이겠다고 생각했어. 서로 그동안 안부를 물은것도 잠시였고 곧 어색한 침묵. 혼자 온데다가 나 만나러 온건 확실해 보였는데 말이야. 그때 내가 고백했던 일 때문에 어색해서 그러는거라고 멋대로 생각하고는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 주면서 걔한테 말했어.
혹시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거면 정말 미안하다고, 앞으로 그런일 없을거다.
걔가 그런거 아니라는거야. 쭉 더 걸어서 공원에 도착해서 집가는 방향보다는 좀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서는 사람들이 우리얘기에 관심가지지 않을 법한 곳의 벤치에 앉았어.
오늘 만나니까 너무 반가운데, 안색이 좀 어두운것 같아서 걱정이다. 무슨 일 있냐?
내 말에 걔가 거의 울것 같은 얼굴로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뜬금없이 사과를 하는거야. 그리고 울 것 같은 얼굴만 하고 있다가 진짜로 울어버렸어. 뭐가 미안한지 몰랐고 우니까 너무 당황해서 달래기 시작했어. 고백했다가 차인것 빼고 또 어떤일이 있었는지 잠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걔가 남자친구 얘기를 했어.
나랑 주고받은 카톡에 관한 이야기였어. 걔 얘기를 요약하자면..
나랑 주고받은 카톡을 지우지 않고 가지고 있었나봐. 재밌거나 웃긴건 캡쳐해놓고 그 중 내가 마지막에 했던 아직도 좋아하니 친구로 남자 그런 카톡까지 있었다고 해. 그걸 미안하다고 그러는거야.
그 말을 들으면서 아 얘도 나를 완전히 싫어하는게 아니구나. 나한테 조금은 관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사실 조금 기뻤어.
솔직해 지자면, 나름 바쁘게 보냈지만 학교다니면서도 걔 생각이 이따금씩 났거든. 보고싶기도 했고. 그런데 카톡을 보내는것 만큼은 망설였지. 전에 자주 연락할때는 상관없었는데 갑자기 연락 안하다가 뭐하냐느니 보내기에는 부담이 갔거든. 괜히 그날밤에 고백을해서 이상하게 어색한 사이로 만든걸 후회도 많이 했어. 근데 뭐 후회하면 뭐해 이제와서 달라질건 없는데 ;; 나도 가능한한 얘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일상에 적응한 거였어. 그렇게 자포자기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나와의 대화에 가치를 가져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앞섰어. 나는 아직도 얘를 처음 만났을 때 처럼 좋아하고 있었거든.
근데 얘가 울음을 그치지를 않는거야. 말을 하면서. 점차 길가는 사람들도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하고.. 겨우 달래서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되었어.
그렇게 나랑 주고받은 카톡을 박재시켜놨는데 그걸 자기 남친이 봤다는 거였어. 남친이 얘 누구냐고 물어봤다고. 노발대발하면서.. 근데 그게.. 나한테 미안할 일인가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상황이 이해가 잘 가질 않았어.
그거땜에 싸웠나? 아님 혹시 나때문에 헤어진건가? 나는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얘가 많이 울었기에 어디 장소를 옮기고 싶긴 한데 이대로 공원 가로지르기도 힘들 것 같아서 한 삼십분은 그러고 있었던 것 같아. 학원도 가야했는데 이미 물건너 간 것 같았고.. 집에 안오니까 엄마한테 전화도 왔는데 어쩔 수 없이 통화거부를 눌렀어.걔가 좀 진정이 되고 나는 무슨 일인지 묻기보다 일단 어림짐작한거긴 하지만 사과부터 했어.
나 때문에 남자친구랑 싸우거나 안좋은 일이 있었으면 미안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카톡 저장해논게 왜 니 잘못이냐 그냥 나도 너랑 주고받은 좋은 일들 다 기억한편에 남겨두고 있다. 대충 이런 말 이였어.
걔가 또 감정이 북박치는지 아니라면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또 울려고 그러는거야.
또 울릴수는 없었으니 기다리지 않고 나는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어.내용은 이랬어. 걔 남친은 평범한 놈이 아니야. 세글자 공고에 다니는 일진이였어. 그리고 얘는 중학교때는 좀 놀았나봐. 술도 마시고 뭐.. 그런거. 남친은 중학교때 다른반 남자얘였고 그 세글자 공고가 우리 둘 학교가 거의 옆에 붙어있는것과는 다르게 거리가 있어서 자주 만나지는 않았나봐. 그래서 그렇게 내 앞에서 남친 얘기를 하지 않았던 거고.. 근데 걔가 나랑 주고받은 카톡 보고 노발대발했다는 내용이였어. 얘보고 나랑 만남 주선하라고 시켰다고.
뭐 이런 웃기지도 않고 그지같은 일이 있나 싶었고 만나면 때리기라도 하려나 싶으면서도 공포심이 들더라고(이것도 사실 찐특이지.. 미안해..). 그런 얘랑 연관지어지면 좋은꼴 못보잖아. 잘못 걸렸다가 인생 훅갈수도 있고... 나름대로 착실히 살았는데...
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알았다고 하면서 걔를 달래줬어. 내가 안만나면 걔를 뭐 때리고 어떻게 하겠다고 협박이라도 한 것같아서 진정시켜서 내가 어떻게 걔를 만나면 될지 물어봤어. 어떤걸 준비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었지만 일단 그렇게 말하면서 안심시키려고 노력했어.
근데 걔가 일진놈을 죽어도 만나면 안된다고 그러는거야. 말은 다 해놓고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는 물어도 물어도 알려주지를 않는거야.. 너 죽는다고, 진심 공포스러운 듯 말을 하는데 다른 얘들이 처맞은걸 어지간히 많이도 봤나봐. 그런 얘기를 해주는데 나도 솔직히 좀 무섭더라. 운동도 여태 한게 뭐 끽해야 점심시간에 축구좀 하고 체육시간에 축구한거빼고 한게 아무것도 없는데 때리면 처맞고 어디 잘못맞으면 장애인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혹시 그 일진놈이 너한테 뭐 협박했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피하더라고. 나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는 걔랑 헤어졌어. 그리고 그날 학원 안가서 선생님한테도 전화가 왔었고 엄마는 잔소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리고 이 일을 사실대로 털어놨어.엄마가 그런 일이 있었냐고 그러면서 그래도 이해해 주시더라. 그런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면 뭐 문제 생긴다 이런얘기도 하고. 그날 전화해서 다른 학원도 쉬기로 하고 아빠가 돌아오셨을때 집에 있다가 이 일에 대해 상담했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번 일에 대해서 말하자 아빠가 남자가 그런걸로 쫄아서 되겠냐고 용기를 가지고 맞닥드리라고 하시는거야. 그리고 정 겁나면 아빠가 대신해서 나가준다고 하셨어, 때리면 법적으로 문제를 물을거고 내가 알고 있는 이상 죽진 않을거라고, 그래도 걱정되면 112는 폼이 아니고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고. 그 여자얘 좋아한다면서 몇대 맞을 각오도 못하냐고 그러셨어. 그리고 전에 그림 학원 다닌다고 그렇게 지랄발광 하던 이유가 그 여자얘때문이였냐면서 재밌어 하셨어. 아버지가 드라마를 많이 보셨는지 자기가 처맞는거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거 같아서 의지는 안됬지만 일단 알았다고 하고 걔한테 전화했어. 뭔가 생각이 정리가 된 것 같았거든. 걔한테 처맞아 디져서 9시 뉴스에 나오더라도 난 얘 좋아했었으니까 후회는 없다는 중2병 같은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물어서 걔한테 만남 주선을 했어. 나 만나고 싶으면 일요일날 어디 공원 앞으로 오라고.그렇게 그 일진새끼랑 만나는 날이 됬고 난 친구한명 불러서 내가 처맞으면 직접 신고할 수가 없으니 바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게 조치를 제대로 설명을 하고는 같이 갔어.아무리 일진이여도 칼은 안가지고 왔겠지 등등의 등신같은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데, 약속 시간에 오지 않았어. 좀 더 기다렸더니 곧 그 여자얘랑 남자얘 한명이 같이 이쪽으로 걸어왔어. 일진이라 조폭같은 놈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키 좀 크고 날씬한 스타일이더라. 의외로 혼자와서 다행이라고 내심 안심도 했지.
걔가 나한테 니가 카톡주고받은 그새끼냐고 먼저 말을 걸었어.
나는 약간 긴장한 채 그렇다고 대답했어.
내 여친한테 관심있냐고 물어봤어.
처음에 관심 있었고 차였다. 지금은 좋은 친구인데 트집잡고 여친 괴롭히지 마라고 했어....솔직히 지금에 와서야 고백해 보자면.. 이런 말 할 수 있었던 건 걔 혼자나왔고 보는 눈도 있고 내 친구도 옆에 있어서 용기 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여차하면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하고 있었고.. 사실 난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아니거든..
걔가 내 말에 좀 빡친것 같아 보였지만 때리거나 그러진 않더라고. 근데 경고했어.
한번만 말한다. 앞으로 내 여친 건드리면 죽인다고.
내가 그냥 친구라고 맞받아쳤더니
지랄하지마라고 죽여버린다고 했어.
...여기서 사랑을 위해서 죽여봐 하면서 게기지 않고 그렇게 그날의 만남은 끝이 났어.
역대급 추한 만남을 끝내고, 약간의 오기였는지 걔를 위하는 마음이였는지 복잡한 기분으로 오늘 일 마음에 담지 말라고 카톡을 보냈는데 확인은 하고 답장은 하지 않았어. 이대로 끝내는건 좀 아닌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지 뭐.
여기까지 닭살 비비면서 인내심 가지고 읽은 친구들은ㅋ..지금 하는 얘기가 유치하고 웃겨 보일수도 있겠지만 난 그때 고딩이였고 막상 이런 일을 직접 맞닥드리면 겁이 날 수 있을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길 바라ㅋ..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사회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 겁먹었다느니 뭐 이런 그지같은 표현이지만 솔직한 고백이니까.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그 후로 나는 그 여자얘를 볼 수 없었지만 그렇게 꾸준히 학교생활해서 수능치고, 1지망은 떨어졌지만 똑같은 상향지원인 2지망인 학교로 토목과에 붙었어.
이것도 이 때 학교 축제때의 일을 계기로 미술에 관심이 생겨서 약간이나마 디자인과 관련된 공과 대학을 찾다가 건축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조금 점수대가 낮은 토목과를 지원한거야.
이때 까지도 사실 이 여자얘를 이따금씩 생각하고 있었고, 기쁜 소식에 카톡을 보냈지만 차단을 했는지 어쨌는지 답변은 없었어.
후에 나는 그때 미술학원에서 만난 팸의 여자얘한테 그 친구는 현재 재수중이고 너때문에 많이 괴로워했다는 말을 해줬어. 남자 친구랑은 헤어졌나봐.
나는 용기내서 전화를 했고 다행히 내 전화를 받아줬어. 내 목소리를 듣고 많이 놀란 것 같았지만 나는 그동안 잘 지냈냐는 안부부터 내가 대학 붙은 얘기까지 쭉 내 이야기를 들려 주었어. 대학은 카톡 봤다고 그러더라고. 답장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놀라기도하고, 웃는 목소리를 들으니까 그 웃는 얼굴이 떠올라서 너무나 안심이 되더라고. 나때문에 괴로워했고 상처받았었다지만 그 때는 그런 말 하지 않고 즐거운 이야기만 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지켜주지 못했고 이상한 협박을 하는 남자친구한테 화를 내 주지 못했기에 떳떳하지 못했지만 미안한 감정을 숨기고 최대한 밝게 마주했지.시작은 학교 축제때였고 지금은 누구보다 소중한 인연이야. 난 군대 재대하고 3학년이고 그녀는 지금 졸업해서 정말로 어른스러워져서 지금은 그때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누구보다 좋은 친구가 됬어. 군대에서건 어디서건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난 이따금씩 그녀와의 대화가 떠오르고,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떠오르고, 그때는 이렇게 행동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 되짚어 보거든. 추가로.. 그때 나랑 그 일진놈이랑 만날 때 나 때리거나 뭐 어떻게 하면 그대로 너랑은 끝이라고 엄포를 놓았었다나봐. 그래서 사람많은 곳에서 멀쩡하게 대화만 주고받고 끝날 수 있었던 거였겠지. 헤어진 얘기까진 듣지 못했지만 참 그때 걔가 뭐라고 그렇게 겁먹고 우리 둘 다 멍청한 짓을 했는지 웃긴 이야기 인 것 같아.이번 한심한 썰은 여기서 마무리 할게. 이번 여름 방학때 그녀와 있었던 일도 썰 풀러올게. 긴 글 읽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