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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미친 여동생2

어이상실 |2018.10.26 17:10
조회 138 |추천 0
두서없어도 양해 바랍니다.
설명하다 보니 길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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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이 엄마 혼자 자식 키우기란 지금도 힘들지만,
그때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6.25가 지나 폐허가 된 한국에서

6남매의 첫째되는 장녀와 둘째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일을 시작합니다.

엄마 혼자 자식 키우기 힘든데 6명을 돌보기 힘들다는걸 첫째와 둘째는 느꼈으니까

2째는 학업을 중단하고 가난한 형편을 채우기 위해 어린나이에 남의 집에 가서 식모 일을 하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많은 딸들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딸들은 교육 많이 시킬 필요없다. '중졸만 시키고 시집 보내라!' 하셨지만,

여자라도 배워야 한다며 고졸은 시켜야 한다고 고집하신 어머니 뜻이 있어서 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에서 어머니 일 도우며 집안일을 하고 동생들을 챙깁니다.

1째는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상위5% 안에 드는 우등생이라 어머니는 대학 진학을 하라 하십니다.


그 당시 남자도 대학가기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없이 공부 잘하며 우등생이였던 딸을 가난하지만,
집팔아서라도 대학보내줄테니 잘되기 바라시는 어머니의 뜻도 중요하지만, 집 팔면 당장 식구들 먹고 쉬고 잘 곳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합니다.


지금도 고졸 남자가 취직해서 사회생활하며 일하기 힘듭니다.
고졸 여자가 일한다 해도 힘듭니다.
여성의 인권이 상향 되었다고 해도 쉽지 않지요.

45년전 남존여비 사상과 여자 차별 심한 때였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집안의 장녀는 살림 밑천이라는 말도 있던데
장녀셨던 맏딸은 어린 나이에 일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의 생계와 학비를 대주며 일하셨습니다.

외국에서 일하면 돈을 더 번다기에 독일가서 일하며 동생들 먹을 것, 입을 것, 학비에 차비, 용돈까지 쥐어주느라
직장에서 차비대주고 식비대주는 것이 없으면 걸어다니고 굶으며 일하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진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 없이 가엾이 굶고 있을 동생들 생각해서 열심히 일하던 언니였습니다.

지금도 인종차별이 있지만 그 옛날에 독일은 심했죠.
나치도 인종차별로 인해 벌어진 범죄였으니까요.
그런 곳에서 내 나라 말도 아닌 독일어를 배워가며 일하기란 힘들었을 겁니다.

집안에서 아버지가 중졸밖에 안해주려던 것을 큰 언니는 동생들을 위해 대학교 학비에 차비까지 대주며

장녀부터 잘되라고 잘되기 바라던 전교3등하던 맏딸은
나보다 동생 먼저 잘되기 바란다며 동생부터 도와서
2째는 집에서 엄마 일 도우며 동생들 뒷바라지 하겠다고
대학 진학소원을 미룹니다.

(현재 그 소원 큰언니가 이뤄주려고 해서 2째 딸도 대학진학 하시고 곧 졸업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3째부터 덕성여대가서 대학원까지 마칩니다.

4째도 s대가서 졸업하고 5, 6째도 대학가고

학비며 생활비에 차비에 용돈까지 쥐어주느라 맏딸은 늘 가난했습니다.

돈 벌어서 결혼자금 모으고 자기자신을 위한 돈은 한푼도 모을 수 없어 결혼도 포기한체 늦게 나마 대학진학 하려 합니다.


그런 언니에게 늙어서 대학가면 머리 굳어 공부가 되냐 비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난해서 차비 나갈까봐 집 가까운 숭실대학가서 공부하려는 언니보고 3째가 똥통대 다닌다며 조롱하는걸 참으며

자신의 학비 문제로 가족들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수석하면 장학금 준다길래 전부 수석으로 하여 장학금 받아 졸업하시는데 3째 이 여자가 자기 학비 대준 것도 모잘라 나중에 자기 딸 학비까지 대달라며 찾아와 난동을 부립니다.


글이 길어집니다.
답답하고 비참한 가족사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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