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에게 내 성폭행 피해를 털어놓았다가, 그 원인이 '코르셋 때문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맥락은 이해한다.
탈코르셋을 하고 나서는 성적 대상화 당할까봐 걱정하거나, 실제로 당하는 횟수가 크게 줄었으니까.
전에도 글 쓴 적이 있지만, 요점은 코르셋이 '남자들이 생각하기에' 성적 대상화 할 만한 모습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상을 분석하는 것인지 혹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인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 지점에 대해, 모두가 각자 깊게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긴 머리를 정돈하고, 화장을 하고, 남리남리한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외출을 하면서 '오늘 성적 대상화를 몇 번이고 당했으면 좋겠다'거나 '성적 대상화도 당하고 성폭력에 노출 될지도 모르지만 감수해야지 뭐'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주체적 어쩌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함구하겠음)
여자는 이래야지 저래야지 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여자는 응당 꾸미는 것이 미덕이고 당연한 것인줄로 알고 살게된 것이지, 성적 대상화를 당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코르셋 문화를 평생동안 답습하고 살아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다고 해서 그걸 한 순간에 버리기 힘들다는거, 탈코르셋을 결심하고 실천해본 나를 비롯 여타 페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이 결국 남성들에 의해 주어지는 대리권력이고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탈코르셋을 하면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 그런데, 과거에 내가 코르셋을 쓰고 있었다고 해서 성폭행 피해에 원인을 제공한 것을 인정해야하냐면, 그건 아니라는거다. 나를 성적 대상화 한 것도 그 남자, 내 의지에 반해 강간한 것도 그 남자인데, 어째서 내게 원인이 있었는지 검열해야할까.
그 시기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
피해자에게는 정말 한 치의 잘못도 없었다고, 누구에게 가 닿을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외쳐준 고마운 페미들 덕에, 나는 스스로를 한없이 수치스럽게 여기던 그 날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줄 수 있었다.
'왜 그런 옷을 입었어', '왜 술 마셨어', '왜 그런 남자를 만났어' 그런 질문들은 부질없는거였다고.
[어떤 여자도 빌미를 주지 않았다. 여자들은 그런 폭력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에게, '그러게 왜 남자를 만나', '한남 빨다가 당하든 말든 어쩌라고' 하는 식의 비아냥을 즐기며 '나라면 안그래'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운동에서 오래갈 수 없다고.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