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하는 거 같다.
너무 속이 타들어간다.
그렇기에 여기에 글 한번 써본다.
자작이 아니고 실화다..
내 나이 31살, 신랑 나이 37살. 우리 아들 25개월.
나는 아가씨 시절 인기가 제법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탓에 남자들이 끈이지 않았고,
여러 남자들 속에 지금 남편이랑 결혼했다.
더 좋은 사람도 있었는데
왜 지금 남편이랑 결혼을 했을까
라고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된다.
지금 남편은 내가 정말 힘들 때 다가와 준 사람으로..
그때 당시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을 땐
너무 감사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는 연애할 적,
울산과 인천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했기 때문에..
난 그게 정성이고 사랑인 줄만 알았다.
아니 그때 당시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울산에서 인천으로 와서 찜질방과 모텔에서 전전긍긍하던
연애시절 내 남편을 보니
그때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신랑의 직업이 이삿짐이다 보니
일용직과 비슷한 식으로 돈을 받고 있는다는 걸 알게 된 후였다.
혼기가 꽉 찬 나이는 아니었지만
어릴 적 시절부터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나는 결혼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정말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신랑의 일을 듣고,
돈을 받는 걸 듣고
결혼을 반대했었다.
친구며 가족이며 다 하나같이..
하지만 고집이 센 나는
일용직으로 다니는 직장이지만 꾸준히 나가면 괜찮을 거라며
나 스스로 다독이며 결혼을 했다.
없이 시작해도.. 사랑만 가지고 시작해도 괜찮을 거라 믿었었다.
그리고 내가 사고를 쳐서 생긴 아기를 지울 수는 없었기에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만든 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처음 시작은 시댁에서 같이 살았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너무나 큰 기대감과 바람과
나중에는 친정에서 돈까지 바라셔서..
형편이 어려웠지만 이사를 왔다.
이사 오면서 아기가 있으니 일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안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도 어린이집에서 방학을 해버리면
일자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댁이랑은 연 끊다시피 보지 않는 사이였고
친정은 너무 멀기도 하고
도우미 신청을 하려니 그게 버는 비용보다 더 많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고 이사 와서 신랑이 갑자기 다쳤다.
봉화직염으로 팔이 팅팅 부어올라서
일주일에서 이 주일 입원을 하고..
가계 살림이 너무 힘들어져서 대출을 받았다.
입원해 있는 신랑 덕에 내 이름으로 카드사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와서 정말 후회가 된다.
우리 엄마는 받지 말라 말씀하셨지만
일용직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우리는
시댁에도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어머니는 돈이 없다고 너네 알아서 살아라 나 몰라라 하시고
친정도 막 이사 간 직후라 돈의 여유가 없었더래서
너무 힘들었다.
그렇기에 최후의 선택을 했다.
대출을 받은 건 정말 내 삶의 젤 후회가 되는 일이라 지금도 생각이 든다.
그러고 신랑이 퇴원한 후..
팔이 안 나 자그마치 2개월 넘께 쉬어야 했고
팔을 못쓰니 아기를 맡기고 내가 일을 하러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작년에는 울산이 불경기라 일도 없어서 매우 힘들고,
월세내기 빠듯해서 신랑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계약기간이 남아있지만 집주인에게 사정 말하고
보증금 돌려받으면 친정가서 살자 내가 돈 벌께.
"오빠가 아기봐 -
엄마가 그럼 어느정도 도와주신댔어-"
그랬더니 신랑 왈
"그건 싫어, 장모님 집에 니네 사촌동생들도 다 같이 살잖아"
그 말이 나는 이해가 됐다.
왜냐하면
엄마집은 거실까지 포룸에 단독주택 1층 옥상과 창고, 부엌, 큰 화장실, 마당까지 있는 집인데
본래의 자기 집이 먼 사촌동생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친정집에서 방 두개를 주고 대학졸업할 때 까지 같이 살기로 하여
친정집에서 늘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해를 하고 어쩔 수 없이 대출받은 금액으로 생활을 하다
신랑이 일을 나갔다.
그렇지만 불경기인 울산은 일이 많지 않았고..
나는 대출을 받은 금액으로 근근이 월상환하고 월세 내고 관리비 내고..
정말 빠듯하게 생활을 했다.
그렇게 신랑이랑도 엄청 많이 싸웠다.
"제발 일 좀 다른 것 좀 해!! 이게 뭐 하는 거야. 매일.
이게 몇 달째냐고 진짜.. 숨이 턱턱 막힌다 -
아니면 내가 나가서 일할 테니까 제발 오빠가 집에서 애라도 잘 보던가 -
아무것도 안 한다면서 이게 뭐냐고 진짜....
직장 좀 옮겨, ,회사를 들어가던지.. 대출을 받아 싼 걸로 대환이라도 하던지
대출받은 거 갚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대출받아 놓은 걸로 먹고 살 건데...!!"
이런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올 때면
신랑은 자그마치
"미안하다"
라는 말과 함께..
"내가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걸 어떻게 해.
그리고 회사 들어가기 싫어, 난 지금이 좋아"
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
그렇게 매일 싸우고 집까지 나가보고 이혼까지 생각했었다.
차를 팔고 그 돈 남은 거 반을 내 대출을 갚고
아기 혼자 키울까.
생각도 했었는데 -
친정에서 이혼을 하려면 아기를 버리고 오라더라 .......
너무 황당하고 웃겼다.
시설을 들어갈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기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우리 아들은 36개월 때까진 의무적으로 대학병원을 다녀야 하는 입장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반복하다..
중도포기를 해버렸다.
내가 아기를 버리고 나가본 적도 없는 건 아니지만
엄마로서 그게 정말 힘들었다.
단 하루도 아니고 몇 시간 동안 아기를 버리고 연락 무시한 채
나갔지만 우리 아기 모습이 눈에 선해서 들어왔을 땐
울면서 달려오는 아이 모습에 마음이 무너져내릴 거 같았다.
그 후로 우리 아이는 내가 없으면 잠을 안 잔다..
아직도 잠을 안 잔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대출받은 걸 다 써버렸다.
신랑한테 제발 부탁이니 돈 좀 벌어라 -
라고 이야기를 하니.
"사무실에 일이 없어서 그런 걸 어떻게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나마 근근이 재택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출이자도 꼬박꼬박 내고 상환금도 밀린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한 달..
나는 대출 연기가 안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져있다.
내가 받은 대출은
이건 시댁 살 때부터 있었던 돈
은행권 마이너스 통장 1000만 원
그리고 신랑이랑 살면서 빚진 게
제2금융권 3000만 원..
마이너스통장은 신용도도 많이 보는데
내가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았을 당시.
내 신용등급은 2등급이었고 지금은 5등급으로 하락했다.
그렇다 보니 은행 쪽에서는 1년마다 연기해왔던
통장 연기를 좀 꺼리더라..
우리 집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지..
잠이 안 온다.
믿고 대출받자고 해서 받아준 건데..
우리는 그렇게 어제도 싸웠다.
"오빠, 내가 돈 100만 원을 받지 못하면 개인회생을 받을 수 없데 -
그동안만이라도 친정에 가있을까? 아네 우리 주말부부할래?"
"안돼, 그냥 그렇게 되면 네 팔자라고 살아 -
그리고 일단 니 몸 안 좋은 거부터 추슬러, 부채는 살면서 다 갚을 수 있어"
나는 신용도 좋았고 직장도 좋았고 정말 이뻤던 사람인데
결혼 한번 잘못했다
신불자 되게 생겼는데 그 게 너무나 무섭다.
여자지만 이쁘고 싶지만
지금 내가 바라는 건
안 이뻐도 돼..
그냥 빛 안 지고 살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요즘 밤에 매일 울다 지쳐 잠든다.
빨리,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