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도대체 왜 걔가 좋았던 걸까요? 내 인생을 망쳐준 나의 짝사랑 남아. 제발 살아생전 놀러가는 곳마다 비오고 차 막히고 주차할 공간을 영영 찾지 못해 맴맴 도는 삶 살기 바라오. 돌잔치에 놀러가면 레고 블록 밟고 아픈데 티도 못내고 희망을 품고 사내 상품 응모하는 족족 망하고 그러시오.
당시엔 사단이 나고 나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든 정리를 하려고 담백하게 쓰고 쿨한 태도로 아 그땐 그랬지, 하고 넘기고 싶었어요 근데 담백도 안되고 쿨도 안되고 넘기는 것도 안돼. 그러다보니 아예 손을 못대구 살다가..!
<어쩔 수 없죠 뭐,> 이걸 이제야 씁니다! 기분이 좋으니까 몇 번 더 쓰겠어요. 드디어 쿨할 수 있다! 야호! 어쩔 수 없죠, 뭐, 그땐 그랬어요. 이야호! 한 번만 더 쓸게요 봐주세요 제가 신나서 그렇습니다. 아 걔요? 그땐 좀 좋아했어요.
아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 똑같은 표현 두 번 읽기 짜증나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여튼 이제야 밝히는 바로, 제가 왜 걔를 좋아했냐면요. 그리고 어쩌다가 차였냐면요.
걔는 처음부터 좀 달랐습니다. 어휴 알아요 진부한 표현인거. 근데 진짭니다. 제가 여기에 뻥쳐서 뭐하겠습니까. 뻥 친다고 누가 백 원씩 주는 거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닌데. 뭐가 달랐냐 하면, 주는 느낌이 좀 달랐어요.
수많은 사람의 무리 중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나무 밥주걱 같은 느낌인데 걔는! 잘 갈아놓은 간석기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네. 처음부터 로맨틱 했던 건 아니고요, 아 좀 다른데?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밥주걱이든 간석기든간에 현대인에서 무슨 소용이겠어요.
좀 다르다 뿐이지 그게 처음부터 큰 감명을 줘서 뻘인럽! 한 건 아니었습니다. 속된 말로 제 식이었던 건데, 그땐 제가 그것까진 잘 모르고 ‘간석기 같은 느낌’ 이라는 찌든 수험생같은 표현만을 떠올렸던 거지요.
호칭이 마땅찮으니 지금부터 걔를 간석기라 칭하겠습니다. 간석기와 저의 만남은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딱히 접점이 없어서 졸업할 때까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네. 남녀 공학에서 핑크빛로맨스를 꿈꾸시는 분들, 조심스럽게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배경이 한국이라면.. 우리가 겪는 것은 그저 핏빛 수험생활뿐!^_
그저 도륙당하지 않도록 애쓰고 노비 비슷한 꼴로 지저분하게 상투를 틀며 보낸 저의 수험생활이 다 끝나고, 드디어 찾아온 대학 생활! 머리를 댕강 자를 때 저는 뭐랄까, 속세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던 이스트와 같았습니다. 슬프게도 이 역시 현실을 마주하자마자 바람이 숙 빠지지만 그때까진 부푼 반죽처럼 그랬죠. 이때까지도 저랑 간석기는 접점이 없었습니다. 간석기와 저는 대학을 간 지역이 달랐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후에 알고보니 저희가 서로 친한 친구들이 겹치더군요 그래서 종종 그룹으로 만났습니다. 친구 모임이 있어서 방학마다 만나서 같이 술을 마셨어요. 그때까진 그러려니 하며 종종 서로의 애인을 보여주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간석기가 유학차 외국을 갔고, 저는 그 사이에 대학을 다녔어요.
그렇게 몇 년이 다시 지나고, 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제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간석기 역시 유학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오게 된 것을 알게 되었죠. 저희는 이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간석기와 저는 일대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머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니 여러분도 아시죠, 이런 경우가 제일 난감합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알아가면서 친해지면 되는데 어설프게 얼굴을 아는 사람이랑 갑자기 독대하게 된 거에요.
게다가 간석기도 저도 집단에서 파워 내향인인 스타일이라.. 둘이서 단 둘이 이야기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항상 인싸 친구들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이젠 아싸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거죠. 전 속으로 어색해제기랄을 백천번을 외쳤습니다.
간석기가 간만에 자신이 고향으로 왔으니 혹시 만날 친구들 있느냐 물었는데 공교롭게도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저뿐인겁니다. 눈치게임으로 계속 모른 척을 하고 싶었는데, 와 제기랄인 거죠. 저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간석기를 제외한 친구들은 모두 미친 외향인인 그 그룹은..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았습니다.
뫄뫄 있잖아! 뫄뫄 만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제 이름을 외친 그 친구가 모든 원흉이군요.. 오호... 새삼 알아지네요 다음에 만나면 아가리 파이트를 한 번 떠야겠습니다. 여튼.
그렇게 콕찝어 지목을 당한 이상 별 수 있습니까. 인생이 그렇지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법.. 저는 사약을 먹지만 콜라를 먹는 태도로 의연하게 알겠다고 했습니다. 만나서 밥 먹겠지, 그럼 최대한 빨리 먹을 수 있는 걸 먹고 돌아오면 도리는 다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얄팍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름 대비책을 세운거지요
그리고 약속의 날이 왔습니다. 어디서 만나야 할지 아직 약속의 장소를 그때까지 잡지 않은 상황이라 저는 내심 기대했습니다. 이대로.. 약속이 깨지길! 솔직히 좀 그러지 않나요 내향인 여러분 다들 약속있는 날 아침에 그 생각 하잖아요 아닌가요 나만 쓰레깁니까? 그렇다면 미안합니다.
여튼 쓰레기같은 저는 약속이 깨지길 기다리며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신은 제 인생을 시트콤으로 설정해 놓은지라 저에게서 재미를 보길 원했지요.. 그래서 간석기가 저에게 전화가 와서, 자신이 그냥 제가 사는 곳으로 오겠다는 겁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 날 볶음밥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렇죠 빨리 가려구용. 나중에 죽 만나보니 간석기는 제 말에 싫다고 하거나 자기의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그날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볶음밥 말고 다른 걸 먹자는 겁니다. 허참 솔직히 볶음밥 싫어하는 한국인도 있나요? 너무 어이가 터진 제가 물어봤습니다. 볶음밥 싫어? 그러니까 그건 아니래요. 그럼 왜? 그러니까 한 몇 초 말이 없다가 그러는 거에요.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ᄋᆞ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아 글쵸 볶음밥은 사주기에 너무 약소한 메뉴니까 더 비싸고 좋은 걸 골라보라는 말이었습니다. 제기랄 이러면 제가 어떻게 볶음밥을 강하게 주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 생각해보니 이미 저 말에서부터 밀렸네. 얻어 맞은 것 같은 거죠.
원래 말을 저렇게 하는 애였나? 저는 뇌내 기억망을 뒤지며 필사적으로 그 친구에 대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근데 너무 정보가 없어.. 그동안 희미한 배경 1로만 느껴서 크게 정보를 모아놓지 않은 저 자신을 저주하며 지금 저말에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저 정보값을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 라고 저스스로에게 말하며 저와 간석기는 맛있는 것을 먹었습니다. 그날 고기 먹었어요. 아 그 고기 맛있었는뎅.
고기까지 맛나게 얻어먹은 저로서는 인간으로서 염치가 있다보니 후식은 제가 사겠노라 했으나 간석기는 멀뚱 멀뚱 저를 쳐다보다 그랬습니다.
내가 만나자고 했는데?
? 그래서?
내가 사는게 맞지
? 그럼 전 다음에 제가 만나자고 하면 제가 에브리띵 지불되는 건가요. 오.. 그렇다면 저와같은 소심한 좀생이는 영영 인간관계를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아니 그러지 말라고 신세진 느낌 조따 찜찜하다고 하는 말들이 입 안을 우글우글 기어다녔지만 여기에서도 밀리고 말았습니다.
네가 외국물을 먹고 오더니 야 통이 커졌다 그래 고마워~ 라고 전 웃으며 넘겼지만 타고난 노비태생같은 저의 등짝엔 이미 부담이 일키로 정도 생기고 말았습니다.
친하지도 않은데 밥을 얻어 먹었고 저 사람이 후식까지 다 산대요. ^_^ 저는 이때부터 그럼.. 어떻게.. 웃기기라도 해야해... 보낸 시간 동안.. 내가 줄 수 있는 건 웃음뿐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웃음제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외국 생활을 해온 간석기는 저의 드립 대다수를 이해하지 못한채 ?_? 이런 표정을 계속해 보일 뿐이었습니다. 개그시도가 3번 정도 좌절되자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만남은 망했다는 것을요. 저는 곧 입을 다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조신하게 마시며 속으로 틱톡 시간아 흘러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어색하기 짝이 없게 그 만남은 끝났습니다. 저는 드디어 이 만남이 끝난데 감사하며, 다신 자신의 정체성을 거슬러 어색한 사람과의 식사를 가지지 않을 것임을 생각하며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안녕 이라고 말하고 돌아서는데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간석기는 크게 기쁘거나 안도하는 기색도 없이 똑같이 제게 안녕이라고 말했습니다 앗 밥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