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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winter |2019.03.25 18:35
조회 21,912 |추천 30


안녕하세요. 하루에 몇 번이고 판에 들어와 눈팅하는 올해 42살 된 여자입니다.
일기쓰듯 간편하게 쓰겠습니다. 혹시 오타가 있다면 조금만 양해부탁드립니다.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할수도 있어요.. 태어나 처음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거라... 


내 나이 스물 둘, 아주 꽃다운 나이에 아이가 생겨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귀하게 자란 외동딸이였고 우리 부모님은 한 날 한 시. 내 나이 스물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날을 설명하자면 잘 열리던 입이 다물어질만큼 아직도 누구에게 그 날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사고로 돌아가셨다 하니 그 누구도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단 한 사람 빼고,
바로 시어머님. 시어머니는 달랐다.

첫 임신소식에 키우자 결심했던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그 순간도, 세상에 혼자 남아 가족도 없어진 장례가 끝난 허무한 아침에도, 텅 빈 집에서 울지도 못하고 유품정리 할 때도, 세달이 지났을까 어느날 수도꼭지를 틀어둔 것처럼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때도, 정신차리고 잘 살 결심을 할 때도, 선물같은 아이가 생긴 그 날도 남편이 늘 항상 함께해줬기 때문이였다.

임신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남편의 어머님을 찾아갔던날,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리자 마자
“너희 부모님은 어떻게 돌아가신거니?” 하시던 어머님.
환영 받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뜻밖의 질문이였다. 어리지만 2년을 연애했고 우리 부모님은 어떤 성격이시고 남편도 외동에 어머님 혼자 키우셨다.. 뭐 이런 내용은 알았지만 만나뵌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어렸기에... 부모님을 만나 뵐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어머님의 말씀에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문제가 될까요?”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만약 문제가 있다. 한다면 결혼하지 않으려 했었다.
죽은 우리 엄마아빠에게 죽어서까지 가슴에 대못을 박을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워라.” 라는 말로 대화는 끝났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그 집을 나왔고 남편은 나를 따라 나왔고 나는 남편을 뿌리치고 집으로 왔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음날 아침은 참 이상하게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일어나 밥을 먹고 티비도 보고 과일을 먹을때쯤.. 이였나 어머님이 찾아오셨다.

생각지도 못했고.. 식탁 의자에 마주보고 앉았다.
남편은 주소만 알려준건지 같이 오지는 않았다.
한동안 아무말도 없다가 어머님이 그러시더라.
“조금이라도 더 작을때 지우면 안되겠니”
나는 당연히 안된다고 했고, 결혼 안 해도 상관없이 키울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때 어머님 “세상은 니 마음처럼 되지 않고 니가 원하고 바라는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 너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내가 얘기해준다. 나중에 후회 말고 지금 지워라. 절대 세상은 니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뭐 이런식으로 말씀하신 것 같다.

스물 둘에 내 나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어렸고 어렸다.
그러나 지금 다시 선택을 한다해도 내 딸을 선택했을거고.. 내 아들을 위해 살았을것이다. 다른건 못해줘도 내가 내 아들 하나만큼은 지켜줄 수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어서 죄송합니다.
대화내용 같은건 조금 왜곡됐을지언정.. 그 때의 대화의 흐름과 분위기는 정확하게 기억해요. 글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이해부탁드립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고,
시어머님과 나는 살갑지도 않았고 서로 있는듯 없는듯..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렇다고 네이트판에서 보는 글처럼 괴롭히고 그런 적은 없었다.
밥을 먹을때는 고기반찬을 말 없이 내 앞으로 밀어주셨다. 내가 조금 더 맛있게 먹던 반찬은 다음에 가면 두배로 많이 해두셨었다. 게장 참 맛있었는데..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었더니 말 없이 큰 김장김치통만한 통에 해주셔서 거의 한달은 먹은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어머님 고생하실까봐 적당히 먹었다.

그리고 평소 내 행동.. 같은 것을 늘 유심히 보셨었다. 그리고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 명의 통장을 달라고 하셨고 돈 관리는 어머님이 한다고 하셨었다. 내가 아무래도 어릴때 시집왔으니 그렇겠구나 했었다. 그때는..나는 의논 할 부모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내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던 해에 남편이 바람이 났다.
나를 아주 사랑해주던 내 남편이, 내아들과 나를 위해 평생을 살겠다던 내 남편이.. 그때는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아들 학교를 보내고 낮에 어머님 집을 혼자 찾아갔다.
그리고 이혼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어머님은 “이유는” 라고 하셨고 나는 솔직하게 바람났다고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콧방귀를 끼시더라. 아,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구나 했다.
그러더니 방으로 들어가셨고 통화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침묵으로 30분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어머님 집에 왔다.
아.. 정말 보기 싫은 남편을 이 자리에 불렀구나. 조금은 예상했지만 그 자리가 너무 싫었었다.

근데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어머님이 부엌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시더니 후라이팬을 가지고 나오시더니 아주 죽일듯이 패시더라.
너무 깜짝 놀라 몸이 얼었었다. 이러다 머리라도 잘못맞으면 죽겠다 싶어서 일단 말렸다. 말리느라 당황해 어머님 얼굴을 못봐서 몰랐는데 진정 후에 어머님 얼굴을 보니 눈물 범벅이시더라.
그리곤 남편에게 “니따위가 뭔데. 니따위가 뭔데” 라는 말을 계속 하셨던 것 같다. 그 콧방귀가 남편을 향한건줄은.. 그때 알게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혼을 했다. 
이혼하던 날.. 어머님은 그러셨다. “아주 어린 니가 아이를 가졌다고 나를 찾아왔을때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지냈던 니가 너무 안타까워 제발 지우길 바랐다, 니가 홀로 잘 살았으면 했다. 나도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혼자였고 남편마저 당뇨 합병증으로 잃었더니 정말 죽을것 같았다. 아들하나 보며 지금껏 살아왔는데 나중와서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참 그리 허망할 수가 없더라. 내 인생은 없었다. 그래서 니가 아기를 지우고 더 잘 살았으면 했다. 니가 우리집에 오던 그날부터 넌 늘 내 딸이였고 니 행동 하나하나가 밖에 나가 사고쳐서 일찍 결혼했다고 무시받지 않았음 해서 늘 지켜봤지만 너무 곱게 예쁘게 자라줘서 내가 해줄게 없었다.” 뭐... 이런 그런 내용이였던것 같다.
어머님은 내 손을 잡고 아이처럼 우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용서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들과 잘 살라고..

그리고 어머님이 통장하나를 주셨다. 그래.. 신혼초에 내 명의 통장을 가져가셨는데 거기에 어머님이 그동안 돈을 조금씩 더 보태서 넣어두셨더라.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 통장을 받아와 집에서 통장을 부여안고 한참 가슴을 치며 한참을 울었다. 우리 엄마아빠가 생각나서.
우리엄마아빠가 계셨더라면 어땠을까하고.. 우리 엄마아빠가 나 혼자 기죽지말라고 나에게 좋은 어머님과 사랑스러운 아들을 선물로 줬나보다 싶었다.

그 이후 명절, 내 생일, 아들 생일 정말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음식이며 뭐며 우리집으로 택배를 늘 보내주셨다. 나도 명절이나 어머님 생신때 선물을 들고가거나 아들과도 가끔 만났지만 어머님이 만남은 피하셨다. 그냥 다 잊고 잘 살라고 하셨다.
그런데 제작년 18년 여름쯤부터 올해 19년까지 택배는 더이상 오지 않았다. 전 남편이 결혼을 했나.. 뭐 사정이 있겠지 해서 연락을 조금 미루다 안부 물을겸 어머님이 보고싶어서 연락을 했지만 18년 가을부터 연락도 받지 않으셨다.


그렇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전 남편의 느닷없는 전화에 아들이 전화를 안 받아서 나에게 했나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달려갔을땐 이미 어머님은 없었다.
오지 않던 택배들.. 알고보니 건강이 그 쯤 악화가 되셨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미친듯이 가슴이 아팠다. 전남편이고 뭐고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냥 눈물만 났다.
우리 엄마아빠 돌아가셨을땐 너무 놀라 당시에 울지도 못하고 나중에 후폭풍이 와서 울었는데 어머님 돌아가셨던 그 날엔 정말 정신나간 사람처럼 소리지르며 울었다.
너무 죄스러워서.. 그저 무뚝뚝하셨을 뿐인데 너무 죄스러워서... 싫다 하셔도 더 찾아갈 걸 하고 말이다.

돌아가신지 3주가 됐다.
나에게 어머님의 흔적이라고는 통장뿐인데 눈물이 너무 나서 마음이 아프다.

생각해보니 어머님은 나에게 딸이라 하셨었는데.. 나는 단 한번도 그 말을 해본적이 없었다.

어머님, 어머님이 저 임신했을때 그러셨죠. 세상은 내 마음대로 절대 되지 않는다고.. 그러게요.. 왜 몰랐을까요. 어머님이 더 제 곁에 오래 계셨음 했는데. 내 마음대로 정말 되지가 않네요. 없는 애교 끄집어내서 한번이라도 부려볼걸..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 먹고 맛있다고 아양떨며 백번 더 얘기해볼걸.. 찾아오지말고 잘 살라는 말 지키지 말고 수도없이 찾아가볼걸.. 택배가 오지 않던 그날.. 어머님께 달려가볼걸.... 달려가서 사랑한다고 얘기해볼걸..

우리 다음생에는 더 가까운 인연으로 만나요.
내 걱정 그만하고.. 더 행복하세요.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사랑했어요 엄마. 
추천수30
반대수57
베플ㅇㅇ|2019.03.25 19:51
적당히 해라 몇번째냐
베플ㅇㅇ|2019.03.25 20:40
시어머니가 몇명이냐? 몇번이나 돌아가시는거냐? 내가 본것만 세번짼데 또 부활하실 예정ㅈ이냐?
베플ㅇㅇ|2019.03.26 04:22
시......ㅂ...새벽에 글보고 펑펑 울고있었는데 댓글뭐냐....아...이 배신감 뭐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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