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 아버지 얘기입니다 24년이 흘렀고아직도 가족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립니다.청원동의 부탁드릴게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9887
<남편 시신 실종, 그리고 의문의 죽음>
남편의 죽음,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신
이번엔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수년째 제가 반복하는 질문입니다. 과거 남편이 사망했던 병원 현장과 기록마저 없어져간 지금, 무엇보다도 사건관계자의 양심고백과 증언이 절실하기만 합니다. 민원을 처리하는 국가 기관을 상대로 남편의 의문사 진상규명을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한계가 무엇인지를 이 사건의 정황들이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저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하납니다. 이제는 의문을 풀어달라는 겁니다. 남편은 사망을 했는데 시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세월 속에 숨어버린 진실을 찾아 저는 오늘도 뛰고 있습니다. 이제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남편의 아내이자 남겨진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 사건의 발단
지난 1995년 1월 30일.
그날은 ‘ㄱ’건설사 디자인실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해외 건축박람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 중에 갑작스런 복통으로 사건의 발단은 시작됩니다.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2월 2일. “일정이 연장되는 것뿐이니까 (나 아픈 거)걱정 말고” 수회기 넘어 들리는 남편의 힘없는 목소리. 결국 당장 얼굴이라도 봐야 안심하겠다는 마음에 저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남편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병원 응급실
2월 9일 미국 도착 후 샌프란시스코 소재 병원 응급실 침상위에 누워있는 30대 남자, 얼굴은 지옥 같은 통증을 호소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고른 숨을 쉬며 살아있던 내 남편. 병원 측에서는 급성췌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저는 애타는 마음으로 간병을 했습니다. 그렇게 안정이 되어 가는가 싶던 남편은 갑작스런 고열과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고 결국 열흘 만에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서 저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남겨진 7살 아들과 14개월 된 어린 딸이 있었기에 병원 측에 남편의 안전을 당부한 채 당장이라도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 무례하고 무책임한 회사의 태도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입원해 있는 남편 대신 ‘ㄱ’건설사 관계자들을 만나 철저한 진상조사와 치료비를 요구했습니다. 다급한 상황 속에 처리 절차는 복잡했고 제 요구는 결국 거절당했습니다. 회사 업무 차 출장을 가긴 했지만 단순 지병으로 인해 입원을 했고 쎄미코마(Semi Coma)상태로 진행된 것은 회사와는 무관하며 산재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점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 결국 안타까운 사망소식
12월 12일 남편의 사망.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결국 12월 12일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남겨진 유가족들에게 남편이자 아빠의 어이없는 죽음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언제나 활기가 넘쳤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늘 따뜻했던 아빠였기 때문에 저는 남편의 죽음을 결단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 ‘ㄱ’건설사, 뒷거래와 사라진 의료사고 보상비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남편이 사망한 직후였습니다.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무책임하게 일 처리를 하던 ‘ㄱ’건설사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ㄱ’건설사의 관계자는 남편의 의료사고로 인한 죽음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소재 병원과의 보상처리 과정에서 유족 뜻대로 보상비 지급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회사의 태도, 아내인 나를 빼놓고 병원과의 보상 과정을 처리하겠단 속내는 과연 뭘까 궁금했습니다. 회사와 시동생 안씨, 그들만의 은밀한 뒷거래. 그 중간에 무슨 일이 있을 거란 상상은 전혀 안한 겁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한치 앞도 모른 채 결국 ‘ㄱ’건설사의 제안을 거절했고 저는 스스로 남편의 시신 인도나 보상절차를 점검해보기로 했던 겁니다.
# 풀리지 않는 의문 속에 감춰진 비밀
그렇게 남편을 잃었고 시신은 아무도 모르게 국내에서 사망 처리되어 24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기에 이미 서류까지 조작돼 사실여부를 확인 해볼 수 없는 상탭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진정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누구하나 그 두려운 진실을 쉽게 밝혀주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남편은 왜 그렇게 죽었고 어떻게 법적 보호자인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서 유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한 걸까요? 또 병원으로부터의 보상은 누가 받은 걸까요? 저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나 많습니다.
# 채무독촉에 표적이 된 유가족들
제게 통보된 남편의 죽음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남편이 죽기 전 우리 가족은 ‘ㄱ’건설사 소유의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사망 후 보증금과 임대료가 체납됐다는 이유로 살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ㅅ’은행으로부터는 천만 원이 넘는 돈을 갚으라는 독촉장도 날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회사 동료로부터도 빚 독촉에 시달렸습니다. 남편에게 큰돈을 빌려줬으니 빠른 시일 내 갚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차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서류상 확인할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남편이 남기고 간 의문을 안은 채 벌써 24년을 보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하면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심정, 가슴에 가장 큰 상처로 남은 것은 제겐 아픔이라는 멍에입니다.
# 잃어버린 시간…유가족들이 제기하는 의문
제기하는 의문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망확인서 조작입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을 통해 받은 답변에 의하면 남편의 시신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소재에 있는 병원에서 1995년 12월 12일 사망했고 시신처리는 12월 21일 Green Street Mortuary(영안실)에서 운구하여 12월 22일 서울 경찰병원에서 최종 처리됐다고 했습니다.
과연 누가 남편의 시신을 한국으로 데려온 걸까요? 저도 모르는 사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겁니다. 남편의 시신이 어떻게 한국으로 옮겨진 건지 지난 2009년 경찰병원으로부터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이 상황에서 의문을 풀어갈 열쇠는 오직 하나. 14년 전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경찰병원의 답변서가 유일한 해답이었습니다. 법적 배우자의 동의 없이 바로 시동생 안씨가 남편의 시신을 운구했다는 점, 경찰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경기도에 위치한 공원묘지에 매장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매장 과정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모든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관을 매장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는 공원묘지 관리인의 증언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의 해답은 죽은 망자만이 아는 걸까요. 24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남편의 시신을 잃어버린 아픔의 기억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침묵의 세월…남편의 시신은 과연 어디로?
그렇다면 남편의 시신은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남편의 죽음은 여전히 의혹을 안고 있습니다. 죽었다는 아픔보다 시신마저 찾을 수 없다는 고통과 슬픔. 이 모든 것을 속 시원히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저와 남겨진 아이들의 마음은 오히려 시신 실종 세월보다 더 견디기 힘든 무게로 느껴집니다.
# 서류조작과 의혹투성이
무엇보다,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건 시댁과 시동생 안씨의 태도였습니다. 남편의 사망 후 시댁에서는 제게 돈을 요구했고 시동생 안씨는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저는 생계를 위해 취업을 준비하던 중 관공서로부터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보니 남편은 1997년 1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관공서담당자는 시아버지가 직접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러 왔다고 했지만 시아버지는 당시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 시동생 안씨의 두 얼굴
극심한 생활고에 저는 아이들을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요? 1992년 1월까지 방배동의 지하 월세 방에 살고 있었던 시동생 안씨가 1998년 11월경 용산에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등기부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늘 남편에게 손을 벌리던 시동생. 남편의 의료사고 보상에 합의를 해준 당사자 안씨. 시동생 안 씨만이 그날의 그 진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세상에 대한 분노, 억울함
사진속의 남편은 아직도 30대 청년의 모습입니다. 살아있었다면 쉰이 훌쩍 넘었을 나이. 지나간 세월 속에 뿌리 내린 것은 더 깊은 의혹과 상처뿐입니다. 또, 사후 일 처리 과정에서 그 의혹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졌습니다. 병원 측의 의료 과실과 의혹들은 깊어졌고 안타까운 죽음 앞에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법적인 소송이나 공소시효를 초월해 관련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족으로써 아내로써 남편 시신에 대한 의혹은 밝히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어제와 오늘, 당장 해결해야할 일들이 태산 같은 현실에서 왜 과거에 매달리느냐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당신의 가족을 잃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잃어버린 24년, 눈물로 호소하며
남편의 죽음 앞에 직무를 이용해 사실을 은폐 조작한 혐의자들, 국가 기관의 공식 기록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왜곡된 진실 앞에 한 개인의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진실을 밝히지 못한다면, 남편의 일은 또 다시 풀 수 없는 의혹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기다려온 세월만큼 사회의 부조리는 근절하고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에 공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던 남편의 유골을 아직 땅속에 묻지 않았습니다. 제 가슴속에 지금까지도 묻어둔 채 모든 의혹이 풀리는 날,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려 합니다. 비바람 같은 삶 앞에 버팀목이 되어 준 두 아이들과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