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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페미니즘 뜻을 검색하는 한남들에 관한 제언

배워터 |2019.05.15 11:39
조회 470 |추천 0
출처 https://night-traveler.tistory.com/46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최상위에 뜨는 연관검색어 중 하나가 '페미니즘 뜻'이다. 이 연관검색어는 많은 함의를 갖는다. 먼저, 페미니즘 뜻이 최상위 연관검색어로 잡힌다는 건 페미니즘이 뭔지조차 모르는 대중이 넘실거린다는 뜻이다. 이는 상당히 안타까운 일인데,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는 적어도 19세기, 더 거슬러올라가면 18세기에서도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한국의 경우 20세기 초부터). 아무리 좁게 봐도 역사가 200여 년이나 된 사상의 뜻을 '모른다'는 건 우리나라가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자체에 대한 교육을 그간 얼마나 부실히 해왔는지를 방증한다. '페미니즘 뜻'이라는 연관검색어가는 한편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쁘다가도 슬픈 연관검색어라고나 할까.
일단 여기에도 '페미니즘 뜻'을 검색해 들어온 이가 있을지 모르니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정의를 적어 둔다. 페미니즘이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모든 성차별을 제거해 성평등을 이루려는 사상이다. 이러면 일부 한남들이 "성평등이라면서 왜 'femine'이 어원이냐!"라고 따지고 들 수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 중 하나인 흑인 민권 운동에다 대고 '인종차별 없애자는데 왜 흑인이 들어가냐!'고 묻는 사람은 멍청하다. 인종차별의 대상이 명백히 흑인이며 흑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게 곧 인종차별을 없애는 일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어원이 femine인 이유도 같다. 페미니즘 사상이 시작될 당시 성차별 문제에서 주체는 남성이고 대상은 여성이었다. 페미니즘에서 femine을 빼고 이퀄리즘 따위로 부르자는 건 성차별 문제의 뿌리를 지워 버리겠다는 말과 같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글에서 할 얘기는 서론보다 그렇게 길지 않다.
첫 번째. '페미니즘 뜻'을 인터넷에 검색할 시간에 페미니즘 서적을 읽거나 오프라인 페미니즘 모임·조직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는 게 페미니즘이라는 사상과 운동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한국 페미니즘 지형에 관해서라면, 상당히 한정적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선호는 차치하고 일단 현장을 둘러보거나 정리된 책자를 보는 편이 훨씬 더 정돈된 지식을 얻는 데 효과적이다.
인터넷의 특성상 이슈가 발생하면 항상 과대대표성을 갖게 된다. 페미니즘에서는 워마드가 그렇다(메갈리아는 과대대표됐다기보다는 한남들이 오인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본다). 실제로 내 주변 페미니스트들 중 워마드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찾기 힘들다가 아니라 그냥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워마드의 행동을 비판하는 데 힘을 쏟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워마드 잡고 있을 시간에 가부장제 깨뜨리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워마드의 중요한 촉매다. 근본적 원인을 제거해야 워마드의 명분도 사라지고, 그들을 비판하는 여론에 훨씬 힘이 실린다. 여하튼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워마드는 대체로 비판의 대상이지(터프 정도면 모를까), 광역 어그로를 끌고 다니는 그들이 한국 페미니즘 운동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적어도 난 만나본 적이 없다.
오프라인 페미니즘 모임이나 조직 활동에 참여하면(혹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즘 운동가들의 모습을 좀 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페미니즘을 연구하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페미니즘을 깔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뭣도 모르고 워마드 하나에 어그로 끌려서 개처럼 짖어대는 존재일 뿐.
두 번째. 첫 번째에 이어, 까더라도 페미니즘 사조 정도는 자신 있게 구분할 수 있게 됐을 때 까자. 뉴스와 인터넷에서 본 모습만으로 페미니즘을 판단하고 웅얼대는 한남들 보면 기가 찬다. 가장 기본적인 리버럴과 래디컬의 구분조차 하지 못하면서 페미니즘이 어쩌구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가끔은 그런 사조 구분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보인다. 이건 영화 안 보고 리뷰 남기는 일과 다를 바가 없는 짓이다. 인터넷에서 페미니즘을 깔 수 있을 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접시물에 코 한 번 박고 도서관이나 다녀오자. 두 세기 이상의 역사를 지닌 사상과 운동을 고작 인터넷 서핑 몇 시간으로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가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초로 한다는 주장을 펴는 머저리들도 있다;;)
세 번째. 내가 남성임에도 한남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단어만큼 한남을 패는 데 효과적인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가 결코 여성만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믿는다. 거기에는 페미니즘에 동조하며 가부장제를 타파하기 위한 운동을 함께하고, 한편으로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던 자신을 성찰하는 남성들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중 남성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물든 다른 남성을 지적하는 일이다. 자기비하 아니냐고? 나는 내가 한남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건 좀 양심없는 짓이다. 그래서 딱히 내가 나를 한남이라고 하거나 남이 나를 한남이라고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 써 놓고 보니까 제목과 좀 달라진 것 같다. 열받은 채 글을 쓰면 이렇게 된다. 반론 안 받는다. 반론할 시간에 가서 페미니즘 공부하는 게 님이 페미니즘 까는 데 더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 역시 반론 상대해줄 시간에 페미니즘 더 공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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