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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퇴직 얘기하자 한 달 채우라고 압박

AAA |2019.05.25 01:23
조회 1,560 |추천 2
한 학원에서 오랫동안 일했어요. 최저시급 받아가면서.
말이 최저시급이지 세금 떼고, 퇴직금이라고 10% 떼면 실제로 들어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최저시급 이하예요. 일은 적성에 맞았지만 항상 급여에 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렸어요. 수업 말고도 만들어야 하는 자료가 많았고.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도 없어서 물 마시거나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눈치게임하듯이 뛰어다녀야 했고.
그래도 참고 일했어요. 나보다 더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 군말 않고 일했거든요.
물론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당장 제가 들어가자마자 한 사람이 다른 일 하고 싶다고 떠났어요. 인사하고 퇴근한 다음날 아프다고 안 나온 사람, 업무량에 비해 급여가 너무 적어서 못하겠다고 간 사람이 두엇, 선생님도 더 늦기 전에 딴 일 찾아보라고 소곤거리고 간 사람...
다른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나도 떠나고 싶었지만, 여길 떠나면 어딜 가나, 내가 다른 데 가서 일할 재주가 있나, 라는 생각에 체념한 게 수 년.
사실 그 전 학원들도 대우가 좋진 않았거든요. 원비 안 들어온다고 월급을 분납해서 주거나, 그나마도 깎거나, 다짜고짜 해고시키더니 또 사람 안 구해지니까 다시 와달라고 하거나... 그땐 어리고 아는 게 없어서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숙이고 살았더니. 코끼리가 발목 묶인 거 못 풀고 자라서 다 커서도 그냥 묶여 있다는 것처럼 어느 새 자존감도 떨어지고 타성에 젖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올해 들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랑 자꾸 비교가 되더라고요. 중소기업이라도 회사 들어가서 저랑 비슷한 나이에 월 이삼백 당연하게 받고 있고. 영어학원 신입인데도 저보다 많이 받고(그야 영어수학은 원래 다른 과목보다 쎄긴 한데).한 직장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더 좋은 곳을 찾아 과감하게 나서고... 보고 듣는 게 늘어나니까 머릿속이 콕콕 찔렸어요. 내가 정말 이 급여에 만족해야 하나? 여기 말고 내가 정말 갈 데가 없나? 정말 여기서 평생 일할 건가?
결정적으로 "더는 안되겠다" 싶었던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부모님 노후 대비. 두 분 다 소득은 있지만 옛날에 생긴 빚을 다 못 갚아서 남는 게 없으셔요. 제가 보태야 하는데 지금 받는 급여로는 꿈도 못 꿀 상황.
둘째는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느꼈어요. 필요한 데가 있어서 대출을 알아봤는데, 학자금 대출을 다 못 갚아서 많이 못 받을 거라고는 예상했어요. 근데 예상보다 더 적게 나온대요. 소득이 적어서. 그나마도 고금리.
셋째는... 근로장려금 신청하라는 안내문이 날아왔어요. 없는 형편이라 돈 준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그걸 반가워하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서러웠어요. 아, 내가 나라에서 지원을 받으라 할 정도로 저소득자로 분류되는구나. 5년이나 일했는데, 그 정도로 내가 적게 받고 있구나.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어요. 많이들 열람하시더라고요. 면접 보러 오라는 곳도 더러 있었어요. 그치만 나이 때문인지, 학원강사만 오래 해서 다른 업무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대부분 그 이상 이어지진 못했어요.
그러다가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큰 기대 없이 간 면접 자리에서 "사실 거의 결정을 하고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마 그쪽도 급했던 거겠죠. 당장 내일부터 나와달라고 했어요.
내일은 무리고, 인수인계 준비해야 하니 좀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늦어도 6월에는 나와달라고 해서 2주면 괜찮겠다 생각하고, 6월 3일로 일단 계약을 잡았어요. 그리고 5월 20일에 출근해서 말씀드렸어요. 6월 2일까지만 하겠다고. 나가기 전에 인수인계 자료 최대한 만들어놓고 가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압박이 심하게 들어왔어요. 월화수목금 내내. 인수인계 준비 하는 눈치면 바로 불러다가 얘기 좀 하자고 앞에 세워 놓고 강권인지 설득인지 회유인지 여러 말들을 하셔요.
무조건 한 달 있어야 한다. 거기 연락해서 6월 말부터 나간다고 해라. 3일부터 나간다고 계약했어도 여기가 먼저다. 절대 안 된다.
대출 때문이면 대신 받아줄 테니 월급에서 떼는 걸로 하자.
심지어는 제가 지자체에서 다른 지원 받는 게 있는데 그것까지 얘기하시더라고요. 약정 중간에 이직하면 지원금 안 나올 거라고. 혹시나 해서 확인해봤지만 전혀 상관 없대요.
월급 올려주겠다는 얘기도 하셨어요. 근데 9월에. 3월에 제가 최저시급 얘기하니까 한 번 올려주셔서 하반기 되어야 다시 올릴 수 있다는데, 그 얘기는 이해해요. 하지만 전 당장 다음달부터 대출 이자 나가기 시작하면 도무지 지금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거든요. 그전부터 아슬아슬하다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로 계산이 안 맞아요. 이렇게 될 때까지 이직 한 번 안 알아봤다니 저도 참.
그렇다고 말씀대로 대출을 대신 받아달라고 하고 월급에서 까면서 9월까지 이 월급으로 버틴다? 그건 빚이잖아요. 은행도 아니고 직장 상사한테 지는 빚. 아무리 생각해도 노예가 되는 기분이라 이건 못 받아들이겠다 했어요. 그쪽에서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인정은 하더라고요.
그럼 무조건 한 달이래요. 계약서에 그렇게 썼으니 그래야 한대요. 근데 그 계약서, 재작년에 딱 한 번 쓰고 서면 갱신한 적 없거든요. 심지어 저는 제가 서명한 그 계약서 갖고 있지도 못했어요. 한 부 써서 그대로 가져가셔서. 저도 사본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때 말 못하고 계속 맘에 걸려 있었어요.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에 퇴직금 중간 정산 받을 때, 절차 상 필요한 거라고 자필 사직서를 쓰라길래 썼어요. 그 후로 따로 재계약서 같은 거 안 썼어요 분명히.


지인 통해 알아본 노무사 쪽에서는 퇴사 30일 전 통보 의무, 그러니까 퇴사 의사 표명 후 30일 근무 의무 같은 건 없대요. 해고 30일 전 통보 의무는 있는데, 그게 이렇게 저렇게 말을 타다 보니 변형돼서 그런 관행이 된 거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적 의무는 아니라고.
생각해보면 이직 생각하고 알아본 곳들 중 두어 군데 공공기관에서는 합격 발표 후 3일 후에 바로 출근하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합격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만약 퇴사 30일 전 통보가 법적인 의무라면, 그렇게 3일 안에 처리하고 나오라고 하는 것부터가 불법인 거잖아요. 근데 3일만에 새 출근하라고 하는 건 결국 그게 공공기관에서 준수하는 법규에 의거해 무리가 없는 일이라는 뜻 아닌가 싶고.


이래저래 알아보면서도, 일단 제 입으로 이달 말을 퇴사일로 말했으니 그때까진 지키려고 했어요. 저도 새 사람 안 구해져서 오랫동안 과중 업무에 시달리느라 힘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어서.
근데 월화수목금 내내 하루 두어 번씩 자꾸 불러다 한달이야 한달이야 그 전에는 절대 안 돼... 무슨 세뇌하듯이 해대는 소리에 저도 절대 안 돼요 무조건 이달 말이에요 저는 더 이상 이 급여로 살 수 없어요... 하고 맞받고 있노라니 자꾸 눈물이 주체가 안 돼요. 우니까 또 우는 거 싫다고 울지 말고 말하라고 하는데 저라고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에요. 한 달 할 거지? 안 나갈 거지? 계속 있을 거지? 해대는 소리들에 자꾸 숨이 콱콱 막히고 머리가 핑 돌고 눈시울이 화끈거려서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또 빨리 대답하라고 재촉하고. 전 안 돼요 하고. 그럼 또 다시 시작하고.
오늘은 수업 들어가는데 눈물이 안 멈췄어요. 애들이 제 표정 보고 서로 눈치를 보더라고요. 애들 앞에서는 티내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그쳤다가 또 핑 돌고 잠깐 괜찮은 것 같다가 또 뜨끈하고. 밥이 안 멕혀서 저녁도 안 먹었어요. 물이랑 커피 조금 마신 게 배탈나서 화장실 들락날락.
더는 안되겠다, 이 생각이 다시 들어요. 인수인계고 뭐고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게 느껴져서 내일 당장 사직서 내버릴까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또 겁이 나요. 박차고 나왔는데, 저한테나 새 직장에 막 전화해서 들들 볶아대는 거 아닌가, 영업에 타격 입었다고 고소라도 하는 거 아닌가. 나간 사람 추적해서 회사 잘리게 했다는 옛날 얘기를 선생님들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어서 그게 너무 무서워요. 잘리면 또 다른 데 가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서워요. 사실 그것 때문에 그동안 떠날 엄두를 못 내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저런 얘기 해대면서 자꾸 저더러 출판사가 무슨 전망이 있냐고 학원강사가 훨씬 낫다고 아직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런다고, 지금 사람 구해지지도 않았는데 떠나려고 하는 건 정말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행동이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볼 때 정말 제가 세상물정 모르고 이기적으로 굴고 있는 건지도 궁금해요. 용기도 필요하고, 조언도 필요해요. 절실하게. 긴 얘기가 됐지만 읽어주시고 부디 조언해주세요.
추천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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