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여자입니다.
원래 제 속이야기 남들에게 잘 안하는데 너무 답답해서 글 남깁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 많이 만나봤어요.
잘생긴 사람, 돈 많은 사람, 집안 좋은 사람, 못 사는 사람 ..
그러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온전히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아 이제는 더 볼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거든요. 나를 소중히 여기고, 불안하게 하지도 않고, 제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좋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자부심도 있는 모습이 좋아요.
둘 다 거의 비혼주의자였지만 만나다보니 정착하고 가정을 꾸리고픈 마음이 강해져서 그렇게 하기로 했고 남자친구가 30대다보니 남자친구쪽 부모님도 좋아하셨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서로 오랫동안 자취를 하고 있어서 신혼살림 꾸리기도 편하겠더라구요.
남자친구의 2억대 전세 오피스텔이 있어 전세금 빼서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웬만한 집기는 제가 다 가지고 있으니 식탁이나 소파 정도만 제가 구입하면 됩니다. 둘 다 차도 있구요.
서로 결혼이나 살림에 대한 가치관도 거의 비슷해서 여기까지 이야기 나누는 데 사소한 다툼조차 없었어요.
그전에 누굴 만나든 한 번도 부모님 보여드린 적 없다가 제가 먼저 제안해서 남자친구 부모님도 뵙고 오고, 저희 부모님 뵈러 다녀왔습니다.
저희 부모님.. 특히 아빠. 만나기 전부터 좀 틱틱댄다 싶더니 얼굴 보자마자 싸늘한 반응.. 자세하게 쓰긴 좀 그렇지만 제가 다 민망했어요. 미안하고 후회되고.
뭐 물어보는 것도 딱히 없이 그러시는 거 보니 제가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6살 차이입니다), 무엇보다도 남자친구 외모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아요.
외모로 밥 벌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참,, 그러네요. 그렇다고 제가 엄청 예쁘거나 남자친구가 엄청 못생긴 것도 아닙니다. 부모필터로 내 딸이 더 예뻐보이고 아깝고 그런 거겠지요.
그렇게 따지면 외모 나이 제외하고 제가 낫다고 말할 부분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거 따져서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학벌이나, 직장이나, 연봉이나, 집안 등등 뭐 어떤 걸 따져봐도 제가 더 낫지는 않습니다. 암만 나이차가 있다 해도 남친 연봉이 제 2배가 훨씬 넘어가는데요..
그렇다고 집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형편도 안 됩니다. 빚 갚기 바쁠 텐데. 저도 달라고 할 생각 없구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더라구요.
어렸을 적 부터 부모님께 정서적으로 학대받고 자랐습니다.
그게 학대고 폭력이었는지는 대학에서 교육 전공하면서 천천히 깨달았습니다.
좀 자랑같지만 공부도 곧잘 하는 편에, 온갖 대회에 나가서 상 쓸어오고, 독학으로 이것저것 배운 재주가 많아서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께 사랑 많이 받았구요.
그러는 동안에도 집에서는 칭찬 한 번 못받고 항상 남들과 비교당하고 후려침 당하며 컸어요.
하고싶은 미술은 돈 없다고 눈치주고, 뭐든 못하면 못한다고 눈치주고, 잘 하면 잘하는 대로 더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고. 결국은 고등학생 때 엇나가서 방황하다가 떨어진 성적 맞춰 지방 국립대 갔습니다. 학비는 딱 한 번 받고 나머지는 장학금+학자금으로 해결했구요. 용돈은 그래도 계속 주셨네요.
전공 고민할 때에도 정서적인 지지는 커녕 하고싶다고 말하는 것마다 반대에, 언어적 폭력 끝에는 손찌검까지 했던 엄마입니다.
이게 오랫동안 지속되니 부모님과는 딱히 아무말도 안 하고 싶더라구요. 독립한 지 10년 넘어가는데 속얘기? 뭐 하고 싶다거나 속상한 이야기? 일절 안 합니다. 친구들한테도 잘 이야기 안 해요. 어차피 남은 나를 이해 못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우울증을 10년 넘게 앓아서 약도 먹고 하다가, 언젠가 너무 심해져서 상담을 했더니 아주 어렸을 적 부터 부모와의 어긋난 관계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해주더라구요.
그렇다고 차마 부모님을 탓하고 손가락질 할 수는 없어서 그래 그들도 자라온 환경이 좋지 않았으니까, 당신들도 부모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을 테니까 스스로 토닥이고 합리화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존감 세우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서 지금은 우울증도 없고 건강합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네요.
결혼할 때 되니 부모님이 또다시 슬슬 옥죄여 오네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무조건 반대를 하던, 정작 집에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상식은 혼자 부딪히고 터득해나가던 내 과거가 떠올라서 계속 너무 괴롭습니다. (생리대 붙이는 방법 같은 거요.)
뒷짐 지고 앉아서 어른인 척은 다 하며 정작 보여주는 행동은 전혀 어른스럽지 않아 너무 실망스럽고 남자친구 보여주기도 부끄럽네요. 딸이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그리 싫은 티를 냈어야 하나요. 차라리 나중에 살짝 불러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했으면, 차라리 뭐라도 물어본 데에 시원찮게 대답을 했던 거라면 이렇게까지 속상하지 않았을 것 같네요.
남자친구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그런 대접 받고 돌아오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웃는 게 참 고맙네요.
그 뒤로 엄마한테 전화 왔는데 일절 안받았어요. 너무 화나고 서운해서요.
매일 그 때의 그 서늘한 공기, 분위기가 떠올라서 새벽까지 가슴을 치다 잠듭니다.
차라리 가족과 연 끊고 살면 편하려나 상상하다가도 보고싶고 애틋하고 사무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까 참 나도 부모 사랑이 고프구나 싶네요.
사무실에서 글 쓰다 말고 자꾸 눈물이 차서 그만 적어야겠네요 ㅎㅎㅎ
여기까지 읽으신 분 계시다면 넋두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