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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에 편지를 써

0513 |2019.11.15 02:08
조회 526 |추천 0
안녕? 오랜만에 편지를 써
아마 이젠 정말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아
너를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이 추운 겨울이 어느덧 다가왔어
7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그날의 장면이 생생히 기억나
별 기대없이 나갔던 소개팅에 약 30분 늦게 도착한 너
대충 밥 먹고 빨리 헤어지자 생각했지만 신사역 출구를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중 너가 나오던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어
사진과 묘하게 비슷했지만 훨씬 예뻐서, 혹시 다른 사람을 착각한건 아닐까 망설이며 머뭇머뭇 인사를 나눴지
맞다고 확인을 하고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심장이 그렇게 두근거릴 수가 없었는데, 이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기억에 나는 두근거려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며 흔해빠진 호구조사를 하다가 문득 너의 이상형이 궁금해져서 물었어
그게 누구든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채 기대를 하던 내게 돌아온 대답은 소지섭
나의 이상형을 묻는 너에게 그순간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는 감사할줄 아는 여자라고 했고 너는 당황하며 너도 다시 대답하겠다고 했지
이런 얘기가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둘이 계속 웃었던 기억이 나
이미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맥주 한잔하자는 말에 흔쾌히 따라나온 너와 별 얘기 없이도 서로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웃다보니 어느덧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지
우리집과는 정반대인 너의 집에 데려다주는 택시 안에서 꼭 잡은 우리의 손은 나의 심장을 더욱 뛰게 만들었고
택시를 내려 너의 아파트 단지 앞에서 돌아서는 나에게 달려와 내 목을 잡고 짧게 키스를 하고 수줍게 뛰어가던 너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미친사람 마냥 헤벌레하며 집에 갔었지
그렇게 시작한 우리는 4년이란 시간을 빼곡히 채우며 참 치열하게 다투기도, 힘든 시간을 위로와 격려로 함께하기도 하며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
당연히 결혼을 생각했었고 우리를 비롯해 주변의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었지
그래서였을까
너무 서로를 편하게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도 너가 없는 모습을 생각해보지 않아서
나의 행동과 말투에서 조금씩 너는 서운함을 토로했고
이를 듣고 고치기보단 왜이리 불만투성이냐며 나도 서운했던 것들을 얘기하며 짜증스럽게 대했던 나는
마침내 그만하자는 너의 확고한 말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하염없이 울었고
너는 너가 울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아니 오히려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렇게 우리의 4년은 끝이 났어
시간이 지날수록 너가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지, 나를 원망했을지 깨닫게 되어 스스로 너무 한스럽고 또 미안해
알겠지만 그후로 2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제대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고있어
몇 번 시도도 했었지만 쉽게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가 없더라
이따금씩 걸려오는 너의 전화를 계속 기다리게 되고 우리의 시간이 그립지만 나를 다시 만날 수는 없다는 너의 반복되는 대답마저 기다리게 되더라
물론 2년전처럼 좌절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하는 것은 아니야
퇴사 이후 원하던 공부도 잘 마치고 꿈을 찾아 한발씩 나가며 보람있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
단 하나, 너의 큰 빈자리는 대체하지 못한 채.
부모님은 아직도 가끔 물어보셔 너는 잘지내고 있냐고
아마 너의 부모님도 가끔씩 같은 질문을 하시겠지?
요새 함께 일하는 분 중 한 분이 너의 어머님과 외모와 말투가 너무 닮으셔서 부쩍 어머님이 그리워
지금도 찾아가면 정겨운 말투로 반갑게 맞아주실 것만 같은데.
한동안 연락이 안오는 걸 보니 너도 이제는 마음에 안정을 찾은 것 같네.
사실 알고 있어, 너에게 마침내 좋은 사람이 생겼다는 걸
너와 나 정도 사이에는 말하지 않고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게 있으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누군지도 대충 감은 잡고 있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다행이야
우리의 이별 후에도 이런저런 일들로 참 힘들어했던 너가 이제는 웃을 수 있을만큼 괜찮은 사람 같아 보여서 오히려 마음이 놓여
사실 나는 아직 너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는 꿈을 꿔
이 꿈은 너의 결혼식이 지나서야 포기하겠지
머지 않아 너의 결혼 소식이 들려올 것 같은 느낌에 한편으로는 뭔지 모를 불안함과 답답함도 있지만,
차라리 그날이 오면 나는 길고 긴 헛된 희망에서 벗어나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마지막 편지를 너에게 직접 부칠까도 생각했지만,
행복한 날들에 괜한 분란을 일으킬 수 없어서 너가 보지 않을 이곳에 남길게
나의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웠던 젊음을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아,
여기에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했어
부디 이제는 힘들지 않고 웃음만 가득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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