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키친의 후반부. 전반부가 미국의 동,서,남부 지역 요리에 중점을 두었다면 후반부는 중남미 여러 국가들을 돌게 됩니다.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캐리비안 연안의 여러 나라들. 미대륙의 허리 부분 동쪽에 위치한,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자메이카,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잔잔한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국내의 한 워터파크도 이 이름을 따서 지었고, 그래서 '캐리비안 음식'으로 검색하면 워터파크 식당이나 시설 내 반입 금지 음식 목록이 뜰 정도로 꽤나 생소한 음식 문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가를 막론하고 치느님의 위엄은 사라지지 않는 법. 자메이카의 대표 음식 중의 하나가 바로 양념한 닭가슴살 요리인 걸 보면 말이죠.
절크(Jerk) 치킨이라고 하는데, 자메이칸 절크 스파이스라고 하는 매운 향신료를 사용해서 양념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원래 자메이카는 스페인이 점령한 지역이었는데,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대거 들여와 농장을 운영합니다. 그러다가 영국에게 밀려서 노예들을 내버리고 도망쳤는데 영국인들에게 잡혀 또 다시 노예생활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웠던 흑인들은 산악 지역으로 도망쳐서 자메이카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게 되지요.
그리고 원주민들의 고기 요리법과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 가져 온 향신료가 만나서 만들어 진 것이 바로 이 닭고기 요리입니다.
또 다른 캐리비안 지역의 명물 요리라고 하면 염소 카레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머리까지 붙어있는 통염소 고기를 잘라서 만든 게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자른 염소 고기는 뜨거운 오븐에서 구워 낸 다음 카레와 가람마살라 등 각종 인도 향신료와 함께 오랜 시간 끓여서 조리합니다.
나중에는 염소 고기가 포크로 찍어 올리기만 해도 부서질 정도로 (Fork-tender) 부드러워 지지요.
카리브해 지역에 왠 난데없는 인도 향신료인가 했는데, 이 역시 제국주의 시대의 부산물입니다.
스페인지 점령하던 지역을 영국이 빼앗으면서 당시 함께 지배하던 인도의 향신료가 대거 유입된 덕에 만들어진 요리거든요.
염소 고기 왼쪽에 찌부러진 바나나같은 요리는 토스토네스 (Tostones).
바나나 사촌쯤 되는 플랜테인이라는 식물을 꾹 눌러서 납작하게 만든 다음 기름에 튀켜 낸 음식입니다.
예전에 처음 미국 왔을 때는 플렌테인이 바나나인 줄 알고 샀다가 전혀 다른 맛에 놀라며 "무슨 놈의 바나나가 이러냐"라며 투덜거렸던 적도 있었지요.
딱딱하고 달지 않은 바나나 맛이라서 과일보다는 감자나 고구마쪽에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튀겨 먹으면 진짜 맛있지요.
이름부터 특이한 후두투 (Hudutu). 코코넛 소스로 요리한 생선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루퍼(Grouper)라고 불리는 농어를 주 재료로 합니다.
예전에 학교 입학하고 초창기에 먹을 때는 참 맛있었는데 일 년 지나고 나니 입맛이 고급스러워졌는지 이제는 별로 맛있게 느껴지지가 않는게 신기하네요.
오른쪽 위에는 자메이카식 고기 파이가 곁들이 음식으로 나왔습니다. 소고기를 갈아서 마늘과 양파는 물론이고 생강에 쿠민, 올스파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향신료를 섞어서 밀가루 반죽으로 감싼 다음 구워 냈지요.
파이 속재료 중에서 가장 특색있는 거라면 역시 럼주를 넉넉히 뿌려준다는 점일 겁니다. 카리브해 지역의 특산품인 사탕수수는 예로부터 설탕과 럼을 만드는 중요한 원료였으니까요. 그래서 대표적인 삼각무역 중의 하나가 카리브해의 사탕수수(당밀)를 뉴잉글랜드로 가져가 럼으로 증류하고, 이 술로 아프리카의 노예를 사서 다시 카리브해의 농장에 팔아먹는 식이었지요.
오른쪽 아래의 수프는 카킥(Kak'ik)이라고 불리는 마야식 수프입니다. 특징이라면 다양한 신대륙의 채소와 향신료가 들어간다는 점이지요.
이 수프 하나 끓이는 데 과히요(Guajillo), 파시야(Pasilla), 피킨(Pequin)의 고추 세 종류에 차요테 호박과 아치오떼 반죽 등 생전 처음 보는 재료를 다루야 했으니까요. 재미있는 건 남미 요리에선 수 많은 종류의 고추가 사용되는데 고추마다 매운 정도는 물론이고 맛도 다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 두 세 종류의 고추를 섞어서 사용하는 일이 부지기수지요.
수 많은 고추의 씨를 빼야 했는데, 그 중 몇몇은 청양고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매운 녀석들이라 장갑을 끼고도 조심스럽게 작업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나름 인지도가 좀 있는 칠리 콘 카르네. 혹은 카르네 콘 칠리. 아마 "칠리 콩 까네"라는 이름이 왠지 재미있게 들려서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을 듯 합니다. 그래서 이름은 알아도 먹어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요리이기도 하죠.
원래는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다져서 매운 칠리 소스에 섞는 것이 기본인데, 아메리카 키친에서는 조금 큰 덩어리로 잘라 낸 다음 표면이 갈색이 되도록 일단 구워주는 게 먼저입니다.
고추는 씨를 빼서 팬에 굽고, 이걸 물에 다시 불린 다음 블랜더로 갈아서 퓨레를 만드는 게 기본 레시피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보면 왠지 고추장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요.
구운 돼지고기와 칠리 퓨레, 육수, 그리고 각종 향신료를 섞어서 한 시간 반 가량 삶으면 완성입니다. 또르띠야에 싸 먹거나 밥 위에 놓고 먹어도 맛있습니다.
코치니타 피빌 (Cochinita Pibil). 멕시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요리입니다.
겉보기에는 검은 콩과 밥, 아보카도와 양파 절임밖에 눈에 안 띄는데, 실제로 제일 중요한 건 그 아래 숨겨진 돼지고기입니다.
코치니타는 새끼돼지, 피빌은 묻어서 굽는 요리법을 뜻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면 구덩이를 파서 장작을 깔고 돼지고기를 양념해서 바나나 잎으로 싼 다음 불 속에 묻어놓고 요리를 하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주방에 구덩이 팔 곳이 없는 관계로 오븐에 넣고 구워내야 하지만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의 특권. 먹고 싶은 것 골라먹기입니다.
밥이나 나초야 뭐 특별할 게 없는데, 왼쪽 아래 부분의 녹색 경단같이 생긴 음식이 좀 특이합니다.
피피안 베르데(Pipian verde)라는 음식인데, 베르데(=녹색)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기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저 녹색 소스입니다.
호박씨와 참깨, 땅콩을 볶아서 멕시칸 녹색 토마토인 토마티요와 녹색 고추인 세라노 칠리를 갈아넣어서 만듭니다.
녹색 소스라고 하면 아보카도 갈아 만드는 것 밖에 몰랐었는데, 이런 방법도 있었네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멕시칸 요리. 왼쪽은 페스카도 베라크루사나 (Pescado a la veracruzana). 페스카도는 생선이라는 뜻이고 베라크루즈는 현대자동차에서 만들었던 SUV모델...이 아니라 멕시코의 지역명입니다. 베라크루스 스타일의 생선 요리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생선은 밀가루를 살짝 묻혀서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튀기듯 구워냅니다. 양파와 마늘, 피망, 올리브, 케이퍼, 아몬드 등을 볶아 만든 소스를 올리고 스페인어로 아로즈 블랑코(Arroz blanco), 즉 흰 쌀밥을 곁들여서 나옵니다.
왼쪽의 바나나 비슷하게 생긴 건 위에서 언급했던 토스토네스가 아니라 플래타노스. 익기 전의 플랜테인을 튀겨서 만든 게 토스토네스라면 다 익어서 부드럽고 단 맛이 생긴 플렌테인을 요리한 것은 플래타노스라고 하지요.
오른쪽의 모듬 요리는 안또히토스(Antojitos)라고 하는데, 특정한 요리를 지칭하기보다는 멕시코식 에피타이저를 다 묶어서 부르는 말입니다.
생선 타코, 치킨 타말, 소페 등을 여러 소스와 묶어서 테이스팅 셋트 만들듯 한 접시에 올려줍니다.
몰레 콜로라디토 콘 포요 (Mole coloradito con pollo).
몰레는 멕시칸 소스의 일종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과콰몰리(guacamole) 역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몰레의 한 종류지요.
오아하까(Oaxaca) 지역에서 비롯된 일곱 가지 몰레가 멕시칸 요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사용된 몰레 콜로라디토는 안쵸 칠리와 과히요 칠리 두 종류의 고추를 중심으로 토마토, 마늘, 시나몬, 오레가노, 마죠람 등을 섞어 만듭니다.
닭고기에 얹어 먹으면 매운 찜닭을 멕시코식으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구나 싶은 맛이지요.
불법, 합법을 막론하고 멕시칸 이민자가 워낙 많은 미국이다보니 멕시코 요리는 그래도 꽤나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데 비해 아예 남미 요리로 넘어오면 이제 미국에서도 흔히 보기 힘든 메뉴가 슬슬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페루식 꼬치요리 안티쿠초스. 고기를 꼬치구이로 요리하는 것 자체는 그닥 신기할 게 없는데, 고기가 소 염통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기름과 소금, 설탕, 남미식 향신료를 섞어 만든 양념을 발라 굽는 요리인데 쫄깃쫄깃한 식감이 맛있습니다.
다만 양이 너무 적어서 이것만 먹으면 좀 배가 고프다는 게 단점이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남미 요리인 세비체와 티라디토.
미국에서 접하기 힘든 날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뉴욕 식품법상 완전 싱싱한 날생선을 서비스하는 건 불법이고, 생선을 일단 얼렸다가 해동시킨 다음 회를 떠야 한다는 한계가 있지요.
그렇다면 맨하탄의 미슐랭 3스타 초밥 전문점들도 다 냉동 생선을 사용할까?라는 의문도 드네요.
해산물 중간 중간에는 페루 요리답게 다양한 종류의 옥수수를 조리해서 곁들입니다.
날생선에 식초 베이스의 양념을 해서 먹는다는 점에서는 세비체와 티라디토가 비슷해 보이지만
세비체는 조그맣게 썰어놓은 생선살을 양념에 마리네이드 해뒀다가 먹는 반면
티라디토는 생선회처럼 얇고 길쭉하게 썬 생선을 먹기 직전에 소스를 뿌려 먹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참치는 디라디토 방식으로 서비스 되는 반면, 농어와 문어는 세비체 형태로 서비스 됩니다.
그래서 농어와 문어는 미리 준비 해 두는 게 가능한 반면, 참치는 회만 미리 떠놓고 주문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소스를 뿌려 나가게 되지요.
페이조아다(Feijoada)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포르투갈 요리로,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여 내는 스튜가 그 원형입니다.
그런데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지배할 당시 가난한 브라질 사람들이 버려지는 자투리 고기를 모아 만들면서 브라질 요리로서의 명성도 얻게 되었지요.
그래서인지 고기 부위가 돼지 귀나 혀 처럼 서양 사람들에게는 꽤나 생소한,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부분들이 사용됩니다.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이 만들어 먹던 프라이드 치킨이나, 브라질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 만들어진 페이조아다나, 전후 궁핍한 시절 탄생한 부대찌개나 왠지 비슷한 배경에서 만들어 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브라질식 고기 모듬요리, 슈하스코 (Churrasco).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소시지가 모두 모인 고기 종합 선물셋트입니다.
마늘과 타임, 후추를 섞은 올리브 오일을 바르는 것 외에는 특별히 양념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는 메뉴지요.
원래 슈하스코라고 하면 숯불 피워놓고 꼬치에 고기를 꿰어서 돌려가며 구워 먹는 게 가장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통고기를 구워서 잘라먹는 방식은 대충 슈하스코라고 하는 듯 합니다.
주방에 숯불 피워놓고 꼬치 돌릴 만한 여건이 안 되는 관계로 그릴에 직화 통구이로 구워버립니다.
커다란 고깃덩이가 호쾌한 소리를 내며 지글지글 구워지고, 불꽃이 올라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
오픈 키친 형태로 주방을 디자인해서 고기를 구우면 엄청 잘 팔릴듯한 모습이네요.
손님용 식사는 접시에 정해진 양을 정해진 방식으로 플레이팅 해서 나가는 반면, 수업 듣는 학생들이 먹을 건 이렇게 뷔페식으로 한 자리에 모아서 원하는 메뉴를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습니다.
주방 스태프들이 이렇게 먹는 걸 패밀리 밀(Family meal)이라고 하는데, 왠지 우리나라 구인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가족같은 분위기의 업무 환경'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한 스테이션에서 15인분을 만든다 치면 12인분 정도는 판매하고 나머지 3인분 정도는 패밀리 밀로 남겨놓곤 하지요.
그런데 간혹 판매율이 저조할 경우엔 학생들이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이 남기도 하고, 그럴 경우엔 아예 따로 포장을 해서 지역 노숙자들에게 제공하는 푸드 뱅크에 기부를 합니다.
그래서 메뉴에 따라서는 '노숙자들이 어지간한 서민 가정보다 더 비싼 음식을 먹게 되겠네' 싶은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하지요.
특히 아메리카 키친은 지중해 키친이나 아시아 키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메뉴가 많아서 그런지 푸드 뱅크로 넘어가는 음식도 많았더랬지요.
이렇게 미 대륙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음 목적지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 그 중에서도 중동 지역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