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제 곧 26살이 되는 불행했던 아님 불행하다 느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아빠한테 하루도 빠짐없이 듣고 자란 말이 있습니다.
친구 필요없다. 인문계도 필요없다 취업안되니까 기술을 살려서 대기업 취업해야 잘먹고 잘산다.
놀 시간이 어딨냐. 너 그러다 곧 닥친다. 저는 매일같이 항상 이런 말을 지겹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초, 중학교 시절에는 핸드폰도 유행하던 시절이 아니라,,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들도
모두 되돌려보내시더라구요..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있으면 동네방네 찾으러 오시고 방안에
문제집 하나 던져놓고 반강제로 공부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어쩌다보니 25살이 되었네요.. 서론이 길었는데, 차근차근 시작해보겠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69년생이십니다. 저는 96년생이구요.
20대 초반에 아빠의 무리한 집착으로 인해 엄마와 결혼하셔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하지만 저의 출산으로 인해 불화가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심각한 대두여서.. 출산중에
위험을 무릎쓰고 제왕절개를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남들과 다르게 머리가 아닌 발부터 나와서 산모가 더욱 위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상에 나왔고, 엄마는 며칠동안 깨어나시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깨어났고, 아빠란 사람은 그런 엄마한테 애를 버리거나 고아원에 보내자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였습니다.
(주작이라고 의심하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면.. 이 이야기는 육아수첩에도 없는 내용이고,
최초로는 엄마의 친한 친구인 이모한테서 알게되었습니다.. 엄마한테는 항상 힘들때나
기쁠때나 옆에서 자리를 함께해준 인생 친구가 계십니다. 어려서부터 항상 함께였고 각자
결혼을 하고 난 지금도 쭉 친한 친구로 지내시거든요.. 전 이런 엄마 친구를 항상 편하게 이모라고
부르면서 커왔구요. 조금 재밌는건 아빠의 동네친구가 저 이모의 남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부모님의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모에게서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나하나씩 듣게 되었고 정말 많이 방황할 뻔 했습니다.. 물론 이런 과거는 중학교
3학년때 엄마가 갑자기 눈물바람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슬퍼하시느라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깨어난 산모한테 애를 버리거나 고아원에 보내자니요..
엄마는 당연히 안된다고 말하시고 다시 안정을 취하셨고, 그 사이 아빠란 사람은
저를 해외로 입양보낼 준비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외갓집 모든 가족들이 나타나서
저를 데려갔습니다. 아빠란 사람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서 이혼 절차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외갓집 사람들도 찬성하였지만, 엄마의 엄청난 반대로 이혼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때 엄마에게 들어보니 아무리 아빠란 사람 역할을 못할지라도 아빠 없이 살게하고
싶진 않으셔서 억울해서라도 이혼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버티셨다고 해요..)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결국 합의하에 잘 지내는가 싶었고,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저를 무조건 기계처럼 다루어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항상 압력을 가하셨습니다.
아빠는 대기업을 4번 이직하실 정도로 똑똑하셨다고 하는데.. 솔직히 부모님 20대 시절에는
동네 누구가 이제 곧 결혼해야된다는데~ 입바람좀 넣어줘봐~ 하면 취업이 됬다고 해요.
전 그래서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7살부터 아파트 내부 동네 자동차 차종, 번호판, 사람들 얼굴을 정말 잘 외웠습니다.
아빠는 이런 모습을 보고 저에게 아낌없는? 돈을 털어부었습니다.
과외부터 학원이며.. 24시간을 아빠가 그려놓은 스케쥴대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항상 100점을 맞았고, 저도 사람인지라 100점을 맞으면
너무나도 좋아서 양손에 시험지를 쥐고 집으로 달려왔던 기억이 정말 생생히 납니다.
(아빠가 저를 감시하는걸 좋아해서.. 초등학교에서 저희 집까지 동선이 보이는 남향 아파트로
입주했었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시험지 쥐고 뛰어오는 모습을 아빠가 비디오로 찍어둔게 있어서
아 나도,, 어렸을때 웃으면서 자랐구나.. 하고 흐릿한 기억이 아닌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6학년때부터 pc방을 알게 되었고, 당연히 학원가는 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학원비를
가로채셔 미니카도 사고 서바이벌 bb탄총도 사고.. 좋지 않은 일들에 발담구다보니 성적은
70점대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때 아빠한테 정말 죽도록 맞았고, 옆에서 엄마는
울면서 머리는 때리지 말라고 아빠 몸을 붙잡고 말렸습니다.. 당연히 학원 땡땡이에 학원비
가로챈 것도 걸려서 더욱 맞았지요.. 다 압수당하고 눈앞에서 박살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학교1학년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때만 하더라도 초등학교중학교는 다들 동네
애들이라 낯익은 애들과 함께했습니다.) 중학교는 집 창문에서 저의 동선이 보이지 않아
감시는 피할 수 있었죠. 그걸 더욱 더 잘 알아서 학원선생님한테는 아프다고 거짓말 하고
매일같이 시내에 가고 방방도 타고.. 정말 재밌게 놀았습니다.. ㅠㅠ 저는 이 때 추억이
제일 재밌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놀고나면 성적은 당연히 내려가는게 정상이었죠.
정말 시험성적때문에 맞기는 싫었고, 이 때 컴퓨터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oa실력을..
이상한 곳에 발휘해서 저희 무리 애들과 함께 9명의 성적표를 위조하게 됩니다.
이때 저는 국어 40점 수학 29점이라는 역대 최저 점수를 받았어요.. 정말 무서워서,,
물론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그렇게 완벽한 성적표를 위조하였습니다. 아빠는
이런 성적표를 보고 매우 좋아하셨고, 저에게 플레이스테이션을 직빵으로 구매해주셨죠..
하지만 중간에 자기 엄마한테 가서 이 사실을 불어버린 친구 때문에 저는 교무실로 불려가고
부모님도 소환되었습니다.. 아빠는 다시금 저를 죽일듯이 패대기치고 때리셨고,,
또다시 완벽한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중학교 앞 문방구 2층으로
이사했거든요.. 등하교 시간만 되면 아빠가 창문으로 보고 있었어요.. 지금 쓰면서 보니
정말 소름이었네요..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성적은 평범한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전교생 300명정도에 60등 정도는 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이 성적이 매우 맘에 들지 않으셨구요.
고등학교 가서 잘하겠다고 사정사정해서 무사히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도 저는
인문계를 가려 했는데.. 지겹게 말하던 아빠의 말대로 저를 강제로 공업고등학교에 보내셨습니다.)
입학 첫날 거의 하루종일 교무실에 살았습니다.. 사실 이 때 자격증이 9개나 있어서 모든 선생들의
집중을 받게되었거든요.. 왜 공고에 왔니, 이정도 자격증 있으면 인문계를 가는게 맞는것같은데..
그렇게 고등학교 첫 등교부터 유명인으로 관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으로 입학하게 되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학교가 대부분 애들이 흡연을 하는.. 선생들도 포기한 그런 공업고였더라구요..
저도 그 무리에서 흡연을 하게될 뻔했는데.. 저는 정말 흡연하지 않았는데 옆반 애들의 음모로
제 가방에 담배를 넣어놔서 소지품검사를 당하면서 걸리게 되었습니다.
당연 부모님 귀에 들어갔구요. 엄마는 정말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셨고, 아빠는 당연스럽게
저를 뚜드려 갈겨주셨습니다. (쓰다보니 출생부터 아빠가 완전 나쁜사람처럼 보였을수도 있지만,
아빠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가 나아가면 그순간은 항상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무리속에서 정말 제대로 된 2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다행스러운건지.. 그 둘은 정말
활발하면서도 (1명은 흡연, 1명은 비흡연) 제가 힘들때 곁에있어주는 좋은 친구들이었습니다.
항상 감시받다보니까 ㅋㅋ.. 정말 할게 공부밖에 없어서 정말 그냥 이때 생각을 바꾸고
아빠가 원하는대로 살아보자.. 라는 마인드로 공부하고 자격증 취득해가며 이런 꼴통학교에서..
학교장 추천서를 받게되어 삼성전자에 원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19살에 삼성 서류합격..
ssat합격.. 인적성 합격.. 그리고 일반면접과 기술면접을 보게되는 날에..
결과적으로는 불합격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공기업들에 연달아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던걸 아빠도 알게 되어서 고3부터 아빠의 폭력은 멈추었습니다.
저는 20살에 남들처럼 대학에 가게 되었지만.. 이 때에도 공고를 나와서,, 인문계를 갈 수 없어서
전문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성인이 되었다는 기쁨에 학교를 잘 다녔습니다.
교수 연수실에 학생들을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해서 들어가게 되었고,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과방처럼 재밌게? 놀면서 학교를 다니다가.. 같은 연구실 이성 친구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등교고 같이하고 수업도 같이듣고 하교도 같이하면서 ..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4시간 넘게도 서로 고민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20년 인생중에 처음으로
썸이라는걸 타게 되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서로의 실수로 인해 결과적으로 썸으로만
끝나게 되었습니다. (소문만 가지고 서로를 의심했거든요..)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저는 군대를 가게 되었고.. 잘 버티나 싶었지만.. 훈련중 다친 손을 제 때 진료를
받지 못했고.. 상병 휴가 때 병가와 모든 연차를 끌어다 써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팔 하나를 움직일 수 없어서.. 4개월간 재활치료를 받으며 항상 깁스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월, 수, 금마다 국군병원 재활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저는 전역하고 뭐하지.. 라는 고민을 가지며 쇼핑몰 운영을 해보자 라는 구상과 과정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말년이 되었고 말출 휴가 계획이 잡은 날 저녁에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생활관에 전화기 있었거든요) 내일 당장 이혼할거니까 집에 오라고
열폭하며 이야기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어릴적 생각이 나서 갑자기 눈물이 팡 터졌고
일단은 계획대로 말출을 가게 되었습니다. (부대에서 집까지 6시간 걸리는 거리입니다..)
반나절을 달려서 집에 도착했는데, 정말로 엄마와 아빠는 이혼이야기를 하면서
누굴 택할거냐고 고르라는 말을 했습니다.. 정말 멘붕이었죠. (수술로 인해 모든 휴가를 끌어다
쓴지라 말출이 4일밖에 되지 않아서.. 3일내내 친구와 술을마시며 고민을 털어놓고 대답을
준비한채 다시 부대를 복귀했습니다. 2일 대기 후 전역을 하였고. 전역 당일 동기들과
서울에서 1박2일 파티를 하고 가기로 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저는 홀로 나와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은 이사짐 센터가 와서 짐을 퍼나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 전역한 저를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결정햇냐는 따가운 시선의 말 한마디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 때 정말 주마등처럼 인생이 한번 그려지고,, 수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날때부터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그래서 날 포기안한 엄마를 택할것이냐
성격은 파탄자이지만 커가면서는 알고보니 표현이 잘못되었지만 뼈속까지 아들 생각을 해온
아빠를 택할것이냐..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날 저녁 엄마는 외갓집으로 갔고, 기존에 살던 집은
부동산에 내어졌고, 있던 짐들은 이삿심센터에 장기보관되었습니다. 저는 아빠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술김에 아빠에게 어렸을 때 왜 저를 버리려했냐는
질문을 하려던 찰나에.. 아빠가 눈물바람을 하면서, 선택은 니가하는거겠지만 꼭 아빠를 택하라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듣고보니 제가 군복무하는 당시에 엄마가 다단계와 기독교로
위장한 사이비 종교에 빠지어 일수를 쓰게 되어서.. 집을 날릴만한 액수가 되어서
아빠가 집을 잃을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 저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집을 급하게 내어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제 명의였다고 알려주시더라구요..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너무 억압받고 맞으면서 자랐고 막내여서 항상 뒤쳐지면서 자라서
저만큼은 꼭 풍족하고 인정받으면서 살게해주고 싶어서 공부해라.. 대기업가라 이렇게
아빠 욕심으로 인해 저를 강압적으로 키우게 됬다고도, 어렸을 때 절 버리려했던건
절대 해서는 안될 실수였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전부 털어놓으셨습니다..
진짜 이때 아빠랑 저는 펑펑 울었고, 아빠와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서
엄마의 빛으로 인해 가정파탄을 예방하고자, 집은 제 소유이니 그대로 가지고
혹시라도 엄마와 사이가 잘못되면 호적에서 나가서 그 집으로 제 살길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빛도 자식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하더라구요..) 복학을 3달 앞두고 제 수중에는
1억4천만원이라는 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할머니 집에서 지내다가
엄마의 빛이 해결되어 (외갓집과 친가에서 돈을 합쳐 구사회생으로 해결됐습니다.)
다시금 합쳐지게 되었고 집이 없어서,, 달동네같은 동네에 작은 빌라의
투룸을 얻게 되어 13평의 집에서 저와 엄마 아빠 동생.. 이렇게 4명의 가족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화목..해질 시기에 저는 복학을 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아버지 차를 한번씩 몰면서
학교를 다니었습니다. 복학을 하고 주변에서 다들 cc라는걸 하게되는걸 보게되었고
20년 넘게 모쏠아다였던 저도,, 정말 연애라는게 해보고 싶어서 체육대회 때 같은과 옆반
(과 인원이 많아서 두개의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1학년 친구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기내서 번호를 따는 시도를 하였고, 기쁘게도 번호를 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잘 연락하나 싶었는데 ㅠㅠ 알고보니 그 당시에 함께 연락하던 남자가 4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썸이기에 아무말 할 자격도 없는 저였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강의실을 살펴보는데
빈 강의실 안에서 서로 키스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창문으로 그 장면을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제 눈앞에서 거절하더라구요..
이 때 정말 우울했는데 ㅠㅜ.. 하교 시간에 오빠 시내까지 태워다 주실수있냐고.. 하더라구요.
그 남자애와 함께요.. 하,, 저는 그런 병*같은 상황에서 그 말에 수긍했고 그 둘을
시내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렇게 멘붕상태로 학교를 다니는데.. 문득 그 여자애 근황이
궁금해서 과 애들에게 물어보려했는데, 되려 먼저 그 근황을 듣게 되었습니다.
얘 어장 치고 여기저기 갈아타고 다닌대. 라고 말이죠.. 그 여자애는 기독교 집안이었고
아빠는 목사.. 엄마는 전도사..라고 들었는데 ㅠㅜ.. 기독교라고 해서 참하고 착한 순한 그런
환상이 전부 깨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러운 2학년 생활도 술과 동기와 함께.. 버티면서
2학년 2학기때 대기업에 현장실습개념으로 위장한 선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기업 계약직으로 일했는데,, 이 때 사무회계 능력을 인정받아서 정직원 제의를
받았습니다. 이 때 조건은 반년을 채우면 정.직.원.으로 올려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저는 그냥 그 순간이 너무나도 좋았고 당연 오케이! 하며 첫 회사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인적성과 면접을 보고 합격통보를 받아서 정식으로 정직원 발령을
받게 되어 재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차량지원금을 받고 여가활동지원법인카드도 받으면서
정말 꿈같은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고.. 회식을 하면서 유흥업소를 가게될 상황에 처했고
모쏠 아다였고.. 겁이 많은지라,, 유흥은 정말 무섭고 가기 싫어서 거절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회사에서 저는 무리에서 못끼는 병*이라고 손가락질 받게 되었습니다.
남자xx가 그런것도 못하고 ㅉㅉ.. 실제로 저렇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ㅠㅠ..
저는 이 때부터 이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고 복지고 뭐고 눈에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때 다른 대기업에서 공채를 하는 시즌이었고, 당연히 !! 눈뜨는대로 지원해서..
얼떨결에 최종합격을 받게되어 집에서 220km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과 멀어지고 복지도 줄어들어서 솔직히 좋지는 않았지만.. 전직장에서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해
간신히 회피하는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고졸 사원으로 입사한지라 대졸 사원들로부터
엄청난 무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곳 또한 회식날이면 유흥.. 을.. 강요하더라구요.
심지어 뿜빠이..
저는 믿고있던 간부님한테 저는 모쏠 아다고 유흥은.. 정말 저자신한테 미안해서 못하겠다고..
나중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첫 아다를 때고싶다고 털어놓았는데.... 정말 믿었던
사람인데.. 제가 말한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그냥 대놓고 퍼뜨렸습니다..
사람을 쉽게 믿고 고민을 털은 제가 병x이었죠.. 그렇게 그런 회사를 아직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동기들이 많아서,,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나름 자기회로를
돌리면서 행복한척 살아가다가.. 처음으로 장거리,, 소개팅을 받게 되었고, (소개받은 여성분도
교대근무..) 서로 교대근무를 하다보니 약속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서로 짬을 내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회사에서 3시간반이나 걸리는 곳이었지만.. 정말 그 누나가 마음에
들어서,, 처음에는 카톡만 하다가.. 처음으로 이성과 영상통화도 해보고, 퇴근하면 서로
수다도 떨면서 그렇게 한달만에 첫만남, 장거리 썸을 타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만남은 제가 휴무날에 집에 내려갔는데,, 제가 사는곳으로 그 누나가 찾아와주어
그렇게 두번째 만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만남은 제가 그 누나 직장앞으로 찾아갔고,
데이트?를 하고 집에 바래다 주면서도 저와 팔짱을 끼며.. 정말 꽁냥꽁냥한 세번째 만남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서로 팔짱을 낄 때 커플들만 낀다는 커플링이 껴져있는걸 보았고,
찝찝하고 궁금했지만 패션이겠지.. 싶어 물어보지 않고 그렇게 제 자취방으로 돌아갔습니다.
3시간 반이나 운전해서 돌아가고 나서도 서로 카톡도 하고.. 잘자라고 전화로 인사도 해주었고
그렇게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썸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주선자 친구에게 이러한 상황을
말했더니,,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술한잔 하자더군요.. 자기도 몰랐는데 얼마전까지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전 남친을 못잊겠다고 한마디 던지고 잠수를 탔다고 말해줬습니다..
... 그냥 불행했습니다. 제대로 된 연애한번 못해보고 어장에 잠수까지 당해보는구나,,
그냥 조용히 돈이나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매일 회사에서 잔업하면서 일만하고 하다보니..
그래도 부서에서는 일 잘한다고 인정은 받았습니다.. 단지 남자로써의 이미지가 병x으로
낙인찍혔죠.. 이런 제 고충도 모르고 대기업을 2곳이나 성공해서 이직했다는 저를 되게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엄마,아빠 친인척 지인들에게 동네방네 소문내며.. 제 자랑을 하고 다니시는
부모님을 보면.. 씁쓸하지만 또 좋기도 합니다.. 이제 일주일 뒤면 26살이 됩니다..
이런 회사,, 계속 다니는게 맞을까요?... 어렸을때부터 친구라는 존재와는 거의 단절되게
살아온지라.. 친구도,, 고등학교 절친 2명과 대학교 절친 2명이 제 인생에서는 전부입니다.
(거르고 걸러서 정말 제 곁에 두는 4명입니다..) 어릴적 추억도 없고, 친구도 없는 편이고..
지금의 유일한 낙은 저를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는것 뿐입니다..
얼마전에는 부모님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아빠가 결혼이야기를 선뜻 꺼냈습니다.
아빠가 3년정도 있으면 회사에서 나오게 될 것 같다고.. (50대 퇴직권고)
(직급순으로 집에 보내기에 항상 대리에서 존버타시다가 이제 더이상 진급할 사람이 없어서
아버지도 2년전쯔음 간부권에 진입하셨는데 이제 아빠가 권고를 받으시네요..)
아들 결혼하는건 보고 퇴직하고 싶다고,, 말하시는데.. 엄마도 이때는
아들이 여자친구 데려와서 소개시켜줬으면 좋겠다고.. ㅠㅜ..
그런데 현실은 25.9살에 동성 친구도 4명밖에 없고 이성친구는 1도 없고, 만날 껀덕지도 없는..
회사에선 남자구실 못하는 병x으로 낙인 찍힌 저를 보게 되네요.....
오늘 크리스마스인데 휴무날이라 모처럼 밖에 나가보려는데
엄마가 전화오셔서.. 아들 여자친구 소식은 없어~? 라고 하시는데,, 또 그 질문에
아들이 바빠서 아직은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라고 거짓말을 둘러댔습니다.
차마,, 말씀드릴수 없잖아요 ㅠㅠ 쪽팔리게.. 하,, 저에게도 인연이 나타날까요..
나쁜 짓이라고는 어렸을때 학원비 땡깡치고 땡땡이 치고 부모님을 미워했던 것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아까 시내에 나가서 카페에 가려는데
죄다 커플들이 차지해서.. 자리가 없더라구요 ㅋㅋ...ㅠㅠ 서러운 25살의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신세한탄 하면서 인생을 주마등처럼 또 한번 읊어보는 하루를 보내며 크리스마스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26살이 되는 모쏠아다의 신세한탄이었습니다!!
ㅠㅜ.. 다들 회사생활할때 유흥업소에 다니시나요.. 참,, 웃기게 이런거로 사람을 평가한다는게
너무 억울하고 미치겠는데.. 어딜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이젠 겁에 질려서 이직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ㅎㅎ.. 사실 2번 연속으로 인사고과를 파렴치한 인간한테 빼앗겨서
우울해 죽겠는데,, 여러모로 정말 스트레스네요 ㅠㅜ.. 출근해도 지옥이고 퇴근해도 할게없고
이렇게 드는 생각이 모이면 좌절..이 됩니다 ㅠㅜ.. 비슷한 경험을 하신분이나,
직장생활 선배님들 계시면 조언부탁드립니다.. 직장도 있고 차도 있고 이제 아빠 퇴직전에
함께할 여자친구만 있으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요즘 제일 듣고 싶은말이..
수고했어, 넌 잘하고있어. 사랑해. 이런말인데,, 타지에서 있는것도 힘든데,, 저런 말한마디
들어보질 못해서 너무 힘들고 이제는 그냥 지치네요 ㅠㅜ.. 낮아진 자존감을 어떻게 올리고
소확행이라는건 어디서 찾아야할지.. ㅠㅜ... 이래서 다들 외롭다 라고 하는가보네요.
집에 가고 싶습니다. 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더 늦으면 평생 모쏠이겠죠,,
맞춤법도 꽝이고 이야기의 두서도 순서없지만.. 쓰다보니 매우 긴 글이 되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 2019년 수고하셨고, 2020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