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지옥같다
그 지옥이 가족이라는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초등학교 5학년, 아빠의 사업 실패는 아빠에게 피해의식과 의처증을 안겨주었다.
충분히 그럴만한 충격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초등학생인 나도 이해할만 했지만, 아빠의 행동은 나를 갉아먹어갔다.
비꼼과 폭언. 말은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냈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숨죽여 울곤 했던 엄마를 한 순간이라도 웃게 해주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형편없는 내 유머를 탓해야했다.
그렇게 한 치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아빠는 각종 병이 생겨 먹는 약만 20알 가까이 되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하고, 아픈 것은 얼마든지 간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사업에 실패하고 이런 병까지 얻은게 모두 엄마탓이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밥상에 국이 이틀만 같아도, 입고 싶은 옷이 세탁기에 들어가있어도, 사고 싶은걸 당장 못 사기만 해도, 10년 넘은 가전제품이 고장나도 모든 것은 엄마 탓이었고 엄마가 뭐라 말이라도 할라치면 어디서 말대꾸냐고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하고 빌어먹을 아빠의 약과 아침식사를 챙겨야 겨우 출근시간에 맞춰 나가는 엄마를 밤 12시부터 새벽5시까지 수없이 깨워대며
옷을 입혀달라, 옷을 벗겨달라, 다시 입혀달라, 다시 벗겨달라하며 미치게 만들었다.
엄마가 짜증이라도 낼라 치면 바로 시x, ㅈ같네 등 욕이 날아왔다.
지금까지 우리 남매를 여기까지 뒷바라지 해준건 엄마다. 엄마의 고생과 헌신은 아빠에겐 그저 '유세'였다.
직장에서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하루종일 티비만 본 (사업실패 후 매일 일과) 아빠의 그 빌어먹을 저녁 식사를 차리면서 부엌 바닥에 앉아있으면, 왜 그러고 앉았냐 시비를 걸고 힘들어서 앉아있다 하면 그까짓게 뭐가 힘드냐, 너만 돈버냐는 비꼼과 비난이 쏟아졌다.
아이러니한건, 아빠는 돈을 벌지 않았다.
돈을 벌지 못하는게 아니라, 벌지 않았다.
몸이 성할 때 조차도 잘 나가던 때의
향수에 젖어 남이 보기에 그저 그래보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몸도 성치않으니 말 다했다.
저런 당당함에 처음에 나는 어디에 숨겨둔 막대한 비상금이라도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었다.
아빠가 그럴때, 나는 참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어린 초등학생, 반항기만 가득하다고 여겨지는 중학생, 어른에 가까워졌지만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고등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정말 악을 쓰며 덤비기도 했고, 이성적으로 얘기도 했고, 울면서 빌기도 했다. 제발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나아진 건 없다.
여전히 엄마는 아빠 자신의 인생을 망가트린 장본인이고, xx년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굉장히 아내에게 자상한 남편으로 둔갑한다.
평소 행실이 그렇지 못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 입으로 아내를 끔찍이 생각한다, 나만큼 아내한테 잘해주는 사람 없을거다, 아내가 결혼 잘한거지. 이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믿을 수 밖에. 끔찍한 현실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아빠는 거짓말을 굉장히 잘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얼마 전에는 눈물연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이러니 아빠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엄마와 나는 미칠노릇이다.
엄마는 늘 참는게 일상이다. 아빠는 해달라는대로 달래야 고분고분하다는걸 안다. 그래서 매번 아빠한테 지고, 아빠는 의기양양해 승리감을 만끽한다.
지랄맞게도, 나는 아빠의 불같은 성격을 닮았다. 사실, 닮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다. 아빠와 닮았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고,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앞뒤없이 남탓만 하는 파렴치한 노인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늘 행동을 조심했다. 그래왔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더는 노력을 못 할 것 같다.
폭언 속에 혼자 버티는 엄마를 두고 갈 수가 있을까... 엄마가 아빠보다 먼저 돌아가실까봐 항상 걱정이었는데...
이 상황이 언젠가는 나아질거라고, 나도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것도 이제는 너무 지친다.
꿈이 있었고 그 꿈으로 달려가는 과정이 고되지만 행복했었다. 목표한 바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걸로 만족한려고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아직 더 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엄마도, 형제도, 그 누구한테도 도움의 손길을 보낼 수가 없어서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구구절절 털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전부다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