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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만드는 저녁밥 모음

Nitro |2020.05.03 01:25
조회 8,591 |추천 47

 

나다니엘 호손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아내가 기뻐하면서 "정말 잘 됐네요! 이제 당신이 진짜로 하고 싶던 글쓰기를 할 수 있겠어요. 내가 그 동안 조금씩 모아놓은 돈이 있으니 걱정 말고 집필 작업을 하세요."라고 격려했다지요. 그리고 그 결과 나온 것이 명작으로 손꼽히는 "주홍 글씨"입니다.


물론 이는 굉장히 특별한 사례이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요리 쪽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 노력을 해야 했지요. 한국에서 공부했던 것까지 합치면 장장 10여년의 공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든다는 데 두 팔 벌려 환영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각종 약속어음을 남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요리 배우면 저녁 식사 준비는 잘 하지 않겠나"였습니다.


집밥의 무서움을 모르던 철 없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잡곡밥, 미역국, 무채 나물, 호박과 가지 된장 무침, 잡채, 소고기 청경채 볶음, 김치(마트 구입), 콩자반(마트 구입). 뭔가 열심히 준비한 것 같은데 결과물을 놓고 보면 별 거 없어보이는 게 참으로 미스테리지요.


 

잡곡잡, 어묵탕, 오이, 연근조림, 호박과 가지 무침(재활용), 조기찜, 김치(마트 구입), 돌김자반(마트 구입).


하루 종일 밥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밑반찬을 넉넉하게 해 놨다가 다음날이나 이틀 후에 다시 써먹는 건 필수 요소입니다. "우리 집은 남는 반찬을 재활용 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만들어 액자로 걸어 둘까도 생각 중이네요.


 

잡곡밥, 감자와 양파가 든 두부 된장국, 감자 조림, 게맛살 채소 볶음, 김치(마트 구입), 김(마트 구입), 무채 나물(재활용)


그래도 가급적이면 새로운 반찬을 계속 공급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족들 식성이 요리사에게는 지옥불 난이도라는 거지요. 아내는 체질상 고기와 기름기 많은 음식을 못 먹고, 딸내미는 버섯과 고기류를 안 먹고, 아들녀석은 조개류나 갑각류를 먹으면 아토피때문에 잠을 못 잡니다.


차 떼고 포 떼고 장기 두는 심정으로 식사 준비를 끝내고 나면 '오늘도 한 고비 넘겼구나' 싶기도 합니다.


 

카레라이스, 콩나물국, 송이버섯 구이, 가자미찜, 멸치 볶음, 김치(마트 구입), 미역줄기 무침.


생선은 그나마 모두들 잘 먹는 단백질이라 종류 바꿔가며 생선이 자주 올라오고, 카레라이스나 짜장밥 역시 단골 메뉴입니다.


레스토랑 메뉴 실습 할 때에 비하면 굉장히 간단한 요리들인데, 종류를 바꿔가며 매일매일 끊임없이 공급해야 한다는 데 그 진정한 무서움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취미로 하는 요리는 아무리 복잡하고 힘들어도 즐거우니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마라톤 대회 참가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집 밥 만들기는 난이도가 쉬운 것과는 별개로 내가 만들고 싶을때나 만들기 싫을 때나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군 생활 당시 매일 아침 돌던 연병장 아침 구보와 비슷하네요.


 

잡곡밥, 콩나물, 당근, 고사리, 호박 나물, 달걀 후라이, 된장국(재활용), 돌김자반(마트 구입), 김치(마트 구입).


비빔밥은 남은 반찬 다 쓸어넣고 슥슥 비벼 먹을 때는 참 편한데, 비빔밥 먹자고 처음부터 만들기 시작하면 참 귀찮은 메뉴입니다. 나물을 데치고 볶고 무치고의 무한 반복. 여기다 가족들마다 달걀 후라이의 익힘 정도를 다르게 주문하면 "얌마, 니가 해 먹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래도 해야죠, 손님 주문인데. ㅎㅎ


밥 위에 나물과 달걀 얹고, 감자가 풀어지는 바람에 된장찌개에 가까워진 된장국도 조금 섞고, 참기름과 고추장에 김가루까지 섞어서 비벼 먹으면 한 끼 뚝딱입니다.


 

잡곡밥, 아귀 맑은탕, 콩나물 무침(재활용), 고등어 완자, 오이미역 냉국, 물두부, 김치(마트 구입)


밥은 여러 번 했는데 애들이 배고프다고 난리라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첫째인 딸내미는 소싯적부터 아빠가 동영상 찍고 있는 케이크(https://www.youtube.com/watch?v=Exb_ad6q6RM) 먹겠다고 달려들면서 소리가 들어가는 바람에 "영상 찍으면서 야동 보고 있었냐"는 오해를 사게 만든 전적이 있을 정도로 돌파력이 강하고, 둘째 아들놈은 애처로운 눈빛을 쏴대며 "배고파요"도 아니고 "먹을 것 좀 주세요"라며 누가 들으면 맨날 애들 굶기는 줄 알 것 같은 멘트를 날립니다. 


처음에는 5첩 반상을 꼬박꼬박 챙겨 먹이자는 게 목표였는데, 밥과 국, 김치와 장류는 숫자를 세는 데 포함이 안 되다보니 쉽지 않네요. 일본식으로 일즙삼채(국 하나에 반찬 세 가지)나 겨우 만족시키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천수47
반대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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