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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현실의 눈

겨울새 |2004.02.14 13:57
조회 313 |추천 0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일본군 위안부의 얘기는

개인의 아픈 과거가 아니다.

자신의 딸들을 생계의 수단으로 일본군의 품에 떠다민

힘없는 우리 조국의 시린 역사다.

 

왜 그녀들은 시커멓고, 구석진 모퉁이에서 인격을 유린당해야만 했는가?

최소한의 생명의 존엄성조차 뭉게 트려진채,

왜 그토록 짓이겨져야 했는가?

 

역사는 조국에서 조차 버림받은 그녀들에게 냉담했다.

한쪽 어귀에서 희미하게 부서져가는 모진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젊은 세대들은 그녀들의 응달진 모습을 무관심으로 일축했고,

또다른 두뇌들은 금전적 가치로 재해석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메카는 상업성이다.

문화도, 예술도, 정치도, 심지어 요즘은 개인의 사소한 헬스관리조차

지폐의 환산으로 부각되면   본연의 이미지를 떠나

금전적 마케팅으로  부활된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 자신의 치부도 드러내야만 하는가?

내 누이의, 내 조국의 피폐되었던 역사적 소용돌이조차

주판알속에 넣어 두드리며 셈하여야만 하는가?

 

꽃다운 누이들의 넋은 수십년이 지난 세월의 막에도

또렷이 뇌리속에 문신되어 있다.

 

국력으로도 해결할수 없었던 여린 영혼들의   피흘렸던 과거는

지폐더미로 계산될 가벼운 논쟁의 여지가 아니다.

 

대중의 눈을 통해 쉽게 경제적으로 부를 특여받는

연예인의 값싼 누드로 헝클어져 멍든

민족의 상처를 상품화할수는 없는 것이다.

 

짐승보다 못했던 일본군들의 가학앞에 쓰러져갔던

한서린 그녀들의 잠들지 못하는 통증을 후벼파는 행위는

있을수없는 비극이다.

 

우리는 잊고 싶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과거앞에

조금만더 숙연해지자.

 

팔순의 나이에 흘리시는 할머니의 눈물은

결코, 돈으로 보상받을수도 없고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씨앗으로 사용할수도 없는

뼈를 깍는 우리모두의 상처인것이다.

 

한 시대를 더블어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써,

할머니의 주름진 눈가에

우리 모두가 무릎꿇어 사죄드리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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