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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스압.의식의 흐름.한심함.

어쩌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문득 이곳에 글을 쓰게 되면 실낱같은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3자가 봤을 때 비웃음만 살만한 생각들을 가진 채 판에 오게 됐습니다.이 글을 쓰게 된다면 저는 자기합리화와 자기비하, 책임전가를 하는 것 또한 알고있습니다.제가 한심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니, 너무 공격적인 비방과 비판은 사양할게요..
인생에 있어서 현재의 저를 존재하게 한 이유의 __점은 물론 태어난 이후와 현재까지겠죠.저는 현재 20대 후반이고 일본인과 결혼했으며, 5개월된 아이가 일본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태어나고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증조할머니 손에 키워졌습니다.남아선호사상이 가득하신 증조할머니가 오냐오냐 키우셨죠.3살터울의 누나는 어릴 때부터 뒷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중소기업의 간부셨습니다. 매일 출장을 가셨고 주말에만 돌아오셨죠.어머니는 교사이십니다. 현재까지도 교사이고 아침에 나가서 저녁 7시 넘어서야 돌아오시죠.항상
잠시 심리학과를 전공했었으나, 아버지의 암투병으로 학고를 먹고 1년을 날려먹었습니다.그 때 당시 배운 것은 [아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과 신체적 접촉을 통해 부모를 신뢰하고 따르기 때문에 자녀의 일생의 초반부는 자녀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하다.] 입니다.
그래요. 어머니는 저 갓난아이 때, 페미니즘을 독파하셨다합니다.제 어릴적 기억엔 어머니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물론이었습니다.증조할머니와 재미있게 놀던 기억 뿐이었고, 어머니라는 존재는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즈음, 가족과 함께 장례식을 갔습니다. 화장터에서 불이 활활 타는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구경하던게 기억납니다. 그 뒤로 저는 증조할머니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외할머니와 엄마가 갑작스레 등장하죠. 집착과 강요...정말 싫었습니다.싫다고 수십번을 얘기해도 계속 권했습니다.
먹는거 입는거 자는거 베는거 덮는거 전부.. 권하고 권했습니다.
엄마는...방임주의였습니다. 밖에서도 저는 내놓은 자식이다. 신경안쓴다. 방임주의다. 등등..얘기하고 다닐정도로 엄마는 저한테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학부모의 역할만 충실했죠.
중학교에 입학하고난 후, 저는 왕따를 당했습니다. 맞고왔습니다. 엄마는 맞서싸우랍니다.그게 끝입니다... 그 때 당시 저는 왜소하고 키도작고 안경까지 쓴 말그대로 찐따였었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무시당했고 저는 부모의 존재에게 의지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얼마 전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그때 당시엔 왕따를 당하는 애도 뭔가 문제가 있을거다"라고 생각했다...랍니다. 난 그저 엄마에게 위로와 사랑을 바란 것 뿐이었는데)
(그리고 누나가 학교 일진에게 인중이 터져서 흉이 지도록 맞고와서 고소를 했는데 돈받고 합의를 봤다고합니다... 누나에겐 상처였다고 하네요)
그렇게 저는 중학생 때부터 가출을 하게 됩니다. 첫 가출은 인천문학경기장역 인근의 한 원룸방입니다..가출청소년들이 많이 거주중이었고, X지수 라는 사람이 집주인이었죠.예쁨을 받아서 독방에 그 형과 같이 침대에서 잠을 잤습니다. (옆방은 남자여자 십수명이 테트리스 하듯 바닥에서 잤습니다)
겨울시즌이라 군고구마를 팔아서 나온 돈으로 살아갔습니다.(범죄는 안저질렀어요)가출신고를 한 아버지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말에 자녀들과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죠. 그래도 이따금씩 가출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중순 즈음, 화성에 있는 사격장에 놀러갔다가 실제 권총을 쏴보게됩니다.아마...98점이었나 96점이었을꺼에요. 카운터를 보던 아저씨가 소질이 있다고 부모님께 사격선수로 키워보라하시더군요. 저는 칭찬받았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저는 저에 대한 주제로 칭찬을 받는 것에 기쁘고 저에게 기대를 하는 눈치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하고싶기도 했구요.
그렇게 중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를 뒤로한 채, 사격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중학교 2학년 중순부터 3학년이 끝날 때까지, 개인입상기록 없고 팀으로는 입상을 했었습니다.체고를 갈 수 있었는데...반삭을 해야한대요.....근데 제가 안검하수가 있어서 눈을 뜰 때 이마에 주름이 4줄이 생깁니다......그 때는 그게 죽어도 싫어서 체고진학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공고를 가게 됐죠...사격선수 한다고 공부라는건 제대로 하지도 않았었고, 고등학교는 가야하는데 무슨 고등학교를 가야할지 몰랐습니다. 엄마가 고등교사면 뭐합니까? 관심이 없는데..공고에 가서도 잠만 잤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안경쓰고 왜소한 찐따였습니다.왕따가 됐습니다. 어느 제 생일에 가까운 날 모르는 애가 저에게 와서 생일 선물을 준다며 따라오라고합니다. 저는 멍청하게도 순수한 마음에 기분이 좋아서 따라갔습니다.
빈 교실에 예닐곱명이 둘러싸는 형식으로 가운데 공간을 만들어 놨더군요.그렇게 저를 둘러싼 상태로 짓밟았습니다. 안경이 깨지면서 얼굴이 찢어져 피가 났습니다.그리고 자퇴를 하게 됐습니다. 부모님한테 얘기 안했냐구요? 했죠..병원가랍니다.
피부과 가서 치료받고난 이후, 다시 가출하게 됩니다. 자퇴도 하구요.가출을 몇번을 했는지 모르겠네요..기억하는것만 10번이 넘어요.그 와중에 범죄도 저지르고..일본에도 반년간 다녀왔습니다.펜팔 하던 친구네 집에 살며, 3개월찍고 돌아갔다가 친구 부모님이 보고싶다고 오라고 해서 다시 3개월..)그러다 집에 돌아와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던 중에, 엄마가 2년제 야간고등학교에 가라더군요.
우리 엄마는 엄마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학부모였죠. 무슨 차이인지 모르시겠다구요?제 고민이나 힘든점에 대해 물어본적 들어준적 한번 없고 관심가져준 적이 없습니다.야간고 들어가라는거, 학교 가라고 어릴 때부터 깨워준거..다 학부모로써의 역할이지 엄마로써의 역할은 단 한번도 해준적이 없어요. 잠 깨워주는건 누구나 해줄 수 있잖아요..?
하.....................그렇게 조용히 최소 출석일수 맞춰서 오픈북시험 치뤄가면서 가출생활도 겸했었습니다. 상고를 졸업한 이후, 엄마는 대학에 대한 기대를 저에게 걸었고, 저는 마지못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전자과에 수시로 합격하게 됩니다. (상고 대자보 붙인거 개쪽이었죠..)
그러면서 만난 여자들은 죄다 기쎈여자들 뿐.. 타인을 사칭하고 어린애를 쫄따구로 쓰는 여자애..자기가 서울에 잘나가는 조폭이었다며, 말도안되는 X소리를 당연하다는듯이 하는 새가슴달린 여자..
전자과는 한학기도 안되서 포기하게됩니다. 전자과 학생들이 공고 상고와 마찬가지로 머리에 똥만 들어있었고  공부 환경도 안되고 흥미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리학쪽에 관심이 많았죠.
그렇게 평생수업?이라는데서 심리학 수업을 듣게 됩니다. 상담심리사 자격증도 땄죠..원동기면허 이후로 처음따는 자격증이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전자과를 자퇴하게됩니다.
그리고 심리학과에 입학하려하니, 수능도안봤고, 수능 볼 수준도 안되고, 심리학과가 있는 대학은 숭실 고려 서울 중앙... 경기도권은 없었던거같네요.
제 머리로는 턱도 없다는걸 알기 때문에 저는 한양사이버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등록금을 부모한테 얻어 쓰기 싫어서 낮에는 일을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습니다.그렇게 1학년을 나쁘지않게 끝맺고 난 이후, 수강신청을 하기 전 2월 중순 어느날에 저는 집에서 게임을 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혈뇨를 봤다고 하시더군요.당장 병원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신장암이 의심됐거든요.별거 아닐거라 치부하던 아빠에게 화를 내며 병원가서 무조건 검사를 받으라고 했었습니다.(병원에서 일도 했었고 심리학과 의학관련에 관심이 많아서 그레이 아나토미라던지 닥터 하우스라던지 몇번이고 봤었어요)
그렇게 3월달에 신우암 4기 판정을 받습니다. 신우는 신장 뒤에 있고 잘안보이기 때문에 발견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아버지가 건강검진을 매년 빼먹었고, 아픈데도 참고 일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운전면허를 취득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일도 관두고 학교도 관두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수강신청 하기도 전이었어요.신경조차 못썼죠.)면허 따기도 전에 운전하면서 병원에서 신장도 절제하고 치료도 받고 하시던 어느날에..안방에서 비명소리를 듣고 급히 가보니,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시며, 하반신 마비가 오셨었습니다.그대로 119를 불러서 삼성병원에 가게 되었고 척추와 골반, 폐까지 전이가 된걸 확인했습니다.그렇게 저의 평일 일과가 고정되게 되었습니다.
아침일찍 일어나 침대맡에 휠체어를 대서 아버지가 두팔로만 휠체어에 타는걸 도와주고, 저는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1층으로 가져온 뒤, 보조석에 아버지가 차에 오르는걸 도와준 뒤, 트렁크에 휠체어를 넣고, 삼성병원에 가서, 휠체어를 꺼낸 뒤, 아버지가 휠체어에 오르는걸 도와준 뒤, 저는 대기..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걸 반복.. 3개월정도 한거같아요.
7월 어느날 시한부 선고를 받게되고...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있는데 일어나라고 억지로 아빠를 일으키려는 엄마를 죽여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고.. 가족이 전부 탄 상태에서 아빠는 쉬고싶다..엄마는 치료를 더 받자 옥신각신... 아빠 앞에서 처음으로 고함을 쳤었네요 생각해보니..그만좀 하라고..
그렇게 성모마리아 뭐시깽이 요양원에 가게 됩니다.저는 집에서 쉴 수 있게 되었죠..아버지는 요양원에 들어간 이후 급속도로 상태가 안좋아지셨었습니다.그러다 엄마는 요양원에 이불을 들고 먼저 내려갔고, 저는 집에서 쉬고싶어서 좀 늦게 가겠다고 했습니다...그 전화만 아니었으면요.
친가에서 찾아왔는데 아빠가 인사불성이었는데 오늘은 정신도 말짱하고 밥도 잘먹고 말도 잘한다.완전히 정상인같다. 라는 말을 듣고 무서워졌습니다. 소름이 돋았었습니다.병원에서 일할 당시에, 이성이 없던 사람이 죽기전에 멀쩡해지는걸 본적이 있거든요..그날 새벽에 저는 바로 운전해서 새벽아침에 도착해서 이성을 잃으신 상태로 몸이 고통에만 반응해서 사이드레일에 팔꿈치 무릎을 계속 부딪혀 멍이든 상태로 묶인..아버지가 계시더군요.
((그 때 당시 생각이 나서 잠깐 글이 30분정도 멈춰져서 어투가 바뀌었습니다..양해바래요))
제가 도착했을 때도 계속 부딪히고 계셨어요..제가 침대에 앉아서 잡아주니 움직임을 멈추시더군요. 엄마하고 누나가 아무리 말려도 안됐었는데 제가 오니 멈췄다네요...참나
옆에서 과일을 칼로 자르던 엄마를 보며 화가 났고(이전부터 싫어했음) 담배를 피려했는데 없어서 근처에서 사오겠다고하고 가려하니 임종하실 것 같다더군요..임종을 지켰습니다. 옆에서 신부님이 뭔가를 읊조리고 가족은 울고..저는 울지 못했습니다.
통원을 하던 중, 아버지와 한 약속 때문이었어요."이 집안에 남자는 너뿐이다. 너가 기둥이다. 그러니 너가 무너지면 안된다. 집안 여자들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22년 살면서 단 3개월 가량 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질량이.. 22년 평생을 3번 더해도 못미칩니다.제가 10년만 늙었어도 좋을 벗이 됐을 거라는 둥..
제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 사회모임같은 곳에 자주 나가며 주로 대화하는 상대가 20대후반~40대중반이였거든요..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 소리 듣고 또래하고 잘 어울리질 못했습니다.여자애들 연애상담같은건 많이 해줬었네요.. 어떤 남자앤 커플상담해주니까 울면서 무릎꿇고 고맙다고 할정도로..(지금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네요)
본론으로 돌아와서..장례식 때도.. 발인할 때는 친지들에게 어떻게 지냈는지 설명해주던 와중에 제가 기둥이라는 대목에서 명치께에서부터 올라오는 그..뜨거운게 올라오더라구요. 억누르려고 해도 참아지질 않더군요..순간 울컥해버린 이후로 다시 눈물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었어야 했는데...^^[[2016년에 전역하고 다음해에 폰 바꾸면서 메모도 갖고오느라 수정일자랑 만든날짜가 다릅니다.]] 
그리고 위에 서술했다시피, 심리학을 배우다 말아서.. 공부 중에 배운걸 저에게 대입하는걸 못했습니다.사람의 감정은 억누르면 그게 병이 된다...우울증이던 병이던 장애던..
그렇게 무감정한 나날을 보내며 그때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에게도 미안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7월 말 이후, 유산 정리가 된 직후 10월초에 바로 군입대를 하게되었습니다.(이후로 엄마가 단월X라는 명상지도사라는 곳에 몇천만원의 금액을 줘가며 마스터힐러 과정을 수료했다고..사회에서 알아주지도 않는거..1억주고 미국에 여행갔다왔다던가...? 하..혈압이..) 
전방사단 운전병에 지원하게 됐는데, 현재는 사라진 102보충대에 입소해서도 멀쩡했습니다. 대변 못보는거, 밤에 잠안오는거 다른 사람들하고 동일했습니다.중대장훈련병도 해보고 별일도 다 있었죠. 그렇게 21사단 신교대에 입소하게 됩니다.백두산뭐시깽이라면서 무박4일 부들부들... 정말 별일 없이 수료했습니다.후반기 교육으로 운전교육도 수료합니다. 그때도 좋았습니다. 괜찮았어요.
자대배치를 27사단으로 가게 됩니다. 동기가 6명이네요? 보급수송이네요? 심지어 동기생활관을 씁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터지게 됩니다. 아니..그냥 몰랐던겁니다.
군대와서 슬픈거니까 우울증인걸 몰랐던거고맨날 뼈빠지게 훈련하니까 곯아떨어졌던거고몰랐던겁니다. 제가 가진 문제를..
군대 다녀오신분들은 잘 아시듯 앞존법, 선임군번 외우는거......저는 더럽게 못했습니다.위에 40~50명정도 선임이 있는데, 바로 위에 3명정도밖에 못외웠었습니다 초반엔.그때 중대장으로 있었던 김X웅 대위님..정말 천사였습니다. 직접 손수 제작하신 군번표를 가져와서 외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이게..부조리긴 한데..어쩔 수 없어서...아시죠 님들?)제가 힘든점이 있는걸 정말 성심성의껏 진심으로 다가와 주셨었습니다.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고...춘천국군병원 군정신과에 가게됩니다 ^^ 
미리 말씀드리지만 군정신과는 야매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가면 안되는겁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울지 못한 것..잠을 잘 못자는 것.. 등등을 상세히 말했습니다.30분넘게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처방은? 졸피뎀과 렉사프로를 받았죠.(둘다 더럽게 쎈거였습니다.)졸피뎀은 그때 당시만하더라도 데이트강X약물이라면서 뉴스에까지 나올정도로 독한 수면제였고렉사프로도 부작용이 좀...있었어요.
약을 같이 먹을 땐 괜찮았는데 졸피뎀이..너무 독했습니다.먹고 그냥 기절했어요.그리고 아침에 일어나고 일과시간에..뇌가 자고있습니다.앉아있으면 그대로 앉은상태로 계속 졸고..선임이 몇번을 깨우고 화를 내도 다시 잤습니다.기억력도 나빠져서 뭘 외우질 못했습니다.선임이 뭐라뭐라 화내고 뭔가를 시켰는데...뒤돌면 까먹습니다. 그정도였습니다..그렇게 저는 폐급이 되었고, 수면제를 먹으면 안되겠다라고 결심하고 단약하게 됩니다.그런데 또 문제가 터집니다.. 없던 자살충동이 생기고 성욕이 감소되고 불면증까지..아무리 생각해봐도 렉사프로가 문제였습니다. 자살콜센터에도 전화하고 가족이 찾아오고 할정도로 심각했죠. 문제 원인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알듯이 렉사프로를 더 먹기가 싫었습니다.
와중에 김X웅 대위님은 타 사단에 전출을 가셨고.. 소대장이었던 간부가 중위로 올라갑니다.말년병사들과 친했던 소대장은 말그대로 저를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었고, 저는 군내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저를 크게 나쁘게 보지 않은 임X찬 동기 뿐이었죠.
춘천병원에 설명을 하고난 이후, 렉사프로에서 웰부트린으로 강도를 낮춥니다. 수면제도 끊었습니다. 점차 나아져갑니다. 군생활에 적응해나갑니다. 선임군번도 외웁니다. 한달 후임 상담도 해주고 위로도 해줍니다. 좋아졌습니다. (11월군번 이XX 너 보고 있으면 부끄러운줄 알아라.찌른다 뭐다 하면서 사고치려는거 좋게 타이르고 감사까지해놓고 이간질에 넘어가냐)
그런데 갑자기 자대 내에서 저에대한 인식이 나빠집니다. 같은 10월 동기인 삼척포에서 온 놈이 저를 이간질했답니다. 증거도 있었고 저는 중대장에게 가서 얘기를 했습니다.중대장은 처벌하겠다 합니다. 근데 그 이간질한 놈이 얘기를 좀 하잡니다.음료수 한개 주면서 차량대 사이에 앉아서 얘길하는데 자기가 삼척포에서 와서 말투가 어떻다느니 자기가 미안하다면서 풀잡니다. 제가 너무 과민했던건가 싶어서 이번은 봐줘야겠다 싶어서 용서합니다. 그런데 또 이간질합니다. 그런데 증거가 없습니다. 더 치밀해졌습니다.
저를 따르던 이XX 한달후임도 하루아침에 돌변했습니다. 다른 후임들도 저를 무시합니다.중대장은 저보고 그린캠프에 가보지 않겠냐합니다. 그나마 친했던 선임을 멘토로 삼고 그린캠프에 갑니다. 
자신이 래퍼라는 그린캠프 관리병.. 누군진 기억안나는데 괜찮은 놈이었습니다.그리고 거기 온 관심병사들....진짜 상태 이상했습니다.같이 온 멘토선임이 너 여기 왜 왔냡니다.치료상담사가 매주 몇번씩 오는데 저랑 상담은 안하고 수다를 떨고 관심병사는 상담사랑 상담하기 싫고 저랑상담하고 싶다고 합니다..관리간부가 너 왜왔냐합니다. 여기 관리병 전역하면 저보고 오라고 합니다. 생각해본다 했습니다. 그렇게 1달을 놀면서 꿀빨고 자대복귀합니다.그리고 다시 관심병사가 됩니다. 저는 그냥 아싸로 쥐죽은듯 살게됩니다.그리고 더이상 사람들에게 치이기 싫어서 위병조장근무를 자처합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소설도 보고 망상도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군대 보안관련해서 문제점이 있어서 보완했으면 좋겠다...라고 사단장의 편지?라고 인트라넷에 편지를 보냈는데ㅋㅋㅋㅋㅋ근무취침중에 행정반에 전화가 왔습니다. 사단보안장교한테 전화가 왔답니다.그때 행보관이었던 중사님..잘 계십니까.그 때 매의 눈으로 통화내용을 들어보려고 열심히 노려보시던거...겁나 쫄렸습니다.
전화의 요지는 제가 편지를 작성한 것에 대한 부가설명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부대 야간 수하 도중 취약점과 함께 전시에도 어떠한 문제점이 있다.이런식으로 보완을 하는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편지를 작성해본다. 라고 했었기 때문에..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중대장한테까지 불려가서 사정설명을하고..혼납니다ㅋ
그리고 얼마 뒤에 사단장표창이 날라왔습니다. 사단 내 병사가 행사말고 이렇게 받는게 최초랍니다.기분이 째지는데 휴가를 다 쓰질 못했습니다...길게 못나가게 해서....슈ㅣ발...

 

증거 뽷. (여담으로 동원훈련을 자대로 가게됐는데 제가 모르는 후임들도 저를 알더군요. 위병소를 바꾼 사람이라고.. 어우 쪽팔려. 어우 다시 배운다고 얼마나 욕을 했을까)


이후 저는 조용히 전역을 했고. (전역모? 그딴거 못받았습니다. 나갈때도 혼자 몰래나갔습니다)


뭔가를 시작하려 했는데.............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심리학 공부...내다버린 1학년..4년 다시 공부하고 대학원가서 다시 몇년 공부하고..24살이라는 나이가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움엔 늦음이 없음이라는걸 그때도 알고는 있었지만..용기가 안나더군요.돈도 많이 들고..


여자친구가 살던 춘천에 둥지를 틉니다. 월셋방을 얻어서 LG U+ 권매사가 됩니다.

어느 매장에 자리를 잡고 단골도 만들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중에..장X(외자)라는 여자애가 관두려한다면서 자리를 바꿔달랍니다.

????????????

까라면 까야죠..항변해봤지만 일개 직원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핸드폰 판매사는 각 매장마다 정해진 케파(한달에 예상되는 판매대수)가 있고 할당량이 있습니다.

그걸 채워야 기본급이 나오고 그 이후 판매분부터 대당 성과급입니다.


근데 세후로 월 230을 넘게 받던 제가 넘어간 매장은.. U+를 안팔아줍니다. 개보듯 합니다. 저보고 SK를 팔랍니다. 나중에 챙겨준답니다. U+팔려고 하면 텃세에 눈칫밥 오지게줍니다.

급여가 반토막이 납니다.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미쳐돌아갑니다...


그러던 와중에 타 매장에서 친분이 쌓인 사람과 연이 닿아서 대화를 하는데 헤드헌팅을 합니다.

월 250이상으로 급여를 맞춰주겠다... 대신 휴무가 없다. 저는 콜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단계회사에서 하는 핸드폰 대리점이었습니다.

연결되어있는 매장중에 판매점도 있구요..춘천에만 5곳이었습니다.


근데 뭐지? S8이 공짜라네? 근데 사기....인거같다..아니 사기다 이건.

2017년도 3~5월 즈음 사이로 S8공짜라고 300명 이상이 피해를 본 사건입니다.


사기 수법의 요지는 s8이 공짜라고합니다. 무조건.

계약을 하실꺼냐 묻습니다. 대부분이 ok합니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합니다.사용X 그냥 발급만.


태블릿으로 계약을 진행합니다. 직원이 체크할거 다 하고 싸인만 손님한테 시킵니다.

이후 계약서 작성이 완료된 이후에 핸드폰 박스까지 뜯은 다음에 자세한 설명이 들어갑니다.


(3년전이라 설명은 약간 다르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다단계 매장이 동일한 대본으로 판매했었습니다.)


"고객님 좋은 조건으로 가입하게 되셨는데 자세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저희 통신사하고 카드사하고 콜라보를 해서 이런 행사를 한건데요.

저희 통신사에서 467500원, 카드사에서 467500원을 지원해드려서 할부원금은 0원이에요.

이해되셨죠? 그런데 1년뒤에는 월 4만원정도씩 기기값이 나오세요.(여기서 손님이 반박할때까지 기다림)"

"왜요? 공짜라면서요?"

"1년뒤에 4만원이 나오시는데 반납하시면 기기값이 안나오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한수 접습니다. 왜?

당연하듯 얘길하고, 이미 계약서 싸인 다하고 박스까지 뜯고 신용카드 발급신청까지 했기때문에.

이런 설명 들은 적 없다!는 인정이 안됩니다. 이미 계약서에 싸인을 다 했기때문에..개통까지 완료했기 때문에.


"그리고 3개월동안 7만원대 고가요금제를 써주셔야 하세요. 이후로는 바꾸셔도 됩니다."

까지가 끝인거같죠?


신용카드가 남았습니다. 손님한테 설명은 안해주지만 물어보면 해주는 답변이 또 있습니다.


467500원을 30개월로 나누면 15000원이 조금 넘습니다

7만원대 요금제의 선택약정 할인금액이 월 15000원이 조금 넘습니다.

핸드폰 요금제에 붙어있는 할인을 카드할인으로 받는거라고 구라를 칩니다.

명세서 상에는 카드요금이 나오실거라고. 하지만 핸드폰 쪽에서 할인이 들어가신다고.

요즘 누가 속냐구요? 2017년에 춘천에서만 300명이 넘게 털렸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못팔겠어서 정상적으로 팔았는데...월급을 안줍니다 ^^

2개월을 일했는데 사장놈 찾는 손님을 제가 처리 못했다고 일하는데 짐싸서 나가랍니다.

월급을 못받아서 월급 달라고 하니 110만원 정도 받았습니다.

하.....^^

그리고 다단계라고 했었죠? 매주 3일정도를 주기적으로 서울에 가서 다단계 모임을 갖습니다.

핸드폰 호갱만드는법이라던지, 영양제 파는거..시연하고..판매하고..본점가서 제품들 구경시키고..


복수심과 더불어 정의감에 불타서 피해자에게 연락해서 진정서를 받아서 경찰서에 갔습니다.

근데 경찰하고 그 사장놈하고 친구네요? (사건접수도 안됐는데 그 사장놈이 협박 전화함)

그리고 여기저기 피해자에게 연락돌린거를 빌미로 그 사장놈이 피해자들한테 저를 이간질해서

짤린놈이 사칭하면서 유언비어 살포하는거다 라는둥..영업방해로 500만원 벌금물었습니다.


그 뒤로 멘탈이 가루가되서 빚이 1000을 넘고..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고향에 돌아와서 알바를 하던 와중에 한국에서 현재의 와이프를 만나게 되고 사귀게 되고

속도위반으로 아이도 낳게됩니다.


처음엔 일본으로 이민을 가려고 했습니다. 데릴사위로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딱 시기가 지소미아, 화이트리스트 등등..갑작스런 문제가 터져서 일본행을 포기하게 됩니다. (비자 발급한다고 16만엔 썼는데..)

가뜩이나 방사능 문제에 아베도 싫어하는거 참고 가려했었는데..(와이프도 아베 싫어합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한국에 살게되면 집에 엄마뿐이니 와이프하고 아이하고 같이 들어와서 살아도 되냐 물었더니

그건 힘들답니다..차라리 집을 구해준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설득을 했습니다. 같이 살고 그 돈으로 가게 열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이 됐습니다. 알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는 한국에서 11월달에 요식업 장사에 뛰어들게 됩니다.

초반에..잘됐어요. 잘돼야만 했습니다. 와이프와 자녀 생계를 책임져야하는걸요.


그런데 개업한지 3개월만에 코로나가 터집니다..매출이 떨어집니다...

우습게도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자동차 렌트를 하고 교정까지 시작했습니다.

교정은 과개교합이 심해서 이 상태로면 10년뒤엔 뼈가 녹아서 임플란트도 안된다고..

겁나서 했습니다. 12개월 할부로..코로나 터지기 전까진 감당이 됐거든요..^^


매출이 3분의1로 떨어졌습니다. 음식이 상합니다. 버리고 새로합니다.

지출만 많고 매출은 안나옵니다. 적자입니다. 스트레스도 심해졌습니다..

와이프가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와이프가 한국에 오는걸 고대하고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4월즈음 오기로 했었는데...왜 코로나가 터져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몸도 약해졌습니다.

일주일에 두번 쉬게 되고 잠이 많아졌습니다.

게임중독에 걸리고..한번 자게되면 18~20시간을 잡니다.

이틀 내리 쉬는게 20시간을 내리 자버려서..

그리고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갖가지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콜린성두드러기.. 체온이 올라가면 알러지반응이 옵니다.

신경성 장염.. 하루에도 네다섯번은 화장실에서 방귀만 뀌고 아픕니다.

가게에 가기가 싫습니다..무섭습니다. 혼자있는게 너무 외롭습니다.

게임중독...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돈나오고 집에서 게임만 하게 됩니다.

우울증이 오고 잠도 푹 못자서 항우울제인 알프람도 먹고 있습니다.

나름 단골도 있고 하지만..잠깐 재난카드로 매출이 둘쭉날쭉 하는데..

프랜차이즈라서 순익이 높은것도 아니고..월세도 비싼데 두달이 밀려있고

어머니에게 버티기 힘들다고 멈출 수 있을 때 멈추는게 좋을 것 같다고 폐업을 얘기했는데

버티고 나가서 쉬지말고 일을 해야지.라는 짜증만 듣습니다.

움직이라고..움직이라고..

한번이라도 위로란걸 해줬으면..내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기 싫은 이유에요..


극단적인 생각도 해보고..와이프한테도 물어보고..

와이프는 천사에요. 다 포기하고 일본으로 와서 새인생 살자고합니다..

제가 인생을 포기하지만을 않길 바란다고 합니다.

도망치듯 일본으로 가야할까요...

저도 제가 한심해서 대책이 없네요...

이렇게 오늘도 가게를 쉬는 핑계를 대며, 또 게임을 키겠죠..

그냥 망한인생이라 치고 죽기엔 와이프하고 제 아들이 불쌍하네요..


연기도 하고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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