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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여자

럽이 |2006.11.15 21:57
조회 13 |추천 0

꽃집 여자

이기성

거리로 난 창을 조금 열어놓고 가위를 집어 든다. 흰 손가락 지나가는 자리 꽃잎들 지루한 식탁 위로 떨어지고 햇빛,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지나 다리 사이에 축 늘어진 그림자를 만든다.
검푸른 덩굴손 허공으로 뻗어가다 말라붙고 커다란 화분의 멕시코산 선인장이 독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때 흐무러진 살에서 비쭉 돋은 가시, 그녀의 손가락을 쿡 찌른다. 멈칫, 흔들리는 등뼈 뒤

세계의 구멍이 뻥 뚫린다.
정오의 뻐꾸기 울음 소리 없이 쏟아지는 거기, 환난의 구멍 속으로 자꾸 비어져 나오는 붉은 잎을 밀어넣는 그녀. 뜨거운 담뱃불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다리를 지져대듯 난폭하게 꽃잎을 짓이긴다.
시든 햇빛을 쓰레기통에 쑤셔 박고 거울 앞에 서 있는 그녀, 어두운 식탁을 휘장처럼 덮고 있는 머리카락 무쇠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낸다. 식어버린 밥을 씹으며 목발을 집고 식탁 위를 걸어가는 여자의 등 뒤에서 나무뻐꾸기 울음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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