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좀 더디오더라도 이해해줘요
[24]
선배는 꽤나 바쁜 사람이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는 지인도 많았고
함께 있는 중에 오는 전화도 잦았으며,
속해있는 모임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자리가 많은 편이었다
몰랐던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해줬으면 하는 바램
그 바램을 직접 드러내기엔 뭔가 조금 자존심 상하는 기분?
나혼자만 너무 좋아하고
나혼자만 너무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이니까
나 오늘 저녁 소모임 뒤풀이 가!
내일 저녁에 뭐할거야?
저 내일 저녁 약속이 있어서요
다음에 뵈요!
쿨해지고 싶었고
어린애처럼 굴고 싶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가 된다고
사귀기전에 있었던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고
나만 바라봐 달라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며칠간 이어진 선배의 저녁 약속
서운했지만 표시내지 않았다
나 저녁 약속 끝나면 10시쯤 되는데
끝나고 집에 데려다 줄게!
아니예요!
집 방향 비슷한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랑 같이 가면 되요!
점심에 시간을 맞춰 식사를 하거나
잠깐 커피를 마시거나
그마저도 선배 친구들, 내 친구들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후 수업 한시간 비지?
같이 밥 먹자!
네! 지훈선배도 같이 있죠?
다은이도 데리고 갈테니까 같이 먹어요!
내 딴에 서운함을 숨기고
애써 쿨한척 아무렇지 않은척 노력했다
그날도 선배는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냥 집에 가도 되는데
굳이 나도 저녁약속이 있다고
있지도 않은 약속을 급 만들어 냈다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선배는 바쁘고 약속이 많다
나는 그냥 선배의 수 많은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소주를 털어 마시며
이런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그렇게 즐겁지 않은 것 같다고
쌩주접을 떨었다
친구들은 원래 얼굴이 잘난놈은 얼굴값을 한다고 했다
그 얼굴값을 과연 니가 감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선배와 내 관계 지속여부의 관건이라 했다
이게 위로냐? 이게 위로냐고?
니들이 친구냐?
술을 마시는 중간에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받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치워두고 술을 마셨다
술이 약하지 않은 편이라
꽤 마신 것 같은데 취하진 않았다
그런데 평소보다는 조금 알딸딸한 기분은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내 친구 다은이와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친구 남자친구인 지훈선배가 데릴러 왔다
선배도 함께 있는 술자리 였던 걸로 아는데
지훈선배는 여자친구 데려다 준다고 먼저 나왔나보다
지훈선배의 우선순위는 여자친구인 다은이구나
기분이 씁쓸해졌다
동근이가 너 전화 안받는다고 걱정하던데?
걱정은 무슨...
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재미있게 잘 놀고 있을건데요 뭐...
친구 커플을 보내고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핸드폰을 뒤적였다
부재중 전화 10통
어디? 라고 묻는 톡 메시지 몇개
전화할 기분은 아니어서
집 가는길 이라고 답톡을 하고
학교 근처 사는 친구 집으로 갈 참이었다
빈손으로 술 냄새 풍기며 갈 수 없으니
술 깨고 들어가야겠다 싶어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혼자 버스정류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술을 마셔서 그랬나
친구들의 위로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그랬나
아님 친구를 데릴러 온 지훈선배 모습이 좋아보여 그랬나
갑자기 눈물이 났다
찔끔찔끔 눈물이 나는데
까놓은 아이스크림은 먹어야겠고
쭈쭈바를 입에 물고 눈물을 닦았다
아이스크림이 눈물 날만큼 맛있어?
낯익은 목소리 낯익은 얼굴
선배였다
선배는 아마도 근처에서 술을 마셨을 거고
뭐 다은이가 지훈선배한테 다 말했겠지
그래서 지훈선배는 가는 길에 선배한테 전화를 했을 거고
이제껏 센척 아무렇지않은척 잘해왔는데
이렇게 무너질 수 없으므로
눈물을 급히 닦고 웃는 얼굴로 선배에게 아는척을 했다
어 선배 오랜만이네요!
그게 나한테 하는 인사야?
집 가는 길이라며?
너무 늦은것 같아서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가려구요!
나한테 왜 말 안했어?
아...이런걸 선배한테 일일이 다 말해야 하나요?
서운한 마음에 선배에게 조금 비뚤게 말해버렸다
내 대답에 선배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입에 물려져 있던 쭈쭈바를 빼서
아이스크림을 위쪽으로 밀어주고는 다시 내 입에 물렸다
가자! 데려다줄게!
친구네 집 어디야?
여기서 가까워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중간에 나오신것 같은데 다시 가세요!
선배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선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럼 아이스크림만 다 먹고가!
선배의 눈빛이 뭔가 화난것 같이 무서웠다
반항할 수 없었으므로 아이스크림을 물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버스정류장에 다시 앉은 나는 지금 이 분위기가 어색했다
재 빠르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려는데
선배가 내 입에 물려진 아이스크림을 또 빼냈다
빼낸 아이스크림을 자기 입으로 물고는
이거 다 먹을때까진 못가!
뭔소리야?
아이스크림을 줘야 먹든가 말든가 하지
지가 뺏어서 물고 있으면 어쩌자고
너 나한테 서운한거 있지?
아니요 없는데요!
나는 너한테 서운한거 있는데
오늘 풀고가자!
우리 사귀는거 아니야?
너 근데 왜 사귀기전보다 더 그냥 아는 학교 선배처럼 대해?
와 어이없다
내가 하고 싶은말이 더 많았는데
왜 자기가 먼저 선빵을 날리나
그래요 일단 들어나봅시다
왜 집에 데려다 준다고만 하면 거절하는건데?
왜 오늘같이 술마신날 우리집에 안오고 친구집에 가는건데?
왜 점심에 같이 밥 먹자하면 지훈이 끌고 나오라는건데?
왜 저녁마다 바쁜건데?
나에게 선배가 물었다
선배가 바쁜것 같아서요
바쁜데 내가 선배만 바라보고 있는것 같으면
선배가 나한테 질릴것 같았으니까요
요 며칠 선배한테 갖고 있던 서운한 마음이
입으로 터져나왔고 눈물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친구들이... 선배가 바빠도...
내가 이해해야한대요
선배 얼굴 값 하는거... 내가 감당해야 하는거라고
감당할 수 없는거면 헤어지랬단 말이예요 라면서
웅얼웅얼 우는건지 랩을 하는건지
심각한 얼굴로
나한테 일방적으로 질문을 퍼붓던 선배는
갑자기 표정이 풀어졌다
어느 포인트에서 풀어진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얼굴값 뭐 이런 단어에서 흐믓해진거 같았다
알았어!
그러니까 일단 우리가 오해가 있었던건데
오늘 다 풀자!
그래서 너 어디로 간다고?
잉??????
갑자기 질문 뭐?
친구네 집이요!
어디라고?
친구집이라구요...
뭐라는건데 어디로 간다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계속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선배를 보니
아..
내가 해야할 말
가야할 곳은 하나구나!
선배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