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짧게 요약을 하자면, 저희 엄마의 가족을 찾아드리고 싶습니다. 엄마가 대략 60년생 이세요(나이가 확실하지 않아요). 대구 출신이시고 대충 짐작으로는 64년-67년도쯤에 집 주변에서 길을 읽어서 지금까지 가족을 못찾은 상태에요. 엄마가 환갑을 이미 넘으셨고 부모님이 살아계신다고 해도 연세가 아주 많으실거라 짐작이 되어 더 시간이 늦기전에 빨리 찾기를 바라는 바램입니다.
저랑 엄마는 15년전쯤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지금까지 여기서 살고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저는 엄마랑 살아요). 한국에 안살다보니 찾고싶어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고요. 아, 저희가 이민을 왔다고 해서 가정형편이 좋은것도 아니에요. 그 당시에는 이민이 지금보다 훨씬 쉬웠고 정말 운좋게 온겁니다. 비행기 티켓도 너무 비싸고 한국에 가도 지낼곳이 없다보니, 숙박비용 등등 돈 들어가야 하는게 너무 많아서 오랫동안 머물기도 힘들고요..
본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엄마는 현재 만으로 60세 이시고, 이름, 나이 정확하지 않아요.
워낙 어릴적 가족이랑 헤어져 그당시 기억이 거의 없으세요. 부모님 성함도 모르시고 생각 나시는건 집구조가 다에요. 대략 55년전에 집앞에서 놀다가 길을 잃으셔서 원치않게 고아로 살아오셨어요. “고아”라는 이유로 남에게 동정받고 싶지않으셔서 그동안 숨기고 사셨대요. 저도 이 사실을 최근에 알았고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들어가셔서 온갖 잡일을 해가면서 잠도 못자면서 일을 하셨대요. 엄마가 정말 성실한 성격이신데 그 당시 보육원 원장이 목욕탕을 하셨었는데 엄마는 아주 정직하게 일을 하셔서 원장이 다른 애들에게 시킬 일들도 다 엄마가 하게 하셨나봐요, 그래서 학교도 거의 못 다니셨고 그 어린 나이부터 잠을 하루에 4시간도 못자서 키도 되게 작으세요. 그 당시에 왜 가족 찾을 생각을 안했었냐고 제가 여쭤보았지만 엄마의 답변은 워낙 사는게 바쁘고 힘들어서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하시네요. 최근 가족을 찾아야 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으셨대요. 그 이후로 매일 가족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보시고 거기에 나오시는 분들을 보고 되게 부러워 하세요. 지금은 그 방송들이 대부분 폐지를 해서 더 막막합니다. 방송사에 연락을 하고싶어도 한국번호가 없기때문에 연락도 불가능 하고요..
26년전 엄마가 저를 임신하셨을떄, 그때 저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줘야 겠다고 결심을 하셨는지 그 당시에 가족을 찾는다고 신문에 광고를 내셨대요 (그때는 가정형편이 괜찮은 편이었어요). 그 광고를 보고 가족이라는 분을에게 연락이와서 만나게 되었나봐요, 엄마는 드디어 가족을 찾았다는 소식에 너무 기뻐 하셨고 유전자검사를 했는데 99.9% 였다고 결과를 그 가족의 장녀라는 분만 보시고 저희에게 알려주셨었대요. 저희 부모님은 (당시에 아직 이혼 안하셨어요) 너무 기뻐서 마치 결과를 확인 해야겠다는 생각을 미쳐 못하셨대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답답하네요. 확인만 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몇십년만에 여동생을 찾은건데 연락도 되게 뜸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이거에 대한 불만이 있으셨고 가족에게 물어볼떄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바빠서.. 사는게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엄마도 저 키우시느라 바쁘셨고 그냥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셨대요. 그러고서 15년정도가 지났고, 엄마가 왠지모르게 다시 유전자검사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셔서 진행을 하셨었는데 결과가 친자가 아니라는 거에요. 너무 불일치해서 친자로는 도저히 볼수없다는 결과였고요. 얼마나 뻔뻔한지 아직까지도 그 가족들은 본인들이 진짜 가족이라고 계속 우기고 있어요. 그게 엄마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요. 그분들중에 엄마랑 정말 닯은 분이 있거든요. 하지만 유전자가 안맞다는데 무슨 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때 장녀라는 사람이 거짓말만 안했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이 사람의 거짓말로 저희 가족은 물론, 그 사람의 가족들까지 다 속였습니다. 아마 본인의 부모님이 계속 딸을 찾으니 그 사람들의 마음 편하자고 거짓말을 한거겠죠.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너무 억울해요. 제가 이런 심정인데 저희 엄마는 오죽하시겠어요..속이지만 않았어도 벌써 가족을 찾았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화가납니다.
제작년에는 어떤 방송사의 피디님과 작가님과의 연락이 닿아서 도움을 주시겠다는 말씀에 현편이 안좋은데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얼른 티켓을 구하여 한국을 방문 하였습니다. 엄마가 긴장을 하셔서 그런지 15시간 비행 내내 구토를 하시고,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체 한국에 도착했는데 컨디션이 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피디님이랑 작가님하고 그날 바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기에 서둘러서 약속장소에 나갔었죠. 상황을 다 말씀 드리고 헤어질때 내용을 검토해보고 연락 드리겠다고 말씀 하신 뒤에 그 자리에서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않았고, 제가 먼저 연락을 해도 읽씹 하셨습니다. 저희는 그 분들만 믿고 그 먼길을 고생해서 온건데 연락이 안되니 너무 어이가 없고 허무 하더라고요. 방송사 입장에서 얘깃거리가 안되면 방송이 힘들다는건 당연히 이해하죠. 하지만 연락하나 없었고 기대를 많이 하고 온 엄마랑 저는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한국에 온김에 경찰서에 들러서 유전자 등록도 해놨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봤을때 이 방법으로 찾을수 있다는 확률은 아주 낮은것 같아요. 나이드신 분들이 유전자 등록에 대헤 아실거라는 보장도 없고, 만약 예전에 등록을 하셨더라고 10년(?) 이 지나면 정보가 없어진다고 하네요. 대구시청에도 들려서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얻을수 있던건 초등학교 사진, 중학교 사진 뿐이었습니다. 엄마가 계셨던 보육원은 없어진지 오래고 그 보육원 원장님도 돌아가셔서 더 이상 정보가 없는것같아 너무 막막합니다.
어려운 부탁이겠지만, 대구에 계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시게된다면, 주변에 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대가 좀 있으신 어른분들께 이 사연을 전해주시면 너무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이 밑에는 엄마가 작성하신 글 붙여넣을게요.
이름: 김순이(희) 1960년생. 이름, 나이 확실치 않습니다
길 읽어버린 년도:1964~1967 (추측), 8 월 여름 이었어요
집 앞에서 놀다가 길을 잃어서 그 이후로 고아가 되었는데 어떻게 경찰서로 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얼마안되서 보육원 원장님이 저를 데리고 봉산동에 있는 파출소에서 대봉동에 있는 보육원까지 걸어서 갔었어요. 제 추측으로는 제 집이 봉산동 주변동네 (동성로, 삼덕동, 봉산동) 근처일거에요
가족: 아버지, 엄마, 언니, 그리고 나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옛날치고는 식구가 단촐했던걸로 기억해요.
얼굴생김새: 얼굴이 작고 눈이 많이 들어간 편이고, 코가 오똑해요. 코가 커서 어릴때 많이 놀림받았어요.
보육원 입소했을때 이마에 상처가 있었는데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겠고, 오른쪽 눈썹 부위에 흉터가 있는데 이 또한 기억이 없어요. 보육원 입소 해서 중위염을 자주 앓았어요. 중위염을 재발 가능성이 높아 집나오기 전에도 종종 있었던것 같기도 해요.
집구조: 초가집 이었던거 같아요. 지분의로 큰 구렁이가 올라가는것 기억합니다. 집의 구조상, 앞에서 봤을때 오른쪽 끝에 방이 침외 창고인지, 고구마 창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로 가득했어요. 그리고 집에 제사를 종종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 모르겠지만 (위 아래 흰색 조고리)를 입으셨던 걸로 기억나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종이를 자르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마당이 넓었어요, 씻는곳에 담벼락이 있었는데 넝쿨장미가 많이 피었었고 마당에 우물도 있었고, 그리고 그 당시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았던지 엄마는 양쪽어깨에 물 양동이를 메고 물을 길러 가곤 했어요. 저도 엄마 치마자락을 잡고 따라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물 길렀던 장소가 컸옸던 걸로 기억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을 길러 다니곤 했어요. 물길러 먹었던 장소가 저희 집이랑 가까웠던것 같습니다. 집 마당에서 대문있는 곳까지 긴 동계단이 있었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을때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높이가 꽤 되었던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가 가족을 찾을수있게 도와주세요 너무 간절합니다